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토드 하워드는 엘더스크롤 시리즈를 베데스다의 DNA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리즈의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아 앞으로 나아간 타이틀을 '엘더스크롤4: 오블리비언'으로 꼽는다. 많은 이가 엘더스크롤4의 재작업에 기대를 감추지 않았던 것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출시된 '엘더스크롤4: 오블리비언 리마스터'는 현세대 게임에 어울리는 그래픽과 개선된 게임플레이로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보여줬다.
문제는 한국에서만 그걸 체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번 리마스터는 이례적으로 한국 지역에 출시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어 미지원이야 그간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작품들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스팀 페이지는 지역 차단에 Xbox 페이지는 언어를 바꿔야만 구매 버튼이 열린다. 아예 접근 자체가 막혀버린 셈이다. 심의 문제, 기술적 이슈 등 이유는 여럿 꼽힌다. 정작 이와 관련한 의견 요청을 베데스다 측에 전달했지만, 답이 없으니 어디까지나 추측만 무성한 상황이기도 하고 말이다.
국내 플레이어들도 많은 관심을 보낸 게임의 지역 차단이라는 선택은 수익을 우선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출시 자체만 이루어진다면 국내 플레이어 스스로 한국어화 패치 작업에 나설 정도로 열정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음은 이미 이전 시리즈들에서 증명됐다.
이러한 국내 시장 배제 배경은 결국 베데스다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토드 하워드의 책임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베데스다-제니맥스를 인수한 MS는 분명 과거와 비교해 적극적인 한국어화 지원 전략을 펼치고 있다. MS 게이밍과 전략적인 방향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자율성을 보장받는 제니맥스의 퍼블리셔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도 한국어화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드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아케인, 머신게임즈, 과거 탱고 게임웍스 등 한국어 지원은 점점 늘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퍼블리셔가 역할을 한 경우도 있고, APAC 지역을 담당하는 부서의 마케팅 및 서비스 의지도 강했다. 국내 매체와의 연결이 있기도 했다. 콘솔, PC 게임 시장 영향력이 커져가는 현 시점에서 국내 게임 시장을 마냥 무시하지 못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처럼 MS,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현지화 확장에 나섬에도 토드 하워드가 이끄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만은 달랐다. 한국어 미지원, 코리아 패싱에 토드 하워드의 의중이 담긴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토드 하워드는 게임의 방향성과 세계관, 시스템 기획을 주도하는 개발자인 동시에 스튜디오 리더로서 IP 전략과 브랜드 가치까지 책임지는 인물이다. 퍼블리싱 사업인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에 직을 두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김이 적어도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게임에서만큼은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줄곧 나왔다. 게임 개발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결정이 토드 하워드를 통해야 이루어진다고도 밝혀졌다. 글로벌 현지화 전략에 한국을 넣는 MS, 제니맥스 내부 방향성에도 토드 하워드의 의중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토드 하워드 본인이 현지화의 중요성을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점이다. 2021년 '스타필드' 개발 당시 토드 하워드는 Xbox 재팬 영상을 통해 일본 팬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음성을 포함한 풀 로컬라이징을 약속했다. 또 2019년에는 게임 콘텐츠 내용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정확한 현지화의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했고, 글로벌 시장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함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 대정부 질문에서 '입벌구'라는 말이 나왔다. 뜻은 '입만 열면 구라'. 오늘날 베데스다의 심장으로 불리며 RPG 새 시대를 연 토드 하워드지만, 그를 부정적으로 부르는 말도 이 입벌구와 뜻을 같이하는 '토도키 하와도(十時布哇道)'다.
2010년대 중후반 미국 이미지보드에서 시작돼 오늘까지도 쓰이는 이 부정적인 밈은 그의 과장된 마케팅 문구들을 비꼬면서 등장했다. 'ジ・エルダー・スクロールズ ・スカイリム ~チートで異世界最強の無敵魔王「ドラゴンボーン」になった件について~(더 엘더스크롤 스카이림 ~치트로 이세계 최강의 무적 마왕 '드래곤본'이 된 이야기~)'처럼 과장된 일본 아니메 게임들이 그를 나타내는 별명이 됐다. 당시 분위기와 달리 최근의 일본 게임이 글로벌 흥행에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시대가 되며 그마저도 과분한 별명이라는 말도 나오고 말이다.
여기에 폴아웃4 발표 당시 말한 잘 작동한다는 의미의 'It just works(All of this just works)'는 게임의 심각한 버그와 함께 게임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뜻이 되어버렸다. 이후로도 그가 설명한 여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임들이 등장하고, '스타필드' 등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토도키 하와도 밈은 더욱 굳혀져오고 있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하는 진짜 RPG. 그걸 PC 게임에서 가능하게 만든, 그 시작을 연 토드 하워드의 업적은 여전히 빛난다. 그렇기에 언급한 로컬라이징에 대한 중요성도, 글로벌 시장의 가치도 그저 토도키 하와도 상의 '구라'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이미 번듯하게 존재하는 한글 홈페이지에 자막 달린 트레일러까지. 이것들이 베데스다 APAC, 혹은 MS 게이밍이 몰래 진행한 최소한의 국내 출시 의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길 바란다. 당장의 국내 출시 불발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그래서 그 문제가 해결되면 나도 다른 글로벌 팬들처럼 '엘더스크롤4: 오블리비언 리마스터'를 할 수 있다고. 베데스다에 보낸 답장을 기다리는 지금, 그 답은 말로만 글로벌을 외치는 토도키 하와도가 아니라 한국의 시장 전망을 높게 바라보는 토드 하워드의 답변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