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본 네트워크의 신작 '소녀전선2'가 연내 출시를 예고한 가운데, 14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하는 지스타 컨퍼런스 G-CON에 우중 PD가 연사로 참가했다.
우중 PD는 선본 네트워크의 CEO이자 소녀전선 IP의 총괄 PD로, 2017년부터 시작된 중국발 서브컬쳐 게임 빅웨이브를 견인한 인물 중 하나다. 2017년부터 2018년, 그리고 2023년 한국을 방문해 서브컬쳐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왔던 경험을 공유해왔다. 소녀전선2 한국 CBT까지 진행하면서 출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지금, 우중 PD는 '소녀전선2'에서 과연 어떤 감성을 유저에게 전달하고자 했는지 그간의 과정을 연단에 올라 설명했다.
우중 PD는 2008년 동인 활동부터 시작해 2015년 선본 네트워크 설립, '소녀전선'을 2016년 중국에 출시했다. 그 뒤 2017년 한국에 출시하고 2018년에 일본을 비롯해 점차 서비스 권역을 넓혀갔다. 2021년에는 뉴럴 클라우드의 글로벌 출시, 2023년 소녀전선2 중국 출시, 2024년에는 역붕괴를 출시하면서 선본 네트워크는 글로벌을 대상으로 여러 작품을 선보인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오는 12월 한국에도 선보일 '소녀전선2'는 PBR, NPR 기반의 렌더링으로 소녀전선의 친숙한 캐릭터를 더 정교하게, 그리고 더욱 몰입감 있게 다듬은 작품이다. 그간 2D, SD 위주였던 선본 네트워크가 이와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게임 시장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때 서브컬쳐는 말 그대로 '서브', 마이너한 장르였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확산이 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구축했고, 이에 힘입어 자본과 인력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미려한 2D 일러스트와 스크립트로도 충분했다면, 지금은 과거에 생각지도 못했던 풀 3D에 여러 장르의 게임플레이를 심도 있게 도입하는 등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캐릭터와의 상호작용 역시도 스크립트를 읽는 것을 넘어 실제 교감하는 듯한 연출과 시스템까지도 BM과 연동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게임이 발전하면서 유저의 니즈 역시도 높아지고 있고, 그에 맞춰 게임사들은 고차원적인 정서적 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아울러 유저들의 성향도 바뀌었다. 이제 어떤 게임을 플레이할 때 단순히 어떤 외적인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여러 심층적인 부분을 몰입감 있게 '경험'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게 유저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오래 운영한 게임이 이를 어떻게 충족해야 할까? 우중 PD는 캐릭터의 '성장'을 키워드로 꼽았다. 캐릭터의 성장은 단순히 캐릭터가 외형적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을 유저가 함께 하면서 몰입감을 느끼고, 앞으로 그 게임이 보여줄 이야기를 쭉 따라가게 될 것이라는 게 우중 PD의 지론이었다.
우중 PD는 또한 살아숨쉬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성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았다. 사람이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변화하고 성장하듯이, 캐릭터가 이를 체험하는 과정을 유저가 지켜보면서 마치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를 단순히 제 3자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유저가 함께 캐릭터와 동고동락하면서 비온 뒤에 땅이 굳는 듯 유대감과 몰입감이 더 단단해진다고 보았다.
그렇게 유저와 캐릭터의 1:1 관계를 설계하는 것을 넘어 그 이상까지도 우중 PD는 언급했다. IP가 커지면서 필연적으로 캐릭터 라인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캐릭터들이 유저와 관계를 맺고 나아가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 단일 단위가 아닌 그 캐릭터가 속한 그룹까지 포함해서 유저와의 관계를 짤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캐릭터의 성장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우중 PD는 먼저 캐릭터 자체의 성장을 언급했다. 변하지 않고 평이한 이야기에 유저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그 변화하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도 성장,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HK416으로 잘 알려진 '클루카이'와 IDW로 알려진 '베티'가 언급됐다. 클루카이는 소녀전선부터 뉴럴 클라우드, 소녀전선2까지 쭉 등장하는 인기 캐릭터로,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은 캐릭터다. 심지어 첫 등장했던 '소녀전선'에서도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캐릭터의 느낌이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에는 비밀요원 같은 이미지와 내면에 응어리진 성격이 공존하는 캐릭터였지만, 점차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응어리가 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뉴럴 클라우드에서는 한층 더 성장, 교수가 된 지휘관을 찾아 나서게 된다. 자신만만하고 굳건하지만, 어떤 때는 지휘관을 향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캐릭터로 변화하는 과정이 뉴럴 클라우드에서 조명된다. 그리고 소녀전선2에서 클루카이는 좀 더 성숙해져서 지휘관 앞에 서게 되고, 더 치열하게 난관을 극복하고자 파트너들과 함께 희생적으로 미션에 임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을 유저가 지켜보면서 공감하려면, 그 캐릭터만의 '코어'는 확실해야 했다. IDW는 뉴럴 클라우드를 거쳐서 역붕괴에서는 소대장까지 맡을 정도로 성숙했지만, '고양이 같은 전술인형'이라는 특징은 바뀌지 않았다. 클루카이는 다소 변화의 폭이 있었지만, 그 변화를 스토리로 녹여내면서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도 '클루카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집착 등등을 은연 중에 계속 보여주면 동일함을 느끼게끔 했다.
