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극히 한국적인 종말, '안녕서울: 이태원편'

인터뷰 | 윤홍만 기자 |

흔히 영화의 한 장르로서 재난물이라고 하면 재난을 앞에 둔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곤 한다. 가식을 벗어던진 인간들의 추악한 민낯과 그럼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주인공을 대비시킴으로써 감동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처음 '안녕서울: 이태원편(이하 안녕서울)'의 설정을 볼 때만 해도 그런 흔한 게임으로만 생각했다. 종말까지 6개월이 남은 시점. 사회는 혼란에 휩싸이고 난리통인 와중 주인공만은 인간성을 잃지 않는 휴머니즘적인 작품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해 본 '안녕서울'은 좀 달랐다. 종말이 코앞이건만 전체적으로 어딘지 초연했다. 절망적이지만, 미친 듯이 날뛰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담담하게 다가올 운명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얼핏 비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기존의 재난물과는 확연히 다른 이런 콘셉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스타 현장에서 1인 개발로 '안녕서울'을 개발 중인 지노게임즈의 김진호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지노게임즈 김진호 대표


Q. 원래 디자인을 전공한 거로 알고 있다. 전공을 살려서 게임 회사에 취업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혼자서 개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졸업하고 바로 혼자서 개발을 한 건 아니다. 졸업 후 2년 정도는 회사 생활을 했었는데 회사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하다 보니 답답한 것들이 많이 쌓였었다. 결국 그게 쌓일 대로 쌓인 끝에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1인 개발을 시작한 계기는 전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R&D 작업을 하던 회사였는데 유니티 엔진을 쓰더라.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니 이거라면 나도 혼자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깊은 고민 없이 1인 개발에 뛰어들었다. 디자인 전공, 아트 직군이었지만, 개발 경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 셈이다.


Q. '안녕서울'하면 도트 스타일 텍스처가 특징인데 프로토타입인 '굿바이서울'의 경우 평범한 3D 그래픽이었다. 비주얼, 스타일을 바꾼다는 건 나름의 큰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 프로토타입의 경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나머지 제 역량이나 1인 개발의 한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되는대로 다 해보자 하고 과욕을 부린 면이 있다. 그런데 1년 정도 해보니 3D로 1인 개발을 한다는 게 할 짓이 못 되더라. 결국 타협한 끝에 비주얼을 도트 스타일 텍스처로 선회하게 됐다.





Q. 도트라고 한다면 소위 노가다, 장인정신의 산물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오히려 더 어려운 것 아닌가.

= 도트를 일일이 다 찍었다면 그랬을 텐데 스토어에서 3D 리소스를 구한 다음에 자체 제작한 도트 렌더러를 돌려서 도트 스타일로 바꾸는 거라 생각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혼자서 캐릭터 모델링을 다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가장 쉬운 방법은 스토어에서 3D 리소스를 구하는 건데 이것도 완벽하지 않다. 특정 스토어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리소스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주기 어려운 면이 있다. 리터칭이 필수인 셈인데 일일이 수정하다 보니 한도 끝도 없겠더라.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과 타협한 게 도트 렌더러를 이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드니 두 가지 이점이 생기던데 첫 번째로 도트 스타일에서 오는 통일성이 있고 두 번째로 2D 이미지로 픽셀화하니 용량도 줄어들고 최적화도 많이 되더라. 현실과 타협한 방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내 게임의 그래픽에 대해 '픽셀 아트'라고 표현하지 않는 면이 있다. 내 기준으로 픽셀 아트라고 하면 도트를 한 땀 한 땀 따야 하는데 내 게임은 그렇지 않은 만큼, 도트 스타일 그래픽 정도로 해주면 좋을 것 같다.


Q. 도트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름 세밀한 모델링인데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표정이 보이지 않더라. 의도한 부분인가.

