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세토 코르사', 가장 현실적인 레이싱의 뒷이야기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아세토 코르사' 시리즈는 대체제가 없다.

레이싱 게임은 게임 산업의 시작 시기와도 맞물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장르이며, 그만큼 수많은 작품들이 지나간 시간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다. 그란투리스모, 니드포스피드, 포르자... 준비 과정 없이도 몇몇 시리즈는 머리를 스쳐갈 정도로 다양한 시리즈가 출시되어왔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 있으니, 바로 '아세토 코르사' 시리즈다. 아세토 코르사가 지닌 '시뮬레이터'로서의 위치는 단언컨대 독보적이다. 가장 재미있는 게임도, 가장 잘 팔린 게임도, 가장 유명한 게임도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게임'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개발사인 '쿠노스 시뮬라치오니'도 그만큼이나 독특하다. 국제 무대에서는 아직 보기 드문 이탈리아의 게임 개발사. 동시에 레이싱 서킷 내에 사무실을 둔, 누가 봐도 레이싱에 진심일 것 같은 개발사. 한 번쯤 대화를 나눠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갈 때, 운 좋게도 '쿠노스 시뮬라치오니'의 대표 '마르코 마사루토'와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쿠노스 시뮬라치오니, '마르코 마사루토' CEO



Q. 이렇게 대화하게 되어 반갑다. 먼저, '쿠노스 시뮬라치오니'와 본인에 대해 소개해줄 수 있나?

=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 쿠노스 시뮬라치오니의 대표 마르코 마사루토다.

쿠노스 시뮬라치오니에 대해 얘기하자면 먼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당시 현 CTO인 '스테파노 카실로'가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에 대한 비전이 있다며 이를 발전시켜 심레이싱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넷카 프로(NetKar Pro)'였고, 이를 시작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나 지금은 4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아세토 코르사'를 개발하고 있는데, 사실 처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광경이다.



▲ 첫 프로젝트였던 넷카 프로(NetKar Pro)


Q. 지금까지 레이싱 게임 '외길'을 걸어 왔다. 작품들만 봐도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보통이 아닌데, 자동차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가 있는가?

= 어렸을 때부터일거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등굣길 인근에 운전 학원이 있었는데, 여기서 보닛을 열고 있는 자동차가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자동차의 엔진을 보았다. 피스톤, 실린더, 밸브가 뭉쳐 하나의 기계가 되고, 그 기계가 저 커다란 차를 움직이게 하는 심장이 된다는 걸 상상하면서 가슴이 뛰는걸 느꼈다.

이후, 엔진이 달린 거라면 뭐든 조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어리고 가난했던 당시의 나로서는 비디오 게임이 이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해진 공간에서, 일정한 규칙을 두고 물리학이 적용된 가상 세계가 바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러선 사실 기차와 헬리콥터 정도를 빼면 엔진이 달린 탈것은 한 번씩 다 조종해본 것 같지만, 여전히 비디오 게임을 통해 현실의 운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정은 남아 있다.





Q. 이번 작품인 '아세토 코르사 EVO'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게임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과거 작품과의 무엇을 다르게 하고 싶었나?

= 아세토 코르사 시리즈는 '타협을 하지 않는 시뮬레이터'로 기획되었고,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레이싱카뿐만 아니라 스포츠카와 양산 차량에 이르는 시뮬레이션을 꿈꿨고, 실차를 보유한 게이머들이 게임을 통해서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린 이런 피드백을 자주 듣곤 한다.

EVO 역시 스포츠카, 레이싱카, 양산차를 비롯해 프로토타입 차량까지 등장하며, 여기에 더해 트랙을 넘어 실제 도로까지 오픈 월드로 구현했다. 독일 아이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오픈 월드 맵에서, 게이머는 자신만의 드라이빙 판타지를 가장 현실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Q. '오픈 월드'의 도입이 인상깊다. 사실 레이싱 게임에서 오픈 월드의 도입은 드물지 않게 이뤄졌는데, 다른 작품들과 EVO는 어떤 면에서 다른가?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뉘르부르크링' 근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경험이다. 이를 위해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소들을 월드 내에 구현했으며, 렌터카 업체나 차량 대리점, 레스토랑 등을 방문할 수도 있다. 다른 작품들이 넓고 광활한 월드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좁지만 보다 밀도 높고 현실적인 세계를 그려냈다.



▲ 트랙은 여전하지만, EVO에선 트랙 밖 세상도 그리고 있다


Q. 아세토 코르사 시리즈의 현실성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아무래도 진짜 현실은 아닌 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을 법 한데, 더 다듬고 싶은 부분, 반영했으면 하는 부분은 혹시 없나?

