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순수한 열정, 블리즈컨 체험 후기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19개 |
오직 블리즈컨에서만 볼 수 없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애너하임에서 개최된 블리즈컨 2007. 블리자드표 게임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블리자드가 마련한 게임축제로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녈과 비슷한 성격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기자를 비롯한 국내 매체들은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서로 경쟁하듯 블리즈컨에서 발표된 주요 소식을 물론, 다양한 볼거리들과 각종 이벤트를 각종 디지털 장비들을 이용, 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고국으로 실시간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 블리즈컨에서는 어떤 매체라 할지라도 쓰고 싶어도 절대로 쓸 수 없는 기사가 생겨 버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등장해서 작년 지스타 때도, 최근에 열린 WWI, 차이나조이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듯 일부 매체의 메인까지 크게 장식했었던 놈인데도 말이다.


아마 그 기사가 이번 블리즈컨에도 등장했다면 아래와 유사한 제목이 붙었을 것이다.

'2007 블리즈컨 레이싱 모델 총집합'.


몇몇 게이머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이번 블리즈컨에서는 레이싱 모델들, 아니 약간이라도 흡사한 인물 조차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딱 하나 기억나는게 있다면 그래픽카드 업체인 XFX 부스에 붙어있는 제시카 알바와 닮은 금발 여성의 포스터 한장 뿐. 그것도 블리즈컨에 참가한 열광적인 게이머들의 시선을 붙잡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2007 블리즈컨에서 발견한 특별함은 단지 이것 만이 아니었다.









개발자와 게이머, 두터운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사실 블리즈컨 행사장의 구조는 기존에 봐왔던 다른 행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메인무대와 주요 코너들, 그리고 제휴 업체 부스 등등. 그렇다고 발디딜틈 없을 만큼 수많은 인파로 가득차 결국 입장 통제까지 했었던 지난 WWI 행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


WoW 트레이딩 카드 게임 유저들을 위한 게임 테이블과 블리자드 신작 게임을 직접 시연해볼 수 있는 컴퓨터들이 작은 운동장만한 크기의 공간에 펼쳐져 있고, 메인 무대 바로 뒤에는 행사장 안에서 요기를 채울 수 있도록, 각종 음식코너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행사에 참여하다 언제라도 앉아서 편히 쉬며 식사를 할 수 있게끔 행사장 곳곳에 편의시설 또한 설치되어 있었고, 게이머들도 그 모든 것을 당연한 듯이 자유롭게 즐겼다. 블리즈컨 행사장 규모가 국내에 비해서 그렇게 넓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블리자드 유명 개발자들도 행사장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게이머들과 관심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웃는, 그리고 비판적인 충고는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들. 가끔씩 언성을 높이며 토론하는 장면은 멀리서 지켜보면 누가 게이머인지 개발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블리자드 대표이사인 마이크 모하임을 비롯한 핵심 멤버들도 여느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장을 벗어버리고 반바지에 블리자드 티셔츠만을 걸친 채, 행사장 곳곳을 방문했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먼저 대화를 걸고 게이머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기자의 영어실력이 일천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프레스 센터에 앉아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하는 동안 그들이 보여준 차별없는 미소는 행사가 모두 끝나 귀국해서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행사장에서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탄성과 환호, 박수소리는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며, 게미어들이 진정으로 블리즈컨 행사를 즐기며, 느끼는 순수한 감정 그 자체였다.


블리즈컨 참가자들은 레이싱 모델이나 유명 댄스가수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국가'와 '인종', '나이'와 '사회적 신분' 같은 쓸데없는 경계는 모두 허물어 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대한 느낌을 수많은 게임동지들과 마음껏 공유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게임 Or 상품?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게임은 철저하게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다.


미술, 음악, 영화와 같은 여타 장르에서처럼 "예술"이라는 수식어도 붙을 수가 없다. "예술 영화"는 몰라도 "예술 게임"이라는 단어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은 플레이하는 게이머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해야만 비로소 게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성립한다는 의미다.


블리자드가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이러한 필요조건들을 완벽하게 충족시켰고, 그 노력들에 대한 보상으로 블리자드는 천문학적인 수익은 물론 게이머들로부터 굳건한 신뢰까지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아직도 "게이머의 입장"에 서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과 즐거움을 게이머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또한, 바로 그것이 자신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해야할 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그들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차기작에 대한 전 세계 게이머들의 '엄청난 기대감'과 팬들을 위한 진정한 게임축제로 거듭나며 성황리에 끝이 난 '블리즈컨 행사'는 블리자드가 아직까지는 게임을 바라보는데 있어 '올바른 시각'을 가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단순히 상품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앞서 말했듯이 게임은 '재미'라는 요소를 잃는 순간 자신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다. 게임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게임 시장과 게이머들에게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게임성을 보완하거나 다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게임의 절대적인 수요자인 게이머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게임을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현재 상태 그대로를 최대한 비싼 가격에 '빨리', 그리고 '많이' 팔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재미 없는 게임이 날개돋힌 듯이 팔리며 크게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게임이라는 타이틀의 '상품'을 팔아야만 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에 정도(正道)를 벗어난 방법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된다. 물론, 그 방법이 성공을 이끌어 낸 경우를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화려한 포장과 속임수로 모자란 게임성을 최대한 감추고, 번쩍거리는 광고와 이벤트 상품으로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것 마저도 모자라면 인터넷 인프라를 활용한 모략과 언론플레이 등도 서슴지 않는다. 속이 뻔히 보이는 과장된 수식어는 보도자료와 광고 지면에 가득차 넘쳐 흐를 정도다.


어쩌면 게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기 가수들이 매번 등장하고 선정적인 복장을 한 레이싱 모델이 즐비한 게임쇼도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긋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왜곡된 표현들의 연장선 일지도 모른다. 이 증상은 마치 '습관'처럼 혹은 '중독'처럼 이어져 지난 5월에 열린 블리자드의 국내 행사, 2007 WWI까지 전염시켰다.


게이머의 순수한 열정으로 채워진 2007 블리즈컨을 취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개념없는 장사꾼들로 가득찬 시장바닥 같은 게임행사가 더 이상 게이머들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올 해 말로 예정된 지스타 행사가 벌써부터 두려워지는 것 또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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