= 어느 정도는 의도한 부분이다. 처음에는 유저들이 주인공인 라연에게 좀 더 몰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예 얼굴을 넣지 않았었다. 그런데 개발을 더 하다 보니 캐릭터성이 강해지고 그런 면이 있더라. 그렇다고 다시 얼굴을 넣자니 그것도 뭔가 안 어울려서 고민 끝에 동작이나 몸짓, 연출되는 분위기 등을 통해 특정 상황에서 해당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살리고자 하고 있다.





Q. 올해 5월 네오위즈와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뭐랄까, 개발에 좀 더 힘이 실린 느낌인데 어떤 식으로 도움을 받고 있나.

= 마케팅 쪽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1인 개발이다 보니 여러모로 빠듯해서 처음에는 한국에만 출시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한국, 그리고 서울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이 강한 게임이다 보니 이 게임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전달하고 싶은 부분을 해외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신경도 안 썼는데 네오위즈 쪽에서 QA를 비롯해 번역, 해외 PR이나 전시 등 다방면으로 도움을 줘서 해외에 알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 대표적으로 네오위즈와 계약을 체결한 후 디스코드 채널이 생성됐는데 해외 유저들이 들어와서 노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런 지극히 한국적인 콘텐츠가 해외에도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Q. 게임의 콘셉트가 특이하다. 지구 종말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구 종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 '브레이킹 배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남은 시간, 가족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마약을 만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그 모습이 뭔가 인상 깊었다. 그걸 보면서 인생의 카운트 다운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도 평범한 화학 교사였다가 마약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지 않나. 그런 변화에 주목했던 것 같다. 물론 단순히 '브레이킹 배드'가 인상 깊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기에 느꼈던 개인적인 우울감이나 출산율 저하다 뭐다 해서 사회적으로 처지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개인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 와닿은 것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브레이킹 배드'에서 주인공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이 게임에서도 지구 종말이라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됨으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사회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Q. 어떤 면에서는 아포칼립스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보통 이럴 경우 주인공의 생존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안녕서울'은 그런 느낌보다는 어딘지 잔잔한 느낌이다.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가올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느낌인데.

= 아무래도 개인이든 사회적으로든 그런 극단적인 변화가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보니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 게임에도 당연히 그런 캐릭터가 등장하겠지만, 메인은 아니다. 아무래도 1인 개발이라고 하면 자신을 그 게임의 상황에 대입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나 역시 그랬는데 만약 내가 6개월 뒤에 죽는다면 뭘 할지 고민해 봤는데 일단 마약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더라(웃음). 그런 식으로 뭔가 극적인 걸 하기보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보내는 식으로 남은 6개월을 최대한 잘 활용해서 인생을 마무리할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왠지 우리 사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뭔가 극단적인 건 원래 극히 일부이지 않나. 그리고 뭔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를 봐도 최근 코로나 팬데믹이 대표적인데 해외에서는 막 시위를 하고 다소 과격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대체로 차분하게 대응한 게 인상 깊었다. 그걸 보면서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 역시 나름대로 감성이 있긴 하지만, 우리 스타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게임의 분위기 역시 뭔가 극적인, 사회가 혼란에 빠진 그런 모습이 아니라 다가올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만들게 됐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캐릭터도 있고 잔잔하게 받아들이는 캐릭터도 있는데 그런 둘이 만났을 때 서로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을지 역시 게임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Q.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고 했는데, 라연은 한강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았나. 뭔가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 내가 생각하는, 만든 라연은 살고 싶어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살고 싶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그런 게 아니다보니 뭐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서우니까 6개월 내내 다가오는 죽음에 떨고 싶지 않아서 한강으로 향한 거다. 그리고 한강에 뛰어들려고 했다가 실패하는데 이것 역시 살고 싶은 마음이 큰 나머지 망설임이 있어서 그런 거다.

캐릭터성에도 이런 게 드러나는데 라연은 재수생이라는 설정이다. 그런데 재수생이란 게 미래의 행복,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그런 거 아닌가. 그랬는데 갑자기 미래가 사라진 거다. 삶의 원동력이 사라진건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와닿을 것 같아서 이렇게 설정했다.





