
'스틸 헌터'의 첫 인상은 '다소 의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게임 어워드 2024'의 본 행사가 진행되던 와중, 스틸 헌터는 정말 뜬금없이 나타났다. 월드오브탱크와 워쉽까지, 시뮬레이션과 액션을 반반 섞은 감성으로 비교적 현실적인 기갑 게임을 만들어온 '워게이밍'의 작품 치고는,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던 탓이다.
지난 수 년 간, 워게이밍의 상황은 상당히 어려웠다. 게임 흥행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국제적 문제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개발사가 바로 워게이밍이다. 오피스를 닫고, 앰뷸런스를 비롯한 피난민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소모해 직원들의 인센티브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 완전 새로운 IP가 나오는 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외적인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스틸 헌터'를 플레이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먼저 기존 워게이밍이 고수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예상치 못한 장르와 게임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베타 테스트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무난하고 쉬운 미들 코어 기갑 액션
'스틸 헌터'는 흔히 '메카물'이라 통칭하는 거대 기갑 로봇을 소재로 삼은 게임이다. '메카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이 '메카물' 장르에도 조작이나 무게감으로 구분되는 일종의 '깊이의 차이'가 있는데, 개인에 따라 취향이 갈린다. '멕워리어' 시리즈처럼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움직임과 육중한 조작감을 보여주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존오브더엔더스'나 '메카아라시'처럼 엄청난 속도감과 경쾌한 조작감을 보여주는 게임도 있다.
'스틸 헌터'는 그 중 중간에 걸친, 적당한 무게감과 너무 둔하지도, 빠르지도 않은 수준. 비슷한 수준의 게임로는 '타이탄폴(탑승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런 '중간 수준 메카물'의 특징은, 너무 어렵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지만, 반면 '메카물'만이 가진 매력이 상당 부분 희석된다는 단점이 있다. 일반적인 사람에 가까운 속도감과 무게감을 보여주다 보니, 거대 기갑 병기만의 감성이 살짝 죽는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워게이밍은 다양한 컨셉의 '헌터(로봇을 이르는 말)'로 풀어냈다. 기본적으로 '타이탄폴'의 '타이탄'들은 무장과 프레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다 인간형이며, 레그 파츠나 바디 파츠를 변경할 수 있는 작품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간형'에서 변형된 모습을 취하기 마련인데, 여기 나오는 '헌터'들은 애초에 구조가 짐승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방벽과 3점사 포, 미니건으로 무장한 '위버'는 4족의 관절 다리가 동체에 붙어 있는 거미 형태의 로봇이며, '펜리스'와 '우르서스'는 각각 늑대와 곰을 형상화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실제 전투에서도 네 발로 뛰어다니는데, 게임 내에서 만나면 마치 '트랜스포머'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바로 '스틸 헌터'만의 시스템인 '콜로서스 코어'. 특정 아이템을 얻을 경우 제한적으로 엄청난 크기의 거대 로봇으로 변신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이 경우 같은 콜로서스가 아니면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전체적인 플레이 감각은 매우 쉽고 가벼운 '메카물'. 몇몇 사용 아이템이 있긴 하지만 효과가 직관적이며, 게임 중 얻게 되는 파워업 아이템(해당 라운드에서만 적용되는)또한 세모, 네모, 원의 단순한 형태이다 보니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조준이나 움직임의 감각 또한 '메카닉'의 특징에 맞게 적당한 육중함과 속도감을 지니고 있다. 착지 시의 경직이나, 마우스 위치를 정속으로 따라오는 조준점 등이 그렇다.

'익스트랙션'의 모습을 한 배틀로얄
살펴 봐야 할 또 다른 특징은 이 게임이 '익스트랙션'이라는 것. 여기서 재미있는 건 게임이 익스트랙션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스틸 헌터의 게임 룰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상대나 중립 봇을 처치해 레벨업과 파워업을 하고, 맵 상 오브젝트를 점령해 전투를 보다 유리하게 풀어나가는 형태다. 즉, 게임 내에서 하는 행위가 게임이 끝난 후 보상과 직결되지 않고, 해당 라운드 내의 유리점으로만 작용한다.
