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퍼블리셔, 11비트 스튜디오는 '디스 워 오브 마인', '프로스트펑크' 등 인류의 딜레마를 주제로 다소 충격적인 네러티브 전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개발사로 거듭났다.
이들의 최신작인 '프로스트펑크2'는 4년의 개발기간과 팬데믹을 거치며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세 번의 엔진 교체를 겪기도 해야 했지만, 지난 9월 마침내 정식 출시에 성공하기 이르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로스트펑크2의 디자인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지스타 2024를 찾은 11비트의 두 개발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단한 시티 빌더이지만, 전작에 비해 여러 면이 변화해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나뉘는 작품이 된 '프로스트펑크2'. 개발자들은 이러한 디자인 결정에 대해 "필요했던 것"이라고 답을 전했다.
Q. '프로스트펑크2'를 출시한 지 이제 두 달 정도가 지났는데, 그간 근황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야쿱 스토칼스키 : 마침내 출시를 해냈다는 생각에 안심도 됐지만,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그동안 다양한 피드백을 접했고, 패치와 핫픽스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놀라운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이제 게임을 출시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잘 쳐도 중간인 것 같다. 지금도 '프로스트펑크2'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Q. 11비트 스튜디오는 '디스 워 오브 마인', '프로스트펑크' 시리즈를 통해 굉장히 민감한 주제를 심도있게 전달하는 개발사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러한 게임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을까.
야쿱 스토칼스키 : 그 시작은 아무래도 디스 워 오브 마인의 성공이 아닐까 한다. 어찌나 유니크하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는지, 회사가 성장해 나가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럼에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계속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시간을 들일 만한, 그리고 플레이어가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은 길고, 그 모든 과정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물론, '엔터테인먼트'하나만을 충족하는 것도 대단히 숭고한 목표지만, 그 외에도 마음 속에 무언가 남길 수 있는 것. 엔딩을 보고 난 후에도 삶에 남을 수 잇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루카스 유슈치크 : 굉장히 높은 단계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게임도 좋은 책이나, 영화와 경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막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그들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11비트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내세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프로젝트와 회사에게 해당하겠지만, 우리는 그 아이디어가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곧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며, 창작자로서 그 메시지를 굳게 믿어야만 이후 수 년간의 개발 작업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미리 말하지만 나는 좀비 게임에 아무런 억하심정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좀비 게임이 내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서 하는 소리다. 내가 3년 동안 좀비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면, 아마 그 중간에 내 열정은 모두 식고 말 것이다.
특정 장르에 대한 가치를 매기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고 싶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때 창작자로서 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프로스트펑크2는 전작과 다르게 거대한 사회를 운영하는 측면에서 시티빌더적인 특징이 더 강하게 나타는데, 이러한 결정을 내린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야쿱 스토칼스키 : 사실, '프로스트 펑크'는 어느 방향으로도 후속작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부적으로 회의를 하다가 2편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던 계기는, 같은 세계관에서 뭔가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을 때였다. 1편을 답습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다.
'프로스트펑크' 1편은 멸망에 대한 이야기고, 엄청나게 에픽하다. 솔직히, 그걸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겠나. 영하 100도의 위험을 영하 200도로 만들어서? 우리 모두가 그런 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2편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정말 무서웠던 것이 사실이다. 독창적이지 않다면, 뻔한 경험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전작의 세계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였다. 하드코어한 생존 상황은 아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이야기를 게임으로 제작하고자 했다.
1편과 여러 면이 비슷한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면, 분명 기획서 상에서는 멋져 보였겠지만 가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거의 10여년 전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게임을 개발할 제작진의 입장에서도.
2편에서 생긴 변화는 이러한 창의적 과정에서 생겨났다. 사회의 발생이나,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인구가 필요했다. 적은 수의 사람들로는 분열되는 사회가 그리 극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더 큰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서 카메라 또한 멀찍이 빼야 했다. 그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면서 전작과는 다른 감정,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기획 의도라고 봐 주시면 좋겠다.
Q. 대체로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살펴보면, 1편에서는 10명만 죽어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반면, 2편에서는 15,000명이 죽어도 그리 극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임의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러한 피드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다.
야쿱 스토칼스키 :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 그 모든 감상을 존중한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다른 게임과 비교하기보다, 더 큰 규모에서 얻은 상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을 것 같다.
10명의 죽음보다 15,000명의 죽음이 덜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해서, 죽은 15,000명의 의미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당신은 더 큰 사회의 지도자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했고, 그 결과로 이들은 죽음을 맞았다. 선택에서 오는 딜레마와,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루카스 유슈치크 : 이런 종류의 고민은 사실 프로스트펑크 1편에서는 불가능한 감정이다. 7주 후에 우리는 모두 죽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인 갈등은 끼어들 자리가 적다. 플레이어들이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라고 생각하게 되는 측면이 더 강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편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묵표였기에 의견을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스트펑크2'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살아남은 인류에게 있어 빈 캔버스가 되었다. 당신은 과연 어떻게 하고 싶은가? 이제 지도자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Q. 대체로 난이도가 높다는 피드백도 눈에 띄었는데, 이 또한 의도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루카스 유슈치크: 신기하게도,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읽었던 기사에서 '프로스트펑크2'를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전략 게임이라고 언급하는 얘기가 있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어렵다는 피드백과 그 기사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각에서 프로스트펑크2는 복잡하고, 확실히 도전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낮은 난이도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요소 요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점진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요소를 통달하기는 매우 어렵고, 또 도전적이기 떄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야쿱 스토칼스키 : 또 '프로스트펑크2'는 전작과 다른 새로운 시스템을 많이 도입했지만, 주로 전작을 플레이한 이들이 '나는 이미 해봤으니까'하며 어려운 난이도를 선택했을 때 그런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쉬운 난이도부터 차근차근 플레이하면 아주 간편하게 배울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Q. 11비트 스튜디오의 게임은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편이다. 지스타2024에 방문한 기념으로 한마디 해줄 수 있을까?
야쿱 스토칼스키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여러분의 피드백에 항상 귀기울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재미있는 경험을 드릴 수 있도록 게임을 개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가 여러분의 피드백을 존중하는 만큼, 여러분 또한 저희가 선택한 콘셉트에 대해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주신다면 멋진 경험을 전달해 드리겠다는 약숙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