두 번째로는 캐릭터와 유저의 감정적 거리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저 캐릭터와 유저 사이가 가까우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자칫 평면적으로 흘러가기 쉽다. 좌절도 겪고 힘들 때도 있고 이를 극복할 때도 있고 등등, 그것을 쭉 가깝게만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면서 그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UMP45로 친숙한 '리바'는 첫 등장 당시 전투력이 높거나 눈에 띄는 전술인형이 아니었다. 그러다 UMP40과의 이야기 그리고 좌절을 넘어선 경험, 또 UMP45에서 리바로 거듭나는 과정을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리 조명해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그 캐릭터와의 교류가 입체적으로 구축됐다. 최초에는 UMP45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방관자의 시점으로 보았다면, 점차 과거를 전체적으로 훑고 직접 UMP45와 작전도 하는 등 교류의 완급을 통해 그 성장 과정을 더욱 역동적으로 지켜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은 결국 설정, 스토리, 그리고 그룹화를 꼽았다. 어떤 한 캐릭터의 이야기나 매력만으로 게임 전체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UMP45, G11, HK416 등 인형이 주목받은 이유는 그들 자신의 개성도 있지만 '404 소대'로 묶이면서 케미가 발생한 것도 컸다. 유저와 캐릭터의 관계를 넘어서 다른 팀원과의 관계, 유저와 캐릭터 그리고 다른 캐릭터와의 얽힌 관계 등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어떤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이 뒤엉키면서 이야기의 층위는 한층 더 고도화됐다. 그러면서 유저들이 슥 보기에 뻔한 이야기가 아닌, 깊이 있는 이야기와 이를 이끄는 여러 캐릭터들의 롤이 발생한다고 우중 PD는 강조했다.
한편, '소녀전선'에서는 그룹화만으로는 불충분했다. 300종 이상의 전술인형 라인업이 갖춰진 만큼, 그룹과 그룹 사이에 네트워크까지도 고려해야만 했다. 그룹 간의 갈등이나 여러 그룹이 얽힌 사건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한 방대하고 밀도 있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중 PD는 이렇게 확장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자칫 유저들이 피로도를 느낄 수 있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집중도가 떨어지고 이야기 전개가 애매해져서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갈등을 잘 배치하는 한편, '유저'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브컬쳐 게임에서 유저는 주요 사건의 핵심이자, 그룹과 그룹 혹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관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유저'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고 유저와 상호작용하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 충돌 상황에서 유저의 분신이 고차원적으로 리딩, 관계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유저들이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다.
한편, 유저는 작중 캐릭터와 달리 전체적으로 사건을 훑어보는 존재이기도 하다. 작중 인물들이 모르는 추가 정보까지도 알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입체적으로 사건과 관계를 파악하면서 그에 얽힌 캐릭터를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실존하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캐릭터가 그렇게 변화했다고 느끼게 하려면, 마치 사람이 10대에서 20대 그리고 30대를 거치며 여러 사건을 겪고 점차 바뀌듯 충분히 빌드업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좀 더 가벼운 스타일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방식은 자칫 유저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지쳐떨어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한 번 반짝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게임 그리고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쭉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순간의 감정을 넘어, 유저들이 캐릭터 그리고 그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를 보고 정서적 가치을 느껴야 그 살아숨쉬는 실존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 현장 Q&A
Q.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에는 빌드업하는 걸 지켜보기 보다는 빠르고 쉽게 즐거움을 얻으려 하는 추세이지 않나. 소녀전선 시리즈는 이와 다소 방향성이 달라서 진입장벽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대응하고자 하나?
= 이번 강연은 좋은 스토리와 좋은 캐릭터, 그리고 좋은 게임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스토리는 누구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재와 설정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물론, 유저와 어떤 식으로 교류를 만들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떤 좋은 게임이든 유저에게 그 모든 걸 완벽하게 제공하지는 못한다. 최대한 많은 유저를 끌어당기는 게임이 있을 뿐이다. 특히 서브컬쳐는 더 그렇다. 안 좋아하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지 않나. 그보다는 공감해줄 유저층에 맞춰, 그리고 점차 공감대를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퀄리티와 스토리를 다듬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Q. 그렇게 캐릭터와 스토리를 빌드업하기 위해 사전 조사가 정말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우중 PD 본인은 어떻게 준비했나 궁금하다.
= 실제로 이야기나 캐릭터를 구상할 때 정말 많은 자료들을 보고 생각한다. 고전은 물론, 세계대전에 대한 각종 자료들도 훑어봤다. 그런 객관적인 자료 외에도, 나 스스로가 겪었던 것도 투영이 되어있다. 그런 실질적인 경험도 뒷받침되면서 유저들이 좀 더 실재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게임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단순히 서브컬쳐 게임 하나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IP로 나아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한 캐릭터의 한 측면만 보지 않고,다양한 캐릭터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야 좀 더 다채로운 배경을 만들 수 있고, 그 각각의 면을 보여주거나 혹은 그렇게 변해가는 스토리를 통해서 캐릭터가 그 세계에서 살아 성장하는 그런 감각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Q. 소녀전선에서 정말 많은 캐릭터들이 만나고 성장하면서 대립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나. 그 과정에서 전술인형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는 물론 각종 주제들이 던져지는 느낌이다. 언제부터 이런 복합적인 주제를 통해 정서적 가치를 제공하고자 했나? 또 그 계기도 궁금하다.
=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 유저가 공감대를 이끌어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나 또한 초기에는 아트, 일러스트가 뒷받침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트는 결국 첫인상에 작용하는 일부분에 불과했다. 점점 시일이 지나면서 더 깊이 파고들면 깊이 있는 캐릭터와 함께 풀어가는 다채로운 경험, 그런 것들이 결국 유저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라 생각하게 됐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혼이 실린 캐릭터를 만들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성장을 유도하는 아크 즉 이야기의 굴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풀어갈 기회도 적절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 굴곡 속 상호작용을 통해 공감대가 생기고,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까지 더해지는 그 순간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는 실존이라는 걸 느끼게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