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게임법 위에 청보법? 고래 사이에 낀 게임산업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20개 |
  • 게임중독,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

    게임중독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게임산업이 산업보다는 '사회적 악'으로 취급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와중에 게임산업 스스로가 게임중독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렇잖아도 쏟아지는 규제의 칼날을 피해가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게임중독'이라는 단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알콜중독의 경우 의학적 지식에 기반하여 단계를 나누어서 구분하기도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를 게임중독으로 규정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몰입 등 다른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비록 위험성이 있고 정의가 불분명하지만,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은 분명 실존하는 현상입니다. 또 그만큼 게임에 몰입하고 빠져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게임 구매에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독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술입니다. 술로 인한 피해는 매우 많습니다. 날마다 대한민국에서는 술자리에서 수십, 수백건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사상자가 나기도 합니다. 또 음주운전으로 한해 수백명 이상이 죽어나가기도 하고, 알콜 중독으로 인한 건강의 문제까지 따지자면 술로 인한 폐해는 상상을 불허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의 판매를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술이라는 것이 가지는 효용성도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국가와 사회와 기업이 돈을 들여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이나 알콜 중독에 대한 캠페인을 꾸준히 펼쳐나가는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 홍보만큼 꾸준한 캠페인. 스크린샷은 한국 음주문화 연구센터. ]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TV 프로그램의 인기 만화에 열광하며, 중간에 TV 를 끌라치면 부모와 한판 싸움을 벌이거나 혼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것도 마찬가지로 중독이나 과몰입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5살인 제 아이만 해도 얼마전까지 파워레인저 시리즈에 빠져있다가 이제는 메탈베이 블레이드라는 팽이 싸움을 소재로 한 만화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트에 갈 때마다 메탈베이 블레이드의 팽이를 판매하는 장난감 코너에서 움직이려 하지를 않아 애를 먹곤 합니다. 팽이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며칠에 한번씩 겪는 일상사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렇듯 모든 여가 문화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중독시킬 만큼, 사람을 빠져들게 할만큼 재미와 매력이 없다면, 애초에 여가문화가 되지 못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 역시 중독성은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편입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는 것이 사회 법칙이고, 게임 역시 매우 유용한 여가문화라는 장점과 함께 중독으로 대표되는 부작용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그간 게임산업은 중독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산업의 규모가 크지 못했던 것, 또 신생 산업이라는 점도 있었고, 정책 방향이 항상 규제를 향해 있었기에 규제를 더욱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중독이라는 말 자체를 쓰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게임산업이 1조 매출을 바라보는 회사가 어느덧 3개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성장한만큼, 게임산업 스스로도 사회에 대한 책무를 수행할 때가 되긴 했습니다.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게임사들이 노력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중독으로 대표되는 부작용을 회피하는 한, 게임에 대한 고까운 사회적 시선을 불식시키는 일은 더욱 요원해질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광부에서 지난 12일 발표한 게임과몰입대책에 대해 과히 나쁜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주무부처라서 그런지 현실을 어느 정도라도 볼 줄은 알고, 또 이래저래 물밑으로 움직이면서 게임계의 대표 업체들과 사전에 협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 OK, 거기까지. 과몰입 대책은 적절한 타협?

    청소년 보호,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 해소 등을 이유로 무언가의 규제, 가시적 조치를 요구할 때 이를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게임 과몰입으로부터 청소년을 적절히 지도해야 한다는 것도 마땅히 반론하기 힘들고,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율 셧다운제, 피로도 시스템에 대해 문광부와 협의중'이라는 말은, 이번 대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몇몇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던 내용입니다.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근거로 게임산업 자체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 적절히 방어하고 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게임업계 스스로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대내외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 엉뚱한 정책과 규제들에 대해서 게임산업을 변호하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 게임사들은 미리부터 문광부측과 협의하면서 자체적으로 과몰입 방지대책, 셧다운제 등을 내부 검토하고 적용하기로 이미 방향을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뉴스에 나온 몇몇 사건들이 비록 시발점이 되긴 했으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게임산업 자체적인 행위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 문화체육관광부, 게임 과몰입 대책 발표 (2010.04.12)

    피로도 시스템의 경우, 게임 컨텐츠 소모 속도 등과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업계 스스로도 별다른 저항감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자체적으로 피로도 시스템을 적용한 게임들의 경우 게임 과몰입이 아닌 다른 이유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인증 강화는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계정도용방지와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라도 강력하게 실시를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계정거래를 금지하는 조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현금거래 전면금지도 논의되긴 했지만, 계정거래 금지로 가닥을 잡은 듯 합니다. 계정거래와 과몰입이 과연 연관성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기자는 부정적입니다. 뭐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계정거래가 과몰입의 원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자는 다른 측면에서 계정거래 금지조치를 환영합니다. 계정거래의 경우 개인정보보호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고, 계정도용과도 관련성이 높습니다. 게임머니나 아이템의 현금거래와 계정거래는, 비록 현금거래로 통칭되긴 하지만 문제의 성격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이유는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계정거래 금지조치는 찬성합니다.

