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에트, 대한민국 1등 개발사" 조중필 대표의 꿈

인터뷰 | 오의덕 기자 | 댓글: 19개 |
#1

게임 회사라면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직원 100명이 훌쩍 넘는 독립 개발사의 어엿한 CEO가 됐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할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은 간단했다.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는 올해 2종의 대작 온라인 게임을 시장에 동시 출시한다. MMORPG 레이더즈와 온라인 액션 ‘건즈 더 세컨드 듀얼’(건즈2)이 바로 그것이다. 게임회사 젊은 CEO의 출사표, 신년 특집 기사로 다루기에는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장장 2시간 동안 펼치진 인터뷰에서 조중필 대표는 10여 년에 걸친 마이에트 창립기를 거침없이 풀어내기 시작했다. 특유의 디테일과 유머감각은 우리를 시도 때도 없이 넉다운 시켰다. 인터뷰하면서 그렇게 함께 웃어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90년대 말 게임 벤처산업의 시작을 관통하는 내용 때문에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의 10년 역사 전체를 글로 옮긴다는 거창한 컨셉을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짜내고 마음에 드는 전개 방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편하게 물어보세요. 전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는 조중필 대표가 생각났다. ‘멋진 게임 하나 만들고 끝내겠다.’는 집념 때문에 27세에 겁 없이 회사를 창립했던 그. 결국, 별다른 가공 없이 솔직 담백한 그의 화법을 그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지금 시기에 흔치 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크롤의 압박을 이겨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의 조중필 대표이사 ]




#2

조중필 대표의 어린 시절은 의외로 게임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전자 제품에 무척 이나 관심이 많았지만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비롯해 게임기는 일체 사주지 않았다. ‘게임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는 어명이 떨어지기도 했다.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게임워치'라는 휴대용 게임기를 봤어요. 너무 갖고 싶은 거예요. 집에 와서 동생이랑 종이에 그 게임기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종이를 오려서 풀로 붙여 놓고 ‘이게 게임기’라며 갖고 놀았던 거죠. 아마 그때부터 게임에 대한 남다른 미련이랄까 애착이랄까, 그런 것들이 생겨난 거 같아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첫 알바를 해서 샀던 게 '슈퍼패미콤'이었다니까요.”

고3 때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갑자기 만화가가 되겠다며 온 집안을 흔들어 놨다. 하지만 앞으로는 컴퓨터를 통해 만화도 그리게 될 거라서 꼭 대학 진학 후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과외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게 된다. 단, 전공이 ‘기계공학과’였다는 것은 함정 아닌 함정.

“결국, 대학 1학년이 되어서야 난생 처음 컴퓨터를 사용하게 됐던 겁니다. 근데 과가 기계공학이다 보니 맨날 그리는 건 캐드(CAD) 이런 것밖에 없었어요. 그제야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개인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93년, 조중필 대표가 대학 2년 때의 일이다. 우연히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월급이 100만 원이 넘는 일이 들어왔다. 퇴마록이라는 게임을 만드는데 '그래픽 도트 작업을 해달라'는 요청. 그렇게 서서히 게임 쪽과 인연을 맺게 된다.

갈수록 게임에 대한 열정은 커져만 갔고, 오직 그래픽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조중필 대표는 C 언어를 비롯해 게임 프로그래밍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다.

하이텔 게오동, 게제동 등 PC 통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적극 만나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게임 개발을 늦게 시작했으니 뒤처지지 않게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그를 매질하기도 했다.


#3

“근데 게임 회사는 정말이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쳐다도 안 봤어요. 93년이면 미리내소프트의 ‘그날이오면’이 처음 PC 판으로 나올 땐 데요. 그 당시 게임 개발 회사들이 엄청나게 열악했습니다. 월급이라고 해 봤자 40만 원 정도였어요. 연봉은 6백만 원 이러고. 게다가 받으면 다행이지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게임 회사에서 패키지 게임을 만들어서 퍼블리셔한테 넘기면 초도물량이 매진되는 극히 운이 좋은 경우 개발사에 5천만 원 정도가 떨어지는 상황. 게임 개발에 최소 1년, 2년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몇 군데서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거절했습니다. 차라리 대학원에 진학해서 컴퓨터 공학을 더 배워보고 싶었어요. 2년 동안 박사 과정까지 갔는데 그때 친구들과 게임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종종 했어요. 근데 매번 실패했죠. 꿈은 리차드 게리엇 보다 더 멋진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너무 허접해서. (웃음)”

조중필 대표에 의하면 지금 게임 업계인들을 출신 그룹별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넥슨, 네오위즈 수뇌부에 포진해있는 서울대, 카이스트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 그룹이 그 첫 번째며, 하이텔 게임 제작 동호회가 그 두 번째다.

