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무엇이 '포켓몬 트레이너'들을 인천으로 이끌었나?

포토뉴스 | 정재훈 기자 |



나는 '포켓몬'과 관련된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다.

정확히는, 그럴 계기가 없었다. 어려서는 접하질 못했고, 게임 기자가 되고 나서는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일명 '포덕'으로 분류되는 몇몇 광인들이 귀신같이 채갔다.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광기 어린 눈과 입가로 흐르는 침을 보면 굳이 가져가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천 전역에서 '포켓몬 고 사파리 존'이 진행될 거란 소식을 들었을 때도 똑같았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다른 기자가 가는 것이 속된 말로 '알못'인 내가 가는 것 보단 낫겠지. 그 와중 한 가지 궁금했던 건, 포켓몬 고의 경우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계층'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행사를 향유하는 계층은 비교적 뚜렷하다. 흔히 말하는 게이머층. 가족보다는 개인이나 친구 단위 방문객이 많고,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연령대가 대부분인 이들이 '게이머'라는 카테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게임쇼, 팝업스토어, 체험회, 유저 간담회 등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행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이들이다.

하지만, '포켓몬'이 기반이 되는 행사는 다르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인다는 그간은 말로만 들었는데, 게임 행사에서 이런 경우가 흔한게 아니다. 마침 팀 내 '포덕'들은 대부분 일본 취재를 가 있는 상황. 한 번은 직접 두 눈에 담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번 '포켓몬 고 사파리 존'의 메인 스팟은 인천 송도다. 정확히는, 송도 내에 있는 거대한 공원인 송도 센트럴파크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유명하다 보니 일단 도시 중심에 공원이 있으면 아무데나 마구 갖다 붙이는 느낌인 이름이지만, 송도 센트럴 파크는 실제로 굉장히 잘 조성된 공원이다.

물론, 메인 스팟이 센트럴 파크일 뿐, 실제 무대는 인천 전역이라 보면 된다. 입장 자체는 자유롭게 가능하지만, 어떤 티켓을 구매하느냐에 따라 게임 내에서 받는 혜택이 달라진다. 센트럴 파크에서 주로 돌아다닌다면 일반 티켓, 이 기회에 인천 전역을 돌아보겠다 싶으면 보다 저렴한 시티 와이드 티켓을 구매하면 되는 식이다.



▲ 행사 기간 중엔 센트럴 파크 뿐만 아니라 송도 어디를 가도 보였던 피카츄 썬캡



▲ 가까운 아울렛에서도 무료 음료와 양말 등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 기간 중엔 특정 포켓몬을 잡기도 쉬워지고, 한정 메달을 얻을 수도 있고... 뭐 등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사실 게임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연대감'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게임을 즐기고, 같은 재미를 얻기 위해 걷고 있다는 그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 이들 사이에 존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경계를 허무는 통상적인 아이스브레이킹에서 가장 흔한 방법이 취미와 흥미에 대한 대화 아니던가. 이들 모두가 같은 취미와 흥미를 지닌 이들이었다.




대전에서 새벽부터 올라온 트레이너는 이 자리에서 만난 이들과 인천 여행 계획을 짜고 있고, 러시아와 스웨덴에서 출발한 트레이너가 인천 송도라는 종착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 또한 해외 게임쇼 취재를 갈 때면, 이 넓은 공간 안에 있는 이들이 모두 게이머겠거니 하는 생각에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들은 보다 더 구체적인 영역에서 취미를 향유하는 이들이다 보니 아마 더 강하게 느낄 것이 분명했다.

이 때문일까? 타인을 대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무의식적 방어 기제들도 많이 옅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이들 간에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은 그들 사이에 끼지 않고 관찰하는 입장에서도 꽤 즐거워 보였다.



▲ 광장 중앙에 위치했던 포케스탑. 이 근방에 사람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 교환소는 행사장 전역을 통틀어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곳. 처음 보는 이들끼리도 교환에 여념이 없었다.



▲ 일본에서 온 트레이너들의 자랑. 알고 보니 49레벨이면 엄청난 거라더라



▲ 모두 다 같이 온 이들이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 더해졌다. 게임을 위해 온 이들만이 아닌, '포켓몬'이라는 IP자체의 팬들과 그들의 가족들 또한 함께했다. 일반적으로, '게임 행사'는 가족과 함꼐 즐기기엔 영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연령대에 관계 없이 즐겁게 즐길 게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타겟층이 정해져 있기에, 모두가 즐거움을 느낄 만한 상황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브롤스타즈'와 같은 게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부모를 졸라 함께 나온 아이들 정도가 아니면, 가족이 모두 게임 행사 현장을 찾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하지만, '포켓몬 고 사파리 존'은 전혀 문제될 바가 없다. 센트럴 파크 자체가 매우 잘 조성된 공원이기에 특별한 일이 없어도 오기에 좋은 곳이고, 포켓몬 고를 잘 즐기려면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할 테니까. 무엇보다 '피카츄'를 중심으로 한 '포켓몬'이란 IP의 이미지는 딱히 게임의 부정적인 면과 얽힐 부분이 없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눈에도, 그냥 잘 만들어진 캐릭터 IP로 비춰질 뿐이니까.

이 요소들이 겹쳐지면서, 행사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가족들이 모였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트레이너'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냥 썬캡을 쓴 채,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부모와 이를 뒤따르는 아이들도 절반은 되어 보였다. 처음에 말했던 '계층과 무관히 모두가 모이는 게임 행사'가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 트레이너 간 대전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그냥 돗자리 펴놓고 쉬기에도 손색이 없었던 배틀존



▲ 날씨도 좋다 보니 그냥 산책삼아 나왔다가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았고



▲ 아이 손에 이끌려 나온 듯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송도 센트럴파크라는 좋은 위치 선정도 이유였을 거고, '포켓몬'이라는 IP의 엄청난 인지도도 무시 못할 거다. '포켓몬 고'라는 게임이 원작과 유사한 흐름을 지닌, 감정적 이입이 가능한 AR 게임이라는 점도 이유가 될 거고, 무언가 쏘고 부수고 죽여야 하는 뭇 게임과 달리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포켓몬'이 부모 세대의 경계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IP라는 것 또한 계층과 관계 없이 모두가 즐겁게 행사를 즐길 수 있게 만드는 힘이겠지.

어쩌면, 게임사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볼 법한 이상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게임이 게임으로서의 한계를 벗고 '대중 문화'의 일맥이 되었을 때 어떤 영향력을 보일 수 있으며, 어떤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대한 답안지. 주류 문화로의 편입을 꾸준히 갈망하고, 무해함을 어필하면서도 불현듯 터지는 사건들과 인식의 늪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국내 게임 산업이 바라볼 이상의 끝에 아마 이런 행사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인천 토박이로서 비밀 - 센트럴 파크 물 속엔 '게'가 산다.(진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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