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인생 첫 키보드는 컴퓨터를 구매하면 공짜로 나눠주던 삼성의 번들 키보드였습니다. 아주 어릴 적인지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멤브레인 특유의 쫀득한 키감에 오랫동안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기계식 키보드의 손맛을 알게 되고 점차 다양한 키보드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죠.
현재는 20만 원 중반대의 기계식 키보드를 커스텀 해서 사용하는 중인데요. 이렇게 고가의 제품을 쓰다 보면 주변에서 "뭐 이리 비싼 걸 쓰냐", "키보드가 입력만 되면 되지 돈 낭비 아니냐"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키보드의 사용 목적은 결국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이고 입력만 잘된다면 그만입니다.
다만, 쓰다 보면 내 손에 맞는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사용 목적에 따라서 더 많은 기능을 갖춘 최고의 제품을 선호하게 됩니다. 더 좋은 제품, 더 많은 기능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이 높아진 것이죠. 비단 키보드에만 국한된 소리는 아닐 겁니다.
오늘 소개할 제품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제품입니다. 2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제품이지만, 감도조절이 가능한 옴니포인트 스위치가 탑재된 최초의 기계식 키보드입니다. 옴니포인트 스위치는 사용자가 직접 감조를 조정할 수 있으며, 빠른 반응속도와 동작 인식, 내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윈도우 PC, MAC 뿐만 아니라 Xbox One, PS4 등 콘솔 기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스틸시리즈의 풀배열 기계식 게이밍 키보드 'Apex Pro'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키감을 내 마음대로! 옴니포인트 스위치
키보드를 구매할 때 대부분은 스위치를 먼저 살펴봅니다. 스위치의 종류에 따라 기계식, 무접점, 멤브레인, 플런저 등으로 나뉘며, 키감부터 특성까지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Apex Pro는 중국의 게이트론과 함께 개발한 옴니포인트 스위치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옴니포인트 스위치는 스틸시리즈에서 기계식 키보드의 새로운 도약이라고 칭할 만큼 기존에 없던 독특한 작동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축 아래에 자석을 넣은 뒤 자석에서 나오는 자력의 변화를 기판에서 감지하여 동작하게 되는데요. 기계식 키보드라고 칭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접촉 방식으로 작동하는 일반적인 기계식 키보드와 달리 전자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8배 빠른 응답속도와 5배 빠른 동작인식, 2배 높은 내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옴니포인트 스위츠는 사용자가 동작인식을 0.4~3.6mm 사이에서 원하는 수치로 감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보통 제조사별로 동작인식이 고정된 데 반해 사용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꽤 큰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빠른 인식을 요구하는 FPS, 전략 게임에서는 0.4mm로 내리고 정확한 타이핑을 요구하는 문서 작업에서는 3.6mm로 올려 오타를 줄일 수 있습니다.
기자가 실제로 써본 옴니포인트 스위치의 느낌은 리니어 방식의 기계식 키보드와 흡사했습니다. 내부에 걸쇠가 없기 때문에 조용한 타이핑이 가능했고 키 배율도 괜찮았습니다. 스테빌에서 약간의 철심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균형은 우수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키보드는 키감을 정의하기가 꽤 어려운 편입니다. 이유는 앞서 설명한 동작인식 때문인데요. 전용 소프트웨어인 스틸엔진으로 동작인식을 조절함에 따라 키감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0.4mm로 맞추면 스피드 은축처럼 부드럽게 쑥 들어가는 느낌이 나지만, 반대로 3.6mm로 올리면 묵직한 반발력을 갖춘 흑축을 치는 느낌이 납니다.
