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세계에 몰아친 생태계 열풍, 대한민국 게임업계는 지금?

칼럼 | 장인성 기자 | 댓글: 31개 |
언제부터인가 주위에서 생태계라는 말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산수만 알면 사는데 지장없다는 믿음으로 문과를 택한 저에게 생태계라는 단어는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서나 듣던 말이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생태계는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더군요. 모바일 생태계나 웹 생태계 등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개발자는 어플을 만들어 돈을 벌고, 사용자는 필요에 의해 어플을 구입하고, 애플은 기기를 팔아 수익을 얻습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에 성공한 애플을 바라보는 언론들은,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생태계의 힘이 지대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다린다고 공급자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생태계의 선순환에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구축된 뒤의 생태계는 철옹성이 되지만, 자리잡기 전의 생태계는 무주공산이나 허허벌판이라는 단어와 가깝습니다. 반짝 마케팅이나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홍보와 다릅니다. 단기간에 열매를 맛보려는 근시안적인 접근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이 담당했던 역할, 즉 순환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가려는 과정과 결과를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합니다. 생태계에 참여할 구성원들을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수평적인 사고방식이 있다면 더욱 좋겠죠. 무조건 밀어내기식으로 독려한다고 해서 이루어낼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건만 잘 만들어 놓으면 알아서 잘 팔린다던 품질의 시대는 저물고,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홍보가 중요하다는 마케팅의 시대도 지났습니다. 최근에는 고객 대응 서비스가 핵심이라던 고객 경영마저도 어느새 한철 지난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품질과 홍보, 서비스에 더해 이용자와 판매자, 공급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순환의 Win-Win 구조, 생태계. 애플의 성공 이후 전세계는 이런 생태계의 구축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IT와 엔터테인먼트의 첨단을 달린다는 게임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게임계의 애플? PC 시장의 강자, 밸브의 스팀

IT의 선두에 애플의 아이폰이 있다면 게임업계에는 밸브의 스팀이 있습니다. 스팀은 PC 패키지 게임을 디지털 다운로드로 판매하며, 플랫폼 내의 게시판을 통해 문제점의 해결과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스팀 계정만 있으면 어느 컴퓨터에서든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이 구입한 게임을 설치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포맷한 뒤 게임 CD를 찾기 위해 방을 뒤지지 않아도 됩니다. 게임을 사러 가거나 따로 주문할 필요도 없고 스팀에서 결제하면 하면 자동으로 자신의 계정에 게임이 등록됩니다. 스팀에서 지원되는 게임인데 꼭 패키지를 가져야 한다는 분들은 패키지로 구입한 뒤 CD키만 스팀에 등록하면 차후 똑같은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게임 설치나 오류 해결 등의 지원에 그치지 않고 스팀으로 플레이하는 게이머를 위한 전용 업적이나 멀티 플레이, 관련 커뮤니티 등을 따로 지원한다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이런 편리함과 확장성에 힘입어 스팀은 평일에도 200만명이 넘는 라이브 유저가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긴 하지만, PC패키지 게임만으로 200만! 상상이 가시나요?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콘솔 시장을 제외하면 고사해버렸다고 할 정도로 패키지 게임 시장이 작아져버린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밸브는 스팀으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긴 시간을 노력해 왔고 지금은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팀 포트리스 2, 풋볼 매니저, 배틀필드, 레프트 4 데드 등 PC 패키지 시장을 주름잡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스팀을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에버퀘스트 시리즈나 챔피온스 온라인같은 온라인 게임 패키지 역시 판매되고 있습니다.

스팀의 서비스는 주말 세일이나 연말 세일 등 게임을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제공하기때문에 게이머들에게도 이득입니다. 자본의 한계, 홍보의 규모나 장르적인 제한때문에 판매가 힘들었던 인디 게임과 매니악한 취향의 게임들도 이런 장점때문에 스팀을 선택합니다.

