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미디어 콘텐츠화는 한 때 분명 게임의 IP를 먹칠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지원금을 목적에 둔다는 의혹을 사기도 한 우베 볼부터 상업적인 흥행과는 어울리지 않은 만듦새로 혹평을 받은 영화도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IP 확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그 IP를 활용해 경쟁적인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콘텐츠 배급사. 여기에 막대한 투자까지 이루어지며 상업적 흥행과 게임 팬, 나아가 게임을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인정받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CES2025를 통해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라스트 오브 어스의 시즌2부터 헬다이버즈2, 호라이즌 제로 던의 영상화까지 발표한 소니의 움직임은 그런 움직임을 증명하고 있다.
웅장한 라인업, 제대로만 나와다오
대표적인 것만 정리해도 잔뜩인 라인업
현재 제작이 확정, 혹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디오 게임 원작 영화와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매우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단순히 특정 장르나 게임 팬이 아니어도 알 만한 대표적인 IP만이 아니라 오롯이 게임 팬을 위한 영상화 작품 역시 다양하다.
타이틀만으로 전 세계 팬들의 뇌리에 깊게 남은 슈퍼 마리오의 1993년 실사 영화화를 시작으로 실사화 프로젝트는 다양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 작품이 흥행과 재미, 모두를 잡은 사례는 많지 않다. 레지던트 이블은 흥행에서는 큰 성과를 냈지만, 원작과는 결이 다른 내용에 평론가들의 평가도 높지 않은 오락성 영화에 그쳤다. 레지던트 이블을 빼면 안젤리나 졸리를 앞세운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로 재미를 본 폴 W.S. 앤더슨의 게임 영화하 첫 타이틀인 모탈 컴뱃 정도가 각각 메타 크리틱 43점, 60점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TV시리즈에서 하나 둘 반전을 보여준 타이틀이 나오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캐슬바니아는 짧은 원작의 이야기를 4개의 시즌으로 재구성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첫 시즌 신선도 83%, 유저 점수인 팝콘미터는 91%를 기록하며 게임 원작 영상화 타이틀의 성공 사례를 새로 썼다. 특히 리뷰 수는 적지만, 시즌2와 시즌4는 신선도 100%를 기록했고 유저 평가도 90% 위아래를 오갔다.
2021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이야기를 그린 아케인, 사이버펑크2077의 프리퀄은 다룬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모두 신선도 100%를 기록하며 원작 게임에 대한 관심까지 끌어올렸다.
여기까지가 애니메이션 TV 시리즈였다면 실사 TV 시리즈에서는 라스트 오브 어스가 큰 기록을 여럿 세웠다. HBO 최고 시청 기록을 새로 쓴 시리즈는 체르노빌로 유명한 크레이그 메이진이 닐 드럭만과 메가폰을 잡아 전문가와 일반 시청자 모두에서 좀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할리우드 주요 시상식에 처음으로 노네이트 된 게임 원작 실사 드라마라는 기록을 남겼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 폴아웃 역시 실사 타이틀임에도 2024년 최고의 TV 시리즈 중 하나로 꼽혔다. 원작의 새로운 각색과 이미지를 살려내며 일부 전문가는 골든 글로브 시장식에 폴아웃을 후보로 많이 내야 한다는 기고문을 올리기도 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3억 달러를 넘기며 바비에 이어 2023년 영화 흥행 2위, 겨울왕국2에 이어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2위라는 기록을 쓰기도 했다. 여기에 평론가 평가는 낫지만, 실사화 성공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던 명탐정 피카츄가 큰 흥행을 거뒀다. 비슷하게 실사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수퍼 소닉은 스핀 오프에 4번째 영화 제작까지 확정된 상태다.
게임 원작 영화,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모두 이제는 흥행과 작품성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긴 호흡, 원작에 대한 이해
2시간 영화에 담지 못 한 이야기와 담아낼 돈의 힘
게임 원작 콘텐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어설픈 각색으로 게임 팬도, 그렇다고 일반 관객도 만족할 수 없는 작품을 내놓는 다는데 있었다.
