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의 '게임 장르 구분', 최선인가?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17개 |



"폴아웃4 장르를 뭐라 해야 할까?"

게임 기자들이 모여있는 메신저에 화두를 던졌다. 분류는 '액션 RPG'이지만, 동시에 슈터이면서 어드벤쳐이고, 실시간이면서 턴제 느낌도 나고, 오픈월드면서 던전 크롤러같기도 하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든 기자들은 서로의 경험과 기준에 빗대가며 게임을 말했고, 결국 '어떤 한 장르라 특정하기 어렵다'라는 모호한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한 게임을 말할 때마다 이를 씹고 뜯으며 분석한 기자들은 나름의 감상평을 내놓는다. 어떤 시스템은 어디서 영감을 받은 것 같다느니, 이 부분은 과거 어떤 게임과 닮아 있다느니 하며 게임을 말하다 보면, 결국 결론은 엇비슷하다. 몇몇 게임은 비교적 속성을 특정하기 쉽지만, 상당히 많은 게임은 그 장르를 명확히 분류할 수가 없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게임을 닮았다'라는 뜻으로 시작된 '~~라이크'가 하위 장르로서 입지를 다진 것 또한, 그 게임의 속성을 전통적인 장르 구분으로는 정의하기 어렵기에 일어난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명백히, 과거의 장르 구분은 오늘날 어느 한 게임도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낡아버렸다.

이를 '고쳐야 할 문제'라 볼 수는 없다. 그저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지금은 '클래식'으로 분류되는 장르 구분 또한, 과거엔 당시 상황에 맞춰 제시된 용어였다. 1993년 둠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대부분의 1인칭 슈터는 별도의 장르 구분 없이 '둠 클론'이라는 용어로 칭해졌다. 4년이 지나 1997년이 되어서야, 이런 형태의 게임을 칭할 때 '둠 클론'이 아닌 'FPS'라는 용어가 주류가 되었다. 그 즈음엔 1인칭 슈팅임에도 둠과 닮았다 하기 어려운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상황에 맞춰 용어가 재해석되고, 만들어지다 보니 오늘날의 장르 구분은 지독한 난개발의 결과물과 닮아있다. 게임 내 시스템, 게임 목표,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나 감정 등 기준도 제멋대로며 어떤 공신력을 갖춘 집단이나 개인이 이를 분류하는 것도 아니다. 게이머와 게임업계인들의 집단 지성에 따라 만들어지고 활용된 중구난방의 분류 체계다.

그 복잡함이 한계에 달했고, 점점 의미를 잃어가는 상황이기에, 앞으로의 게임 분류는 아마 계속해서 달라질 거다. 이미 전통적인 장르 구분이 오늘날 출시되는 대부분의 게임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며, '스팀'과 같은 ESD는 게임의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보다 유연한 체계인 '태그'로 분류한다. 이 '태그' 시스템이 추후 게임 분류의 핵심 수단이 될 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나, 기존의 체계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고안된 방법 중 하나가 '태그'다.

어쨌든, 부정형의 미디어를 정형화해 설명하려는 니즈는 언제나 존재하기에 시대에 맞는 기준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통적인 분류 기준과 현 세태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선을 방지하는 것이 하나며, 게임을 특정 장르라는 선 안에 가둬 두고 생각하는 마인드셋을 수정하는게 두 번째다.

기준과 세태의 불일치에서 오는 대표적인 사례는 게이머들도 잘 알고 있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심의 과정이 있다. 국내에서 게임 서비스를 하려면 예외 없이 받아야 하는 게임위 심의는 모든 게임을 11개 장르 안에서 분류하고 있으며, 장르마다 심의 수수료 가액이 다르다. 단적인 예로 '롤플레잉'의 심의 수수료가 '액션'보다 두 배 비싸다.

MMORPG의 전성기 끝물이었던 2013년에 설립된 조직인 만큼, 당시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오늘날 출시되는 게임 중 게임위의 분류 조건에 딱 맞게 출시되는 게임은 정말 드물다. 둘 이상의 장르가 융합된 경우도 많으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게임들도 적지 않다. 심의 수수료가 큰 금액이라 하긴 어렵지만, 과정에서의 혼선을 고려하면 'ESRB'처럼 장르와 관계 없이 게임 내 연출된 장면을 기준으로 심의를 진행하는 것이 지금은 더 적합할 거다.

나아가 우리 또한 알고 있어야 한다. '게임 종류를 나누면 안 된다'와 같은 급진적인 주장은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의 분류 기준은 얼마든지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분류 체계란 언제나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지고 통폐합될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장르 구분은 대부분의 경우 큰 의미 없이 설명 편의를 위해 이뤄지지만, 가끔은 힘없는 게임 개발사들을 괴롭히는 지독한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비주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리니지라이크'가 되기도 하고, 그냥 게임 난이도가 어렵다는 이유로 '소울라이크'라 불리기도 한다. 개발사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편향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게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그렇다. 정해진 형식이 없고, 제한이 없으며, 그렇기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커진다. 뱀이 성장하면서 허물을 벗듯, 성장한 미디어에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이전의 게임 장르 구분은 몇 번의 탈피를 끝내고도 미처 털어내지 못한 허물 조각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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