    일부 게임들은 오래 전부터 타인의 계정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이동시킬 수 있는 캐시 아이템을 판매해왔습니다. 캐릭터 판매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문제를 제외하고 안전 문제로만 본다면, 계정간 캐릭터 이동이 좋습니다. 일부 게임들은 한 사람이 여러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을 경우, 동일 주민등록번호로 된 계정으로만 캐릭터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지만, 계정거래가 금지된 만큼 다른 주민등록번호로 된 계정간 캐릭터 이동도 슬슬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율적인 셧다운제도 비슷합니다. 성인들이야 어차피 모든 행위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기에 셧다운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 거의 대다수가 학교와 학원에 다니고 밤에 수면을 취하는 청소년의 패턴을 봤을 때, 자정~새벽 6시 사이에 청소년이 게임을 한다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PC방도 밤 10시가 되면 청소년을 내보내고 있고, 자정 넘어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TV 시청하도록 놔두는 부모도 거의 없을테니 그 시간대에 청소년 계정에 대한 셧다운제를 실시해도 그리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자유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막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짙게 남아있지만, 청소년 보호의 명분앞에서 버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 외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게임문화기금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돈이 제대로 쓰여질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시민단체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게임을 악으로 치부하는 모습만 주로 보여준 일부 시민단체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습니다.

    또, 자신이나 자녀의 게임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포털을 구축한다는 것도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포털이 해킹당하면 대한민국 게임 이용 현황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한꺼번에 털리는 셈이 될 뿐더러, 개개인의 게임 플레이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혹 볼수 있게 된다면 사생활 침해에 해당될 것입니다.

    대신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개인정보 관련 서비스, 즉 자신이 어느어느 사이트에 가입되어 있는지를 조회할 수 있는 신용평가정보 회사들의 서비스 정도의 차원이라면 이는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에 특화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 이미 서비스되고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과몰입 대책에 대한 기자의 평가는 딱 한줄입니다. '오케이, 거기까지!'

    과몰입 대책의 이면에는 '부작용 해소에 대해 나름 노력할거고 또 이만큼 양보했으니, 황당한 다른 규제를 내놓는 일은 하지 마세요'라는 게임산업의 요구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문화부와 정통부 대신 문광부와 여성가족부?

    문제는 게임과 같은 분야에 대해 잘 모르면서 '중독되기 때문에 나쁘다'라고 간단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을 추진할 때입니다.

    이번의 주인공은 문광부가 아니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입니다. 문광부의 과몰입대책과 관련된 내용을 청소년보호법의 법안으로 넣겠다는 것이 여성가족위원회의 입장입니다. 원래 보건복지부의 국회상임위였던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추진하던 내용으로 작년 11월에도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 반대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되면서 가족, 복지 관련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되었고, 그에 따라 청소년보호법 관련 업무가 여성가족부의 국회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로 이관된 것입니다.








    사회 경험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일을 할 때 창구단일화가 안되어 있으면 매우 불편합니다. A부서는 이 말하고 B부서는 저말하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중간에서 매우 괴롭습니다. 회사로 비유하자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두 명이 공동으로 회사 대표를 맡고 있을 때, 밑에서 실무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랄까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일이 눈에 뻔히 보이고, 엉뚱한 문제로 발목을 잡힐 일이 눈에 선히 보입니다. 잘 아는 사람이면 그나마 모르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고래면 상당히 머리가 아픕니다.

    과거에도 문화부와 정통부라는 두 정부부처로 인해 중간에서 IT 업계나 콘텐츠 업계가 괴로움을 겪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 문광부와 여성가족부라는 두개의 정부부처가 또 다시 위에 존재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문광부와 정통부는 관련성이라도 높았습니다.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내세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의 내용은 문광부의 과몰입대책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광부는 위의 내용을 반영하여 게임산업진흥법의 개정을 진행중입니다. 그런데, 동일하면서도 좀 더 강경한 내용으로 청소년보호법을 또 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국회 문광위에서는 여성가족위원회에 이미 2월에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제시 검토보고서'를 전달했습니다. 개정을 추진하는 각각의 조항이 가지고 있는 형평성의 문제나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한 뒤, 최종적으로 '게임법 개정으로 처리하는 게 적절하며,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은 중복규제일 뿐'이라는 결론을 담고 있었습니다. 또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담긴 처벌조항이 게임법 개정안의 처벌조항과 달라, 동일한 행위에 대해 2건의 법률이 서로 다른 처벌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강행할 태세입니다. 그래서 게임산업협회, 연예제작자협회, 영화제작가협회, 드라마제작사협회 등 콘텐츠 생산과 관련된 9개 단체의 모임인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문산연)이 성명을 내고 청소녀보호법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문산연은 성명서를 통해 '문화와 콘텐츠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전문성이 없는 규제는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면 게임법을, 영화나 방송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면 영화법, 방송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지,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하여 문화콘텐츠의 부작용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할 시도에 불과'하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 문산연,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우려 표명 (2010.04.15)

    뭐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 자체야 딱히 시비걸 이유는 없습니다. 내용을 보더라도 약간 손보면 문광부의 대책이나 게임법 개정 방향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업계가 해당 주무부처와 협의하여 일부는 해당 법률에 반영하고 일부는 자율규제로 가닥을 잡고 일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괜히 엉뚱한 곳에서 명분을 들고와서 규제만 가중시키는 상황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여성가족위원회의 발의대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만일 통과되면, 이제 게임산업은 문광부 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라는 2개의 주무부처를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관련 산업 전체가 청소년보호를 무기로 내세운 여성가족부의 규제를 받게 됩니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부작용이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회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부작용을 위해서라도 일정정도의 규제는 필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글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부처에 의해, 해당 분야의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수립한 이후, 해당 분야의 자율적인 조치와 함께 동반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다 안되면, 그때 끼어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여성가족위원회가 게임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맞습니다. 지금 끼어들면 될 일도 안됩니다.
  •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