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을 다문 게임위, 분노하는 유저들. 디아3는 어디로?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83개 |
디아블로3의 심의 문제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작년 말 블리자드가 처음 심의 신청을 했을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여론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때만 해도 현금경매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현금경매장을 찬성하는 의견이 80%에 달하는 유저 투표 결과가 존재했음에도 과연 우리나라에서 ‘현금경매장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는 만연해 있었다. 유저와 업계, 매체 사이에서도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며 각을 세운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모든 비난의 화살이 게임물등급위원회를 향하고 있다. 게임위 홈페이지에 직접 분노를 표출하는 게이머를 비롯해 대부분 매체에서도 게임위를 탓하는 기사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주위를 돌아돌면 애써 침묵은 지키지만 게임위를 향한 업계의 시선도 곱지가 않다.

이유가 도대체 뭘까? 게임위가 디아블로3의 등급심의를 최초 보류시킨 12월 16일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제3업체를 실제로 보여달라? 게임위 추가자료의 모순점

게임위는 심의를 보류하면서 블리자드에 추가자료를 요청했다. 게임위가 요구한 추가자료란 아이템 판매자가 게임 내 아이템을 현금경매장에 올리고 구매자가 그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입한 이후, ‘제3의 업체가 그 현금을 판매자 돌려주는 과정’을 직접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블리자드는 즉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아직 정식 심의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제3 업체와의 업무 프로세스를 실제로 보여달라는 요구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게임위의 요구를 빗대어 보면 신규 건축공법 허가를 관청에 요청했는데 관청에서 '신 건축공법의 안정성을 실제 건물을 지어서 증명하라'고 답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실제 건물을 짓지 못하는 상황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위 예는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일본 관료 사회의 경직성을 이야기할 때 언급됐다.

블리자드는 다른 나라에 먼저 디아블로3를 출시하고 그때 제3업체의 결제 프로세스를 게임위에 제출하는 방법을 택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결국, 현금경매장에서 ‘환전’ 부분을 뺀 빌드를 제출하는 것으로 결론 낸다. 디아블로3의 한국 출시만 연기되는 사태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으리라.



= 이유없는 세 번의 심의 연기, 분노하는 게이머들

일주일 후인 12월 22일 블리자드는 ‘환전’ 부분을 뺀 빌드를 게임위에 제출했다. 해당 버전에 따르면 게이머는 아이템을 판매한 후 그 대금은 ‘배틀코인’이라고 불리는 블리자드 포인트로 받는다. 해당 포인트는 블리자드 스토어에서 WoW 계정비를 결제하거나 스타크래프트2 패키지 등을 구입할 수 있지만, 현금화는 불가능하다.

환전 부분이 일단 빠져있는 만큼 해당 뉴스를 접한 매체와 업계, 유저들은 조만간 디아블로3의 심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 결과야 어떻든 간에 말이다.

그러나 게임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을 택했다. 12월 28일에 열린 제99차 등급분류회의에서 디아블로3를 상정시키지도 않은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었다. 블리자드는 게임위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전달받지 못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고, 게임위는 ‘어떤 것도 밝힐 수 없다.’라는 입장만 되풀일 했을 뿐이었다.

게임위 등급 분류 심의는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일주일 딱 두 번 열린다. 수요일인 12월 28일에 상정이 되지 않았고 12월 30일인 금요일은 게임위 종무식으로 심의가 아예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심의는 자연스럽게 해를 넘겨 1월 4일 열렸다.

그래서 대부분 게이머들과 매체들은 1월 4일에는 드디어 디아블로3의 심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게임위는 또 등급 심의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디아블로3를 상정하지 않았다.

그 다음 등급분류회의였던 1월 6일, 성급한 일부 매체에서는 게임위 심의위원의 말을 인용해 디아블로3가 청소년이용불가로 통과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디아블로3는 상정되지 않았고 이 시점부터 게이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날 저녁 우연인지는 몰라도 점검 때문에 게임위 홈페이지는 접속할 수 없었다.




[ ▲현재 게임물등급위원회 참여마당 게시판 상황 ]




= 입을 다문 게임위, 결국 국민신문고까지 울리는데

그러나 게임위는 아무런 말이 없다. 1월 6일 게임위 홈페이지는 왜 디아블로3 심의가 이유 없이 연기되는지 묻는 유저들의 게시글로 도배됐다. 일부 유저들은 직접 홈페이지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물어봤지만 ‘기밀 상황이므로 답변을 해줄 수 없다.’라는 입장만 재확인하고 있다.

▶ [디아3 인벤 유저글] 방금 게등위 심의부분실과 통화 했습니다


게임위의 모르쇠 작전은 매체들에도 마찬가지다. 인벤에서도 디아블로3가 첫 심의 신청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심의 과정에 대한 문의 및 결과 확인을 요청하고 일체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심의 상황이나 전후 과정에 대한 설명도 일절 없다.

오죽 답답하면 게시판과 전화 문의를 넘어서 ‘국민신문고’를 찾아가 게임위의 불성실함을 비판하며 민원을 넣는 게이머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겠는가.

▶ 한 유저의 '디아블로3' 심의 국민신문고 민원 관련글







= 게임위, 이제는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

일각에서 디아블로3 심의에 대한 리스크를 지기 싫어 게임위가 무작정 시간 끌기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정부지원금을 받는 기관으로 이유 없는 심의 연기와 답변 회피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논란이 됐던 ‘환전기능’이 빠졌는데도 심의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추측으로 ‘정부 입김론’도 가세하고 있다. 최근 사행성 확산에 사뭇 민감해진 문화체육관광부의 방침이 디아블로3의 심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디아블로3의 심의를 통과시켜주면 다른 사행성 게임이 활개칠 수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를 담고 있다는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게임위는 독립적인 심의기관이며 게임 심의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못 박은 양측의 주장을 떠올려보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게임 심의 과정의 투명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으로서 심의 과정이나 상황,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인데 그 어느 하나 알지 못하고 심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상정이 된다면 언제 되는지, 안된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심의에서 어떤 부분이 쟁점인지, 연기된다면 다음 상정은 언제 되는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게임위가 국민의 신뢰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나 다름없다. 게임위는 게임을 심의해서 서비스되는 과정에 필요한 하나의 기구이지, 게임 그 자체를 쥐고 흔드는 무소불위의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위에 대한 정부의 국고지원이 올해로 끝나고, 그 후에는 게임심의를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2012년 6월부터 민간 이양 준비에 들어가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옛말에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이 있다. 마무리가 중요하므로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봉사기관으로서 게이머,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이제는 내놓길 바란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