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윤아 관장 "게임의 성공은 출시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터뷰 | 김수진 기자 | 댓글: 38개 |



넥슨컴퓨터박물관이 개관한 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시아 최초의 컴퓨터박물관으로 시작한 넥슨컴퓨터박물관은 그 8년 동안 무던히 '컴퓨터'와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를 처음부터 꾸준히 이끌어온 건 최윤아 관장이다.

교육공학을 전공해 미술관 일을 하다가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맡게 되었다는 최윤아 관장. 당시 넥슨이 이렇게 큰 회사인지도 몰랐었다는 그녀는 IT 강국임에도 국내에 컴퓨터박물관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이후 바람의나라 복원, 게임을 게임하다 전시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최윤아 관장이 이번에 도전한 것은 바로 '미출시된 게임의 아카이빙'이다.

테스트라는 의미의 '베타'가 붙은 네포지토리, 최윤아 관장이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 넥슨컴퓨터박물관 최윤아 관장


게임이라는 건 결국 디지털이다. 이를 아카이빙하는 건 일반적인 박물관의 역할과는 좀 다를듯하다. 어떤가.

아카이빙은 오래된 화두다. 소장품을 관리하고 취득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데이터화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서관을 가면 번호가 있지 않나. 분류화를 잘 시켜놨다가 필요한 순간에 빠르게 꺼내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아카이빙이다.

넥슨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 디지털 회사니까 아카이빙이 잘 되어있을 줄 알았으나 아니더라. 아카이빙을 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회사'라는 곳에서는 어려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콘텐츠에 대한 아카이빙을 개관 전부터 고민 하고 있었다. 기존에 이런 경우가 없다 보니 다른 곳을 참고할 수도 없었다. 소장품 취득의 방법론, 정책 등을 하나하나 다 만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개관할 때 최초의 작업으로 바람의 나라를 복원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게임을 복원한 적이 없기에 이것이 어떻게 보면 디지털 아카이빙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넥슨 게임이라서 선택한 건 아니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출발점이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치 있는 게임이기에 해보자는 결정을 했다. 그런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 줄은 몰랐다(웃음).

NDC에서 일 년 후 발표를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많은 유저들이 접속했다. 두 달 동안 몇십만 명이 다운로드를 받았더라. 복원이라는 걸 디지털 아카이빙의 수단으로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그 이상의 의미를 얻게 됐다. 온라인 게임이 이제는 문화이자 예술로서 사회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이를 통해 깨달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겜알못'으로 시작했지만 '게임'이 갖는 가치를 찾으며 얻은 기쁨은 말로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박물관이다. '게임' 박물관이 아니다. 이유가 있나.

게임박물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아시아 최초의 IT 박물관을 만들어가는 데 '게임'을 내세우면 명분이 약할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도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었으나 밀고 나갔다.

최초의 디지털 박물관인데 '게임'을 앞세워서 하다 보면 너무 제한적일 것 같았다. 삶을 변화시킨 컴퓨터라는 매체를 설명하기 위한 '게임'은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게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온라인 게임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시켜 보여줄 여지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한 차원에서 바람의 나라 복원,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 전시 등 여러 시도를 하게 됐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준비도 되었고, 게임이라는 매체가 좀 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는 인식도 생겼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그 이상을 게임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출시작을 전면에 내세워서 전시하는 것이 게임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이번 전시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다양한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소장품이 다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순 없다. 예를 들어 애플의 뉴턴(Newton)이라는 PDA 단말기가 있다. 원조 격의 단말기다. 성능적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너무 비싸서 실패했다. 그렇다고 이 제품이 소장할 가치가 없나? 그건 아니다. 즉 성공과 소장 가치를 동일 선상에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게임이라는 것이 여러 기준하에 출시 여부가 결정되지만, 미출시되었다고 해서 모두 실패라고 보는 것은 너무 표면적이다. 그 이면에서는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지 않나. 출시를 향해 시도 하고 있다는 것, 계속해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개발자분들 중에는 반대하는 분들도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아카이빙된다면 향후 후배들이 활용할 때 자료가 되지 않겠나라는 의견이 있었던 것 같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30개 정도의 데이터를 받았다. 500GB가 훨씬 넘었는데, 실제 개발 리소스는 훨씬 컸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고 개발팀도 그랬고, 데이터의 더미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받아본 데이터들 속에는 정말 너무 아까운 것들이 많았다.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너무나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각화 방법과 공간에 한계가 있다 보니 선택의 고비가 있었고 그걸 결정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하나만 걸어놔도 작품이 될만한 아트워크들이 정말 너무나 많아서 다 전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더라.

어쨌든 이번 전시는 '베타'라는 단어가 붙은 것처럼 테스트였다. 하지만 우리로선 이 전시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에, 개발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명단을 넣은 크레딧을 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이번에는 패스했다. 다음번 부터는 꼭 다 넣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서비스가 종료되는 작품들도 아카이빙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이다.


그렇다면 정식 전시를 기대해봐도 되는 건가.

