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린 세상의 교과서, '매드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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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게임'이라는 플랫폼에 따른 장르 구분은 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고급 프로그램을 돌리기엔 어려운 환경 탓에 비교적 간단한 게임이나 텍스트 베이스의 게임들이 주를 이루긴 했지만, 어쨌거나 설치 없이 웹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게임들은 '웹'이라는 이름의 플랫폼 기반 장르로 구분되긴 했다.

물론, 구분이 되었다 뿐이지 게이머들 사이에서 '웹'은 그렇게 주목받는 플랫폼은 아니다. 정말 드물게 '부족전쟁'이나 '드라켄상'처럼 높은 수준의 게임이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웹 게임들은 잘 해봐야 캐주얼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언제부턴가 '웹 게임'은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기기 어려운 환경에서 시간 때우는 용도로나 플레이할법한 '스낵 게임'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HTML5'라는 마크업 언어 쓰일 때쯤, 이 '웹 게임'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이전엔 엄두도 못 내던 로직과 시스템을 얹어 이전과 격이 다른 '게임다움'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얻었고, 몇몇 실험작들이 HTML5위에 얹혀 대중 앞에 선보여지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묵은 '웹 게임'만의 캐주얼한 냄새를 지워내기엔 존재감이 부족했다. 일반적인 게임에 비해 이들이 내세울 만한 건 '무설치'라는 세 글자 뿐이었기 때문이다.

잔디소프트가 개발 중인 '매드월드'도 일단은 이 '무설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약간은 아쉽다. HTML5로 구동된다는 것, 덕분에 설치 없이 간단히 회원 가입만 하면 바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굉장한 이점이지만 이 너무나 강력한 차별화 요소 때문에 게임 본연의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매드월드'의 가치는 무설치에 있는 것도, HTML5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클라이언트 게임으로 선보였어도 문제 없이 주목받을만한 매력이 충분한 게임이다. 오늘의 체험기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다. '매드월드'라는 게임에 있어 'HTML5'와 '웹'이라는 플랫폼은 말 그대로 플랫폼의 구분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게임 본연의 매력이 어떤 게임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잘 다듬어진 고전적 매력의 2D MMORPG

먼저, 게임으로서 '매드월드'의 시스템은 정석적인 2D MMORPG를 따른다. 무기의 종류에 따른 스킬이 있고, 레벨업을 하면 스탯을 배분해 캐릭터의 육성 방향을 지정할 수 있으며, 채집과 요리를 통해 재료를 얻고 가공할 수 있다.

클래스 구분은 전사, 사냥꾼, 원소술사 세 가지이지만, 게임 내에서는 딱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무기를 드냐에 따라 클래스가 나뉘는 형태이며, 스탯과 잠재력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벽한 전사가 될 수도 있고, 마법과 근접 전투 기술을 섞어 쓰는 형태가 될 수도 있으며, 전혀 다른 형태의 캐릭터로 키워낼 수도 있다.



▲ POE식 노드 시스템 덕에 육성 방식은 퍽 자유롭다

전투는 핵앤슬래시 액션에 가까운 느낌. MMORPG답게 동기화가 어려운 턴제가 아닌 실시간 전투로 이뤄져 있으며, 파티에 해당하는 '패거리'를 꾸려 다른 이들과 함께 세계를 탐험하거나 같은 던전을 반복 파밍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웹 게임'이기에 간소화된 부분이나, 자동화되는 부분, 그냥 은근슬쩍 뭉개고 지나가는 부분은 없다. 주력 스킬의 추가 효과 적용이나 스탯의 분배, 장비의 비교나 전투 시 컨트롤에 이르기까지, 3D MMORPG가 대세가 되기 전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을 지배하던 2D MMORPG의 정석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을 띄고 있다. 신경써야 할 것도, 챙길 것도 많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플레이 스타일 정립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 핵앤슬래시에 가까운 게임 감각

'게임'으로서의 기능적 부분에 대해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매드월드'는 현재까지 라이브서비스중인 2D MMORPG들과 비교해 전혀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하다. 거대한 보스, PVP, 퀘스트와 전투, 맵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이 부분은 아직 조절이 덜 됐구나'싶은 부분은 있을지언정 '이 부분은 아직 덜 만들었구나'싶은 부분은 없다.




▲ 거대보스 레이드까지 있을 건 다 있는 게임

더불어 2년 전에 진행했던 테스트에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들도 상당 부분 고쳐졌다. 게임의 전체적인 템포가 빨라져 답답함을 느끼는 구간도 적고, 캐릭터에 비해 너무 강한 적들의 공격력 밸런스도 조절되어 이제 십수마리의 몬스터를 상대로도 적당한 컨트롤만 더해지면 큰 문제 없이 시원하게 썰어버릴 수 있다.



▲ QTE를 활용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게이머만 알 수 있는 '디스토피아'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설치 없이 저사양 PC에서도 실행 가능한 웹 게임인데다가, 클라이언트 기반의 게임들과 비교해도 모자람 없이 잘 만든 2D MMORPG가 매드월드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언급하면, 매드월드라는 게임의 절반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셈이다. '그럭저럭 잘 만든 게임'인 매드월드를 한번쯤은 꼭 해볼 만한 게임으로 바꿔주는 요소가 이제부터 설명할 '세계의 컨셉과 분위기의 구현'이다.