스팀에 등록되는 PC 게임들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팀을 사용해 게임을 즐겨본 게이머들은 대부분 스팀을 악마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즐기기 쉽고 편한데다 가격까지 싸게 게임을 제공하기 때문에 지름신의 유혹을 받기 쉽다는 뜻입니다. 서비스 제공업자에게 이 이상의 칭찬이 있을까요?






[ 물욕이 약해 4개! 그러나 인벤의 모 기자는 구입 게임 목록만 30개 돌파! ]




▷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블리자드의 서비스 플랫폼, 배틀넷 2.0

온라인 게임업계에서는 블리자드가 한발짝을 내딛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의 OBT가 시작되면서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게임성에 많은 게이머들이 환호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차기 블리자드의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될 배틀넷 2.0의 미래에 더 많은 관심이 갑니다.

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게임을 즐기다 RTS게임인 스타크래프트 2를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배틀넷 2.0의 라인업에 디아블로 3편이 추가될 것이 뻔합니다. 블리자드가 꼭 무거운 MMO 게임만 만들어야한다는 법도 없고 페이스북과 연계된다니 차후 SNG들이 배틀넷에서 서비스될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래를 위한 포석인지는 알 수 없으나, 블리자드는 상당한 진통에도 불구하고 이미 배틀넷 계정으로 자사의 게임 계정들을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블리자드의 게임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게이머들은 앞으로도 별다른 절차없이 클릭 몇번만으로 블리자드의 게임들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 올해에는 스타2, 아마도 내년에는... ]



물론 배틀넷이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고 멈출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굳이 플랫폼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지금 상태로도 자사의 게임만으로 여타의 다른 게임사들 못지 않은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배틀넷 2.0이 다양함과 편리함이라는 무기를 갖추고 통합 요금제와 같은 지원까지 더해져서 블리자드만의 생태계로 성장한다면 온라인 상에 구축된 이 철옹성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WoW의 게이머들이 장난삼아 하는 말, "넌 이미 블리자드의 노예"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와우에 애드온 형태로 삽입되었던 캐쥬얼 게임, 페글 ]




▷ 생태계를 인식한 콘솔과 영화산업의 시도

시장 규모로는 가장 거대한 콘솔게임 역시 점차 온라인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면서 각 콘솔 기기들마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나 엑스박스 라이브, 클럽 닌텐도처럼 자신들만의 성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게임기기의 치열한 경쟁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콘솔 게임기의 경우 입력기기와 접속이 제한되기 때문에 게임기 자체가 하나의 생태계가 될 수 있고, 플랫폼사이의 이동이 자유로운 PC에 비해 좀 더 쉽게 폐쇄적이고 안전한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게임기를 사면 고객은 자연스럽게 게임기에 적응하게 됩니다. 엑스박스를 샀는데 마음에 안든다고 Wii의 게임을 돌릴순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장점때문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온라인 시장보다 훨씬 치열합니다. 이동이 자유로운 PC 플랫폼과 달리, 콘솔은 일단 게임기를 사야 합니다. 고객들이 지갑에서 돈을 내밀어 지불하게 할만큼의 장점이 확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게임들이 이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Wii의 등장은 그래서 놀라운 일입니다. Wii 이전의 게임기는 보다 강력한 그래픽과 뛰어난 음악 효과 등 게임을 뒷받치기 위한 성능을 강화하는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게이머를 빼앗아오기 위해 더 화려하고 멋진 게임들을 개발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Wii는 전통적인 형태의 경쟁을 피하는 대신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강력한 서드파티들로 무장한 플레이스테이션과 정면 승부를 택했던 과거의 아픔이 도움이 되었을까요? 경쟁사들이 화려하고 복잡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을때, 단순하고 가벼운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새롭게 시장으로 끌어들이면서 파이 자체를 키워버렸습니다.

