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 여고생 미스터리, '사일런트 힐f'

액션으로 무장했지만, 여전히 '사일런트 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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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적 드문 마을. 자욱한 안개와 폐허가 된 병원, 사이렌이 울리면 깨어나는 마을의 이면과 사냥감을 찾아 활보하는 삼각두. 모두에게 '사일런트 힐'이 남긴 인상은 이처럼 확실하다. 헐리우드 영화로도 소기의 성과를 이룬 이후로는 더욱 더.

오는 25일 출시를 앞둔 '사일런트 힐f'는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다. '사일런트 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사일런트 힐은 나오지 않는다. 시리즈 최초로 일본의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하는 만큼, 기대와 함께 우려 또한 컸다.

개발을 맡은 네오바즈(Neobards)가 호러 장르에서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가 없다는 점도 많은 팬들의 걱정을 샀다. 포팅과 리마스터를 주로 해오던 개발사로, 이들이 맡았던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스핀오프 멀티플레이 타이틀은 아이디어는 좋았을지언정 상업적 성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사일런트 힐f'는 시리즈가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을 충분히 가진 게임이었다. 액션 비중이 커진 점은 낯설지만, 이질적이지 않다. 피로 얼룩진 여고생의 쇠파이프 이면에는, 복잡한 미로와 퍼즐, 기괴한 괴물들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공포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 본 리뷰는 퍼블리셔의 요청에 따라 '스토리 위주' 난이도로 진행되었습니다
※ 일부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게임명: 사일런트 힐f
장르명: 서바이벌 호러
출시일: 2025.09.25.
리뷰판: 리뷰용 빌드
개발사: Neobards, KONAMI
서비스: KONMAI
플랫폼: PC, PS
플레이: PS5


일본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사일런트 힐'무엇이 사일런트 힐을 '사일런트 힐' 답게 하는가

'사일런트 힐f'는 시리즈로서는 최초로 미국이 아닌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1960년대 여고생 '시미즈 히나코'의 시선으로, 일본 시골 마을 '에비스가오카'에서 벌어진 기괴한 사건을 마주한다.

개발진은 게임의 무대를 1960년대로 선택해, 여성들에게 더 많은 제약과 사회적 기대가 부과되던 사회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히나코'는 이러한 사회적 규범, 여성에 대한 기대(원치 않는 상대와 결혼해 집안의 빚을 탕감하는 등)에 염증을 느끼며, 이러한 설정은 '사일런트 힐f'가 마지막까지 전하는 이야기와도 깊게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사일런트 힐' 대신 자리하고 있는 마을 '에비스가오카'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긴장감을 선사할까. 직접 경험해본 이 1960년대 일본 시골 마을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면서도 어딘지 익숙한 느낌을 선사했다.



▲ 청춘 드라마 아닙니다...맞나?

에비스가오카는 산등성이에 자리한 마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곧장 만나게 되는 히나코의 집에서부터 화과자 집이 있는 마을 중심까지는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다. 마을 안에는 집 사이사이로 골목길이 즐비하고, 군데군데 공사가 한창인 구역마저 존재한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상은 하나의 큰 미로와 같은 모습이다.

히나코가 그저 누군가와 대화가 하고 싶어 마을을 찾았던 그날, 평화롭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요괴의 습격으로 마을 전체가 안개에 휩싸이고, 기괴한 모습을 한 괴물들이 습격해 온다. 몇 안 되는 그녀의 친구들은 괴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제각각 흩어지고, 여기서부터 히나코의 악몽같은 여정은 시작된다.



▲ 구불구불한 마을과 안개가 합쳐지며, '사일런트 힐' 느낌을 잘 전달한다

안개에 휩싸인 마을과 누군가를 찾기 위해 나서는 주인공, '사일런트 힐f'는 지금껏 시리즈가 정립해 온 왕도를 뒤따르며 자신만의 '심리적 호러'를 연출한다. 무대가 달라진 만큼, 팬들에게 익숙한 '이면 세계' 또한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플레이해봤다면, 게임의 구조가 서로 다른 두(또는 세 개의) 세계를 오가는 여정으로 짜여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덮인 마을, 그리고 말라붙은 피와 살점, 녹슨 철창으로 장식된 '이면 세계'가 그것이다.

히나코의 여정은 '에비스가오카' 마을을 구석구석 살피며 친구들의 안위를 살피는 것, 그리고 어딘지 도통 알 수 없는, 여우신을 모시는 어둠의 신사를 떠도는 것을 포함한다. 게임 플레이를 따라가다 보면, 순차적으로 두 개의 공간을 오고 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다.

이번 작품에서는 살점과 말라붙은 피, 녹슨 쇠붙이로 장식된 이면 세계를 볼 수는 없지만, 기분나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피안화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동양을 무대로, 색다른 '사일런트 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 또한, 원작의 탄탄한 구조가 뒷받침하고 있다.