마지막 조중필 대표가 속한 그룹이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인데, 삼성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인재를 국가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지원해주던 프로그램이었다.

“90년대 초는 전산과를 졸업해 봤자 밥 벌어먹기 어렵던 시기였습니다. 불법 복사가 만연했고요. 제대로 된 산업으로도 자리 잡지 못했죠. 그래서 삼성에서 나서서 나름 좋은 일을 한 겁니다. 그때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관리자였던 분들이 지금 게임계에 많이 가 있으세요. IMC 김학규 대표부터 슬러거를 개발한 와이즈캣 나민우 대표, 다담게임의 송길섭 대표. 아.. 그래텍의 배인식 대표도 관리자 출신이셨어요”





[ ▲ 아직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게임업계인을 많이 배출했다고. ]




#4

바로 여기서 역사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내부에 조중필 대표를 포함, 다섯 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 하나 생긴 것. 각각 출신 학교는 다 달랐지만, 죽이 잘 맞았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게임 개발한다니 얕잡아 보고 이용하려는 세력도 많았다.

그래서 조중필 대표가 총대를 메고 간이사업자,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주머니에 있었던 것은 단돈 20만 원. 제출 서류에 20만 원 말고 200만 원으로 기록하라는 공무원의 따뜻한(?) 조언까지 들었다.

“97년쯤이었을 겁니다. 처음으로 3D로 만든 MMORPG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어요. 필드에서 유저들이 모여 사냥할 수 있는 정도였죠. 우리끼리는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위에서는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한국에 3D 기술도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뭐하러 이런 걸 만드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인텔에서 나온 3D 기술을 공부하던 조중필 대표. 삼성전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MS에서 ‘다이렉트X’라는 신기술이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베타테스트를 신청해 거의 최초로 3D 기술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체 3D 엔진을 하나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른다.

“순진한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만든 엔진을 밖에 내다 팔아도 되겠다. 근데 그냥 팔면 잘 안 팔리니까 데모 프로그램을 만들자. 그렇게 해서 만들자고 한 게임이 ‘에이스 사가’ 였어요. ‘이 엔진으로 15일 정도면 이 정도 게임 하나는 뚝딱 만듭니다.’ 이런 거죠. (웃음)"

이 믿기 어려운 에피소드가 바로 지금의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를 있게 한 최초의 작품 ‘에이스 사가’의 탄생 비화인 것이다.





[ ▲ 마이에트의 처녀작, 에이스 사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





#5

“97년부터 벤처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 IMF를 타개하기 위해 벤처 기업 육성에 집중하기로 한 거죠. 닷컴 주소 붙어있는 상태에서 신문에 광고하면 여기저기서 달려들어 주식을 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에서 정책 자금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소화 시킬 대상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래서인지 사기꾼들이 말도 안 되는 사업계획으로 투자받아 한탕 해 먹던 시절이었죠”

이듬해인 98년에는 정부가 게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나 개발사가 아닌 유통사였다. PC방 사업을 펼친 업체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일도 일어난다. 지금은 좋지 않은 소문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후문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벤처 붐이 막바지에 이르자 드디어 99년에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자는 인식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조중필 대표의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가 본격적으로 기업의 틀을 갖춘 것도 바로 그즈음이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습니다. 에이스 사가를 일단 완성하자. 그리고 완성되면 해체하자. 끝장을 보자는 생각이 제일 간절했어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고 보니 직원들이 결혼해서 가족이 생기는 거예요. 뭔가 압박감이 오면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선택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구나. 큰일 났다.”

15일이면 완성될 것 같았던 에이스 사가는 2000년도 훌쩍 넘겨 개발에 착수한 지 5년 만인 2002년에 발매된다. 그보다 일찍 골드버전이 완성됐지만 조중필 대표는 욕심을 부린다. 퍼블리셔인 써니YNK에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 것.

“최소한 ‘재밌는 게임을 만들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었습니다. 끝을 내고 싶다. 도와 달라. 이렇게 계속 부탁했어요.”

에이스 사가는 스타크래프트 아류작에 불과했던 대부분 국산 RTS와는 차별된 모습으로 ‘좋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했고 전체 판매량이 5천 장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 당시 에이스 사가의 패키지 구입비는 3만 3천 원. 한 장 팔릴 때마다 마이에트에 들어오는 수익은 만원 남짓이었다.

