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야기까지 자동으로? - '페리아 연대기'가 자동으로 NPC를 만드는 방법

게임뉴스 | 양영석 기자 | 댓글: 27개 |



2011년 '프로젝트NT'로 등장한 이후 많은 관심을 받아왔지만, 2016년에서야 간신히 모습을 드러냈던 넥슨의 '오픈월드' MMORPG, '페리아 연대기'. 샌드박스 게임처럼 직접 아이템이나 건물을 만들고, 지형도 유저들이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는 높은 자유도가 가장 큰 특징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페리아 연대기'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엥?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하실 수 있는데, 그게 제일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페리아 연대기'는 온라인 게임 내에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서, 유저들이 직접 세계를 구상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중구난방으로 세계가 틀어지지 않기 위해, 규칙도 어느 정도 정해져있고요.

현재 띵소프트에서 개발 중인 페리아 연대기의 개발 과정은 어떨까요? 일단 먼저 디렉터가 가장 상위 등급에 있는 0등급 규칙을 정합니다. 대충 표현하자면 이건 '자연의 섭리' 같은 거예요. 그러면 이제 다른 기획자들이 몰려들어서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그들은 0등급보다는 약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1등급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유저들이 다른 규칙을 만들 수 있는 '틀'을 마련해두는 일을 하죠.



띵소프트 페리아연대기 개발실의 조현식 기획자

그러니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게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테스트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게임 속에서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NDC에서 강연을 한 띵소프트의 조현식 기획자 역시 이런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페리아 연대기의 최초의 유저이자 베타테스터, 그리고 NPC. 뭐, 말하자면 '최초인'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런 조현식 기획자는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청중들에게 한 가지 퀘스트를 주었습니다. NPC(Non-Playerble Character)를 무한대로 만들어달라는 도움!

Q. 음? 왜 NPC를 무한대로 만들어야 하죠?

="NPC는 게임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자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페리아 연대기는 유저가 플레이하고 규칙을 만들어내면 낼수록 세계가 무한히 확장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만큼 많은 NPC가 필요합니다. 모험가나 상인, 혹은 내 장비를 깨먹는 대장장이나 '경험치를 많이 주는 퀘스트'를 주는 사람도 NPC입니다. 그동안 많은 게임들에서 좋은 NPC들이 나왔습니다."


좋은(?) NPC의 대표적인 예시들.


자, 그런데 NPC를 무작정 만들면 설정도 안 맞고 모습과 정 반대되는 캐릭터가 생성될 위험이 있어요. 뭔가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좋은 NPC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좋은 NPC의 조건은 좋은 캐릭터와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설정과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인상적인 화법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NPC가 바로 좋은 NPC입니다. 왜 이 세 가지 요소일까요? 예시를 들어서 설명을 해보죠.

조현식 기획자가 개발한 NPC 중에는 '울프'라는 NPC가 있습니다. 이카루스에서 늑대를 잡는 곳마다 배치되어있고 화법이 좀 독특하게 설정을 잡아뒀다고 합니다. '이름이 울프라서 늑대를 잡아야 하는 곳마다 있도록'이라는 설정. 그래서 유저들이 제법 기억하는 캐릭터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 친구의 외모와 비슷한 NPC가 한 100여 명은 있어서 임팩트가 엄청 강렬했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제는 단순 도트 그래픽으로 차이를 주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정말로 매력적인 외모가 있어야 유저들이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설정은 좋았으니 외모가 받쳐주지 못해 아쉬운 캐릭터였다는 '울프'

그래서 페리아 연대기도 잊지 않고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캐릭터를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그 예시가 바로 여러분이 많이 봤던 '레나'죠.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지나서인지 아무리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캐릭터라도 말을 못하면 안 됩니다. 이 시대에서 말을 안 해도 좋은 캐릭터는 25년 전부터 녹색 옷을 입고 말을 하지 않은 젤다(?)뿐이죠. 인상적인 화법은, NPC의 생명을 늘려줍니다.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지면 게임의 생명력 역시 늘어나게 됩니다.

페리아 연대기도 이 부분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잘 입력해 둔 후, 이를 조합하여 NPC를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냅니다. 캐릭터 디자인과 설정 부분은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해결하고, '화법'의 경우는 어간과 어미와 활용 등을 파이썬의 정규식으로 표현해 잘 묶어주면 변환이 가능해 이 부분도 완료됐습니다.



이제는 '매력적인 디자인'도 정말 중요한 시대다!



인상적인 화법의 대표적인 캐릭터들.

이 과정에서 디자인도 어색하지 않게 여러 케이스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구조를 만들고, 최적화는 프로그래머의 몫으로. 그리고 NPC의 말투와 외모가 매칭이 잘 안되는 일이 줄어들도록 '경향성'을 부여해서 설정에 맞춘 자동 외모 생성을 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자, 이게 설정과 외모, 그리고 화법을 조합해서 자동으로 NPC를 만들어주는 놀라운 아이템인 'NPC 자동 생성기'가 완성됐습니다. 게임 속에서 개발자들이 직접 구현을 해놨다고 합니다.

Q. 그러면 이미 자동화는 된 것 아닌가요? 왜 무한대로 만드는 퀘스트를 준 거죠?

A. "NPC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재미있어지지는 않습니다. 재미는 자동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현식 기획자는, 페리아 연대기를 개발하면서, 처음에는 재미도 자동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면 개발자로서는 '재미를 자동화'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RPG의 '재미'는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나오니 이야기의 자동화에 대해 연구해 '로봇 저널리즘'에 관심을 쏟았지만, 아직 수준이 '빈칸 채우기'에 그쳐서 사용할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현재 '페리아 연대기'의 NPC 자동화는 1단계. 기획자가 넣은 설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끝입니다. 페리아가 목표로 하는 건 2단계의 AI. 유저들에게 직접 재미까지 줄 수 있는 NPC를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죠.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기존 페리아의 세계에서 더 멀리, 더 위험한 곳으로 나가 게임을 즐기게 되면 새롭게 공간이 생성되고 NPC가 배치됩니다. 그 NPC가 기획자들이 짜놓은 이야기와 얼개를 가지고 유저들에게 임무를 던져주겠죠. 유저들이 더 많이 플레이를 하고, 실험을 해보고, 한계를 넘어가는 체험을 해보게 되면 이는 자연스럽게 달성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결국, 강연의 끝에서 조현식 기획자가 강조하고자 한 부분은 "유저들이 많이 플레이해주면 게임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페리아 연대기가 쉽지 않은 게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분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매력적인 NPC와 재미있는 이야기, 아름다운 배경 등을 만들어서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즐길 수 있는지를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아직 저희는 바깥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즐겨주셔야 하는 부분이고, 무한하게 많은 세상 바깥에서 도전을 해주시면 여러분들에게는 공략집이 없는 게임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 같습니다. 이야기까지 완전 자동화가 되는 페리아를 만나게 되면... 음. 저는 실업자가 될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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