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유저 잡는 법? WoW 무작위 던전에서 배운다.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29개 |
온라인 게임, 신규 유저 잡는 법


아마도 대한민국 게임회사 중에서 이런 고민 해보지 않은 곳은 없으리라. 같은 제목으로 책을 써서 팔았다면 못해도 강남에 아파트 몇 채를 구입할 수익은 나오지 않았을까?


그만큼, 유저들이 투입한 시간과 경험이 어떤 형태로든 온라인 공간 속에서의 자산으로 남게 되는 온라인 게임에서 신규 유저를 유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서비스 한지 1년, 2년을 넘겨 고레벨 유저와 신규 유저 사이의 격차가 이미 어마어마하게 벌어져 버린 MMORPG에서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한 편. 아예 일부 회사에서는 "우리 게임은 신규 유저 유치를 포기했습니다."라는 절규가 나올 정도니 말 다했다.


사실, 게임회사들이 이런 문제점을 남의 집 불 구경하듯 방관만 해왔던 것은 아니다. 산타클로스도 울고 갈 상품으로 이벤트도 하고, 다양한 혜택까지 제시하면서 신규 유저들의 정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정책을 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신규 유저들을 위해 그 동안 충성을 다 해왔던 기존 유저들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훼손하는 정책은 곧, 게임의 존망을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나을 위험이 있었고, 게임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두려움 때문에 신규 유저들이 정말 혹할만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때문에, 신규 유저 유치 정책 및 이벤트는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사례가 잦아졌고, 결국 고비용, NO 효율로 인해 포기에 이르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CJ인터넷에서 2007년에 오픈베타를 시작해 지금까지 서비스해 오고 있는 중국 완미시공의 MMORPG, 완미세계가 게임 자체에서 신규 유저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제시해 상당한 성과를 이룬 바 있다. 완미세계의 경우 대부분의 고급아이템이 제작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 제작의 필수아이템을 특정 퀘스트를 수행하는 다른 유저와 함께 플레이하면 하면 보상으로 주도록 했다.


여타 온라인 게임에서는 신규 유저들이 기존 유저들에게 같이 플레이하자고 부탁 또는 애원하는 모습이 보통인데, 완미세계에서는 그 반대로 고레벨 유저들이 해당 퀘스트를 수행하는 신규 유저를 '모셔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는 특별한 이벤트 혹은 외적인 혜택이 없어도 완미세계에서 신규 유저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가 되어주었다.





▲ 중국산 MMORPG 완미세계, 은근히 참고할만한 시스템들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MMORPG라고 불리 우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 또한 마찬가지.


2004년 첫 정식서비스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쌓여가는 방대한 컨텐츠는 진입 장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신규 유저와 기존 유저들간의 차이가 더욱 커져가면서 갈등을 생산, 아예 신규 유저들이 WoW를 기피하려는 현상까지도 보였다.


1200만 명이 넘는 유료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블리자드도 이 사태를 그냥 관망할 수 있을 수만은 없었는지 여러 번의 패치를 통해 신규 유저 유치를 위해 신규 캐릭터의 레벨업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파티퀘스트는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싱글퀘스트로 조정했다.


또한, 블리자드의 기존 게임 철학과는 다소 어긋난다는 일부 유저들의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 초대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탈것, 계정비 지원 등 다양한 혜택과 함께 80레벨, 즉 만레벨까지는 마음만 맞으면 초고속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WoW의 신규 유저 유치는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는데 그 모든 이유는 이 한 마디로 압축된다. "WoW는 만렙부터".


현재 WoW의 대부분 핵심 컨텐츠는 만렙 이후 펼쳐지는 레이드에 집중되어 있는데, 신규 유저가 만렙을 달성한다고 해도 해당 레이드 던전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그것도 싱글플레이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레벨업 이후의 길고 긴 과정을 견디고 적응해 내기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일명 '사장' 파티(골드만 있으면 일단 데려가는)도 있다고는 하지만, 레이드를 아예 모르는 생초보 유저가 갈 곳은 솔직히 말해 전무한 상황.


누구보다도 이러한 WoW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블리자드는 2009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대표할 수 있는 주인공, 리치왕 아서스를 마지막 레이드 보스로 등장시키는 3.3 패치를 업데이트 하면서 MMORPG 사상 전무후무한 '무작위 던전' (일명 랜덤 영던)이라는 시스템을 구현해 낸다.





▲ WoW 3.3 공식 패치노트 중에서... 무작위 던전 시스템에 관한 설명




무작위 던전 시스템이란 말 그대로 일단 신청하게 되면 같은 서버 혹은 다른 서버 유저와 함께 무작위 파티가 구성되어 '5인 던전'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레이드 던전은 지원하지 않는다.


일단, 탱커, 힐러, 딜러, 3가지 중에서 자신이 플레이할 하나의 역할을 선택한 후, 대기자 명단에 자신의 아이디를 올리게 되면, 같은 던전을 신청한 (랜덤도 가능) 인원 중에서 탱커 1명, 힐러 1명, 딜러 3명이 충족되는 즉시 바로 무작위 파티가 구성되어 던전에 입장하게 된다.