Q. 저번 BIC에 이어 이번 지스타에도 게임을 출품했는데,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인상이다. 현재 몇 % 정도 완성된 상태인지, 출시 목표는 언제인지 자세히 듣고 싶다.

= 1인 개발이어서 일정을 확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개인적으로는 내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역시 확정은 아니다. 확실한 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내 게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시키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멋지게 다듬어서 출시하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지금도 좋게 봐주시고 계시지만, 네오위즈와의 협업을 통해 객관적으로 살펴본 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Q. 게임이 주고자 하는 재미는 저마다 좀 다르다. 서사와 게임 플레이 모두 다 좋은 게임이 있는가 하면 서사나 게임 플레이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게임도 있지 않나. '안녕서울'은 어떤가.

= 처음에 의도한 건 퍼즐이었다. 그런데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니 퍼즐로 재미를 주기보다는 스토리를 살리는 게 더 좋겠더라. 그래서 현재는 스토리에 집중한 어드벤처 게임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Q. 플레이 타임은 어느 정도로 잡고 있나.

= 3~4시간 정도 될 것 같다. 짧으면 짧은 대로 아쉽고 길면 긴 대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보니 이 정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비하인드 요소를 넣는다든가 메인 스토리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얘기를 수집 요소로 넣음으로써 아쉬워하는 분들의 경우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생각 중이다.


Q. 1인 개발이라는 게 얼핏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독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나.

= 왜 없었겠나(웃음). 특히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프로토타입인 '굿바이서울'을 만들 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힘들었다. 그때는 스스로도 정말 별로라고 생각할 만큼, 퀄리티가 떨어져서 답답한 마음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극복했는데 되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이 '안녕서울'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Q. 이야기의 시작을 이태원으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태원편이라는 건 후속작 역시 염두에 뒀다는 건데 몇 부작으로 생각 중인가.

=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까 고민했을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현실 도피를 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까지 다양할 텐데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지역적으로 매칭했을 때 이태원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이태원을 게임의 배경으로 삼았다.

이태원편이라고 했지만, 사실 후속작을 염두에 둔 그런 아니기에 후속작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후속작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할 수 있는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유저들의 반응도 살펴봐야 하고 결과물에 대해서 스스로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고려해야 해서 조심스럽다. 다만, 후속작을 낸다고 하면 이번 게임과는 다른 분위기로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지역을 배경으로 할 것 같다.


Q. 주인공 라연은 우연한 기회에 우주대피사업과 관련된 기밀문서인 '도로시'를 얻게 된다.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 우주대피사업이라고 하니 뭔가 갑자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게임의 스케일이라거나 장르, 분위기가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까 라연에 대해서 살고 싶어 하는 캐릭터라고 했는데 그전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어서 축 처져 있었다면 도로시는 그런 라연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는 요소이자 서사적 장치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기에 도로시를 얻는다고 해서 뭔가 극적으로 바뀌거나 하진 않는다. 게임은 여전히 라연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가 지구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Q. 도로시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그 도로시를 의미하는 건가.

= 맞다. 최초 기획 단계에서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재해석하려고 했다. 라연이 대표적인데 라연은 겁쟁이 사자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였다. 겁쟁이 사자를 한국 사회에 대입했을 때 어떤 인물일까 생각해보니 삶의 희망을 잃은, 용기를 잃은 젊은 세대일 것 같아서 라연을 그렇게 설정했다. 다만, 개발하다 보니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넣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였어서 다른 캐릭터들은 사라지고 라연과 '도로시'만 남게 됐다.


Q. 지스타에서 게임을 즐겨준, 그리고 기다리고 있을 유저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적당히 완성하고 출시한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게임쇼에 출품해 보니 생각보다 더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개무량하면서도 기쁘기 그지없다. 점점 커지는 관심이 부담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적당히 완성해서 출시하려고 했던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최대한 좋은 게임으로 만들어서 출시할 생각이다. 많이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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