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심사, 무효 판정을 받은 약관들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11개 |
며칠 전 공정위에서 심사한 온라인 게임의 약관에 대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온라인소비자연대'(구 안티엔씨, 대표 전현)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머들이 그간 지속적으로 약관의 불공정성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했었던 터라
2005년 3월부터 9월까지 온라인 게임의 약관을 실태 조사한 후
그간 민원이 많이 제기된 12개 조항에 대한 판정을 내린 것이었다.



온라인 게임의 발전도에 비추어 그간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던
소비자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진일보한 판정임에는 틀림없고,



금번 판정에 포함된 11개의 게임사 외의 여타의 게임사들 역시
이번 판정에 따라 약관 조항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 심의 결과,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




이번 결과에 대한 보도 자료나 기사들을 보고 일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혹시 현금거래가 적발되어도 이제 압류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오지만,
위의 조항들이 무효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원천 무효인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보다 조금 완화된 형태로 변경된다거나
혹은 중간 과정이 추가되고 기준이 좀 더 엄격해진다 뿐,
기존의 약관 체계에 대해 전면적인 변경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심의를 받은 규정들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현금 거래와 관련된 조항.



1. 아이템 등의 현금거래 금지 조항은 유효

2. 아이템 현금거래행위로 처음 적발된 경우,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계정을 영구압류 하는 조항은 무효





이 말은 곧, 게임사들이 현금 거래를 적발한 경우 제재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결코 현금 거래가 자유로이 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전과 차이가 발생했다면, 무조건 영구 압류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간 현금 거래에 대해 엄격한 정책을 펼쳐온 게임사들의 경우,



ㅁ 현금거래 적발시 무조건 영구 압류.
ㅁ 현금거래 시도 적발시 무조건 영구 압류(현금 거래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ㅁ 현금거래 시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행동이나 발언을 한 경우 무조건 영구 압류.
  (실제 의도 및 현금 거래 여부와 무관하더라도)




의 정책을 펼쳐 왔었다.



이로 인해 그간 뜻하지 않은 실수나 장난으로 인해 영구 압류된 게이머들의 사연이
각종 팬사이트나 게시판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올라오기도 했었다.



그간 이러한 운영 정책이 가져온 문제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사기성 현금 거래에 대해 피해자가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금 거래로 게임 머니를 판매한 이후 판매자가 해킹 신고를 하거나
혹은 아이템을 넘겨주고 돈을 받기로 한 상태에서 구매자가 돈을 입금하지 않은 경우,

현금 거래 방지 정책으로 인해 피해자는 두 눈 뜨고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자의 경우 사기라고 신고를 하게 되면
가해자는 해킹이라고 우겨서 별반 피해를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피해자의 경우 현금 거래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어 영구 압류를 피할 수 없었고,



후자의 경우 역시 사기라고 신고를 하게 되면,
(가해자는 신규 생성 계정으로 받아 아무런 손해가 없게 되지만)
피해자의 경우 현금 거래이기 때문에 현재 사용하는 계정 자체를 통째로 날리게 되는 것이다.



즉 강력한 현금 거래 방지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무조건 영구 압류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사기꾼들이 피해자에게 큰 소리를 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제재는 받을지라도 이제는 무조건적인 영구압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CCR 의 RF Online 이 시행하고 있는 현금 거래 관련 제재 정책을 보면,
다음 그림처럼 총 3회로 나누어서 단계적으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 RF Online 의 현금 거래 제재 정책, 총 3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




이러한 규정이 모든 온라인 게임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면
현금 거래 과정에서 사기 피해를 당한 게이머들도 대책을 세울 수 있으며,
또한 단 한번의 일로 오랜 시간 공들여온 아바타를 영구 분실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RF Online 의 이러한 규정처럼, 여타의 게임사들도
현금거래에 대해 단계적인 제재 조치를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상의 장애 및 접속 문제와 관련한 부분은 3건이 지적되었다.



3. 4시간 이상 연속 중단된 경우에만 보상 규정 - 무효

4. 접속 지연 등의 입증 책임을 이용자에게 전가하는 규정 - 무효

5.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중단된 경우의 사업자 면책 조항 - 유효




위 3개의 조항은 어느 정도 결과가 예견된 내용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4시간이라는 시간의 단축 필요성은 그간 여러번 제기되기도 했었고,
특히 입증 책임에 있어서 입증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반 사용자가 아니라
각종 자료를 보유하고 있고 서비스를 하는 사업자가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식으로 여타의 관련 규정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사업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
제조업이나 기타 서비스업의 경우 사업자들이 불편해하는 규정중 하나이며,
종종 정부에 규제 완화를 이유로 시정 조치를 건의하곤 하는 사항이다.



