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I] 박지선 LCK 글로벌 PD, e스포츠와 8년 그리고 '덕업일치'의 삶

인터뷰 | 김병호 기자 | 댓글: 16개 |
LCK 팀이 국제대회에 참가하면 언제나 선수들 곁을 지키며 해외 팬들과의 소통을 돕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LCK 선수들의 통역을 맡은 박지선 LCK 글로벌 PD입니다. MSI 2025 경기가 진행되던 캐나다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오랜만에 박지선 LCK 글로벌 PD와 만나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약 8년 만에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되어 묻고 싶은게 정말 많았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던 만큼, 박지선 LCK 글로벌 PD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스포TV에서 동시통역을 맡았던 KeSPA 기자단 출신의 새내기 대학생은 이제 라이엇 게임즈 소속의 LCK 글로벌 PD로 직함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는 SKT T1 출신의 바텀 라이너 ‘뱅’ 배준식 선수와 결혼을 하기도 했지요.

게임과 e스포츠를 좋아해서, 그곳에서 직업을 찾고, 그 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까지 만난 그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이른바 ‘덕업일치’의 삶을 가장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은 박지선 LCK 글로벌 PD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덕업일치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실제로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남편과의 이야기까지 많은 에피소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MSI 2025가 열리는 밴쿠버에 도착하신지 시간이 좀 지난 거로 알고 있어요. 이제 시차 적응은 다 되셨나요?

지금이 이제 좀 괜찮더라고요. 초반에 저도 엄청 해롱해롱했어요. 컨디션 안 좋고 원래 시차 적응 좀 자신 있어 하는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북미 쪽 오니까 확실히 유럽 다니는 것보다 시차 적응이 어렵네요.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잠을 자고 일어나도 낮에 약간 감기 기운처럼 계속 좀 컨디션 안 좋고 계속 졸리기는 해요.


Q. 저도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컨디션이 쉽지 않네요. 예전에 스포TV에 처음 입사하셨을 때 저랑 김수현 아나운서랑 같이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어요.

(화들짝) 네, 맞아요. 카페에서 했었는데. 스포TV 경기장 맞은편 2층 커피숍이었어요. 오, 기억나요. 저는 무슨 가디건을 입었고, 수현 언니는 민소매 입었었어요.


Q.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e스포츠 업계에서 일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음.. 뭐랄까? 내가 오래 e스포츠 업계에서 장수하겠다 이런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롤을 워낙 좋아하니까 여기서 일을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엄청난 사건이 있지 않는 이상 계속 여기서 일을 할 것 같기는 했어요. 다른 쪽에서 일을 하는게 오히려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워낙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Q. 8년 정도 일을 하면 이제 돌아가는 생리도 알고 일도 손에 익는 때잖아요. 마음에 여유도 생길 때이고 하니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는 달라진 부분이 있을 듯해요.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무언가 보여줘야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게 만들고 싶었고요. 제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여자 출연자나 여자 인터뷰 호스트가 나오면 반신반의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진정성이 있는지, 지식이 있는지, 그런 시선이 있다는 걸 알아서 제가 잘 안다는 부분에 대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떨었던 거 같아요. 실수도 안하고 싶고.

애초에 제가 어떤 트레이닝을 받았던 건 아니니까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인터뷰를 시작하면 말이 너무 빨라지고 더듬고 그랬어요. 요즘엔 사람들이 어떻게 긴장을 안하냐고 묻는데 지금도 솔직히 긴장은 여전히 하고 있어요. 다만 제 성격이 뭔가 시작하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하는 스타일이여서 좀 티가 덜 나는 것 같아요.

제가 LoL e스포츠 현장에 출장을 오는 인력 중에서 오래 꾸준히 일한 편이어서 편해진 것도 있어요. 지역이 바뀔 때마다 로컬 스태프도 바뀌는 편인데 다양한 부분에서 저에게 먼저 질문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때에는 워크 플로우를 어떻게 하는게 좋아?’든지 ‘어떤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름 뿌듯하기도 해요. 제가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무언가 다양하게 기여할 수 있는 듯해서 즐거움을 느껴요.




