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타2 가격논란, 69,000원 과연 적절한가?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92개 |
블리자드에게 결코 자비란 없다.


스타크래프트2 베타테스트를 시작할 때도 소리소문 없이 새벽에 발표해서 온 매체 비상 걸리게 하더니, 이번 패키지 가격발표 때도 마찬가지다.


첫 시작은 북미에서 먼저 터졌다. 총 3부작으로 계획되어 있는 '스타크래프트2 트릴로지'의 첫 번째 패키지인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의 북미 가격이 공개된 것. 일반판은 59.99달러, 한정판은 99.99달러. 사실 한정판이야 그 어떤 구성품이 들어가는지, 그 구성품 각각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니 넘어가더라도, 일반판 가격 59.99달러는 역시나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겼다.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이 소식을 듣고 날림기사를 작성하던 본 기자, 블리자드 코리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제목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스타크래프트 II: 자유의 날개 패키지 가격 발표".


"아놔" 담배만 물면 버스가 오고, 세차만 하면 비가 오는 상황도 아니고, 애써 번역해 가며 기사 다 썼는데 잘 정리된 보도자료가 오는 삽질의 아스트랄함은 좀처럼 견디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연마해온 필살의 속독법으로 메일을 단숨에 읽어가며 추가되는 정보는 없나 검색하던 중, 갑자기 센서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블리자드는 스타2의 패키지가 한국에서 69,000원에 판매될 것이라 밝혔다."


헉? 이것은...





▲ 국내 출시가 69,000원으로 결정된 스타크래프트2





어느 정도 예상됐던 논란


최대한 팩트만 전달하려고 노력한 스타2 가격발표 단신 뉴스가 댓글이 30개를 돌파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나'라는 생각을 했다. 비디오 패키지 게임을 주로 다루는 커뮤니티 게시판을 둘러봐도 69,000원이라는 가격에 대한 찬반 토론은 끊이질 않는다. 이는 블리자드가 운영하는 스타2 공식포럼에 가봐도 마찬가지다.


어느 분야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현지 판매 가격은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게 보통이다. 해당 국가의 GDP(국내총생산)와 국민소득을 따져보는 것은 물론, 해당 산업의 시장 규모를 파악하고, 다양한 출시가격을 서로 비교해보면서 해당 가격으로 출시했을 때 얼마나 소비자들이 구매 의사를 보일 건지에 대한 기대값과 그로부터 예상되는 전체 수익을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여기에 국민성으로 대표되는 소비자들의 특수성도 가격 정책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때도 있다. 스타2 관련해서 게시판을 막 뒤져보니 회식날 노래 부르다가 사장이 콜한 것을 직원이 맞받아 쳐서 가격이 결정됐다고 주장하는 용자들도 보이던데 블리자드가 다단계로 대표되는 막가파 회사가 아닌 이상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 스타크래프트2 공식 토론장에서 들이닥친 가격 논란




아무튼, 다양한 요소로 인해 결정되는 각 국가별 현지 가격에 대한 차이는 사실 현재의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마치 상식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다. 왜 루이비통 핸드백 가격이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냐며, 당장 프랑스 본사 앞에 찾아가 1인 시위할 기세로 덤벼들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근데, 왜 유독 스타2 패키지 가격은 국내 유저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도 뜨거운 논란을 여기저기에서 생산해내고 있을까. 그것은 블리자드가 이번에 발표한 스타2의 국내 가격이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일반적으로 국내에 유통되는 비디오 게임 패키지 가격의 상식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패키지 No, 월정액 Only'의 국내와 '패키지 Yes + 월정액'의 북미, 서로 서비스 방법이 현저하게 달라서 절대 비교를 하기가 애매했었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는 달리 스타2은 PC방을 제외하면 판매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완전 동일하기 때문에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북미 가격부터 파헤쳐 보자.


