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이 모여서 포근한 휴식을 즐기는 일요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도 넘은 폭력게임'이라는 헤드라인의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첫 시작에서 최일구 앵커는 폭력성 게임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노출되어 있다며, 이른바 '묻지마 살인'식 게임을 언급합니다.
급기야 카뮈의 소설 이방인까지 꺼내드는데,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단지 '태양이 강렬해서' 말도 안되는 '살인'을 한 대목을 언급하면서 그런 일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속에서 "What the..."라는 반응이 0.1초만에 튀어나왔지만, 설마 전 국민이 보는 정규 뉴스프로그램에서 설마 그러겠냐고 고개를 저으며 채널을 고정시켰습니다.
첫번째로 FPS 게임인 서든어택이 등장했습니다.
화면에는 서든어택의 청소년 이용불가버전이 나오면서 총을 쏘고, 칼로 찌르고, 피가 튀는 장면이 연속해서 흘러나옵니다. 덧붙여, 현실에서 초등학생들이 이런 게임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름 모를 UCC 영상을 보여줍니다.
'아무거리낌없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깁니다.'라는 멘트가 뉴스 취재기자 특유의 목소리와 결합하면서 내일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뿜어냅니다.
전 단지, 서든어택이라는 게임이...
설마 MBC 취재기자님이 모르시지는 않겠지만 서든어택은 청소년이용불가와 15세 이용가 두 가지 버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뉴스에서 나온것처럼 초등학생들이 서든어택을 플레이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초등학생들이 서든어택을 청소년이용불가 버전으로 플레이했다면 법으로 지정된 게임등급이 완전 무시되며 서비스되고 있는 PC방 내지는 포탈 운영 실태에 대한 취재가 있어야하는 건 아닌가. 대한민국 게임 등급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사후 관리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가. 저 초등학생들은 어떻게 나이에 맞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네.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습니다.
(기자) '서울의 한 PC방, 게임을 즐기는 초등학생의 입에서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바로 그 초등학생이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 화면이 클로즈업되는데 화들짝 놀랐습니다. 어? 이건 GTA: 산안드레스?
(기자) 묻지마 살인을 하면 할 수도록 돈과 점수는 올라갑니다.
MBC에서 특별히 게임의 폭력성을 취재하기 위해 연일 서울의 PC방을 전전긍긍하며 매의 눈으로 부단한 노력을 펼쳐왔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게임이 자그만치 지금으로부터 북미에서는 6년 전에, 국내는 4년 전에 출시한 오래된 PC 패키지 게임인데다가, 그 당시 이미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엄청난 경고문과 함께 ‘청소년이용불가’로 심의를 받은 게임이다.
또한, GTA: 산안드레스는 PC방 게임순위 점유율 순위 100위까지를 뒤져봐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으로 PC방에서 플레이되는 게임이 아니다.
근데 왜 뉴스에서는 초등학생들의 대표게임처럼 나왔으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청소년이용불가 패키지 게임을 PC방 컴퓨터에 설치해서 초등학생들에게 플레이시켰다는 건데 PC방 업주의 위법성에 대한 언급은 왜 없나.
....아, 감히 이런 궁금증들을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게 '억지설정'이진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뉴스에서 설마하고 넘겼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니 게임 뉴스 취재를 하다보면 이런 '기본적인 부분'은 빠트릴 수도 있다. 또, 이걸 가지고 게임을 아는 사람들이 무작정 비난을 하는건 너무 지나친 것이다. 우연히 취재차 첫 번째 PC방을 방문했는데 GTA: 산안드레스를 플레이하며 욕설을 무차별적으로 내뱉는 초등학생을 만날 수도 있었던 게 아닌가.
애써,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단, 다음 장면에서 펼쳐질 '역사에 길이 남을' 대실험(?)을 보기 전까지는요.
MBC의 실험 과정과 결론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20여 명의 학생들이 컴퓨터 게임에 몰입해 있는 PC방.
2. 곳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 뒤,
3. 게임이 한장 진행 중인 컴퓨터의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끈다.
4.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5. 학생들이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거다.
2. 곳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 뒤,
3. 게임이 한장 진행 중인 컴퓨터의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끈다.
4.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5. 학생들이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