Q.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만큼 많이 노력을 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어가 사람들 앞에서 서서 자신의 말이 즉각즉각 나와야 하는 자리잖아요. 실수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요. 그래서 실수를 안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목소리 통역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에 LCK 영어 방송을 보면, 선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 더빙치럼 목소리 통역을 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 너무 못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사실 동시 통역을 한 번도 안해봤어요. 순차 통역은 일상 생활에서도 경험이 있었지만, 동시 통역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지원했고, 일하게 된거에요. 막상 일을 시작하니까, 들으면서 말하는 게 막 미치겠고, 제가 하면서도 ‘나 진짜 망했다. 이거 진짜 큰일났다’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엄청 욕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당시 스포TV가 신논현 쪽에 있었잖아요. 제가 그 때 집까지 20~30분 정도 걷는 거리였어요. 일이 끝나면 우울해서 버스도 안타고 걸어갔어요.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아, 나 진짜 개 못한다. 나 진짜 망했다. LCK 영어 방송 보는 사람들은 다 나 욕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못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데. 실제로 영어 피드 담당해 주신 분이 응원해주시면서 ‘지선 씨, 채팅은 보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셨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아예 안 봤어요. 그걸 보면 제가 더 움츠러들 것 같았거든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에 OGN에서는 조엘 님이라는 분이 LCK 영어 방송을 하셨거든요. 그 분 방송을 보면서 받아쓰기를 많이 했어요. 그 분이 어떻게 통역하시는 지, 어떤 표현이 더 자연스러운지지, 그런 부분을 보면서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리고 동시 통역은 좀 더 전문 스킬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다니던 한국외대에 통번역 코스가 있었는데,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지 않아도 주말에 8주 짜리 코스를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그걸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가서 들었는데, 그게 정말 많이 도움이 됐어요. 진짜 전문 스킬을 많이 알려줬어요. 숫자가 많이 나올 때 어떻게 끊어서 통역하는 게 좋은지, 컨퍼런스 통역이나 정치 통역, 무역 통역 등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데, 거기서 기본적인 스킬을 빠르게 습득한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좋아졌고, 자신감도 생겨서 ‘수업 듣기를 정말 잘했다’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학교 정말 힘들었어요. 학교 다니고 주말에 가서 수업 듣고 하니까 맨날 학교에 있는 거에요. 그게 짜증이 났는데, 돌이켜보면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제가 너무 근본 없이 계속 통역을 하겠다고 들이댔겠다는 마음의 부채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방식으로 스킬도 배우고 길을 찾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Q. 평일에 수업 듣고, 주말에 특강을 듣고, 저녁에는 LCK 통역 업무도 하고…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또 LoL이랑 e스포츠 일을 좋아하니까 일하러 가는 게 막 출근하는 느낌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걸 하러가는 느낌이었어요. 학교도 편하게 다닌 편이라고 생각해요. 졸업을 좀 늦게 한 편이거든요. 일이랑 병행하고 휴학도 했어서. 그리고 하면 다 되더라고요.


Q.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직업을 가진, 말 그대로 ‘덕업일치’를 한 거 잖아요. 실제로 ‘덕업일치’를 해보니까 어떻게 느끼나요? 장, 단점이 궁금해요.

저는 덕업일치가 좋다, 나쁘다 보다는 덕업일치를 하면서 ‘나는 참 잘 됐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좀 전형적인 한국 입시 스타일로 살았거든요. 제가 중학교 때에는 국제중학교 열풍이 불었어요. 그 나이 때에 제가 정말 거길 가고 싶은지도 솔직히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걸 해서 2박 3일 면접을 보고, 고등학교(외고)에서도 독일어과를 너무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입학하고 싶으니까 지원서에 ‘독일의 유명한 인권 변호사가 있어서, 저는 독일어과에 진학하고 싶습니다’ 라고 해서 또 독일어과에 들어가고.. 대학교도 원서는 솔직히 성적따라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또 이렇게 저렇게 과에 들어가고. 제 의지에 따라 일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쫓아가야 해서 쫓아간 스타일이었어요.

고3 때에는 대학 진학을 할 때, 친구들이 가고 싶은 과를 정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가려는 과를 싫어하더라고요. 저는 꼭 어디를 가고 싶거나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수능 성적이 잘 내고 내신 좋으면 상경대 쓰는 거고 그런거지, 무슨 공부를 더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대학 갔을 때에도 학업에 대한 흥미가 더 떨어졌고, 원하는 직업보다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되는 직업에 따라 지원 준비하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번아웃을 느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바람의 나라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하고, 게임을 잘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쪽에 대한 진로 탐색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수능 끝나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이랑 LoL하고 그러면서 LCK를 알게 된 거에요. ‘저기서 일하면 재미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고, 나중에는 ‘뭐, 우선 뭐라도 해보면 내 일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일을 해본 거죠.

