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명'의 아버지, 시드 마이어(Sidney K. Meier)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2개 |



아마 게이머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들일 거다. '존 카맥', '리처드 개리엇', '윌 라이트', '미야모토 시게루'. '피터 몰리뉴'와 '브라이언 파고', '토드 하워드'까지. 게임에 관심없는 이들은 전혀 모를 이름들이지만, 진성 게이머인 내 머릿속 위대한 인물들 리스트에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외에도 조금은 생소한 외국인들이 몇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인물이 바로 '시드 마이어'다. 다른 개발자들도 다 멋진 게임을 만들었지만, 게임 이름의 앞에 본인의 이름을 박아넣는 패기는 그야말로 감탄밖에 안 나온다. 이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인가? 하지만, 참 인연이 닿질 않았다. 다른 전설들은 어찌어찌 만나왔지만, 시드 마이어는 참 만날 일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평생 만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참 뜬금없이 느껴졌다. 내가 시드 마이어를 본다니. 비록 온라인 화상 인터뷰이지만, 올해로 30대의 중앙에 들어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게임을 만들어왔고, '문명'이라는 전설적인 프렌차이즈를 일궈낸 그 게임 개발자와 눈을 마주칠 수 있다니. 와 이게 무슨 일이람?



▲ 시드 마이어(Sidney K. Meier)


Q. 처음 '문명' 시리즈를 만들었을 때, 이 시리즈가 30주년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했었나요? 나아가, 30년 동안 프렌차이즈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 처음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에서 문명 시리즈의 개발을 시작했을 때, 저희 팀의 인원은 겨우 4~5명 정도였어요. 당시 마이크로프로즈에서는 '탑건(Top Gun)'이라는 게임의 개발에 전념하고 있을 때였기에,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받은 채 사무실 구석에서 개발을 시작했죠.

게임이 출시된 이후엔 예상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단단한 프렌차이즈가 되었지만, 솔직히 이 게임이 30년이나 인기를 끌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 문명 시리즈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플레이어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게이머는 자신의 선택을 따라 작은 문명의 지도자가 될 수도, 광대한 문명의 왕이 될 수도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의 결과와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이 아마 문명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Q. 33년 전 GDC에서, 당신은 게임을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고, 게임 시장과 개발 환경도 이에 따라 큰 폭으로 변화했는데, 이 생각은 변함이 없나요?

- 30년 전 말했던 대로, 저는 여전히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으로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30년 간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단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그래픽부터, 게임 개발의 근간 기술 모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했죠. 이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 경험'이고, 게이머 개개인이 일관되지 않고 각기 다른 저마다의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선택'이라는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여전히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정의가 그대로인 이유죠.



▲ 비폭력주의와 Be폭력주의를 나누는 건 게이머의 선택


Q. 문명 시리즈도 이제 다음 작품을 논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간 시리즈마다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게임인 만큼 다음 작품을 만든다면, '인류사'라는 범주 안에서 꼭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혹은 꼭 문명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만들어보고싶은 게임이 있나요?

- 게임 시스템을 더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무언가와 즐길거리를 넣을 수 있을지 게임 개발자로서 계속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저는 게임을 개발할 때 1/3 법칙을 적용합니다. 게임의 2/3은 게임의 코어에 해당하는 핵심 가치를 개선하거나 조절해 유지하고, 나머지 1/3은 완전히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는 거죠. 인류사는 매우 길고, 제대로 된 기록이 시작된 후로는 6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매우 많습니다. 지금껏 다루지 않은 과거를 조명할 수도 있고, 혹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말할 수도 있죠.

새로운 문명이나 지도자를 다룰 수도 있고요. 이 부분에서는 보다 다양성을 고려하기 위해 어떠한 지도자와 문명의 조각들이 한 민족과 국가를 대표할 수 있을지 매우 유심히 살피곤 합니다.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이라면, 꼭 한번은 '공룡'에 대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전에도 여러번 생각은 해 봤지만, 제 생각처럼 공룡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게임 기획을 짤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공룡'을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참고: 시드 마이어는 2001년, '다이노플래닛'과 '다이노크래프트'라는 공룡 소재 게임 두 종을 발표했으나 출시로 이어지진 못했다.)


Q. 지난 문명6에서는 '프론티어 패스'라는 이름으로 주기적인 콘텐츠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이런 구독형 DLC 패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이 늘 새롭게 유지되고, 기존 플레이어들이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고 즐길거리가 더해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죠. 긴 텀으로 큰 규모의 업데이트가 이뤄지는것 보단 작게나마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더하는 것이 종종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더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게임 개발팀의 구조 및 규모 변경에 맞서 콘텐츠의 제작 과정을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요.





Q. 시드 마이어에게 있어 게임이란 무엇인가요?

- 뭐 여러분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웃음) 근본적으로, 게임은 여유 시간이 있을 때, 몰입해서 머리를 쓰고 싶을 때 하고 싶고, 빠져나올때 행복함이 남는다면 그게 게임 아닐까요?


Q. 문명 시리즈는 이미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습니다. 훗날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게이머들에게 '문명'이라는 게임이 어떤 게임으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 파이락시스 게임즈(Piraxis Games)는 볼티모어에서 자체적으로 컨퍼런스를 열고 그간의 게임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를 갖곤 합니다. 그리고 전 그 자리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문명을 플레이하며 게임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죠.

문명 시리즈가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마 그 장면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은 가까우면서도 때론 먼 관계 가족이라는 유대로 묶여 있지만, 서로 공감대를 만들기 어려운 부분도 많으니까요. 전 세계의 모든 게이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게임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죠.

저는 문명이라는 게임이 연결 고리가 되길 바랍니다.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게임에서 보여지는 면모들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Q. 문명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게임들을 개발해오셨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무엇인가요?

- 정말 많은 게임의 개발에 참여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이라면 역시 문명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참 작은 규모의 개발팀으로 시작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했죠. 기술, 군사, 외교의 모든 면을 짜내야 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점차 게임의 모습으로, 나아가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었죠.

하지만, 첫 문명이 제게 최고의 작품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기억에 남을 뿐이죠. 제겐 수많은 게임들이 존재하고, 이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자녀 중에도 누군가는 더 똑똑하고, 누군가는 더 튼튼하듯 모두 각기 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을 뿐이죠.



▲ '문명' 시리즈의 시작, 화려함은 없지만 지금 해도 재미는 있다.


Q. 한국에는 굉장히 열정적인 문명 팬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이니 여쭤보는 겁니다만, 혹시나 한국의 역사나 지도자 중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말씀주실 수 있나요?

- 먼저, 한국의 팬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팬분들에게 감사한 일이지만요. 개발자로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다루다 보면 가끔 바깥 세계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내 주기에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저와 같은 게임 개발자는 게임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들수 있을지에 대한 단초를 얻기도 합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커뮤니티에서 수집된 피드백들도 살피다 보면, '문명'이라는 게임이 이렇게 전 세계를 묶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여기서 또 한번 영감을 얻곤 하죠.

작업 과정 상, 그리고 직업 상 여러 나라의 문명을 다루는 입장에서 특별히 어느 한 문명이나 한 민족의 역사만을 중히 여기기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도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명이 타 문명과 비교해 흥미로운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언제나 '문명'이라는 게임 시리즈의 한 축을 이루는 요소가 될 것이란 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웃는 모습이 참 아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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