▲ 과거 시리즈의 '이면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퍼즐도 만나볼 수 있다


"그래, 이 서늘한 감각"괴물 학살자에게 긴장감을 부여하는 방법



▲ 넌 이제 죽었다

이번 작품이 '액션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우려는 출시 전부터 전 세계 '사일런트 힐' 커뮤니티에서 회자될 정도로 관심이 높은 사안이었다. 쇠파이프를 든 여고생이 무자비하게 괴물들을 도륙내는 장면은 밈(meme)이 되어 순식간에 퍼졌고,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속 전투 장면을 본 많은 이들은 사일런트 힐f가 '소울라이크'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투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일런트 힐f'의 액션, 그리고 전투는 생각보다도 더, 현대적인 3인칭 액션 장르와 맞닿아 있다. '사일런트 힐3'의 헤더 메이슨도 쇠파이프를 들고 괴물을 수없이 두드려 팼지만, 회피와 반격까지 장착한 히나코와 비교할 정도는 못 된다.

플레이어는 듀얼센스 컨트롤러 기준 R1와 R2로 약공격, 강공격을 시전할 수 있으며, 적이 공격하려는 순간을 포착해 강공격을 가하면 더 큰 대미지와 함께 빈틈을 만들어낼 수 있다. L2로는 정신력을 소모해 '집중'을 할 수 있고, 집중 게이지가 다 찰 경우 더 강력한 공격을 시전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공격과 회피 옵션의 조화는 서바이벌 호러 장르 치고는 '전투 중심적'인 게임플레이를 완성하고 있다. 거기에 군데군데 배치된 신사(게임 저장 및 공물 바치기 등 상호작용 가능)까지 더해져 '소울라이크'라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공덕은 게임 속 아이템을 봉납해 얻을 수 있고, 스탯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 간파 타격이 재밌다고 계속 하면, 후에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언제나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 적들을 도륙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다. 일단, 히나코가 에비스가오카에서 획득하는 무기들은 모두 내구도를 가지고 있고, 체감상 꽤나 빠르게 닳아 없어지곤 한다. 무기 수리 키트 아이템을 구비해 두면 수리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거기에 지구력과 정신력으로 나뉜 자원들 또한 액션 위주 플레이에 많은 제한을 준다. 회피를 자주 하면 지구력이 바닥나 공격할 수가 없고, 집중 공격에 정신력을 모두 소모할 경우 체력이 대신 줄어들어 위험하다. 때문에, 적을 만나는 족족 공격을 하다 보면 이후에 꽤나 난감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곤 했다.



▲ 서바이벌? 호러? 심리적? 공포?

에비스가오카와 여우 신사, 게임 속에 등장하는 두 개의 핵심 공간은 저마다 다른 게임플레이 스타일을 선사한다. 플레이어가 안개 덮인 마을을 떠돌며 한정된 자원(내구도 무기, 회복약 등등)을 관리하는 긴장감을 느낀다면, 여우 신사에서는 더욱 복잡한 퍼즐과 음산한 분위기, 더 많은 적들을 만나게 된다. 한 가지 안심이 되는 점이라면, 신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단검, 언월도)들은 내구도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반 이후로 나아가면 여우 신사 공간에서 히나코가 '짐승의 팔'을 얻게 되는데, 거기서부터는 게임플레이가 또 한 번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강력한 공격과 함께, 적의 혼을 흡수해 각성(L3+R3 동시 입력)까지 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 이렇다보니 여우 신사 구간에서는 적과의 전투에 대한 피로도는 줄어들지만, 그만큼 퍼즐을 풀기 위한 동선에 더욱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짐승의 팔을 사용해 적을 처단한다는 콘셉트가 듣기에는 전혀 '사일런트 힐' 같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처음에도 그렇게 느꼈으니. 하지만, 점점 플레이를 진행하다 보면 초반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아가게 되고, 감추어진 진실에 다가가는 여정은 게임의 흡입력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허수아비 선택 잘못했다가 무기 내구도 다 털리는 게 진짜 심리적 공포다


'심리적 호러'도 여전히 그 자리에마지막까지 흡입력을 보여주는 '용기사07'의 스토리텔링까지

꽤 세심하게 꾸며진 레벨디자인 또한 '심리적 호러'를 자극하는 매개로 충실히 활용하는 편이다. 안개 덮힌 마을과 이상한 허수아비가 서있는 들판도 충분히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실내 구조가 더 무서웠다. 일본식 가정집 구조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무섭고, 거기에 스크립트로 짜여진 일부 연출은 가끔 자신이 괴물 학살자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학교'나 거대한 '여우 신사' 등 스테이지 구간 별로 풍경을 다르게 만든 점은 10시간 남짓한 회차 플레이 동안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넌 눈을 왜 그렇게 떠

배경이나 주인공은 제각각이었지만,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근본은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 죽은 아내의 연락을 받은 남편, 느닷없이 자신의 집 현관에 수십 개의 자물쇠가 걸린 비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의 이야기마저도.