그렇게 전투를 진행하다 보면 '익스트랙션 존'이 활성화 되는데, 이 지점을 점령해 활성화하면 3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3분 동안 공격해오는 상대를 잘 막아내면 탈출에 성공하고, 빼앗기면 망하는 식이다. 결국, 이 '익스트랙션 존'을 두고 최종적인 전투가 벌어지게 되므로 익스트랙션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장르적 유사성은 일반 배틀로얄에 더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일반 배틀로얄과 비교해 봐도 스틸 헌터는 굉장히 가벼운 게임성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다시피, 모든 아이템이나 효과 등이 굉장히 직관적이며, 즉각적이기 때문에 다음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쉴드는 유예 시간이 좀 있지만 자동으로 차오르기에 회복하지 않아도 되고, 탄약 또한 탄약 재생 기능이 기본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전투 또한 딱히 어려운 테크닉이 필요하진 않다. 개발사의 대표작인 '월드오브탱크'처럼 고난도의 테크닉(헐다운이나 티타임 등)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비교적 둔하고 육중한 메카닉의 특성 상 상대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전투의 결과는 압도적으로 게임을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스킬 상성이나 파밍 정도에 따라 갈리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쉬운 게임성'을 보완하기 위한 무게추로 구조적 밸런싱이 더해진다. 앞서 말했듯, 체력 회복용 수리킷이나 탄약은 매우 넉넉히 나오고 쉴드도 자가 회복이 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쉴드가 전부 소진될 경우 재생이 시작되기까지 수십 초가 걸리며, 탄약도 모두 복구하려면 수 초간 버튼을 꾹 누르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들이 맞물리다 보니, 스틸 헌터에서 필요한 소양은 '전투에서의 실력'보다, '언제 전투를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판단력'이 더 높은 비중을 가진다. 적을 조우했을 때 '얼마나 잘 싸우냐'보다, '지금 싸우는 것이 유리한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수의 팀이 한 게임에 묶인 배틀 로얄 장르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3파전의 경우 뒤늦게 참전하는 팀의 승률이 높기 마련인데 스틸 헌터는 그 정도가 더 극심하다. 콜로서스 코어로 그냥 몽땅 박살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쉬운 점에도 돋보이는 잠재력
다만, 게임의 주요 골조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췄지만 게임이 완전해지려면 아직 많은 변화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일단 메카물 치고는 너무 메카물 같지가 않다.
쉽게 말하면, 메카물보다는 그냥 로봇처럼 생긴 사람이나 짐승들이 등장하는 게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움직임, 액션, 속도감 등에서 일반적인 사람이 등장하는 배틀로얄 슈터와는 확실히 다르긴 하지만, 아직 배경 조형이나 조명, 이펙트 등 중량감을 잡아 줄 디테일이 부족하다 보니 스틸 헌터가 보여주고자 하는 100%를 볼 수는 없었다.
덜 다듬어진 성장 트리나, 불쾌한 건플레이 등도 마찬가지. 성장 트리는 구색만 갖춘 수준이며, 첫 베타인 만큼 감안하고 플레이할 수 있으나 건플레이는 뭔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 싶은 이상함이 있다.

소구경 자동화기임에도 조준점이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장탄량이 적고, 3점사 캐논도 기본 장탄량이 18발 뿐이라 여섯 번 쏘면 끝나는데 타격감이나 발사 감각이 영 부족하다. 휴행 탄수도 세 탄창 뿐이기에 앞서 말한 '거대 로봇보다 로봇 모양의 사람을 플레이하는 감각'이 더 강해진다. 중무장 로봇이면 중무장을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차라리 전체적으로 피해량을 낮추더라도 탄약을 퍼붓는 느낌으로 가거나, 이펙트를 대폭 강화해 쏘는 맛이라도 살려주는게 맞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스틸 헌터'는 꽤 강력한 잠재력을 지녔다. 십수 년 간 이어진 워게이밍의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 그리고 월드오브탱크나 워쉽 등에서 볼 수 있는 장갑 수치에 따른 도탄 시스템, 꾸준한 업데이트로 증명된 근면함 등은 스틸 헌터의 애매한 첫 모습임에도 '구색이 갖춰지면 또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정식 서비스에 대한 소식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으며, 이번 테스트에 따라 그 기간조차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첫 베타이자 아직 개발 중인 점을 감안했을 때, '스틸 헌터'는 워게이밍이 차세대 주력 게임으로서 키워 나가기에 충분 합격점을 줄 만한 게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