처음 일을 시작해서는 너무 좋았죠.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 분야에서 실제로 일도 해보니까 성취감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어요. 또 좋았던 건, 제가 게이머다 보니까 야행성이라서 7시에 출근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맨날 늦게 자서 지각했을 거야’, ‘9 to 6 했으면 게임을 포기하던지지 매일 늦던지 둘 중 하나였을 텐데’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LCK 같은 경우는 시작 시간이 오후이고 9시에 출근하는 일은 없으니까, 저의 덕질과 잘 맞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직업 만족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을까요?

85점 정도? (생각보다 낮네요?) 뭔가 엄청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요. 일을 하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에요. 장기간 e스포츠에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서, 미래의 삶, 게임 이후의 삶, 그러니까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게임이 아니라면 나에게 또 어떤 자아가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돼요.


Q. 미래의 삶? 게임 이외의 삶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더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제 직업이 게임과 e스포츠로 쭉 이어져 왔잖아요. 그래서 ‘이게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모든 게 영원할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했을 때에 ‘게임이 없는 박지선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가끔씩 해요. 왜냐하면 저는 남편도 게임을 하니까, 게임이 없을 때의 저의 자아나 정체성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Q. 고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았을까요?

제가 게임을 너무 좋아하고, 몰두하고 있어서 아직 다른 무언가를 찾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항상 염두에 두고 고민을하고 있어요.


Q. e스포츠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좋았을 때와 힘들었을 때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를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몸이 아팠을 때는 확실히 힘들었어요. 출장을 와서 아프면 그게 정말 힘들어요. 제가 잘 아픈 편이 아니고 컨디션 조절을 잘한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하루 이틀 정도 앓는 일이 있었어요. 작년 월즈에서도 다행히 쉬는 날 아파서 열이 나기도 했고, 이번에도 감기 기운처럼 몸살이 있었어요. 그런 걸 보면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재미있고, 좋았을 때는 많은 분들이 의아할 수 있는데 코로나 때가 되게 재미있었어요. 코로나 상황일 때 월즈나 MSI를 갈 수 있었던 게 너무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동을 못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그 현장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다들 매일 코에 면봉을 넣어 검사 받고, 출근하고, 마스크 쓰고, 격리하고, 중국 호텔에서 2주 동안 격리하고…

그런 경험이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지루했는데, 그런 걸 수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하면서 원격으로 하는 인터뷰 시스템도 생기고, 선수들을 한 곳에 모아서 국제대회를 하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내고, 아이슬란드에서 다같이 매번 같은 동네, 같은 식당에 모여 밥을 먹고, 다같이 고생하고 모든 게 더 복잡했던 시기였는데, 다같이 힘드니까 서로 더 많이 챙기려고 노력했거든요.

또,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몇 년 동안 염원했던 LCK 국제대회 우승을 담원이 너무 멋있게 해냈잖아요. 그걸 보면서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나 기억이 카타르시스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었거든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Q. LCK 글로벌 PD로 일하는 건 어떠신가요? 통역과는 완전히 다른 일인데, 업무는 잘 맞으신가요?

글로벌 PD로 입사하기 전에도 프리랜서로 글로벌 방송을 계속 보조하듯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생태는 다 알고 있었죠. 실제로 일을 했을 때 적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입사 뒤에는 PD로서 해야하는 행정적인 업무도 많이 배워서 좋았어요. 방송 제작 뿐만 아니라 방송 외적인 부분을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걸 익히면서 많이 배웠어요.

LCK 글로벌은 국문 방송보다 좀 더 칠(Chill)한 분위기가 있거든요. 조금 더 자유분방하게 연출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서 재미있는 걸 많이 시도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코너도 짜보고, 꽁트도 해보고, 웃긴 연출을 많이 시도해요. 잘 되서 반응이 좋을 때는 너무 뿌듯하죠.


Q. LCK 글로벌 PD 일을 하면서 ‘이런 거 진짜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요?

분석데스크를 만든 거요. 원래는 LCK 글로벌에 분석데스크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시간에 타이머를 덮어두거나 했거든요. 분석데스크가 우리 방송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시청자도 많고, 반응도 좋은 코너라서 새로운 년도를 시작할 때 분석데스크를 출범했어요. 처음에는 분석데스크를 어떻게 해야 잘 풀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하니까 다 되더라고요.

우리 출연자분들 중에 한국에서 영어 게임 방송을 오래한 분들이 많거든요. 그 분들이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10년 동안 없었던 코너를 너가 만들었다’라고. 그래서 많이 뿌듯했어요.


