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무지의 해프닝, 게임 해킹과 망국의 유희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70개 |
디아블로3 의 현금거래 기능 도입 이후 게임계에 화제가 된 일이 두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발표한 것으로, 북한이 한국 게임을 해킹하여 오토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중 일부를 북한에 보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모 경제지의 편집부장이 게임을 망국의 유희라 강력하게 규탄한 것입니다.


▷ 경찰: 북한이 해킹해서 오토 만들었다! Vs 엔씨: 오토일 뿐, 해킹과 무관!

1. 경찰 발표 내용은 ?

경찰 발표 내용은 단순합니다. "북한의 프로그래머들이 중국에서 일부 중국인, 한국인들과 손잡고 게임 서버를 해킹해서 빼낸 정보를 이용해서 온라인 게임의 오토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익을 얻은 뒤, 그 수익을 북한에 송금했다" 라는 내용입니다.

경찰 보도자료를 좀 더 자세히 들어다보면, 그 해킹 프로그램의 실체가 오토 프로그램임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이 만든 오토 프로그램을 중국과 한국의 게임 작업장에서 이용했다고는 설명도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북한 출신의 프로그래머라는 점에서, 근자에 발생한 농협 및 네이트 해킹의 주범으로 북한이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향후 사이버테러에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열어두고 있습니다.

2. 엔씨소프트의 반론

경찰 발표에 언급된 게임은 총 3개입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넥슨의 계열사인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 그리고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입니다.

경찰의 발표가 있은지 몇시간 후 엔씨소프트는 다음과 같은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1. 리니지 서버는 해킹당하지 않았으며, 온라인 게임 서버를 해킹해서 오토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3. 오토프로그램은 이용자 PC 의 게임프로그램을 역공학적으로 분석해서 게임 프로그램과 유사하게 동작할 수 있도록 하는 악성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제작을 위해 굳이 보안체계가 잘 갖추어진 게임 서버에 직접 침투할 필요가 없다"

요약하자면, 경찰은 북한이 게임 서버를 해킹해서 오토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는 거고, 엔씨소프트는 오토는 오토일 뿐 서버 해킹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 해킹과 도용의 차이, 넘쳐나는 주민등록번호는 ?

'북한'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 최근에 농협과 네이트 등이 털렸기에 '해킹'에 대해 민감하다는 점에서 이 두가지가 결합한 것처럼 보이는 이번 사건은 게임을 잘 모르는 언론들에 의해 매우 선정적으로 포장되었습니다. '한국 온라인 게임사들이 북한에 의해 해킹당했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이 IT 분야의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게이머가 아니라면 '어머, 농협도, 네이트도, 리니지도 북한이 다 털어갔네'라고 오해하기 딱 좋을만큼 섹시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오토 프로그램의 제작은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오토를 불법으로 규정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게임계의 이런저런 노력이 빛을 발해 오토프로그램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포함된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 통과된 것이 2011년 상반기입니다. 불과 몇달 전입니다.

그래서 2011년 하반기인 이제서야 오토프로그램의 제작 및 배포가 불법이 되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내에서의 오토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버젓이 세금내면서 오토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판매해왔었습니다. 그 전에 작업장으로 걸린 사람들의 경우, 오토프로그램 사용이 아닌, 불법 외화환전 (중국에 송금하기 위해 외화를 불법으로 환전) 이나 계정 도용 등이 처벌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 법이 바뀌면서 오토마우스 업체가 문을 닫기도 했다



관련기사: 업체들 불법 오토 판매 중지, 왜? (2011.07.13)

게임의 회원정보나 게임정보를 담은 서버에 침입해서 자료를 빼가거나 삭제한 것이 해킹입니다. 게이머들이 지긋지긋하게 보아왔던 오토프로그램들은 단지 레벨업이나 게임머니 획득을 위한 자동사냥 프로그램일 뿐이며, 서버의 해킹과는 무관합니다.