하도 신기해서 평소 키보드에 무관심한 주변 동료들에게 키감 테스트를 요청해봤는데요. 실제로 키를 쳐본 대부분의 동료가 키감에 어느 정도 차이를 느낄 만큼 그 효과가 뛰어났습니다. 평소 리니어 제품을 즐겨 사용하던 게이머라면 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작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전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며, 숫자패드와 방향키, 각종 기능키는 옴니포인트 스위치가 아니라 일반 리니어 적축이기 때문에 수치를 바꿀 수 없습니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전용 소프트웨어 테스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디자인
■ 스틸시리즈 엔진 설정
스틸시리즈 전용 소프트웨어인 스틸엔진(SteelSeries Engine)에 제품을 등록하면 키 바인딩부터 동작, 조명, OLED 등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죠. 키 바인딩에서는 키 개별로 입력값을 바꿀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A키를 Q로 바꾸거나 미리 입력한 매크로를 넣을 수 있는 곳이죠. 매크로는 사전에 원하는 값을 미리 입력해서 저장할 수 있으며, 1ms 단위로 입력값이 저장되므로 특정 작업 시 자주 쓰는 키조합이 있다면 미리 만들어줘서 자주 누르지 않는 키에 매크로를 넣어 작업 환경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동작에서는 앞서 설명한 키보드의 동작속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동작속도는 1단계부터 10단계로 나뉘어있으며, 1단계는 0.4mm, 10단계는 3.6mm입니다. 단계가 낮을수록 입력지점이 낮아지며 키감이 가벼워지죠. 빠른 입력을 요구하는 게임일수록 낮은 단계로 설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반대로 정확한 키 입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높은 단계로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금 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1단계로 했을 경우 키를 정말 살짝만 눌러도 키가 눌립니다. 키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움찔거리면 키가 타다닥 입력됩니다. 쉽게 말해 굉장히 민감해지는 것이죠. 반대로 10단계에서는 키를 바닥까지 꾹 눌러야 입력이 됩니다. 키캡이 상판과 탁 부딪칠 정도로 키를 눌러야 하기 때문에 둔해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동작 역시 키 개별로 수치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WASD의 동작속도를 1단계로 정하고 나머지 키를 10단계로 할 수 있는 것이죠. 자유도가 굉장히 높아서 사용자가 원하는 데로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세부적인 설정이 되레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키 전체를 선택해서 5단계로 두고 쓰시길 추천합니다. 일반적인 리니어 적축 느낌의 키감과 동작속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명은 키보드의 LED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가본 효과에서 단색, 컬러쉬프트, 그라데이션, 호흡 등 특수 효과를 줄 수 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효과가 있습니다. LED 반응과 속도도 설정할 수 있고 자리비움 효과도 가능합니다. 이 역시 축마다 개별로 설정할 수 있으며, 특정 부위를 묶어서 효과를 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OLED&설정이 있습니다. 키보드의 숫자키패드 상단에 있는 OLED 디스플레이에 나만의 이미지를 띄울 수 있는 곳이며, 128px x40 픽셀에 흑백일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도 넣을 수 있으며, 초당 10프레임으로 재생됩니다. 이미지 등록은 간단합니다. 괜찮은 이미지를 찾아서 넣거나 혹은 이미지가 없을때는 직접 그려도 됩니다.
이밖에 OLED에 특정 게임 혹은 음성 채팅 프로그램을 연동할 수도 있습니다. 연동 가능한 프로그램은 스틸엔진에 등록된 애플리케이션만 가능하며, 연동 이후 OLED에서 해당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알림을 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 키보드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대단한 기능은 아니지만, 나만의 키보드를 커스텀한다고 생각한다면 꽤나 참신하고 독특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해보면 재미있습니다.
■ 총평
지금까지 APEX PRO 키보드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키보드를 써봤지만, 소프트웨어를 통해 키보드의 동작속도를 바꾸고 그에 따라 키감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는 키보드는 처음 접해보는 제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이런 게 된다고?"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더군요.
실제로 써보니 게임과 업무 둘 다 쓰기에 꽤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리니어 방식을 즐겨 쓴다면 부드러운 키감에 만족할 것이고 키보드의 디자인도 화려한 LED에 세련미가 넘쳐 보는 맛이 있습니다. 게임을 할 땐 동작속도를 낮추고 타이핑을 할 땐 동작속도를 높이는 등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 조절이 가능하단 점이 이 키보드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용자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스틸시리즈만의 소프트웨어도 만족스럽습니다.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옵션이 바로 적용되기 때문에 초보자도 손쉽게 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설정을 저장할 수 있는 프로필 파일 덕분에 처음에 시간을 조금 들여 세팅만 잘해두면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스위치 덕분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지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2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비해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APEX PRO는 항공기 등급의 알루미늄 합금 프레임 재질로 상판을 설계했습니다. 그에 반해 하판은 일반적인 플라스틱 재질로 구성되어 있어 풀 알루미늄 제품보다 전체적인 내구성이 떨어집니다. 적당히 튼튼한 내구성과 가벼운 무게를 위해 이렇게 설계했으리라 생각되지만,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인 것을 고려한다면 풀 알루미늄으로 더 튼튼한 내구성을 갖출 수 있지 않았느냐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는 키캡입니다. APEX PRO의 키캡은 ABS 재질에 레이저 인쇄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보통 ABS 재질은 가볍고 가공이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가벼운 만큼 내구성이 약하고 오랫동안 사용 시 키캡의 번들거림이 쉽게 생길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단가가 저렴한 편이라 주로 저가형 키보드에서 자주 보입니다.
키캡의 마감은 훌륭한 편이지만 재질의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내구성이 좋고 오랫동안 사용해도 각인이 지워지지 않는 PBT 재질의 이중사출 인쇄 방식을 채택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물론 앞서 언급한 부분은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성능 외에 부가적인 요소이므로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무거운 키보드를 싫어하며, ABS 특유의 질감과 LED 표현력을 좋아하는 사용자도 분명 있으니 말이죠.
키보드로서의 APEX PRO의 성능은 20만 원대의 제품답게 매우 우수하다고 생각됩니다. PC와 콘솔 게임. 그리고 업무까지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은 게이머라면 한 번쯤 써보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