흔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구분되는 디스토피안 세팅의 게임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큰 인기를 끌어 왔다. 핵전쟁, 좀비 바이러스, 전염병, 외계인의 침공과 자연 재해에 이르기까지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일단 망했거나, 망하는 중이거나, 곧 망할 것 같은 이 세계관들은 늘 미디어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는 현실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끔찍한 만행이나 그로 인한 결과물들이 손쉽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 말 그대로 돌아버린 세계

'매드월드'는 악마가 지배하는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문명은 이미 망해버렸고, 악마들이 득세한 세계 속에서 인간들은 하루하루를 그저 연명하고 있다. 당연히, 게임 내에서는 '악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아비규환의 광경이 마치 일상처럼 표현된다.

쓰레기처럼 쌓인 시체더미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주인공이 처음 본 광경은 사람의 목을 톱질하듯 썰어대는 처형장의 풍경이고,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첫 야영지는 어린 아이의 시체를 제물로 바쳐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괴물 구덩이에 버려 먹을 입을 줄이고, 떠돌이들은 부패로 부풀어 오른 시체의 배를 갈라 구더기 유충을 주워 먹는다.



▲ 구더기 유충 때문에 노인이 다른 노인을 살해하는 일도 일상의 일부일 뿐이다

게임은 이 미쳐버린 세계의 모습을 필터 없이 보여주면서도, 끔찍함을 객관화할 뿐, 이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감상을 제시하진 않는다. NPC들은 늘 있던 일이니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남을 돕는 이를 오히려 수상쩍게 쳐다보며, 방금 전까지 죽은 쥐의 시체를 파헤치던 노인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곤 한다.

게임 내 어느 어떤 인물도 '이 세상은 미쳤다'라거나,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성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조차도 "이렇게 사느니 그냥 수집품(제물)이 되는 게 나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이며, 게임 내에서 정상적인(현대인 기준으로) 생각이 드러나는 건 오로지 주인공의 독백 뿐이다.



▲ 아트 스타일 또한 비범하기 짝이 없다

매드월드가 다른 디스토피안 게임과 비교해 차별화되는 점이 이 '절제력'이다. 게임 이름은 '매드월드'이지만, 게임 내 어떤 이도 세상이 미쳐버렸다고 말하진 않는다. 게임 속 세계가 '미쳤다'라고 할 수 있는 건 게임을 하는 게이머와 세계를 게임으로 인식하는 우리, 그리고 게이머가 이입하는 캐릭터인 주인공 뿐이며, 그 외의 인물과 세계 전체를 철저히 타자화해 게이머로 하여금 미쳐버린 세상 속에 빨려들어간 정상인의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디스토피안 세팅 게임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매드월드는 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몇몇 게임의 경우, 디스토피아 치곤 너무 쿨한 주인공이나, 장난스러운 인물, 세계관과 맞지 않는 화려한 옷차림 등으로 몰입을 해치곤 한다.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좀비의 머리를 날리며 농담을 한다거나, 시답잖은 유쾌함을 뽐내는 캐릭터도 꼭 하나 정돈 등장하기 마련이다.



▲ 등장 인물들은 본인의 세계가 디스토피아라는 자각이 없다

매드월드는 웃음의 결이 다르다. 매드월드의 인물들도 웃음이 있다. 비교적 순수한 어린아이의 수줍은 웃음처럼 극히 드물게 정상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다 버린 할아버지가 잘 처리되었음에 만족하는 웃음, 죽은 쥐 시체를 발견하고 내뱉는 탐욕의 웃음, 곧 저지를 성추행을 상상하며 짓는 비틀린 웃음, 그리고 이성을 잃고 상대를 때려죽인 후 정신을 놓아버린 채 흘리는 실소 뿐이다.



▲ 게임에 몇 없는 참된 웃음



충분히 경험할 가치가 있는 비범함

'매드월드'라는 게임이 이렇다. '정석적인 고전 2D MMORPG'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 평범하다면 평범한 정의에 컨셉과 세계관, 아트 스타일, 그리고 게임 내 표현을 통한 비범함을 더했다.




'RPG'의 소양인 서사 또한 훌륭하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꿈도 희망도 없는 막장 스토리이긴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까?'싶은 격이 다른 악의가 그 자체로 반전이 되어 몰입감을 선사하며,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서사의 흐름도 충분히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기억을 죄다 잃고 시체더미에서 깨어난다는 설정, 그리고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낸다는 서사 흐름은 마치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를 생각나게 하면서도 이를 특유의 세계관과 잘 융합해 어색함 없이 풀어냈다.



▲ 잃은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이 주된 스토리 라인

망설일 필요 없이 게임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장점. 회원가입까지 1분도 걸리지 않고, 게임을 실행하는 건 그보다 더 빠르게 가능하기 때문에 해볼 생각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게임을 실행해볼 수 있다.(매드월드는 10월 31일까지 베타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그리고, 게임을 실행해 보면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볼륨과 완성도, 독특한 시스템을 느끼기 전에 게임의 분위기와 세계관만으로도 게이머에게 어필할 만한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요소가 얼핏 평범해질 수 있는 게임을 비범한 무언가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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