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빗 없는 턴제 전술 게임 '케이프'

확률 요소를 없애는 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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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제 전술이라는 장르에서 엑스컴 시리즈가 끼친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엑스컴이라는 명칭 자체가 턴제 전술 장르를 상징하는 용어처럼 자리매김했을 정도이니 엑스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처럼 턴제 전술 장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엑스컴이지만, 현재 그 왕좌는 거의 비어있는 상태다. 지난 2020년 외전작인 키메라 스쿼드를 끝으로 이렇다 할 신작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작으로 마블과 협업해 '마블 미드나잇 선즈'를 출시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엑스컴의 위상에는 못 미쳤다.

그렇게 오래도록 방치됐던 왕좌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게임이 등장했다. 스핏파이어 인터랙티브의 신작 '케이프'가 그 주인공이다. '케이프'의 가장 큰 특징은 감나빗이라는 밈으로도 유명한 확률 요소와 엄폐를 전면 배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엑스컴 등장 이후 수많은 턴제 전술 게임들이 엑스컴이 정립한 문법을 착실히 따르는 한편, 약간의 변주를 가하는 데에서 그친 가운데 그 문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케이프'다.

과연, '케이프'가 신작 턴제 전술 장르에 목마른 유저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해당 리뷰는 개발사로부터 리뷰 코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게임명: 케이프
장르명: 턴제 전술
출시일: 2024. 5. 30
리뷰판: 리뷰용 빌드
개발사: 스핏파이어 인터랙티브
서비스: 데달릭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 PS4, PS5, Xbox, NS
플레이: PC


턴제 전술 장르에서 감나빗이 빠진다면?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턴제 전술 게임으로서 '케이프'의 가장 큰 특징은 확률 요소와 엄폐를 아예 빼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엑스컴이 정립한 턴제 전술 게임의 문법에서 탈피했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엑스컴을 기반으로 한 여타 턴제 전술 게임들을 보면 저마다 약간의 차별화를 꾀했을지언정 전투 자체는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가는 걸 볼 수 있다. 그리드 시스템을 빼고 처형 시스템을 통해 행동력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한 '기어스 택틱스'나 명중률을 삭제한 대신 방호 수치와 엄폐 정도에 따라 피해가 경감되는 공식을 도입한 '소녀전선2' 등이 대표적으로 정형화된 형태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엑스컴이 정립한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모습이다.



▲ 확률 요소와 엄폐가 없기에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케이프'는 달랐다. 엑스컴이 정립한 확률 요소와 엄폐와는 결별을 꾀했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유리하지도, 반대로 어떠한 엄폐물도 없는 전장 한복판에 있다고 해서 불리하지도 않다. 공격범위 내라면 100% 명중하고 적힌 대로 정직하게 대미지를 입는다.

처음에는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로 공격을 정직하게 주고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술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코앞에 있고 명중률이 70~80%인데도 빗나가서 스트레스를 주는 게 엑스컴이 정립한 엄폐를 기반으로 한 확률 요소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시스템이 오래도록 많은 게임에서 사랑받아 온 이유는 단순하다. 이것만큼 전술적인 즐거움을 안겨주는 요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잖은가. 반대로 엑스컴에서 엄폐나 고저차에 상관없이 100% 명중하고 정직하게 대미지를 입는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 유저는 항상 좁은 공간,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 싸운다



▲ 파세트와의 협력기를 잘 쓰면 적을 묶어둬서 턴을 넘길 수도 있다

이처럼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부분을 '케이프'는 캐릭터마다 턴 순서를 독립적으로 부여하는 한편, 다수의 적을 상대하도록 함으로써 옅어질 수도 있는 전술적인 요소를 보완했다. 이러한 방식의 가장 큰 변화로는 일점사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군과 적 턴이 명확히 구분되는 게임들의 경우 강적이라거나 목표한 적이 있다면 한 턴에 일점사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턴 순서가 독립적으로 부여된 '케이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무턱대고 일점사를 고집하기엔 여러모로 리스크가 크다.

그렇기에 '케이프'의 전투는 여타 턴제 전술 게임과 달리 묘수풀이와도 같은 흐름으로 진행된다. 자신의 턴일 때 일점사해서 착실하게 적의 수를 줄이는 여타 턴제 전술 게임과 달리 최대한 아군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면서 적들의 체력을 낮추다가 최적의 순간에 일망타진하는 식이다.



▲ 광역기를 쓰는 웨더베인을 잘만 쓰면 한방에 일망타진할 수도 있다

물론 한방에 처치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무엇보다 그러기 위해선 최적의 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케이프'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저마다 다양한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수정체를 만들어 적의 시야를 가리거나 반대로 수정체를 보호막처럼 쓰는 탱커 역할의 파세트, 순간이동 능력으로 전장을 누비는 리바운드, 전격과 폭풍 등 강력한 군중 제어기를 지닌 웨더베인 등으로 수적열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각각의 능력과 히어로들 간의 협력기 등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낙사 구간이 많은 챕터라면 팀에 웨더베인을 넣는 게 유리하다. 적을 끌어당기고 밀치는 웨더베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협력기로 웨더베인의 도움을 받아 적을 밀칠 수 있기 때문이다.



