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게임즈, 반지하에서 하늘까지

게임뉴스 | 서동용 기자 | 댓글: 2개 |



  • 주제: 로스쿨 때려치고 인디게임 만들기
  • 강연자 : 이유원 - 반지하게임즈 / 대표
  • 발표분야 : 기획, 개발
  • 강연시간 : 2021.11.18(목) 15:00 ~ 15:50
  • 강연 요약 : 초등학생 플래시 게임 개발자, 로스쿨 상위 0.1%, 반지하에서 반지하 게임즈를 만들다



  • ■ 초등학교 5학년 - 플래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다




    반지하 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는 사회 초년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지만, 실제론 초등학교 4학년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한 베테랑이다. 2000년대는 어디서든 플래시 게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유원 대표는 엄청나게 많은 플래시 게임들 속에서 인상적인 게임을 여럿 만들어낸 플래시 영재였다. 그리고 이 소년은 커서 법조인을 선택하는 것 대신 행복한 게임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저는 1995년에 태어나서 일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께서 부업으로 PC방을 운영하셨는데, 항상 제가 가서 게임을 하는 형들 뒤에서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마 그때부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는 게임 자체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에 유행한 몇 개의 사이트에는 '허무 개그' 감성의 플래시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주로 올라왔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창작한다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지툰'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했었습니다만, 색깔도, 음악도, 버튼도 넣을 수가 없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렇게 플래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코드를 복사하고 붙여 넣기 하며 버튼을 만들고, 변수를 만들었습니다."

    "제 첫 작품인 '물속 탈출'이 탄생했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방 안에서 올바른 순서로 버튼을 눌러 정답을 찾아낸다는 간단한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희열과 뿌듯함, 게임을 탄생시켰다는 희열과 뿌듯함, 다른 사람들이 내 게임을 재밌게 플레이했다는 피드백을 받는 데서 따라오는 만족감까지. 저는 원래 초등학생 때도 게임을 금방 질려 하는 편이었는데, 이런 즐거움은 그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 고등학생 - 기숙사 안에서 게임을 만들다




    "자신감은 얻은 저는 정말 많은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플래시는 정말 매력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언어였습니다. 당시에 이런 자작 플래시 게임을 만드는 사람끼리 서로 새로운 코드를 공유하고, 기획을 고민하고, 피드백을 나누던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그 어떤 게임 개발자 커리어에 있어서도 굉장히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초등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기숙사 고등학교였습니다. 인터넷이 없었죠.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서비스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불만 역시 가득했습니다. 저는 플래시를 다시 켰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친구들 이름을 넣어서요. 학교에서 큰 유행이 됐고, 축제에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어요. 다른 게임도 정말 많이 만들었습니다. 3년 동안 제가 다닌 게 국제고인지, 게임마이스터고인지 모를 정도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마친 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는 행정고시나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게임이 제 진로나 직장이 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취미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팀 선비라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보드게임을 엄청나게 많이 했습니다. 정말 많이 놀았어요. 대학교 3학년 때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유니티 게임들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었어요. 플래시 감성이 살아있었죠. 나도 코딩 배울걸, 나도 게임 잘 만들 수 있는데 같은 후회를 느꼈습니다."



    ■ 대학생 - 로스쿨 상위 0.1%, 반지하 게임즈를 만들다




    "그때, 제 고등학교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반지하 게임즈의 백승민 대표와 정윤지 대표입니다. 두 사람 모두 게임 개발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게임 기획자였습니다. 우리는 반지하 게임즈를 만들었어요. 반지하 감성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긴 회사 이름입니다."

    "사무실이 없었어요. 카페에서 개발 작업을 계속하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복병은 개발 실력이었습니다. 제가 플래시로 만드는 것보다 구현 속도가 느린 것은 당연하다 치더라도, 결과물조차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저희 첫 작품인 '허언증 소개팅'도 어설픈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음 작품 문샷은 폭삭 망했습니다. BM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료 앱으로 만들었는데 망했어요. 이때부터 반지하 게임즈의 암흑기가 시작됐습니다. 마찰이나 갈등이 생긴 건 아닌데, 각자 진로 때문에 바빴습니다. 우리는 반지하 게임즈가 진지한 직업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법학적성시험(LEET)을 쳤는데 대박을 쳤어요. 상위 0.1%의 점수를 받았어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로스쿨에 갈까. 게임 개발을 할까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기점이 될 게임을 개발했어요. 중고로운 평화나라가 엄청나게 성공했습니다. 갑자기 스트리머들에게 유행하면서 3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습니다. 스무 세 살이 벌기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



    ■ 사회 초년생 - 반지하 게임즈 대표로 세상에 나오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있는데, 유니티 애즈를 확인해보니 200만 원이 생겨 있더라고요. 놀기만 했는데 200만 원을 번 거에요. 그날 저녁 어머니께 게임을 만들어서 1억을 벌었다고 말씀드리니 조심스럽게 200만 원만 빌릴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예전에 동생에게 빌렸던 200만원이 마음의 빚이 되었던 것입니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웃고 떠들면서 번 돈이 200만 원일 때, 누군가에게는 그게 몇 년간의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얼마는 버는 것보다 제가 행복한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로스쿨을 때려치웠다는 자극적인 강연 제목에 이끌려, 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보러 오셨겠지만, 사실 제가 내린 결정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의 벽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쉬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때려치울 게 있다면 때려치고, 순수한 꿈과 열정을 좇아 쉬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