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온 변호사입니다. 손은 굳고 눈도 흐려졌지만, 오늘도 normal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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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계약의 자유와 강행규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신다면 계약을 바라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지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계약의 자유에 대해서는 아래 헌법재판소 판례가 잘 설명해주고 있으니, 일단 이 판례부터 살펴보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계약의 자유도 엄연히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권리다
“헌법 제10조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여기의 행복추구권 속에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포함되며, 이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부터 계약의 자유가 파생되는데, 계약의 자유란 계약 체결의 여부, 계약의 상대방, 계약의 방식과 내용 등을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로 결정하는 자유를 말한다(헌법재판소 2002. 1. 31. 선고 2000헌바35 결정).”
위 판례는 우선 계약의 자유가 어떤 기본권에서 도출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0조 제1항 본문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일명 “행복추구권”이라고 불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 안에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포함되어 있고, “계약의 자유”는 여기서 파생된 권리라는 것입니다.
계약의 자유가 어떤 기본권에 포함된 권리인지 굳이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계약의 자유도 엄연히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뒤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국가가 이를 함부로 제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판례에서는 이어서 계약의 자유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는지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계약의 자유란 계약을 체결할지 여부를 내가 결정할 수 있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상대방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고대의 노예가 품삯을 더 달라고 주인에게 요구하거나 중세의 농노가 다른 영주와 계약을 체결하겠다며 영지를 함부로 옮기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서, 사법제도를 통해 계약의 강제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 돈을 빌려 갔는데 약속된 날까지 갚지 않으면 법원의 판결을 받아 상대방의 재산을 경매에 부치고, 이를 현금으로 바꾼 다음 채권을 만족시킬 수 있는데, 이 모든 과정을 국가가 관장합니다.

물론, 계약의 자유가 헌법상의 권리라고 해서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면 계약의 자유도 당연히 제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계약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만 합니다.
계약의 자유는 계약을 체결할지 여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각 꼭지별로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면 계약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계약을 체결할지 여부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한국전력에서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진 시골 마을에 전기 공급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마을 사람들은 TV도 못 보고, 올해같이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지내야 할 겁니다.
이처럼 전기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국민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전기사업법에서는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기공급계약을 체결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한국전력의 자유를 제한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거래거절의 금지

계약의 상대방을 선택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자유지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거래거절’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점적인 반도체 제조회사인 “A반도체”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계열회사인 “A가전”에만 반도체를 제공하고 경쟁사인 “B가전”에게는 반도체 공급을 거부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한 “B가전”은 파산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가전제품 시장에는 “A가전”만 남아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등 독점의 폐해를 야기할 것입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와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건에서 상대방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약 방식도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구두 계약도 원칙적으로는 유효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인 A와 B가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지금부터 우리는 부부야, 라고 감미롭게 속삭여도 혼인의 법적 효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혼인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서명·날인한 혼인신고서를 시·읍·면의 장에게 제출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일단 혼인이 성립하는 순간 상속인 자격이 생기고 부양의무가 발생하는 등 중대한 법률적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계약보다 더 까다로운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등기를 해야만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도 계약 방식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약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 가장 흔한 건 역시 내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회사와 노동자가 합의해서 최저임금보다 적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해도 해당 계약은 최저임금법 위반이라 효력이 없습니다.
이자제한법보다 더 많은 이자를 주겠다는 약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이자제한법은 과도한 채무로 생계가 무너지고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계약 내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리하자면,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계약의 자유라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법률로 계약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내용이나 방식으로만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제하는 법률 조항을 강행규정이라고 하며, 강행규정에 반하는 계약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강행규정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임의규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강행규정에 반하는 계약은 효력이 없지만, 당사자들이 다르게 합의하면 그 합의를 우선 적용하는 법률 조항이 있는데, 이를 임의규정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친구 B로부터 기타를 하나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A는 자유시간이 많은 여름방학 때 기타 연습을 하고 싶은데, 알바비를 받으려면 2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에 A는 기타를 먼저 받고 돈은 2주 후에 지급하기로 B와 합의했습니다.
민법 제536조 제1항에서는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매계약도 한쪽은 물건을 제공하고 다른 한쪽은 돈을 지급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쌍무계약에 해당합니다.
위 조항에 따르면, 매도인은 돈을 받기 전까지 물건을 건네지 않을 수 있고, 매수인은 물건을 받기 전까지 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B도 위 조항을 근거로 A가 돈을 줄 때까지 기타의 인도를 거절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위 민법 조항은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이기 때문에 만약 당사자가 다른 내용으로 합의하였다면 당사자의 합의가 우선합니다. 기타를 받은 날로부터 2주 후에 돈을 지급하겠다는 A와 B의 합의가 있었고, 이는 임의규정인 민법 제536조 제1항에 우선하기 때문에, A가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B가 기타의 인도를 거절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핵심 내용 간단 정리
- 모든 국민은 원하는 상대방과 원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자유가 있다.
- 일정한 목적을 위해 법률로 계약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데, 이를 강행규정이라고 하며, 강행규정을 위반한 계약은 무효다.
- 강행규정과 달리 해당 조항에 위배되더라도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합의가 우선하는 법률 조항을 임의규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