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배틀 에이스, '요즘 RTS'란 이런 걸까?

게임소개 | 정재훈 기자 | 댓글: 3개 |

대한민국의 게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인 'PC방의 흥성'에는 참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IT산업에 대한 푸시도 한 몫을 했을 테고, 때 맞춰 등장한 광케이블 기술과 MMORPG의 태동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역시 '스타크래프트'의 존재일 겁니다.

그만큼,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남긴 족적은 거대합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다른 모든 게임들이 그들끼리 즐기는 취미 활동이었다면, 스타크래프트는 말 그대로 국기(國技)였습니다. 일단 게임을 한다면, 모르는 이가 없었고, 못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실력의 차이는 존재했을지언정, 게임의 방법 자체는 누구나 알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RTS라는 장르도 이 '스타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아 함께 비상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온라인 게임의 헤게모니가 MMORPG와 MOBA로 넘어가면서 수그러들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RTS가 만들어졌고, 플레이되었습니다.

이후 10년도 더 지나 2024년을 맞이한 지금, RTS는 다시 게이머의 방문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빠른 게임들. 문간에 서서 손등을 튕기는 두 작품이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신작 '스톰게이트'와 언캡드게임즈의 '배틀 에이스'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배틀 에이스'가 얼마 전 CBT를 시작했습니다.



저스트 텐 미닛, 승부가 갈리는 시간

'배틀 에이스'는 RTS 게임입니다. 자원을 수급하고, 유닛을 생산해 상대를 뭉개면 이기는 게임이죠. 상대와의 힘싸움에는 여러 가지가 작용합니다. 플레이어 개인의 유닛 컨트롤 능력이나 각 유닛 별 상성, 그리고 지형이나 진영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RTS게임의 기본이라면, 실제 게임은 이보다 더 복잡한 형태를 띄기 마련입니다. 가령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계속해서 일꾼을 늘리고 일을 시켜 자원 최적화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빌드를 확인할 수 있도록 꾸준한 정찰을 해야 하고, 빌드가 맞물릴 때 힘싸움에서의 이점을 얻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소모전 이후 병력 복구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다수의 생산 건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멀티태스크로 얼마나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느냐가 프로 게이머의 소양이었죠.

하지만, '배틀 에이스'는 이 중 대부분을 덜어냈습니다. '이래도 되나?'싶은 수준으로 말이죠. 이를 항목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건물은 단 두 종류, '코어'와 자원 기지
- 유닛은 누르는 순간 생산
- 유닛 종류는 미리 덱에서 선택한 8종으로 제한
- 멀티 기지는 원 버튼으로 구성(코어에서 Z키만 누르면 알아서 자원 자리에 만들어짐)
- 일꾼 개념 없음(주변 자원에 자동으로 일꾼이 만들어짐)
- 각 유닛별 상세 수치(피해량, 체력 등) 확인 불가(파라미터로 대략적 확인만 가능)
- 무기 및 방어구 업그레이드 개념 없음




▲ 사실상 유일한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코어'

실질적으로, 게이머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만들어진 유닛들 간의 싸움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린 허리돌리기에만 집중해도 됩니다. 체력 빠진 유닛을 뒤로 빼 주고, 모든 유닛이 최대 화력을 낼 수 있게 컨트롤만 해 주면 되죠.

맵은 마치 MOBA의 그것과 같은 단순한 대칭형 구조입니다. 신경 써야 할 게 적으니 게임의 흐름은 무척 빠르고, 모든 게임은 10분 안에 끝이 납니다. 실제 10분의 타이머가 게임 중 계속 줄어들며, 대부분의 경우 이 타이머가 끝나기 전 어느 한 쪽의 코어가 깨집니다.

RTS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수많은 게임들이 짧아도 20분에서 길게는 40~ 50분까지 승부가 이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나 '요즘 게임'같습니다. 한 판의 길이가 짧을 수록 인기가 높다는 게임 업계의 통념이 어느새 RTS에도 물들었나 봅니다. 덕분에 한 판 한 판이 가볍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적으로 옳은지는 조금 더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 계속 싸우다 보면 상대 코어까지 간다. 10분 안에 끝난다.


깊이의 포기인가, 편의의 확보인가

'배틀 에이스'라는 게임을 말할 때 함께 설명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의 팬들이라면, 잊지 못하는 애증의 이름, '데이비드 킴'입니다. 블리자드 못지 않은 RTS 명가인 '렐릭'을 거쳐 스타크래프트2에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데이비드 킴은 2021년 블리자드를 퇴사한 이후, 언캡드 게임즈에 합류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서머 게임 페스트에서 그는 직접 '배틀 에이스'를 소개했죠.