만일 오토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해킹을 해야 한다면 (=즉 게임 서버에 침입해서 자료를 빼내와야 한다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은 공식적인 해킹업체와 해커들을 몇년간이나 방치해온 셈입니다. 해킹은 형법의 대상, 따라서 만일 오토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해킹이 필요하다면, 이미 문을 닫은 오토프로그램의 제작자들도 공소시효 만료전에 얼른 잡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프로그래머들은 게임서버를 해킹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불법이지만 중국에서는 아직 불법이 아닌(?) 오토프로그램을 제작, 판매한 것입니다. IT 시대를 맞아 북한도 외화수입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모양입니다. 기자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외화벌이용 개구리를 잡기 위해 들로 나간 북한 어린이들의 그림이 교과서에 그려져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손잡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도용하여 게임사의 회원에 가입해서 오토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입니다. 작업장 사람들은 프로그램의 제작자 국적이 중국이냐 한국이냐 북한이냐는 상관없어합니다. 그저 효율적으로 잘 돌아가서 내 수익이 많아지느냐만 상관있을 뿐입니다. 수익을 얻었으니 계약에 따라 수익중 일부를 북한의 프로그래머들에게 준 것이고, 그 프로그래머들은 본국, 즉 북한에 송금한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지만,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돈을 버는 방식은 자본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농협과 네이트에 이은 게임 해킹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북한이었다는 것이 특이사항일 뿐, 여타의 작업장, 오토프로그램 제작자 입건/구속 사건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 망국의 유희, 하지만 그 언론 사이트에 있는 것은?

최근 게임계의 SNS 를 달군 사건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모 유력 경제지의 편집부장이 게임을 가리켜 망국의 유희라 규탄하며 편집부장 명의의 칼럼을 게재한 것입니다. 진보쪽이라 평가받는 K 신문의 고참 기자가 몇개월전 게임에 대해 비판한 것과 비슷한 논조입니다.

게임을 까는 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습니다. IT 문화, 게임 문화를 잘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일 뿐 정치사회적 스탠스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안이기도 했습니다.

그 칼럼의 필자는 밤 10시가 넘으면 PC방에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현실 파악에 어둡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착각입니다. 필자도, 그에 동조하는 학부모들도 집단 착각입니다.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비슷한 처지의 학부모 모임에 가면, 하나같이 정부는 도대체 뭣하고 있느냐고 울분을 터뜨린다..." 게임 못하게 하면 자기 자녀들이 모두 다 반에서 1등하리라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나 1등은 한명일 수 밖에 없고 서울대도 정원이 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게임에 빠져 있는 것은, 자녀들이 유일하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고 공부하라고만 다그칠 뿐이고, 학교에서는 수능 성적과 대입으로 스트레스만 줄 뿐이며, 학교가 끝나면 학원과 과외로 점철된 상황에서 아이가 만족할 수 있는 거라곤 게임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공부하는 기계도 아닌데 좀 노는 시간도 배려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작 망국의 칼럼 필자도 일 끝나면 쉬고 싶은 건 매한가지일텐데, 자녀 역시 학교 끝나고 좀 놀거나 쉬고 싶지 않을까요?

기자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사뭇 다른 점이 보입니다. 스포츠 중계를 보기 위해 혹은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이유로 아이를 가만 놔두면 쥬니어 네이버나 야후 꾸러기, 그리고 아이패드에서 두시간을 넘게 머물렀으면서도 그만하라 말할라치면 더 있으려 고집을 부립니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10~20분 정도 같이 재미있게 플레이를 해주면, 아이는 자신이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아이패드를 반납하더군요. 실제 경험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언론사입니다. 망국의 칼럼을 게재한 그 언론사의 이름을 딴 게임전문웹진이 버젓이 있습니다. 그것도 그 언론사 사이트 내에 말입니다. 가끔 그 전문웹진의 기사가 그 언론사의 이름을 달고 게재되는 일도 있습니다.


▷ 무지가 부른 해프닝? 무지가 부른 참극?

언론사들이 걸핏하면 해킹 해킹 거리는 것도, 또 게임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도 늘상 있었던 일이라, 감흥이 사라져갑니다.

걱정되는 것은 그들이 법을 적용하는 공권력의 구현체라는 것이고, 언론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언로를 펼치는 사람들이 그리도 무지하다는 것 자체가 씁쓸할 뿐입니다. 물론 몇년전부터 그래왔던 터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 이 사건들을 뭐라고 지칭할 지 모르겠습니다. 게임산업이 이대로 흥한다면, 게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벌인 해프닝으로 기록될테고, 게임산업이 이대로 좌절한다면 무지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선동이 빚은 참극으로 기록되겠지요.

지난 셧다운제 등을 통해서 볼 때 게임계는 여전히 만만한 먹잇감입니다. 프로야구단도 창단하고 이름값도 커졌지만, 문화적/세대적 차이는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차이보다 더 큽니다. 그렇다고 기성 세대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만 한다고 해서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10~20년은 족히 있어야 할테니까요.

이제는 게임업계도 나름 대정부 정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공헌활동이나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도 당연히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국회에서 정치권에서 게임계의 이익과 논리를 대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하고 지원하는 것 역시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변부에서 머무르기에는 게임산업의 덩치가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 무지가 부른 해프닝도 한 두 번이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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