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 속 '2%'는 대부분 기별도 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미미하게 느껴지는 비중인 경우가 많다. 자취생들이 자주 찾는 인스턴트 곰탕 국물 속 2%의 사골 함량 표시나, 100명의 심사위원이 참가한 경연 대회에서 단 두 표만 얻은 참가자, 또는 100%를 달성해야만 보상이 주어지는 퀘스트에서 달랑 2%의 달성도만 채워진 상황을 떠올려보자. 0%가 아닌 게 어디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이다.
하지만 단 한번의 패배도 용납지 않는 백전노장으로부터 1승을 따낸 신인 루키의 활약처럼, 상황에 따라서 단 1%의 비중이라도 대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페이스북이 발표한 실적 발표 자료에서 그야말로 '2%의 가치'라 할만한 새로운 기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VR 시장 상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최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호평을 얻고 있는 페이스북의 신형 VR HMD인 오큘러스 퀘스트2(이하 퀘스트2)가 때아닌 'VR 전성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지난 10월에 출시된 퀘스트2는 전작인 오큘러스 퀘스트보다 최초 판매가가 100달러(한화 약 11만 원) 이상 저렴하지만, 더욱 높은 해상도의 디스플레이와 향상된 프로세스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좀처럼 개화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라가고 있던 VR 시장에 단비처럼 등장한 퀘스트2 발매 이후, 평소 VR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던 이들이 'VR HMD를 처음 구매했다'는 인증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만 들어도 국내에서 정말 많은 이들이 퀘스트2를 구매했다는 것까지는 예상해볼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퀘스트2가 출시 후 몇 대나 팔렸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표는 아직 공개된 바가 없다.
페이스북이 최근 공개한 실적 발표 자료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퀘스트2의 2021년 예상 판매량이 약 3백만 대에 달할 것이라는 슈퍼데이터의 예측을 들은 후였기 때문일까, 실제론 300만 대라는 기록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이번 실적 발표에서도 퀘스트2의 정확한 판매량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퀘스트2의 실적과 연결지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표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바로 광고 외 수익 부분이다. 매번 전체 매출 파이의 99%가 광고 수익으로 채워지는 페이스북이다 보니, 유의미한 매출이 기록된 광고 외 수익 쪽에 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드웨어 판매 수익도 함께 집계되는 광고 외 수익 지표를 통해 퀘스트2의 대략적인 성과도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페이스북의 2020년 4분기 광고 외 수익은 총 8억 8,500만 달러(한화 약 9,891억 원)로, 작년 동기 매출인 3억 4,600만 달러(한화 약 3,866억 원)보다 두 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이러한 성과를 이끈 것은 퀘스트2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아니나 다를까, 페이스북의 데이비드 베너(David Wehner) CFO도 "퀘스트2의 판매가 연말 사이에 많이 늘어났다"며 약 156% 가까이 성장한 광고 외 수익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VR HMD가 새롭게 시장에 출시될 때마다 매번 소외당하였던 한국 유저들에게 있어 '퀘스트2'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기기다. 한국에서도 다른 국가들과 동시에 정식 발매가 결정되어 출시 초부터 누구나 홈페이지에서 직접 기기를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엔 SK텔레콤이 퀘스트2를 정식 수입, 판매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가격은 홈페이지 구매와 동일한 414,000원으로, 앞으로는 해외배송을 기다려야만 했던 기존의 방식보다 더욱 편하게 퀘스트2를 구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퀘스트2가 각별하게 느껴졌던 건 비단 우리나라 유저들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는 지난 3분기 실적발표에 이어, 이번 발표에서도 퀘스트2를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 저커버그 CEO는 "퀘스트2를 VR 시장의 첫 번째 주류(First Mainstream) HMD로 만들겠다"라며 VR 시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당시에도 그는 "지난 세대의 HMD보다 퀘스트2가 약 5배가 넘는 선주문을 기록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대표가 직접 독립형 헤드셋인 퀘스트2를 주류로 내세우겠다고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VR을 다음 세대의 소셜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페이스북의 구체적인 성과가 뒷받침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페이스북이 VR 시장의 주류가 되기 위해 그 어떤 기업보다 많은 성취를 이루었고, 지금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하드웨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퀘스트2'를 잇는 차세대기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후속작에 대한 더욱 자세한 언급은 없었지만, 추후 등장할 후속기는 퀘스트2에서 작동하는 모든 콘텐츠를 완벽히 호환하는 방식의 HMD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페이스북의 매출 대부분은 여전히 광고 수익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공개된 전체 매출의 97%는 광고 수익이었으며, 오직 2%만 퀘스트2 등 하드웨어 매출을 포함한 광고 외 수익으로 기록됐다.
2%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있는 비중은 아니지만, 이 수치가 단 한 분기 만에 이뤄진 성과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퀘스트2를 주류로 내세우겠다는 저커버그 CEO의 발언과 퀘스트2의 뒤를 이을 후속기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2021년에 출시될 예정인 VR 기대작 라인업들에 힘입어 지금의 2%는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1등 기업의 독주가 불러올 수 있는 VR 시장 독점 문제에 대한 걱정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확실한 미래를 막연히 걱정하기보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호재를 놓치지 않고 시장 자체의 규모를 키우려는 페이스북을 응원할 때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상황에 맞춰 형편 좋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막 시작된 2021년엔 페이스북이 과련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