어쨌건 이렇게 Wii가 먼저 구축한 생태계를 빼앗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키넥트의 다양한 콘텐츠와 PC 시장에 기반한 인프라로 게이머를 유혹하고 있고, 소니는 Wii보다 반응속도가 빠르고 발전된 형태의 PS 무브와 카메라로 코어 게이머와 라이트 게이머를 함께 보듬어안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게임보다 앞서 발전한 문화 산업인 영화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 아이언맨 2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쉴드의 비밀 요원 닉 퓨리나 인크레더블 헐크의 토니 스타크처럼, DC의 저스티스 리그나 마블의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하나씩 영화화되면서 서로 연계되어 거대한 하나의 세계관이 영화를 통해 구축되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단편의 영화나 드라마보다 성공한 IP의 시리즈물이나 스핀오프, 최근의 마블 히어로즈처럼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의 틀 안에 묶으려는 시도가 늘어난 것은 문화산업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는 상호작용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일방향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게임보다 덜한 편이지만, 여러 영화를 통해 가상의 세계를 구축해 놓을 경우 지속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은 여전합니다.





[ 헐크를 놓친 장군에게 다가온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




▷ 세계 최강의 게임강국!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걸음마 중?

그렇다면 게임 강국으로 이름높은 대한민국에서는 세계의 흐름이라는 생태계에 대해 어떤 대처를 하고 있을까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게임업체들이 제공하는 게임 타이틀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포탈에 모여만 있을 뿐 따로 실행하고 각자 즐겨야 하며 커뮤니티 역시 모두 다른 형태로 구축되어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포탈에 있으면서 로그인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까지 존재합니다.

흔히 3N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의 대표 게임사 NC소프트, 넥슨, 한게임을 살펴보면, 아직 대부분의 포탈은 링크만 제공하는 전통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습니다. NC소프트의 경우 통합 계정과 런처를 제공하면서 관리 기능을 제공하긴 하지만 플랫폼으로 보기에는 제한적인 수준이고 피망이나 넷마블, 엠게임같은 다른 게임 포탈들도 이런 상황은 비슷합니다.







넥슨의 경우 넥슨 플러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나, 역시 본격적인 플랫폼으로 보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특히 넥슨의 많은 게임들이 대부분 넥슨 플러그없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기능은 다양해도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는 못해 아쉽습니다.

올해 초 CJ인터넷의 넷마블에서 생태계의 기초적인 구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블루션을 발표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아직 이렇다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다양한 게임들을 모아놓은 포탈은 마치 백화점의 진열대같이 취향에 맞는 게임을 골라잡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각각의 게임에 특화된 대응은 취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규모있는 대작급의 게임이 아닌 이상 점차 고도화된 운영을 요구하는 게이머들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퍼블리싱 게임의 경우 계약이 끝나면 포탈에서 분리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있습니다. 한국의 게임업계에서도 퍼블리싱 업체와 게임사의 사이에서 계약이 끝난 이후 회원 문제로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 마블루션을 발표하는 넷마블의 남궁 훈 대표 ]



물론 한국의 대세인 온라인 게임 시장은 앞서 소개한 PC 게임 시장이나 아이폰의 어플과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장기간의 서비스와 운영 등 고려해야할 사항도 많을 뿐더러 개발사나 퍼블리셔의 입장에서 따로 제작된 게임들을 하나의 플랫폼안에 끌어들이는 것은 시도조차 쉽지 않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커뮤니티가 기반인 온라인게임은 굳이 플랫폼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다른 게임들과의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앱스토어나 스팀과는 또 다른 형태의 플랫폼이나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엔딩이 없는 온라인게임이라고 해도 필연적으로 흥망성쇠를 겪기 마련이니 끊임없는 순환이 장점인 생태계의 도입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게임 하나 만들고 끝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잘 구축된 생태계는 충성스러운 게이머들을 게임사의 틀안에 머물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 개발사에서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성공과 실패조차 가늠하기 힘든데 먼 미래까지 바라볼 여유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시장을 선도하거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위치에 있다면 한번쯤 모험적인 시도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게임산업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미래가 다가온다고 합니다. 세계에 통할 만큼 멋지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산업이 발전할수록 게임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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