전시를 통해 집단 창작의 과정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간 자체가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서 물리적인 한계는 있다. 그래서 '베타' 버전이다. 정식 버전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장할 계획은 있다. 우선 케이스를 늘려가는 것이 목표고, 성공한 게임을 아카이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전시는 매우 독특한 시도였던 것 같은데.

디지털 콘텐츠를 아카이빙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도 케이스가 잘 없다. 특히나 미출시된 게임을 아카이빙하고 시각화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해외 교류 기관들과 연락을 해보면 다들 흥미롭고 좋은 케이스라고 하더라.

더 스트롱 뮤지엄(The Strong Museum)이라는 놀이 박물관의 일렉트로닉 게임 부서 쪽에서 너무 재미있다며 전시 레퍼런스로 쓰고싶다 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스탠포드 도서관(Stanford Libraries)이 게임 아카이빙을 한다. 그쪽에서도 내년 실리콘 밸리에 오픈할 계획이 있는데 사례로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전에 페리아 연대기 개발자분이 네포지토리 베타 전시를 하는 지 모르고 왔다가 놀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같이 온 분에게 열심히 설명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갔다. 다른 게임회사에서 가보라고 해서 페리아 연대기를 보러 출장오신 분도 있었다.


네포지토리 베타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점이 있다면.

성공 기준의 다양함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출시를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나누지 않고자 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가 그 첫 번째 발자국이었으면 좋겠다.

성공한 것과 실패한 게임의 차이는 글쎄, 잘 모르겠다. 성공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에 달린 것 같다. 돈을 많이 번 게임이 성공한 것인가, 혹은 반응이 좋았던 게임을 성공했다고 할 것인가 등 성공의 기준을 무엇에 둘 것인가가 중요하다. 게임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실험을 했으나 출시하지 못했다면 그걸 과연 실패로 봐야 할까.

넥슨과 일을 하면서 느낀 건, 게임 개발자들이 직업적으로는 좋은 일을 하고 있으나, 체감하는 사회적 인식이 낮다는 것이다. 그걸 바꾸는 데 박물관이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넥슨 내부에서 실험적인 걸 많이 하고 있다 보니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실험적인 것을 찾고, 재미를 찾는 회사라는 것을 알리고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넥슨이라는 회사에 대해 모르고 들어왔기에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벌써 개관한지 8년이 되었다. 그동안 게임과 컴퓨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어느정도 일조했다고 생각하나.

그저 산 위에 모래를 한주먹 가져다 두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쌓인 모래가 산을 성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수치화되어 있는 건 없다. 지금도 컴퓨터 박물관이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다.

요즘은 덜하지만, 초반만 해도 게임 산업이 주류가 아니었다. 개관 기사가 났을 때만 해도 김정주 대표가 공식석상에 나왔다는 게 이슈였지 박물관은 주목을 못 받았다. 사회적으로 게임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8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2010년만 해도 컴퓨터 관련 교육에 대한 주목도가 많이 떨어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코딩 학원이 인기지 않나. 그런 식으로 컴퓨터와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한 사회 교육 기관으로서 화두를 던지는 정도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것이 시류를 잘 타면 호감도가 상승하고, 교육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겠나.

박물관을 함께 찾은 가족의 경우, 부모가 아이에게 게임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알려주거나, 오히려 더 열심히 하거나 같이 한다. '게임'을 세대가 같이할 수 있는 훌륭한 엔터테인먼트로 보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주위에서 카트라이더를 온 가족이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걸 들으면 이제 조금 게임이 자리를 잡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이번 전시만 하더라도 자녀와 함께 프로젝트ANYWAY를 플레이하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출시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 박물관을 개관할 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컴퓨터'라는 공통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오는 분들이 넥슨 콘텐츠가 박물관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하더라.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직접 플레이해본 넥슨 게임을 좀 더 즐기며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미래의 계획이 궁금하다. 어떤 것을 구상하고 있는지.

코로나가 없었으면 오프라인 전시의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 같다. 진행했던 다양한 전시를 통해 온라인 게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고, 질병코드를 받으면서 우리가 할 역할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방향을 바꿨다.

현재 대중에게 공개된 공간의 온라인 콘텐츠가 다 비슷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정보 웹사이트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확인한 뒤 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정말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는 고객 맞춤형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올해 온라인 쪽을 먼저 시작했고 내년 초면 마무리될 예정이다. 온라인 박물관인데 플랫폼처럼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데이터를 제작하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이후에 오프라인을 맞출 것 같다.

전시를 한다면 당연히 네포지토리를 제대로 된 공간에서 해보고 싶다. 그리고 넥슨 뿐 아니라 다양한 게임 회사들과 온라인 게임 전시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온라인 게임 자체에 대한 보존 연구나 전시, 교육 등을 모두 드러내서 해도 될 때가 된 것 같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고 싶다.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서 직접 보는 듯한 전시를 해보고 싶달까. 전시를 보면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전시 자체를 온라인 게임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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