Q.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만큼 뿌듯한 게 없죠. 덕업일치도 하고, 일도 재미있고, 인정도 받고. 어쩌면 박지선 님은 게임 업계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좋은 롤모델일 듯 해요. 그런 꿈을 꾸는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에게 게임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LCK에서 일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문의하는 분들이 계셔요. 저는 그런 생각을 좀 해요. 게임이나 e스포츠는 기술의 발전과 정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커서 계속 형태가 바뀌면서 발전할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게임 분야에서 일을 할때는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이 있어야지 시너지가 잘 난다고 생각해요. 그런 애정이 있는 분들이 게임이나 e스포츠에서 정말 필요해하는 인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말 이쪽 필드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이면 적극적으로 추천을 해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분야이니까요. 5년 뒤에는, 10년 뒤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충분히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게임이나 e스포츠는 이해도가 없으면 따라가기 어려운 특수한 분야이거든요. 게임은 감성도 알아야 하고, 선수의 심리도 잘 이해해줘야 해서, 원래 그런 부분들을 체화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해 애정이 있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어우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이제 인터뷰 마지막 단계로 넘어왔네요. 마지막 질문들인데, 사적인 부분들이라 질문을 어디까지 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좀 했어요. 결혼 같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괜찮으신가요?

너무 사적인 부분만 아니면 거부감은 없어요.


Q. 사실 언젠가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요. 제가 아마 업계 사람 중에서는 두 분의 열애를 제일 먼저 알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예전에 ‘뱅’ 선수가 인벤글로벌 유튜브 채널 ‘레퍼드쇼’ 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핸드폰을 저한테 맡겼었는데, 핸드폰 케이스에 지선님 사진이 딱 붙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 이후에 ‘뱅’ 선수가 연락이 와서 인벤글로벌 소속 리포터로 월즈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그 배경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요. 이제 두 분이 결혼도 하시고 해서 언젠가 한 번 이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웃음)아, 정말요? 와, 정말 몰랐어요. 저는 정말 재미있는 일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런 부분 이야기해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저보다는 ‘뱅’ 선수가 인터뷰나 개인 방송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면 단칼에 좀 자르는 편이에요. 제가 나중에 인터뷰에 나가도 되는지 물어볼게요.

※ 인터뷰 내용은 두 부부의 허락을 받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Q. ‘뱅’ 선수가 사상 최악의 원거리 딜러라는 별명이 있었잖아요. 저는 그게 대중들이 박지선 LCK 글로벌 PD님을 굉장히 좋게 봐서 그런 별명이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너무 과분한 사람을 만났다는 칭찬을 하는 거잖아요. 그게 하나의 밈으로 소비되는 건 알지만,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게 길어지다보니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낄 것 같고, 왠지 사람들이 ‘박지선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라고 말할 것 같은 거예요.

사실 서로 잘 맞는 둘이 만나서 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잘 맞는, 그냥 잘 맞는 천생연분인데, 누가 더 잘났고, 못났고 이런 거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솔직히 더 잘난 사람이라면, 내 남편이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재미로 하는 건 좋은데 이게 길어지니까 걱정을 좀 했어요.

팬분들의 그렇게 말해주는 건 잘 만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좋게 보고 있는 걸 재미있게 표현해주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분들이 보기에 ‘제가 나쁘거나 부족한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요.


Q. 비밀연애를 하신 기간이 길었잖아요. 그러다가 인스타를 통해서 밝혀지기도 했고요. 사람들이 알게 됐을 때에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사실 좀 놀랐죠. 당시에 인스타였던가요? 사람들이 그걸 연결해서 바로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약간 안일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놀라긴 했지만, 서로 많이 존중하고 좋아해서 연애가 공개되더라도 우리가 언젠가 헤어질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했어요.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놀라기는 놀랐죠.


Q. 두 분이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어져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네요. 두 분의 행복을 좋게 바라봐주시는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주실 수 있나요?

브이로그를 짧게 올리더라도 많은 분들이 둘이 너무 서로를 아끼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게 보기 좋다라는 댓글이 많이 달리더라고요. 저는 이제 되게 일상적으로 짧은 짧은 순간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사람들이 막 그렇게 좋게 봐주시고 칭찬을 해 주시는 걸 보고 저도 되게 놀랐고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좋은 시선으로 이런 부분에 집중해서 봐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으니까 더 뭔가 책임감도 드는 것 같고 건강한 부부 관계를 오래오래 정말 이어가야겠다라는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물론 당연히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했을 때 이렇게 오래오래 평생 행복하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사람들의 그런 좋은 말 칭찬 이런 걸 댓글을 볼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을 오랫동안 잘 보존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저희를 좋게 봐주시니까 실망시키지 않게 저희도 예쁜 모습으로 행복하게 잘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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