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라는 IP를 처음 접한 것은 2018년의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덕후답게 분기마다 볼만한 작품을 픽업하는 중이었는데, 마침 P.A WORKS에서 신작 애니가 나왔고, 그 타이틀의 이름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였다.
첫인상은 작화나 연출도 좋고, 미소녀가 말의 귀와 꼬리가 달려 있다는 조금 특이한 설정이지만, 시골에서 상경한 주인공이 재능을 인정받고 성장해 나가는 정석 스포츠물이라 여겨졌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던 위닝 라이브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온갖 애니를 봐 온 입장에서 스포츠물 + 미소녀 + 수인물의 조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에 아이돌 요소까지 끼얹는다는 발상은 소위 무슨 약을 해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참신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위닝 라이브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덕후는 어느새 정식으로 출시된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후 나온 애니메이션도 모두 블루레이를 구입할 정도로 팬이 되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서문을 작성하고 있는 이유는 우마무스메 IP를 활용한 첫 콘솔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열혈 우당탕탕 대감사제!(이하 열혈우마)'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분명 게임을 하던 입장에서는 타이틀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무지개 해방 결정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기념할 만한 IP 확장의 첫 타이틀이고, 과연 개발사에서 언급한 그 포부만큼 새로운 IP 유입으로서의 관문이 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게임명: 우마무스메 열혈 우당탕탕 대감사제!
장르명: 파티 게임, 도트 액션, 캐주얼
출시일: 2024. 8. 30
리뷰판: 출시 빌드개발사: 아크 시스템 웍스
서비스: 세가 퍼블리싱 코리아
플랫폼: PC, PS, Switch
플레이: PC(스팀), Switch
단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파티 게임'
열혈우마를 단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파티 게임'이다. 우마무스메 IP를 모르는 유저들을 위한 설명을 잠깐 하자면, 게임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어릴 적 가정용 게임기로 해봤을 열혈 쿠니오군 시리즈다.
물론 열혈우마에서는 쿠니오군처럼 우마무스메가 서로에게 펀치와 킥, 박치기를 선사하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그런 흉악한(?) 활약상은 나오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쿠니오군 시리즈 내에서도 대운동회 시리를 차용한 게임으로 우마무스메가 이사장이 강제로 정한 팀끼리 서로의 화합을 도모하고, 건전한 스포츠 정신을 겨루게 된다는 내용이다.
미니 게임의 종목은 크게 4가지인데, 농구를 베이스로 한 농구공 쟁탈 스테이크스, 피구를 베이스로 한 우마닷지 챔피언쉽, 음식을 나르는 서버와 음식을 먹는 이터가 페어를 이루는 대식가 더비, 그리고 가장 우마무스메다운 종목인 스피드런 타입의 대장애물 경주가 있다.
각 종목별로 설정상 3대 1000을 넘긴다는 우마무스메들의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톡톡히 볼 수 있는데, 온갖 기상천외한 기술과 호쾌한 덩크슛이 남발하는 농구부터, '나에게 피구는 살인이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박력 넘치는 필살 슛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피구, 피지컬보다는 뇌지컬을 써야 하는 대식가 더비의 경우 작중에서 나왔던 먹보 기질을 지닌 우마무스메들의 먹성을 볼 수 있고, 대장애물 경주 역시 지붕과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는 시속 70km로 질주하는 신체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4종목 모두 조작 체계는 매우 간단한 편이며, 버튼을 많이 써봤자 5개다. 진행 방식도 게임을 전혀 모르는 유저라도 흐름에 몸을 맡기고 두세 판 하다 보면 감을 잡을 정도로 적응하기 쉽다.
한 세트를 전부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20~30분 정도다. 매라운드마다 게임 템포는 흥겹고, 파티 게임답게 정신없이 치고받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친한 친구들끼리 하면 2배 꿀잼 확정일 정도다.
예상치 못한 풀더빙 보이스
정성이 느껴지는 도트 작업
3D 모델링에서 도트 스타일로 전환되어 묘사되는 아트워크도 성공적이다. 원작을 플레이 한 유저라면 도트 그래픽에 꽤 공을 들였음을 알아챌 것이다. 우마무스메를 모르는 유저가 봐도 각 캐릭터의 구분을 할 수 있고, 저마다의 특징을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의 수준이 높다.
배경은 3D로 처리한 것이 많지만, 자연스럽게 도트 스타일의 캐릭터와 어우러져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즉, 그래픽에 대해서는 스타일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크게 흠잡을 것이 없다.
