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자네, '디지털 포렌식' 좀 할 줄 아나?

게임소개 | 김규만 기자 |



'디지털 포렌식'이란, 디지털 증거를 적법하고 신뢰성 있게 수집, 분석하여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밝히는 일련의 과정을 뜻합니다. 디지털 증거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이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수집된 증거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폴란드의 인디 게임 개발자, 마르친 보르코프스키(Marcin Borkowski)의 신작은 이 '디지털 포렌식'을 콘셉으로 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틀을 넘어, PC로 접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서를 찾고, 나아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해야 하죠. 올해 중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이 게임의 이름은 '앤드류 D.의 사건(The Case of Andrew D.)'입니다.

이 게임, 마르친이 스팀에 내어놓은 첫 번째 게임은 아닙니다. 지난 2022년, 한국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 '아웃 오브 인덱스(Out of Index) 2022'에서는 'The USB Stick Found in the Grass'라는 게임을 선보이기도 했죠.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USB를 조사하는 경찰관'이라는 주제로 했지만, 개인 PC에 게임이 가상의 USB 드라이버를 설치해버리는(?) 얼핏 무모한 시스템이 게이머들에게 재미보다는 해킹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바 있습니다.



▲ 이게 게임 화면입니다...

이번 작품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일단 가상의 드라이버를 설치하는 일은 없으니 조금 안심할 수는 있습니다. 대신, 게임의 모습은 가상의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보입니다. 플레이어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열려 있는 사건들을 확인하고, 동료 직원들과 나눈 메일함을 챙겨보며 사건을 하나 둘 씩 풀어나가게 됩니다.

'Remote Access'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은 가상의 경찰청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재택 근무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프로그램이라는 설정입니다. 여러 개로 나뉜 탭을 통해 플레이어는 사건 리포트를 읽을 수 있고, 각 사건과 관련된 파일을 직접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예기치 못하게 연관된 사건의 경우, 특정 사건의 파일을 다른 사건 폴더(물론 가상의 공간이죠)에 업로드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국어화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게임이 가진, 'PC에서 접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빛나기도 하죠. 사건 파일을 긁어서 구글 번역기로 돌리든, 파파고를 활용하든, 플레이어가 의지만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 사건의 단서를 직접 '다운로드'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 게임이 주는 느낌은 일종의 'PC로 하는 방탈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 파일 중 일부(.zip파일이나 pdf의 경우)는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경우가 있고,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사건 리포트를 아주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몇 번의 고민 끝에 알아낸 비밀번호를 사용해 압축 파일이 풀리는 순간의 쾌감은, 방탈출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기분과 일맥상통하죠.

PC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는 게임의 콘셉트는, 말 그대로 방대한 정보의 바다를 해쳐나가는 사이버 수사관이 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구글 검색을 통해서 찾아보거나, 사건이 일어난 바르샤바 지도를 직접 찾아보기도 하는 등, 몰입감이 상당해 게임을 하기보다는 진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플레이어는 이 원격 근무 프로그램을 통해, 몇 가지 방법으로 동료 수사관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습니다. 각 사건마다 필요한 사항들(예를 들면 용의자의 이름이나 주소 등)을 알아내 빈 칸을 채운다든지,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바르샤바 지도에 핀을 꼽는 것으로 '정답을 제출'할 수 있죠. 내가 낸 답이 맞다면 동료들은 다음 단서를 메일로 보내오고, 틀린 답일 경우 메시지 팝업이 떠 오답이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 실제 구글 지도를 뒤져가며 증거와 대조한다든지



▲ 증거 파일에 포함된 사진과 장소가 일치하는지 거리뷰를 활용할 때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게임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바로 요즘은 누구나 활용하고 있는 AI와 함께 단서를 찾는 것이었죠. 게임에 대한 소개를 프롬프트에 입력하고, AI에게 조수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나니, 썩 훌륭한 동료 게이머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이 폴란드 개발자가 만든 게임은 여간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낯선 땅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살인, 실종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기에 우리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언어도 생소합니다. AI의 도움을 받으면, 증거 해석이나 이후 단계에 대해 꽤 쓸만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만큼, '방탈출' 콘텐츠를 좋아한다면 분명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아주 든든하다 챗GPT!



▲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단, AI와 함께 하니 게임의 몰입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디지털 증거를 수집해 사건을 수사하는 게임의 콘셉트는 매우 흥미롭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분명합니다. 일단, 정답이 거의 다 '주관식'이기 때문에 정답을 찾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고, 우리와 다른 유럽의 문화적 요소까지 생각하려면 머리가 정말 아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 날짜를 입력할 때, '연/월/일' 대신 '일/월/년'으로 기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PDF 파일의 비밀번호에 대한 단서가 누군가의 생년월일일 경우, 어떤 식으로 입력해야 좋을지 도통 알 수가 없어지죠. 거기다 보고서 속 날짜는 폴란드 기준 시간인지, 이것을 또 우리나라 시간대와 비교해 생각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에 더해, 전작처럼 게임이 PC에 가상 드라이버를 강제로 설치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멀웨어'에 대한 불편함, 부담감은 존재합니다. 게임을 통해 다운받은 압축 파일을 풀거나, PDF 파일을 실행해야 할 때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계속 고민을 하게 만들죠. 물론 악성코드가 심어져 있다면 스팀 측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줬을 테지만(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이런 불안감을 안으면서까지 게임을 플레이할 가치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택 근무용 프로그램'이라는 설정을 통해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사건을 파헤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의 독특한 매력은 인정합니다. 게임이라는 틀을 깨고, 현실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부분도 함께 말입니다.

위에서 열거한 몇가지 우려스러운 사항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포렌식'을 경험하기 원하는 게이머라면, 게임이 정식 출시되기 전에 스팀 상점에서 이 게임의 데모를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간 먼 나라로만 여겨졌던 폴란드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지도 모르니, 관심이 생겼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스팀 페이지에 접속해 보시기 바랍니다.



▲ '뭘 믿고 이 파일을 열어'라고 생각한 당신, 보안 의식이 아주 투철하시군요



▲ 전작의 경우 이 문제로 인해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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