매달 월급의 상당 부분을 패키지 구입 가격에 쏟아 붓고 있는 본 기자가 지금껏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면, 현재 북미에서 유통되는 PC 게임의 패키지 가격은 대부분 49.99달러로 결정되는 것이 맞다. 49.99달러를 현재 환율로 계산해보면 한화 5만 6천원 가량이 된다. 물론, 인디 게임이나 혹은 확장팩들은 저 가격보다 훨씬 더 싸게 출시되기도 하지만 메이저급 게임사에 출시되는 대작게임들은 49.99달러가 보통이다. 여기에 콘솔용, 즉 PS3이나 XBOX같은 경우에는 제작 단가의 차이 때문인지 10달러를 더 붙여 59.99달러가 된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2는 PC 패키지인데도 이례적으로 북미 출시가격이 59.99달러로 결정된 것이다. 콘솔판도 아니고, 한정판도 아니고 일반판이 59.99달러다.


물론, 스타크래프트2 이전에도 조짐은 있었다. 작년 말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초기대작 FPS 콜오브듀티4: 모던워페어2의 PC판이 이례적으로 콘솔판과 동일한 59.99 달러로 출시됐다. 워낙 전작이 흥행에 성공했었고, 이번에도 그에 걸맞은 게임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뜬금없이 10달러나 상승한 가격은 북미 유저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다. 충분히 그 가격을 지불한 가치가 있다는 의견과 역시나 돈밖에 모르는 액티비전이라는 의견으로 크게 갈리기도 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살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던 유저들이 모던워페어2 PC판의 멀티플레이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냥 포기해버리거나, 콘솔판으로 전향해버린 것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결국, 모던워페어2 PC판의 판매량은 다른 플랫폼과 비교해서 전체 8%에 머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PC 게임에서 이례적으로 59.99달러를 제시했던 용자, 모던워페어2




모던워페어2에 이어 또 한번 59.99달러를 때린 게임이 있었으니, 정품 구입자를 토 나오게 하는 DRM으로 말이 많았던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2다. 전작이 워낙 잘 나갔고 이번 차기작도 기대작으로 꼽히니 그에 상응하는 값을 받겠다는 모던워페어2와 비슷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스타크래프트2가 가세, 작년 말부터 PC 게임으로 59.99달러로 북미 출시한 대작 게임은 모던워페어2, 어쌔신 크리드2를 이어 스타크래프트2가 세 번째로 등극한 것이다..


물론, 갈수록 불법복제 때문에 어려워지는 상황을 겪고 있는 PC 게임 시장에서 대규모 제작비가투입 되는 대작의 경우 현재의 가격, 즉 49.99달러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어렵고, 출시하는 것 자체가 손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쪽 분야로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던 EA조차도 아직 자사가 출시하는 대작 PC게임에서 일반판에 한해서는 49.99라는 룰을 반드시 지키고 있다는 부분, 최근 59.99달러를 제시한 3개의 게임 중 2개가 '액티비전-블리자드'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특히 액티비전은 더 많은 수익 때문에 모던워페어2의 개발사인 인피니티워드 조차도 해체하려는 만행을 저질러 비난을 샀던 것을 함께 생각해 본다면, 북미 유저들이 59.99달러에 좋은 시선만을 보낼 수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 공포의 DRM으로 더 유명한 또 다른 59.99달러 PC 게임, 어쌔신 크리드2





다시, 태평양을 건너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북미 PC 패키지의 기준 가격인 49.99달러는 환율로 따지면 한화 5만 6천원 가량이지만 보통 국내에 유통될 때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인, 3만 후반에서 4만 후반 대 가격으로 판매된다.


EA가 최근 출시한 레프트4데드와 매스이펙트2 일반판도 마찬가지. 북미가격은 49.99달러이지만, 한국에서는 EA코리아를 통해 3만 9천원에 정식 출시되었다. 앞서 말한 국가 GDP, 소득 수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서 현지 가격을 결정할 때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북미에서 64.99달러(한화 약 7만 1천원)로 출시된 드래곤 에이지 PC 한정판 패키지도 EA는 54,000원에 출시했다.