= 분류 상, 아세토 코르사는 '게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세토 코르사를 '시뮬레이터'로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가 구현한 현실성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더 잘 하고 싶은 것들과 더 넣고 싶은 요소는 굉장히 많으며, 보다 완벽한 시뮬레이터로서 갖춰야 할 많은 것들이 목록 안에 들어 있다.

짧게 몇 가지만 예를 들면, 현실에서 기본 브레이크를 장착한 양산차(혹은 GT 차량이라 해도)가 '몬자''이몰라' 서킷에서 한계까지 주행하면, 몇 바퀴를 돌기도 전에 페이드 현상이 일어난다. GT 차량이라면 10-15바퀴 후에는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해야 할 거다.

또한, 트랙의 표면도 중요한 부분이다. 습도나 트랙 온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날 경주가 격렬했을 경우 남아 있을 고무 찌꺼기나 빗물, 이슬 등이 만들어내는 접지력의 차이도 실제 주행에는 상당한 영향을 준다. 이렇듯, 더할 수 있는 건 끝도 없으며, 실제 차량을 운전하는 우리와 자동차는 현실에서 가장 뛰어난 시뮬레이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보를 0.1초마다 뇌에 전달한다.

때문에, 우리는 정보를 취사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정보를 레이서에게 전달해야 가장 현실감 넘치면서도 실제 운전하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서 결정해야 하며, 이는 상당히 주관적인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의 손상과 피로, 파괴를 구현하고 싶지만, 자동차 제조업체가 엄격한 제한을 걸어두기도 했고, 3D 작업량도 너무 많아지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Q. 최근 자동차 시장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연 '전기 자동차'의 대두일 것 같다. 운동성이나 동력 전달 계통 등이 기존 내연 기관 차량과 상당히 다른데, 이를 구현하는 과정은 어떠했나?

= 꽤 재미있는 도전이었던 것 같다. 현실의 전기 자동차는 가속, 토크, 관성 등 대부분의 운동성에서 매우 '디지털'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이런 매개 변수는 시뮬레이터에 '포팅'하기에 상당히 적합했다.

그리고, 전기 자동차의 운동성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가속'일 것이다. 전기 자동차의 가속은 내연 기관 차량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며, 상당한 재미를 보여준다. 시뮬레이터에서 G필링(G-feeling, 가속 시 몸에 가해지는 부하의 감각)은 대부분 시각적 요소에 의해 비롯되는데, 내연 기관 차량에 비하면 '엔진 소음'이 적어지는 만큼 정보의 손실이 있긴 하지만 워낙 시각적 변화도가 높기에 충분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기 자동차를 운전할 때마다 '비디오 게임 같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시뮬레이터와의 일치도는 상당히 좋다고 생각한다.



▲ 현실부터가 게임 같은 전기차


Q. 헬기와 기차를 제외하면 엔진이 달린 건 한 번씩은 다 몰아봤다고 했다. 그만큼 운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뜻일 건데, 지금껏 경험한 자동차 중 단 하나만을 평생 타야 한다면, 어떤 차를 고르고 싶은가?

= 재미있는 질문 같다. 나는 GP2 차량(F1 바로 이전 단계)까지 운전해보았고, 이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었지만, GT3와 같은 상대적으로 약한 성능의 레이싱카를 운전하는 경험까지 잊을 수는 없었다.

하나만 고르는 건 무척 어려운 경험이지만, 트랙에서 운전한다면 GP2와 포르쉐 GT3 컵을, 도로에서 운행한다면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를 고르겠다.



▲ 공도용(?)으로 고른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


Q. 이탈리아의 게임 씬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세계 게임 시장에서는 아직 입지가 다소 좁은 편인데, 이탈리아 게임 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맞다. 어쩌면 게임을 받아들이는 이탈리아 문화가 이유일 수도 있고, 이 분야에 대한 정부 규제나 재정 규칙의 영향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이탈리아는 유연함이 부족한 편이다 보니 국제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아직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심레이싱 장르를 사랑하는, 그리고 아세토 코르사 시리즈를 즐기는 한국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 최근에 이르러 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세토 코르사 시리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러분의 관심과 지원 없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이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가 지닌 모터스포츠에 대한 조금은 다른 방향의 열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레이싱 시뮬레이터' 애호가들에게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쿠노스 시뮬라치오니를 설립했으며, 최초에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이 비전을 받아들여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좀 더 노력하고, 기술을 갈고닦아 최고의 시뮬레이터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온 마음을 다 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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