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 '악마의 영혼', 의외로 매콤했다

포토뉴스 | 정재훈 기자 | 댓글: 33개 |
2024년 11월 25일.

회의실에 술이 있다.

그래 이거다.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사실 처음은 아니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이상할 정도로 리커와의 콜라보레이션에 진심이다. 이전에도 5가지 악마맛 맥주가 배달 온 적이 있으니까.



▲ 3년 전 먹었던 맥주 5종, 연관 기사는 하단에 링크로 있다.

다만, 이번에는 양조업체가 다르다. 이전 맥주의 경우 수제 맥주 양조장인 맥파이 브루잉 컴퍼니에서 양조되었다면, 이번 작품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보해양조의 작품. 사람 여럿 주저앉힌 붉은색 복분자 주 만드는 그 보해양조 맞다.

여튼, 이번에도 다같이 한잔씩 나눠 마셔볼까 했는데 문제가 있다. 3년 사이에 나이가 들어버린 팀원들의 자차 보유량이 높아짐에 따라 차 끌고 퇴근해야 하는 이들은 아예 입을 댈 수 없어져버린 것. 그래서 그냥 내가 가져왔다.



▲ 그냥 내가 낼름함 ㅋ

몇몇 기자들이 살짝 욕심을 냈지만, 그냥 내가 가져왔다. 억울하면 선배 했어야지. 원래 늦게 들어오면 그런 거다. 대한민국이 그래요. 하여튼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질풍의 20대를 건너뛰지도 않은 나. 조심스럽게 포장을 까 봤다.



▲ 누가 디아블로 아니랄까 봐 아주 그냥 시뻘건 속포장. 도수는 25도다.



▲ 함께 포장되어 있는 매뉴얼에는 술에 대한 소개와 함께 잘 어울리는 음식들이 적혀 있다. 불고기, 까르보나라, 감바스



▲ 보틀을 실제로 보면 이런 색상. 사실 맛과 별개로 색상만큼은 기가 막히게 헬스 포션이다.
바바리안이 시체에서 삥뜯는 포션도 사실 술일지도 모른다.



▲ 후면에 적힌 성분표

일단 전설 물약이고, 한 잔 마실 때마다 악마의 영혼이 6% 약해진다. 이론 상 17잔을 마시면 악마가 풀려난다는 건데,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내가 이걸 17잔이나 먹으면 와이프란 이름의 악마가 나오겠지.

성분표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두 곳. 일단 '와인증류주 원액'은 프랑스어로 '오드비(Eau-de-Vie)'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술의 종류가 브랜디다. 그 중에서도 꼬냑 지방에서 만드는게 우리가 잘 아는 그 꼬냑이고. 다만 일반적인 브랜디의 도수(35~60)보다 약한 걸 보니 원액을 기반으로 보해양조가 적당히 블렌딩을 한 녀석이 이 녀석일 거다.

또 다른 주목 포인트는 바로 '청양고춧가루'. 어째서 술에 이런 흉악한 물건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악마가 연관되어 있으니 그냥 납득했다. 마셔 봐야 실제로 얼마나 매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그보다 급한 것. 바로 같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 불고기는 혼자 K푸드인지라 컨셉 유지를 위해 이탈리안으로 간다.

이쯤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까르보나라는 계란노른자와 염장육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왜 시판소스를 쓰는 거죠?!"

답하자면, 내가 사는 동네는 시골이라 관찰레나 판체타를 구할 길이 없다... 인터넷에서 사면 되겠지만 이거 기사는 후딱 내고 다른 일도 해야지... 그래서 그냥 시판 소스를 샀다. 저 소스통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포장에 '계란 노른자 향을 살린 정통 이탈리안 맛'이라고 쓰여 있다. 잘 보면 페퍼론치노도 못 구해서 그냥 홍고추인데, 그냥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 여튼 조리를 시작하고, 그 사이 술잔을 찾아야 하는데 브랜디 잔이 따로 없다.
위스키 잔이라도 써야지. 내 위스키 잔이 어디 있더라.



▲ 아



▲ 조리는 순조롭게 되었다. 컵 깨먹은거 아직 와이프한테 안 말했다.



▲ 관찰레는 못구했지만 염장육 느낌을 내고 싶어 살지촌 벨라 살라미를 살짝 투하.
브랜디의 시작도 스페인, 저 악마의 영혼의 원액 원산지도 스페인, 이것도 스페인 살라미니까 나름 일맥상통한다.

어쩌다 보니 요리 기사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간단한 음식들이라 요리라 하기도 좀 뭐하다. 어쨌거나, 다 완성 될 즈음 와이프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컵 깬 건 아직(다음 날인 지금)도 안 들켰다. 이 기사 보면 들키겠지...



▲ 끝! 이제 먹고 마실 시간



▲ 찰랑찰랑



▲ 따라 놓으면 이런 모습이다.

이어진 시음의 시간. 첫 맛은 살짝 달지만 플레이버 자체가 강하진 않은 느낌. 아로마가 강해 높은 도수의 리커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내려가는 느낌은 그리 강하지 않다. 어르신들이 술자리에서 "요즘 술은 술도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꺼내듯 말하는 '옛날 빨간뚜껑'과 큰 차이가 없는 도수이기에, 조금 더 센 소주를 마시는 느낌. 브랜디와 소주의 중간 정도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와중 '청양고춧가루'가 존재감을 보인다. 입 안에 끈적하게 남지 않고 금방 날아가는 휘발성 매운맛에 가깝지만, 하여튼 입에 넣는 순간 입 안이 살짝 얼얼해지면서 원래 도수보다 더 센 술을 마시는듯한 착각과 알싸함, 그리고 깔끔함까지 갖췄다. 약간 과장하면, 저 파스타 한 입 먹고 마시면 로제 파스타 먹은 느낌이다.

결론을 내자면, 엄청나게 특별한, 술 같지 않은 술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헐 포션색'이라 할 만한 훌륭한 컬러, 식사와 곁들여 마시건 단독으로 마시건 부담없는 도수와 독특한 스파이시함까지 갖춘 꽤 괜찮은 술이다. 굳이 까르보나라와 감바스가 아니더라도 한국 사람이 기준 약간 '느끼하다'라고 느낄 만한 음식이라면 다 잘 어울릴 것 같달까.

참고로 '악마의 영혼'은 전국의 C모 편의점에서 병 버전으로 판매 중이다. 한정 판매인 만큼, 수량을 보장할 수는 없다.

한편 먼 옛날, 인벤 회식에서 여러 사람 골로 보낸 와인 베이스 칵테일인 '붉은 보석(그냥 우리가 지은 이름)'이란 흉물이 있는데, 그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지금은 퇴사한 내 후배. 잘 살고 있니? 그날 첫 출근이었는데 많이 힘들었을거야...



▲ 한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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