단순히 기존 아트를 도트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각 우마무스메별로 포인트를 줘야 할 장식이라거나, 캐릭터 고유의 시그니쳐 포즈, 원작에서 보여줬던 패덕에서의 마음을 다잡는 모션이라거나, 승리 후 기뻐하는 모습 등 재현도가 뛰어난 점도 가산 포인트다. 스토리 모드에서 나오는 표정도 다양하기에 도트 그래픽이 취향이 아닌 유저라도 게임 자체는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풀 더빙 지원도 감탄할만한 요소다. 일본 게임을 해본 유저라면, 스토리에서 오프닝을 제외하면 으레 중요한 부분에만 더빙이 되어 있다거나, 혹은 '응, 음, 어, 그래, 좋아' 등 첫 마디만 녹음되어 있는 것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심지어 원작 우마무스메도 풀더빙이 아니다.
하지만 열혈우마는 당당하게도 모든 컨텐츠에 풀 보이스가 수록되어 있다. 스토리 역시 열혈우마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로 기존 우마무스메를 즐긴 유저라면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토리 모드는 팀별로 2시간씩 '코스모스, 프리지어, 로즈, 릴리' 4팀이 제공되고, 각 팀별로 엔딩을 보면 추가로 5인이 제공된다. 전부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합 8시간으로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볼륨이다.
단점이라면 우마무스메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유저라면 다소 뜬금없는 스토리 전개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각 캐릭터의 배경이라던가 특색에 있어서 심도 깊은 묘사가 이뤄지지 않아 우마무스메를 모르는 유저라면 쉽게 몰입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짧은 스토리 분량 내에 캐릭터별로 분량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드는 팀도 있으며, 사일런스 스즈카처럼 개성을 너무 과하게 살리다 보니, 작중 행동 원리에 대해 공감받기 어려운 캐릭터도 있다. 당연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마무스메를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다는 거고, 팬의 입장에서는 이미 캐릭터별로 배경 설정이나 인물 관계도를 다 알고 있으니, 크게 문제 삼을 요소는 아니다. 원작을 모르면 살짝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선에서 정리하면 될 것이다.
오히려 열혈 우마에서 처음으로 스토리를 선보인 스틸 인 러브의 경우도 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첫 공개할 때부터 화려한 외견으로 화제가 된 캐릭터로 현재 원본 게임에서도 실장 되지 않았기에 그녀의 목소리나 성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열혈우마뿐이다.
해피 미쿠 역시 플레이어블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열혈우마가 최초다. 원작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나 팬 서비스 요소는 충분히 들어가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우마무스메가 등장하면 더욱 좋고, 아니어도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작은 쉽지만 다 알려주지는 않는다
미번역 컨텐츠나 매칭 환경의 불안정성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조작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짚고 싶다. 특히 게임 내에서 간단한 조작 안에 디테일이 숨겨져 있는데, 이런 부분은 명확한 튜토리얼이 안내되어 있지 않아,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유저가 아니라면 감을 잡기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농구에서 슛키를 살짝 눌렀다가 떼면 페이크를 쓸 수 있다는 점, 덩크슛 도중 슛키를 한 번 더 누르면 상대의 블로킹을 피할 수 있는 레이업 슛이 발동된다는 것, 대장애물 경주에서 게이트 스타트 시 타이밍에 맞춰 열혈 버튼을 누르면 스타트 대시가 나간다는 점, 레이스 도중에 나오는 각 아이템별 사용 효과 등 유저들이 직접 찾아야 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파티 게임 특성상 이런 테크닉이 결정적인 차이로까지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숨겨져 있는 히든 커맨드스러운 요소들을 게임 내 팁이라던가 튜토리얼에서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스토리 모드에서 비밀 특훈 등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또다른 문제를 꼽는다면 내부 컨텐츠 중 하나인 골쉽쨩의 모험이 한글 번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 폰트 제작 문제일 확률이 높겠지만, 일본어나 영어를 잘 모르는 유저 입장에서 100% 즐기기가 어렵다. 게임 자체는 단순하기 때문에 언어를 잘 모르더라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몰입감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각종 옵션 설정에 있어서도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일단 해상도가 최대 1920*1080까지만 지원한다. 고해상도 모니터를 쓰는 유저라면 전체화면으로 전환 시 화면 비율의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키보드 기준으로 기본 키배치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유별난 세팅이라는 것도 단점이다.
