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게임내 惡인가, 선택적 Role 인가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153개 |



자유의지,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니는 것이다.


대학교 다닐 시절, 3학년 전공 과목중 하나가 종교철학이었다. 종교철학은, 아주 쉽게 이야기하자면 단 두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바로 신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신은 선한 존재인가 하는 질문. 원래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시작된 질문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보편적 개념의 신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의 유일신이자 절대자적인 개념의 신을 지칭한다.


이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절대자인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경전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선한 존재라면, 왜 이리 세상에 악을 퍼뜨리고 악을 용인케 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악 자체가 존재하지 않도록 세상을 창조했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고통을 받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대답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한두번쯤은 접해보았을만한 답변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과 악은 서로 대칭되는 것이며,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이라는 것 역시 존재할 수 없기에 선을 선이도록 하고 선을 두드러지도록 하는 것이 악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가 바로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선과 악을 스스로 사고하고 택할 수 있게 하는 대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스스로 진다는 것이다. (물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자유의지에 대한 개념, 선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성선설과 성악설 등 복잡한 문제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는 게임 내에서의 악!


이런 이론이 단지 난이도 높은 철학적, 종교적 담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바로 게임내에서.


사기나 해킹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게임 내에서 시스템적으로 규정된 혹은 선택 가능한 행동 내에서 악에 해당되는 것을 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리킴이다. 리니지와 리니지2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통제(특정 사냥터를 특정 혈맹/세력이 독점하고 다른 모든 유저들의 출입을 강제적으로 봉쇄하는 것)"라든가 "제조"(저레벨 캐릭터로 타인을 도발하여 상대를 카오틱으로 만든 뒤, 고레벨 캐릭터로 그 캐릭터를 죽여 그 캐릭터가 드랍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 대항해시대에서의 해적의 약탈, 도가 지나친 PK 등이 바로 게임 내에서 악으로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왜 그것이 악인가 ? 라는 개념적 증명에 대한 논의는 굳이 이 글에서 진행하고 싶지 않다. 그런 행위에 대한 개념 및 그 다음에 나타나는 반응을 말하고자 함이다.


통제든 제조든 PK 든 약탈이든 게임 내에서는 분명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상호간의 전쟁이나 PvP 가 가능한 게임에서 통제나 제조나 일방적 PK 를 알아서 제외하는 초첨단 인공지능은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시스템적으로 기술적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한계가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가상세계를 구현함에 있어서 일정한 자유도를 개발자든 게이머든간에 분명히 원하기도 한다.






[ 2006 년 5월, 리니지2 DK 혈맹 해산식의 풍경 (클릭하면 큰 이미지) ]






[ 2006 년 5월, 리니지2 공식홈페이지에 총군주 명의로 올라온 DK 혈맹 해산 글 ]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 외에도 한편으로 개발자나 게임사에게 그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왜 이런 시스템을 허용하였느냐, 왜 이런 사람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지 않느냐 하면서 글을 올리기도 하고, 가해자를 거론하면서 게시판에 험한 단어를 섞은 비난성 글을 올리기도 한다. 리니지나 리니지2, 대항해시대, R2 등을 보면 서버별 게시판이나 자유게시판 등에 이런 류의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사건을 접한 대다수의 게이머들도 가해자를 비판하고 피해자에게 동조한다. 자신도 언제 가해자나 혹은 그와 유사한 사람을 만나 피해를 볼 수 있기도 할 뿐더러, 인지상정상 황당하거나 억울한 피해에는 모두 동조하면서 가해자를 욕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가해자는 아예 응답을 하지 않거나 혹은 반론을 편다. "단지 게임일 뿐이다" 혹은 "게임 내에서 허용된 시스템이고, 이것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운영 방침에 저촉되거나 제재를 받을 사안이 아닌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내용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허용된 것과 정당한 것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철학에서 말하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책임의 문제가 대두된다. 게임 내에서 시스템적으로 가능한 (혹은 허용된) 것이라고 해서 그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인가 ? 하는 문제.


게임 내 사기도, 제조도, 약탈도, 무한 PK 도, 통제도 모두 시스템적으로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금지를 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기술적 금지가 가능해도 사람이 살아가는 사이버 사회인 이상, 게이머의 자유도를 부여해야 하는 이상 금지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가능한 것이라고 해서, 허용된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 올바르다거나 정당한 행동임을 보증하는 증표는 될 수 없다. 개발자는 여러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 뿐이다.


ㅁ 혈맹이나 길드의 힘을 이용해 통제를 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통제를 하지 않을 옵션 역시 있다.

ㅁ 제조, 해적, 약탈 행위를 해서 아이템을 강탈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제조, 해적, 약탈에 의존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아이템을 획득할 기능도 있다.