▲ 낙사 구간이 많다면 그야말로 웨더베인의 독무대다

이러한 '케이프'의 전투는 엑스컴 등의 턴제 전술 게임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인상과 신선함이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초반부에만 잠깐 신선하게 느껴졌을 뿐으로 익숙해지자 금세 지루하게 다가왔다. 가장 큰 문제는 확률 요소와 엄폐가 없기에 이렇다 할 변수 또한 없다는 점이었다. 변수가 없으니 전투 역시 대체로 생각한 대로 흘러갔고 그게 이어지자 가장 중요한 전투의 재미 역시 점점 떨어졌다.


다소 밋밋한 스토리, 단조로운 구성도 아쉬워




이러한 아쉬움은 전투만의 얘기가 아니다.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든가 게임 플레이, 전투에서의 재미를 다른 쪽에서 보완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프'는 이마저도 실패한 모습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앞서 언급한 전투 시스템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케이프'의 메인 스토리는 좋게 말하면 정석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밋밋하다. 빌런들이 승리한 미래, 초능력자들은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어 빌런들이 사냥하는 상황이고 그러던 중 20년 전 히어로와 빌런 간의 '대격돌'에서 살아남은, 이제는 노장으로 취급되는 전직 히어로 독트린이 젊은 초능력자들을 규합하고 도시를 되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마블이나 DC 코믹스에 관심이 있다면 흔히 봤을 법한 스토리다.

물론 정석적이라는 게 마냥 나쁘다는 의미인 건 아니다. 수많은 소년만화나 JRPG의 스토리가 정석적이라고 할지라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소비되는 건 그만한 흡입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익숙한 스토리로 감동을 주기 위해선 이를 맛깔나게 연출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케이프'는 이마저도 여러모로 밋밋하다. 스토리 전개에 필수적인 컷신부터 캐릭터들끼리 하는 간단한 대화에 이르기까지 무난한 수준에 머무른다.



▲ 스토리는 정석적이고 컷신 등의 연출은 여러모로 밋밋하다

게임의 전반적인 콘텐츠는 더 심각하다. '케이프'에서 전투를 제외한 콘텐츠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임무에 나서고 부가 목표 등을 달성해서 SP(스킬 포인트)를 얻고 임무를 끝낸 후 SP를 소비해서 캐릭터들의 스킬을 해금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게 전부다. 임무에 나서기 전 본부에서 할만한 어떠한 콘텐츠도 없다.

게임 설정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텅 빈 본부에서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들이 무기나 방어구를 연구하고 입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하물며 불특정 병사를 영입하고 육성하는 엑스컴과 달리 '케이프'는 캐릭터성이 명확한 만큼,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기에 영입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할 게 없어도 너무 없다는 건 여러모로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 처음에는 너무 허전해서 튜토리얼이나 버그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턴제 전술 게임이나 RPG가 괜히 거점 등 쉬는 타이밍을 만들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다. 장르나 게임에 따라 다르겠지만, 턴제 전술이나 RPG 등에서는 이러한 요소라도 없으면 쳇바퀴처럼 전투만 계속해서 진행하는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투 외적인 매니지먼트 요소를 넣는 건데 안타깝게도 '케이프'는 이 부분을 소홀히 한 모습이다.

'케이프'의 게임 플레이는 전투 - 본부 - 전투의 반복인데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야 할 본부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스킬을 올리는 것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요소로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캐릭터들 간에 대화가 해금되는 게 전부다. 문제는 스킬은 말할 것도 없고 대화가 해금되는 것 역시 단순한 대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면 파고들 만한 요소가 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해금된 대화 그냥 적당히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알고 보니 스킬 올리는 것 외에는 본부에서 할 게 없었을 뿐이었다

매니지먼트 요소라고 해서 무조건 장비를 연구하거나 병사를 영입할 필요도 없건만, 다양한 턴제 전술 게임들이 등장하고 저마다 거점 등 쉬는 타이밍에 즐길만한 다양한 콘텐츠는 넣는 가운데 본부라는 요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케이프'의 콘텐츠 구성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더해줬다.






정리하자면 '케이프'는 이상은 컸으나 현실은 냉혹하다는 게 뭔지 보여준 반면교사와도 같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엄폐를 기반으로 한 확률 요소를 배제하고 명확한 캐릭터성을 갖춘 것까지는 좋았으나 완성된 결과물은 기대한 만큼의 게임이 되지 못했다. 엑스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엑스컴이 정립한 문법에서 탈피한 게 되려 더욱 엑스컴을 비롯한 정통파 턴제 전술 게임을 떠올리게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다만, 최근 이렇다 할 신작 턴제 전술 게임이 없다는 건 '케이프'에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턴제 전술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경쟁작들과 비교하면 썩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우나, 신작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턴제 전술 게임의 문법을 정립한 엑스컴의 개발사인 파이락시스가 '마블 미드나잇 선즈' 이후로 이렇다 할 신작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등장한 신작 턴제 전술 게임이니만큼, 누군가에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게임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 팀업이 빚어내는 전술 플레이
  • 확률, 엄폐 배제로 인한 진입장벽 완화
  • 전투 중심의 단조로운 콘텐츠 구성
  • 밋밋한 연출, 게임 플레이, 그리고 전투
  • 엉성한 카툰풍의 2D 캐릭터 일러스트

리뷰 플랫폼: PC (리뷰용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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