물론 해상도나 키세팅 모두 닌텐도 스위치를 기반으로 개발되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키세팅의 경우에는 옵션에서 원하는 키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다. 대신 게임 도중 전체화면으로의 전환 단축키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추가로 스팀판 기준으로는 매칭 서버의 불안정함 때문인지 튕김 현상이 잦다는 것도 문제다. 게임을 하다 보면 두세 판 중 한 판은 꼭 누군가가 튕겨 CPU로 바뀌어 있다.
파티 게임으로서는 아쉬운 볼륨
엔트리를 좀 더 전략적으로 짜도록 유도했어야 한다
게임의 볼륨도 아쉽다. 게임의 구성은 크게 4개의 미니 게임과 스토리 모드, 그리고 앞서 언급한 골쉽쨩의 대모험 Ⅱ라는 서브 게임으로 이뤄져 있다. 부가적인 컨텐츠로는 커스텀 메뉴를 통해 팀룸을 꾸미는 하우징 요소와 온라인 대전을 통해 볼 수 있는 랭킹 페이지가 있다.
하우징 요소의 퀄리티는 높다. 꾸미는데 관심이 많은 유저라면 꾸미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갈 테고, 구입한 오브젝트와 배치한 우마무스메의 상호작용도 볼만하다.
다만 열혈 우마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4개의 미니게임이다. 스토리 모드를 하더라도 안에서 보여지는 게임은 4종목에서 벗어나지 않고, 골쉽쨩의 모험은 유저에 따라서는 무한 모드로 즐길 수 있는 컨텐츠지만 엄연히 솔로 플레이만 가능하기에 파티 게임의 취지에는 어긋난다.
농구나 피구, 대식가, 장애물 경주 등 당연히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재미있다. 실제로 지인들과 함께라면 2~3시간 정신없이 즐길 수 있었고, 게임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지는대로 그만큼 다양한 심리전이 오가는 등 단계를 밟아나가는 재미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매번 같은 종목을 정해진 순서대로 하다 보니 질리는 타이밍이 생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게임을 하다 보면 팀마다 필살기가 겹치는 캐릭터가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슷한 타입의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은 특정 조합이 강하다는 것이고, 유저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엔트리가 정형화되는 패턴으로 흘러가게 된다. 심지어 종목이 4개밖에 되지 않기에 아예 출전조차 못하는 우마무스메도 발생한다.
이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플레이 할 수 있는 종목이 더 있어야 했다. 적어도 7개 종목 안에서 순서도 랜덤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컨디션에 따른 엔트리 관리가 좀 더 큰 변수가 되었을테고, 비록 초반에는 4위로 뒤처져 있더라도,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특정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등 엔트리에서부터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즉, 지금처럼 무조건 해당 경기에서 강한 우마무스메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 경기까지 바라보도록 엔트리부터 심리전이 오갔으면 게임에 좀 더 깊이감을 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라면 팬 게임이라는 취지에 맞게 조작 가능한 캐릭터의 수가 많았다면 종목이 적거나 필살기가 겹치는 부분을 조금 완화할 수 있었을 텐데, DLC의 구성이나 출시 타이밍이 아쉽다.
우마무스메 IP 확장의 신호탄
우마무스메를 표현할 새로운 힌트
결론을 내리자면 게임의 볼륨만 놓고 보자면 분명 아쉬운 점이 많다. 아무리 팬심이라고 하더라도 스토리 모드를 전부 클리어하고, 친구들과 주말 동안 여러 번 플레이하다 보면 금세 지루해지는 타이밍이 온다. 분명히 할 때는 재미있지만, 하고 나서 다들 입을 모아 종목 수가 적음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결국 파티 게임의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는 셈인데, 이처럼 휘발성이 강한 장르는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평가가 나눠질 것이다. 본인이 우마무스메의 팬이라면, 그리고 좋아하는 우마무스메가 등장한다면 그만큼 몰입해서 오랫동안 즐길 테고, 반대로 우마무스메를 잘 모르거나, 본인 취향의 캐릭터가 없다면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우마무스메 IP 확장 프로젝트가 이번 열혈우마가 끝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육성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타이틀을 시작으로 우마무스메가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 어떤식으로 표현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비록 이번에는 미니게임으로밖에 표현되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더욱 세련된 스타일의 게임을 선보일 수도 있고, 유저가 직접 조작하는 레이싱 게임을 선보일지도 모른다. 열혈우마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를 바라며, 기자는 이만 다음 챔피언스 미팅을 위한 인자작을 하러 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