ㅁ 고레벨 캐릭터로 저레벨 존에 가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할 옵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고레벨끼리만 결투와 승부를 가르고, 저레벨은 도와주거나 혹은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옵션도 있다.



이 두개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플레이하는 당사자의 문제다. 비록 시스템적으로 통제든, 제조든, 무차별적인 PK를 할 수 있을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옵션이 여러가지 주어져 있다. 따라서 게임내에서 허용된 것이라는 말은 단지 변명일 뿐이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것뿐이며, 그렇게 할 자유와 그렇게 하지 않을 자유 중에서 그 사람은 그렇게 할 자유를 택한 것이다. 자유의지에 따라 신을 믿지 않거나 혹은 신과 반대되는 행동을 취했다면 그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든 살아 생전에 인과응보적인 결과물을 얻게 되는 것처럼, 게임 내 악을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그 책임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바로 게시판에서 욕설이 섞인 비난글로, 게임 내에서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것으로, 서버 내의 악당 이라는 '공공의적' 지위로 드러난다. 계정적으로, 물리적으로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는다. 현실에서야 법률이 있기에 어느 정도 처벌이 가해질지라도 게임 내에서는 그런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다. (너무너무 정도가 심한 경우 GM 이 개입하는 경우가 가끔 있긴 하다) 대신 그 처벌이 언어적 욕설과 악인이라는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 대항해시대에서의 해적을 예로 들어보자. 그 당시에 분명히 해적은 존재했던 직업이었고, 당시의 설정을 따라 게임 내에서도 해적은 존재한다. 그러나 해적 행위가 올바른 행동은 아니다. 해적을 선택했으면 해적답게 대우받아야 한다. 그 당시에도 해적은 악이었고, 잡히면 사형이었다(적국의 배를 해적질하면 칭찬도 받았지만). 해적질을 하고도 잡힐 이유가 없다거나 악인으로 간주될 이유가 없다거나 하면 참 난감하다. 해적이라는 직업이 게임내에 존재하기에 해적질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게임적 배경과 설정에 따라 해적을 선택해서 해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옵션이 존재하는 것 뿐이다. 해적이 아니고서라도 할 수 있는 직업과 옵션은 많다. 그 중에서 굳이 해적을 골라 해적질을 했을 때 (해적행위의 대상이 될) 다수의 항해자로부터 악인의 Role 에 대해 비난받을 것을 몰랐다면, 그것은 개발자나 유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IQ 를 탓해야 하는 것이다.





[ 대항해시대에서 해적을 택한 한 게이머의 화면, 악명이 높다 ]



악의 Role 을 선택했다면, 그에 따른 대가는 필연적인 것!


사기, 제조, 통제, 무차별 PK 를 하고서도 악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은 도둑놈 심뽀에 불과하다. 게임상이라 해서 이게 나쁜 일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가치관이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리니지나 리니지2, 대항해시대, R2 같은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류의 사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서 게시판에서 잠시 동안의 이슈가 될 때마다 글은 폭주하게 마련이고, 가해자에 대한 농도 짙은 비난글은 올라오게 마련이다. 이때 종종 가해자로 지목된 게이머가 메일이나 게시판 글을 통해 지나친 욕설을 이야기하며, 게시물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악인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처벌이다. 현실에서의 법규로 처벌을 할 수 없고 그런 것에 대한 처벌 규정이 게임 내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내리는 처벌이 바로 그 캐릭터의 행위에 대한 농도짙은 비난이다.


그래서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게시판 관리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알기 쉽게 수치화시켜 이야기를 하자면, 욕설적 언어 표현의 강도가 1부터 10까지 10단계로 나뉜다고 하자. 평소에는 5 정도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6 부터는 삭제하고, 5 이하는 놔두는 것이 일반적인 관리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그 관리기준을 변경해서 8 정도로 올리곤 한다. 따라서 전 같았으면 삭제될 6, 7, 8 단계의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 놔둔다. 왜 게시판 관리 기준이 다르냐고 항의를 받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게임내 악으로 일컬어지는 행위가 근본 원인이며, 강도 높은 욕설과 비판은 그 행위에 대한 반작용이지 아무런 이유없이 괜히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하게는 그런 악을 선택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처벌이 게시판같은 커뮤니티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수준의 관리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사회적 처벌을 가로막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과거 P 사에 인벤팀이 있던 시절, 통제를 자행하던 DK 혈맹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글을 DK 군주로부터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P 사나 인벤팀의 입장이 변경된 적은 없었다.


악의 Role 을 선택했다면, 비난이나 욕설이라는 악의 Role 에 따른 대가와 보상은 필연적이다. 게임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해서, 악인의 역할을 택해 악인의 행동을 해놓고도 비난같은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납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그 중에서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것이 게임이지, 악이 선택 가능하다고 해서 악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은 그 선택을 한 자기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Inven LuPin - 서명종 기자
(lupin@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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