▲ 한국에서 '개념가 EA'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사진은 디지털다운로드 가격이지만 패키지 가격도 별 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2와 같이 북미에서 59.99달러로 출시된 모던워페어2는 어떨까?

국내 유통을 맡았던 WBA 인터랙티브(구 액티비전 코리아)는 모던워페어2를 5만 2천원으로 국내출시했다. 원래 환율로 따지면 59.99달러는 한화 6만 6천원에 육박하지만 EA와 마찬가지로 국내 상황을 고려했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했다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며, 금번에 발표된 스타2의 국내 출시가인 6만 9천원과 비교해보면 무려 1만 7천원이라는 금전적 차이가 발생한다.


현재 국내 게이머들에게 일고 있는 논란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6만 9천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 자체뿐 아니라 기존 국내에 수입되어 유통되고 있던 타 게임들과 견주어 봐도 선뜻 이해되지 않은 가격에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6만 9천원이라는 가격은 59.99달러를 현재 환율로 계산한 6만 6천원보다도 3천원 더 비싸다. 스타2를 직수입 보따리상에서 유통하냐는 한 유저의 일갈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이번 스타2 가격 발표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기존에 출시된 다른 게임들과의 가격차이가 "현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동안 블리자드가 완벽한 현지화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그 만큼의 비용이 가격으로 일부 반영 되야 한다는 것. 사실, 한글 자막을 비롯해서 음성 연기까지 한글화되어 출시되는 게임도 드물다.


하지만, 최근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코리아에서 출시한 PS3 액션 대작 갓오브워3의 경우에도 자막부터 음성까지 한글화되어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59.99달러의 가격에 국내 5만 9천 8백 원에 정식 출시되었다. 스타2와 비교해보면 여기서도 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장르가 달라 그 비용을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오직 현지화 때문에 다른 게임들 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는 국내 심의료를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 자막, 음성 한글화 되어 출시된 PS3 갓오브워3
크레토스에게서 WoW 쓰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결론은 스타크래프트2의 현재 가격이 비싸다는 것!


각자 한 제품을 두고 느끼는 효용 가치는 다르기 때문에, 스타2의 현재 가격인 6만 9천원을 절대적으로 '비싸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국내 PC 및 비디오 패키지 유통 시장을 봤을 때 다른 유사한 게임과 수십 번 비교해 봐도 스타2는 단연코 최고로 비싼 제품이 틀림없다.


게다가 스타2는 총 3부작으로 이번에 출시되는 패키지에는 멀티플레이와 함께 테란 싱글 미션 30개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저그 미션 패키지, 프로토스 미션 패키지를 추가로 구입해야 하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일본산 몇몇 게임들을 제외하곤 북미, 유럽을 통틀어 최강이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1이 출시되었을 때의 가격이 3만원 가량 했었기 때문에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보면 6만 9천원은 너무나도 싼 가격이어서, 끝이 없는 자비로움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는 한 게이머(?)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역시나 스타2가 비싸다는 것은 사실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편을 나눠가며 스타2의 가격에 대해 '비싸다' 혹은 '싸다', 싸울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스타2 자체의 게임성과 스타2를 통해 블리자드가 제공할 서비스가 과연 블리자드가 자신만만하게 제시한 6만 9천원이라는 가격에 충분히 부응하는 가에 대해서다. 출시 가격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블리자드는 그 동안 유료 논란에 시달려 왔던 배틀넷 2.0을 무료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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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논리는 절대적이다. 가치에 맞지 않는 가격을 제시한 제품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건 블리자드가 아니라 블리자드 할아버지가 와도 마찬가지다. 지금 스타2의 가격 논란을 출시 시점 이후로 미뤄 두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블리자드 스케일급 허세인지 아닌지는 그때 가보면 누구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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