근래 미디어 산업은 단순히 블록버스터 영화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안방 시장을 꽉 잡고 영화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OTT 시장과 그 자본력에서 나오는 투자가 성공을 끌어주고 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은 포스트 넷플릭스, 나아가 넷플릭스가 가진 시장 점유율을 뺏어오는 데 목표를 두고 적극적인 사업을 펼쳤다. 이미 자금줄 넉넉한 회사들의 도전은 곧 '쩐'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게임의 영상화에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두 시간으로 부족했던 게임의 이야기를 여러 시즌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더 길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와 함께 게임 원작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이들이 메가폰을 잡는 비중이 늘었다. 전에는 그저 '게임을 좋아한다'라는 핑계로 원작을 자기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감독 스스로 게이머인 동시에 원작에 대한 이해가 높다. 또 그런 이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자금 지원과 적은 작품 개입도 이루어진다.
나아가서는 실제 개발자들이 작품 개발에 깊게 관여하기도 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너티 독의 닐 드럭만이 직접 연출에 참여했다. 닐 드럭만은 자신의 시각을 작품에 그대로 녹여내기 위해 언제든 폭주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여러 연출가들이 함께 작업하는 TV 시리즈 제작 구조에서 적당한 협업의 길을 걸었고 그게 준수한 결과물로 나왔다.
라이엇 게임즈는 직접 여러 리그 오브 레전드 작업물을 함께 제작했던 포티셰 프로덕션을 제작사로 삼아 작업했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트리거라는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제작을 맡았지만, 원작인 사이버펑크2077의 개발사 CD 프로젝트 측이 시나리오와 월드 제작의 기반을 직접 마련했다.
반대로 게임과 다른 이야기를 추구하는 경우 각색에 힘을 쓰는 모양새다. 작은 설정 들은 살리되 이야기를 핵심 플롯을 간단하게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성과를 본 타이틀이 수퍼 소닉과 명탐정 피카츄다. 특히 이들의 각색 방향은 액션, 혹은 고품질 CGI를 통해 스케일 큰 무대를 완성해냈다. 이러한 변화는 길어야 2시간 남짓한 영화의 제한된 시간 안에서, 게임보다는 IP와 캐릭터의 힘을 살리는 방향으로 그려진다. 물론 이 역시 더 효과적인 기술력과 그걸 담아낼 자본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이거 다 나오는 거 아닙니다
언제 드롭되도 이상하지 않은 게임 영상화 프로젝트
제일 처음 이미지로 표시한 영화들은 개봉이 확정됐거나, 촬영이 끝났거나, 사전 프로덕션에 들어갔거나, 혹은 최근 제작이 발표된 타이틀만을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게임 IP들이 영상화를 알렸고, 대형 배급사들이 그 IP의 영상화 판권을 손에 쥐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IP는 거의 대부분 영상화 판권이 팔렸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렇게 영상화가 예고된 타이틀 중 수많은 작품은 제대로 된 중단 발표도 없이 조용히 사라진다. 특유의 스타일과 배경으로 영화화가 훌륭하게 표현될 것으로 예상된 슬리핑 독스는 일찌감치 실사화가 발표됐다. 하지만 오랜 기간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2025년이 되어서야 주연으로 알려진 견자단이 영화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미디어 산업은 투자 대비 성공 가능성이 낮은 산업 중 하나이며 대형 타이틀의 제작비 역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마치 대형 게임사들이 신규 IP를 만들어내기 보다 과거 성공한 게임의 리메이크, 리마스터를 만들 듯 이미 충실한 팬층을 가진 게임 IP의 영상화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CD 프로젝트, 라이엇 게임즈의 성공 사례를 소니 역시 바라고 있을 것이다.
막대한 투자와 자본을 들여도 게임을 훌륭하게 영상화하기란 쉽지 않다. 온전한 제작 계획 없이 영상화 판권을 먼저 손에 넣고, 영상화를 통한 손실 셈법을 뒤늦게 하는 판단하는 셈이다. 그렇게 영상화 판권은 서로 다른 배급사를 옮겨가기도 하고, 때로는 게임의 인기 하락과 함께 함께 잊혀지기도 한다.
자유로운 각색으로 만나는 새로운 이야기도, 원작의 장면과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르며 전하는 감동도, 모두 다 영상으로 만날 수는 없다. 또 나오는 작품이 모두 팬들의 기대를 채워줄 수도 없다. 하지만 성공한 작품은 모두 분명한 방향성과 함께 저마다 원작을 지우지 않는 각색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