'데이비드 킴'이라는 인물을 먼저 말한 이유는, 그가 '스타크래프트2'의 밸런서로 일하며 만들어온 변화와 배틀 에이스를 떼놓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가 스타크래프트2의 밸런싱을 맡는 동안, 게임은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각종 스킬을 가진 유닛들이 많아졌고, 적극적인 초반 견제가 만들어졌으며, 게이머의 마이크로 컨트롤 요구량은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유닛이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끊임없이 견제와 소규모 국지전이 일어나는 구도는 그가 이전에 일했던 렐릭의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인데, 아마 그 경력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배틀 에이스는 8개의 유닛을 미리 선택하는 형태

하지만, '배틀 에이스'를 소개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방향과는 정 반대의 길을 제시하며 확고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과다한 메카닉(손기술)을 필요치 않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게임을 추구하겠다고 말했죠. 실제로, 게임은 그의 말대로 나왔습니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해 보면, 게임이 그가 말한 이 새로운 철학에 너무 깊이 잠식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배틀 에이스'의 시스템은 그의 말대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빠른 시간 내에 승부가 갈리지만, 그만큼 '전략적 선택지'가 적습니다.



▲ 유닛 종류는 꽤 다양하지만, 코어에서 몇 번만 업그레이드하면 모든 유닛을 생산할 수 있다.

준비한 8개의 유닛을 모두 뽑을 수 있도록 필수 업그레이드만 마치면, 대부분의 상황에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딱히 공백이라 할 타이밍도 없고, 빌드 자체가 없으니 특정 빌드에서 드러나는 빈틈도 없습니다. 생산 건물을 숨겨 지어 의외의 수를 둔다거나, 상대를 포위한 채 요새를 만들어 조이는 등의 전술도 불가능하며, 극도의 자원 최적화로 초반에 승부를 본다거나, 적극적인 자원 확보로 수적 우세를 가져가는 전략도 쓸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싸움만 잘 하면 된다는 거죠.

물론, 근접 지상전 위주로 1선이 강력한 덱을 짜 왔는데, 상대가 공중 유닛을 주력으로 삼는 덱을 짜 왔다면 차이가 생기긴 하겠지만, 이는 게임 실력과 관계 없이 운에 따라 갈리는 부분입니다. 결국, 게임은 치열한 빌드 싸움이나 깜짝 전술이 아닌, 유닛 구성과 싸움 실력이라는, 굉장히 정직한 하나의 척도에 의해 승패가 정해집니다.



▲ 전략만 생각하면 된다 했는데, 막상 해 보면 전략이 딱히 없는 이상한 상황

RTS를 꽤 플레이해본 게이머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편합니다. 버튼 한 방에 멀티가 지어지고, 유닛이 줄줄 나오며, 상대 날빌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계속 이게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데이비드 킴은 마이크로 메카닉의 필요를 줄이고, 적은 클릭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 했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는 마이크로 메카닉만 잘 쓰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전략적 변칙의 대부분이 거세된 상황에서, 동등한 상대로 이점을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CBT이기에 추후 변동의 여지가 큰 상황에서 이런 디자인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배틀 에이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PVP RTS로서는 충분할지언정, 정말 RTS를 애정하고 소비할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다소 부족해 보였습니다. 좀 더 개인적인 시선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가 원하던 RTS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게임성 확인한 CBT, 정식은?

정리하면, '배틀 에이스'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카테고리별로 지정된 여러 유닛 중 8개의 유닛을 미리 골라 '덱'을 구성한 후', 전투를 시작하면 잡다한 컨트롤 대부분을 원 버튼으로 해결하면서 유닛을 모아 격돌합니다. 그렇게 10분 간 상대와 유닛을 모아 싸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승부가 갈립니다.

굉장히 확장성이 뛰어난 디자인이긴 합니다. 현재는 2:2까지 구현되어 있지만, 3:3, 4:4, 나아가 5:5나 10:10까지 구현하는 것도 이론 상 가능할 것 같으며, 카테고리마다 새로운 유닛을 추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배틀 에이스'는 이전의 RTS들처럼 각기 다른 종족들이 명운을 걸고 총력전을 벌이는 상황이 아닌, 기계로 만들어진 유닛들로 전략적 승부를 가리는, 약간은 액자식 구성에 가까운 컨셉이기 때문에 유닛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설정과 로어 이슈도 없습니다.



▲ 대전을 반복하면 새로운 유닛과 해금용 게임 내 재화가 풀린다

하지만, RTS라는 장르가 보여주어야 마땅한 많은 부분을 편의적 시선에서 덜어낸 현재의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어떤 형태로 다가갈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게임 한 게임이 빠르게 끝날 수록 높은 인기를 보이는 건 지표로 증명된 사실이지만, 보다 깊은 사고를 요구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RTS라는 장르를 향유해 온 게이머들은 분명 이쪽을 더 원할 테죠.

그러나, 지금의 '배틀 에이스'는 명백히 상대적 소수인 '기존 RTS 팬'보다는 더 많은 게이머들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CBT 이후 정식 출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충분히 이 '새로운 게이머들'을 사로잡을 모습을 보인다면 좋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이도 저도 못 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겠죠. 남은 개발 기간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그러한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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