6. 기획, 운영상 이유로 이용자들의 계정을 정지시킬 수 있는 규정 - 무효

7. 이용자의 경미한 위반 사항시 계약 해지 가능 조항 - 무효

8. 무료 서비스의 경우 손해 배상 책임이 없다는 조항 - 유효




기획, 운영상 이유로 계정을 정지시키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았지만,
(해킹 아이템 추적 등의 이유로 임의적으로 며칠간 압류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그 사유가 제대로 통보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등 불만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경미한 위반 사항시 임의적인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의 경우
치열한 온라인 게임들의 경쟁 구조상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 판정은, 그 실효성이나 사용 빈도가 높지 않다고 할지라도,
사업자의 임의적인 판단의 근거를 제거했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다만 무료 서비스에 대해서까지 손해 배상 책임을 일일이 다 물리게 될 경우,
오히려 서비스의 품질이나 사용자들의 참여 기회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 조항에 대해서는 유효 판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10. 채팅 내용을 사업자의 판단에 따라 열람 - 무효

11. GM 에게 포괄적인 제재권의 부여 - 무효




채팅 내용의 열람은 자연스레 빈번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각종 분쟁(특히 해킹, 사기, 욕설, 현금 거래 등)과 관련하여
로그 기록 이외에 채팅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열람의 권한이 사업자에게 자의적으로 부여되어 있고
사업자들이 이것에 대해 게이머들에게 통보하거나 동의하는 과정이 없을 뿐더러,
사업자가 임의적으로 (좋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고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채팅 내용의 열람시에 열람 사유 및 통보 절차를 정식화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 온라인소비자연대 와의 인터뷰 중에서 ]




적어도 금번 판정이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번째로, 사용자가 받게 될 피해(압류 등의 각종 제재)를 줄였다는 점이다.



사업자에 의한 임의적인 제재 조치,
현금 거래의 경우 단 한번만 적발되어도 무조건 영구 압류되는 상황,
사업자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계정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등등



단 한번의 일로 인해 오랜 시간을 들인 아바타와 영원히 이별해야 하거나
혹은 사업자의 재량적인 판단에 의해 사용자의 행동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소지를 줄이려 했다는 점이다.



현금 거래의 경우 이를 이용해서 한두차례의 현금 거래를
(약관상 금지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지만,
게이머들이 그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것이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 각종 절차에 있어서 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자의성을 줄였다는 점이다.



채팅 내용 열람에 대한 부분이 전적으로 사업자에게만 있다던가
기획, 운영상 필요에 의해 자의적으로 계정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던가
경미한 위반 사항시에도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던가 등등



게이머가 받을 수 있는 각종 제재나 불이익에 있어서
그 절차와 기준의 투명성을 요구한 것이며,



각 사안별 경중을 따져서 그에 맞게 제재 조치가 취해져야 할 뿐더러
또한 특정한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인지를
게이머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세번째로, 사업자가 져야 할 책임을 좀 더 높였다는 점이다.



사업자의 사업 편의상 면책 조항의 범위를 늘렸다던가
혹은 입증 책임을 이용자에게 전가한다던가 하는 부분에서
면책 조항의 규정을 이전보다 엄격하게 규정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은 사업자의 편의에 따른 (그에 따라 유저들의 불편과 불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각종 조항의 추가나 삽입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은 한국이 가장 앞서있다.
게임 그 자체만으로는 더 호평을 받는 게임이 외국에서 나올지라도,
온라인 게임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화 및 사회 현상은 단연코 압도적이다.



더 이상 이것을 사업자와 게이머에게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공정위라는 정부 기관에서 여타의 사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 개입을 하고 판정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오랜 기간 자리잡아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의 약관 역시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도
이번 심의 결과가 상당히 고무적일 수 밖에 없다.



이번 심의에 따라 게임업체들은 약관을 수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60일간의 조정을 거쳐 수정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조항들이 지금 당장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법적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위한 소급 적용의 불가"라는 부분이 있기에,
혹 과거에 이번에 무효 판정을 받은 일로 인해 제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면령 등을 통해 복구나 구제를 받는 것은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과거의 제재 등을 모두 무로 돌리고 계정을 압류하는 일은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향후 게임사들이 어떻게 약관과 운영원칙을 수정해 나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권리가 어떻게 또 보호받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 관련 기사: 게임산업협회, 방침은 환영하나 방법은 불만?



Inven LuPin - 서명종 기자
(lupin@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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