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팀 화제작 '바나나', 게임인가 돈벌이 수단인가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14개 |



최근 스팀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게임이 있다. 최대 동시 접속자 수 88만 명을 돌파하며,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그 '발더스 게이트3'를 제치고 역대 스팀 최대 동시 접속자 수 순위 9위에 오른 게임. 지난 4월 23일 출시된 '바나나(Banana)'가 그 주인공이다.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아니다. '바나나'를 하면서 얻게 되는 다양한 바나나를 스팀 장터에서 사고팔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단순하다. 화면에 보이는 바나나를 클릭하는 게 전부다. 심지어는 매크로도 허용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빨리, 무한대로 클릭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클릭 횟수로 순위를 겨루는 그런 게임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바나나'에는 어떠한 경쟁 요소도 없을뿐더러 클릭 횟수 같은 건 바나나를 얻는 데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사실 바나나를 얻는 데에는 특별한 뭔가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 3시간마다 노란색의 '평범한 바나나'를, 18시간마다 '레어 바나나'를 얻을 수 있다. 클리커 게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클릭 횟수는 게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걸 클리커 게임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일 정도다.

'바나나'는 이게 전부다. 이렇게 얻은 바나나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어 바나나라고 해서 클릭 횟수를 2배, 3배로 늘려주는 것도 아니고 바나나를 조합해 새로운 바나나를 만들 수도 없다. 유일한 쓰임새라고는 스팀 장터를 통해 거래하는 게 전부다.

현재 스팀 장터에서 거래되는 바나나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평범한 바나나는 0.21원에 불과하며, 그 외 대부분의 레어 바나나가 천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전체 물량이 수십 개밖에 되지 않는 극소수의 바나나 가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몇십만 원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뿐더러 전체 물량이 25개밖에 되지 않는 크립틱나나는 현재 15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어서 눈이 돌아갈 정도다. 80만 명이 넘는 스팀 유저가 하루 종일 '바나나'를 하는 이유다.



▲ 전체 물량이 25개뿐인 크립틱나나는 현재 스팀 장터에서 150만 원대에 거래 중이다

물론 스팀 장터를 통해 바나나를 사고팔아서 제법 돈을 벌었다고 해도 이걸 바로 현금화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스팀 장터를 이용하려면 스팀 지갑에 돈을 충전해야 하는데 이렇게 충전한 돈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출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현금화하기 위해선 선물용 게임 키를 구매한 후 리셀러 사이트 등을 통해 파는 식으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편, '바나나'의 이러한 흥행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무엇보다 이걸 게임으로 봐야 할지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나나'는 클리커 게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클릭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켜두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방치형 게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 방치형 게임이라고 해서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방치형 게임의 실상은 매니지먼트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냥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바나나가 생성되는 '바나나'는 게임으로 보기 여러모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 사실상 블록체인 기술만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지 바나나를 채굴하는 채굴기로 봐도 무방하다.

현재 스팀에는 '바나나'의 흥행에 편승하고자 하는 '고양이(Cats)', '오이(Cucumber)', '달걀(Egg)' 등의 아류작이 범람하고 있다. 이 게임들 모두 '바나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이한 고양이나 오이 등을 얻어 스팀 장터에 파는 걸 목적으로 한 게임들이다. 이대로 밸브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게임들이 더욱 범람할 것이란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스팀은 2021년 블록체인 기술, NFT가 적용된 P2E 게임이 한창 인기를 끌 당시 이를 금지한 바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시점에 등장한 '바나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블록체인 기술만 적용하지 않는다면, 스팀 장터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한다면 게임으로 볼 수 없음에도 사실상 투기적 성격을 지닌 이러한 게임도 얼마든지 허용한다는 의미인 걸까. 질문은 던져졌다. 이제 밸브가 답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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