굳이 던전의 위치까지 캐릭터를 이동시킬 필요도 없으며, 던전 내부에서의 아이템 획득 규칙도 '착용자 주사위'로 통일되어 자신의 역할만 잘 수행할 수 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플레이에만 전념하면서 던전을 돌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무작위 파티를 구성하는 대상이 본인의 서버 뿐 아니라 다른 서버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인구 수가 적어서 평소에는 파티가 잘 구해지지 않던 서버의 유저들도 이제는 클릭 한번 만으로 초고속 파티 모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무작위 던전 시스템으로 인해 유저는 파티 모집부터 던전 내부에서 아이템 진행 같은 귀찮은 일거리에서 완전히 해방된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작위 던전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보상"에 있다. WoW 유저들은 하루에 단 한번 뿐이지만, 던전의 종류까지 무작위로 선택해서 무작위 던전을 플레이 하게 되면 현재 가장 최상위 '레이드' 던전급의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토큰'을 2개씩 획득할 수 있다.


또한, 던전의 종류에 상관없이 아무 던전이라도 그 난이도가 영웅급이라면, 가장 수준 높은 레이드 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토큰'을 2개씩 '무한정' 획득할 수 있다.





▲ 신규 유저들도 노력만 한다면 이번 확장팩 최종 보스인 리치왕을 알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상위 유저들은 상위 유저대로 최고 수준의 아이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고급 레이드 던전플레이외에 무작위 던전 플레이가 추가적인 필수가 되며, 중위권 및 신규 유저들 또한 최상위 레이드 던전을 플레이 하기 위한 기초 장비를 무작위 던전시스템을 통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WoW에서는 두 개의 특성을 지정해 놓고 번갈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듀얼 특성' 또한 이미 구현되어 있어서 각 특성 마다 필요한 아이템을 획득해야 하는 동기까지 더해져, 현재 WoW 무작위 던전시스템은 24시간 내내 끊임 없이 유저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만렙 이후의 또 다른 진입장벽에 막혀 결국 게임을 이탈할 수 밖에 없었던 신규 유저들은 무작위 던전시스템을 통해 WoW 던전 시스템을 쉽게 이해하고, 상위 컨텐츠 진입에 필요한 아이템을 빠르게 획득하면서 WoW 상위 유저로 거듭 날 수 있는 통로가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 무작위 던전시스템을 두고 WoW 역사상 최고로 훌륭한 시스템이라고 극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아무리 '무작위 던전시스템'이라고 해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신규 유저 유치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간의 갈등이 무작위 던전 시스템에도 존재하는 것. 사실, 상위 유저들은 '토큰'을 빠른 시간 내에 획득하는 것이 우선 목표기 때문에, 같이 플레이하는 유저가 신규 유저인지 기존 유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 파티원 중에 한명이라도 영웅급 던전을 플레이할 만한 기본 장비, 실력, 개념, 공략 숙지가 구비되지 않았을 경우, 또한 그 파티원이 탱커 혹은 힐러 역할을 맡게 되어 평소에는 15분에 돌던 던전이 몇 번을 전멸하고 1시간 이상씩을 해야 하는, 일명 헬팟으로 돌변한다면 그때부터 해당 유저를 비난하게 되며, 신규 유저들은 신규 유저대로 상위 유저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원래 영웅급 던전을 플레이하기 위한 스펙 보다 더 높은 스펙을 요한다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논쟁은 게임 속에서 끝나지 않고, 게시판에서까지 이어지는데 WoW 인벤에 올라간 관련기사에만 댓글이 200개를 훌쩍 넘을 정도다. 이름 그대로 '무작위'로 파티가 구성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아래 링크의 기사를 읽어본다면 그 갈등의 정도가 무심코 지나칠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관련기사] 녹파템은 영던 오지 마? 영던 스펙 논란을 되짚어 보다





▲ 와우인벤 최근 논란중인 이야기 게시판을 뒤덮은 논란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갈등들이 결코 무작위 던전 시스템의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할만 한 수준은 아니다. 무작위 던전으로 인해 주어지는 보상은 신규 유저들은 물론, 기존 유저들에게도 큰 만족감을 주었으며, 특히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게임 내 경제 활동까지 가세하면서 WoW는 지금 때 아닌 르레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서버를 열어봐도, 대규모 이벤트를 진행해봐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신규 유저 유치에 실패했다면...

퀘스트와 던전 플레이가 주가 되는 게임 혹은 공성과 사냥이 주가 되는 게임, 모든 게임이 신규 유저 유치를 위해서 똑같은 방법을 택할 수는 없겠지만, 유저들의 플레이 패턴을 분석한 후 적절한 보상과 동기부여를 주는 게임 내 시스템을 통해 신규 유저와 기존 유저의 상생을 추구한 완미세계와 WoW의 사례를 한번 벤치마킹 해보는 것은 어떨지.

화려한 상품으로 도배한 몇 번의 이벤트 보다 분명 가치있는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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