'사일런트 힐f' 또한 다르지 않다. 시골 마을 '에비스가오카'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은 주인공 시미즈 히나코가 바라본 모습 그대로 플레이어에게 전달된다. 게임 속 수첩을 잘 살펴본다면, 게임속에서 마주치는 괴물들은 모두 그녀가 생각하는 타인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히나코는 게임의 스토리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이다. 1960년대 일본의 사회상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성격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모습은 어딘지 유약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맞서 싸우기보다는 이미 포기했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든다. '쓰르라미 울 적에'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나리오 라이터, '용기사07'이 완성한 이야기는 이 복잡한 주인공을 내세우며, 이야기의 마지막까지도 풀리지 않는 퍼즐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 전개부터 크리쳐 생김새까지 그로테스크함을 잘 담아냈다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반복 회차 플레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가장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는, '사일런트 힐f'는 반복 회차 플레이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이었다. 과거 시리즈가 그러했듯 여러 엔딩 분기를 가지고 있지만, 첫 번째 회차에서는 어떤 선택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름의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 끝맛이 어딘가 씁쓸하고, 안개 덮인 '에비스가오카'와 의문의 '여우 신사'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게임을 한 번 클리어하고 나면 몇 개의 엔딩을 볼 수 있는 조건이 해금되며, 2회차를 시작하면 이전과 다른 컷신 내용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1회차에 닫혀 있던 집이 열려 있기도 하고,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퍼즐을 풀고 숨겨진 아이템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략 9~10시간 남짓한 1회차 게임플레이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더 많은 이야기를 탐구하고 싶다면 회차 플레이는 필수다. 하지만 1회차만 해도 '사일런트 힐f'가 보여주고자 하는 게임플레이가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으리라.



▲ '사일런트 힐f'의 스토리텔링은 마지막까지 흡입력을 유지한다

정리하자면, '사일런트 힐f'는 1960년대 일본이라는 다소 이국적인(?) 배경을 채택했음에도 시리즈의 탄탄한 정통성을 바탕으로 '사일런트 힐'이라는 느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리메이크, 리마스터, 스핀오프를 제외하면 약 13년 만에 새롭게 출시된 시리즈 신작으로서, 많은 팬들이 가진 우려에도 성공적인 '사일런트 힐'을 완성한 셈이다.

전투와 액션의 비중이 늘어난 것 또한 요 근래 게이머층의 변화를 고려하면 타당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스토리 위주'(개발진에 따르면 가장 '사일런트 힐'과 유사한 난이도)를 포함해 난이도를 세분화해, 이용자의 실력에 따라 유연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심지어 퍼즐 또한 설정에 따라 난이도가 증감하니, 플레이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스토리 위주 난이도가 도전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기 내구도나 회복약 수급 등 자원을 유지하는 난이도는 생각보다 어려운 편이었으며, 자원이 모자랄 경우 3인 이상의 적을 만났을 때는 때때로 저장 불러오기를 해야만 할 정도였다. 퍼즐 또한 가장 낮은 난도에서도 여러 차례 방을 오갈 정도로, 그리 호락호락한 난이도는 아니다.



▲ 첫 번째 엔딩에서는 감춰진 진실을 모두 볼 수 없다. 회차 플레이가 필수인 이유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이동과 관련한 전반적인 애니메이션이 약간 어색한 점이나 전투 시 약간 끊어지는 느낌(타격감을 최대화 하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들은 게임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 게임플레이에 큰 불편함을 주는 요소는 아니었다.

원작의 시스템이나 감성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접근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렇기에, 1회차 게임플레이에서는 생각보다 탐험할 장소가 많지 않게 느껴질 수도, 또는 게임이 조금 빨리 끝나는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러 회차 플레이를 고려해 게임을 설계해, 한정된 시스템 내에서 더욱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고려한 점은 이해가 된다. 사실, 장르 특성상 플레이타임이 너무 길어도 이용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코나미가 최근 출시한 두 편의 '사일런트 힐'은 모두 외주 개발사가 주요 개발을 맡은 작품이 되었다. 이미 호러 게임 장르로 충실한 팬을 보유한 블루버 팀은 '사일런트 힐2'의 리메이크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네오바즈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일런트 힐f'를 통해 개발력을 입증한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다.



  • 시리즈의 정통성을 잇는 게임플레이 구조
  • 자원 제한으로 긴장감 더한 액션과 전투
  • 세심하게 디자인한 다회차 플레이 요소
  • 이용자 배려한 난이도 설정, 편의 기능
  • 전체적으로 어색한 캐릭터 애니메이션
  • 1회차 한정 전체 구역 크기는 아쉬움
  • 보스전까지 전투 패턴이 크게 달라지지 않음

리뷰 플랫폼: PS5 (출시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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