“그때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 짓을 또 하나 했어요. 에이스 사가 출시 버전에 버그가 많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그게 듣기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추가금을 들여서 6개월 동안 대규모 패치를 통해 버그를 모조리 다 잡기로 했어요. 그렇게 패치 파일을 업로드 하고 에이스 사가 홈페이지에 이게 마지막 패치라는 내용으로 직접 공지를 올렸습니다. 회사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요. 마음이 아팠죠.”



▶ 에이스 사가 2002년 프로모션 영상






#6

“사실 건즈는 원래 MMORPG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건즈의 탄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에이스사가 이후 차기작을 구상하던 조중필 대표의 머릿속에 99년에 이미 써 놓은 건즈의 시니리오가 떠올랐다. 3D 엔진과 에이스 사가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RPG를 이제는 진짜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당시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의 직원 수는 경리 직원 합쳐서 10명. MMORPG를 개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일단 게임을 MMORPG로 생각하고 한참 동안 만들었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이 인원으로 과연 완성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해서 꼭 MMORPG를 만들어야 하나.”

결국, 신작의 컨셉은 MMORPG에서 ‘액션’으로 급 전환된다. 개발팀 전원이 퀘이크3를 열광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FPS도 고려 대상 중의 하나였지만 도저히 비전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제가 FPS는 반대했습니다. FPS에 월정액은 말도 안 됐고요. 건즈가 나올 당시만 해도 부분 유료화에 대한 체계도 거의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신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거듭됐다. 에이스 사가를 날렸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조중필 대표를 조여 왔다. 그때 조중필 대표의 나이가 31세.

“RPG를 모태로 하고 총과 칼을 동시에 사용하는 액션 게임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시점은 3인칭으로 결정했고요. 유저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직접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캐릭터 치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생긴다고 판단했죠. 근데 3인칭으로 해 놓고 보니 타겟들이 계속 가려지는 거예요. FPS처럼 360도 시야 회전이 가능하게 만들고 싶어서 아예 캐릭터가 벽을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디어가 점점 발전해나가면서 건즈가 서서히 탄생하게 됐습니다.”

불과 10명뿐이었지만 항상 동고동락해왔던 동료여서 가능했던 일일까. 건즈 개발에 착수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서 프로토타입이 나왔으며, 정확히 1년이 지난 후에는 바로 정식 서비스에 돌입하게 된다.

“에이스 사가 출시 다음 해인 2003년에 건즈 개발을 시작해서 그해 12월에 CJ( 그 당시 명칭은 ‘ 플레너스’)와 국내 판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듬해인 2004년 2월에 건즈 서비스를 시작했고요, 4월에 부분 유료화를 실시했죠. 정말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2004년 1월 프리오픈에서만 동시접속자 수 1만 2천 명을 기록한 건즈. 조중필 대표와 마이에트의 완벽한 구세주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 ▲ 마이에트의 출세작 건즈 더 듀얼, 흥행은 물론 참신한 게임성으로 호평받았다. ]





#7

“건즈 정식서비스 이후에도 항상 불안했습니다. 서비스 1년까지는 임원진들은 월급의 100%도 다 못 가져갔어요. 그동안 진 빚도 다 갚고 직원도 21명 정도로 늘었지만, 회사가 언제 없어질지 항상 불안했었죠.”

프리오픈때 흥했던 동접자 수치가 오픈베타로 접어들면서 2,3천 명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새로운 패치를 업데이트 할수록 유저가 떨어져 나가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졌던 것. 조중필 대표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 원인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최근에는 게임을 막 서비스하시는 사장님들이 저한테 조언을 많이 구하세요. 그분들 대부분이 게시판만 보고 울고 웃고 그러시더라고요. 유저들 피드백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데이터입니다. 실제로 게임을 접고 떠나는 유저들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건즈 때 겪어보니 왜 사람들이 게임을 그만두는지 진짜 원인을 찾아내는 것, 그게 핵심이더라고요.”

건즈의 문제는 역시나 신규 패치였다. 새로운 콘텐츠와 기능 추가에만 집중하느라 안정성을 검증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발자들은 인지를 못했지만, 일반 유저들은 수많은 버그와 이유 없는 팅김 현상 때문에 건즈를 점점 더 떠나고 있었다. 조중필 대표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모든 패치와 업데이트에 대해서 저한테 직접 승인을 받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아예 새로운 기능을 넣지 말라고 했어요. 버그만 잡으라고요. 이와 동시에 따로 준비한 것이 최적화 작업이었습니다. 안정성을 높이면서 최저사양을 '지포스 mx440'에 맞추도록 했습니다. 에이스 사가보다도 더 낮아진 사양이었어요. 심지어는 부두 그래픽 카드에서도 돌아갔거든요.”

그렇게 노력한 결과 동시접속자 수는 점점 늘어 2만 궤도에 진입했고 2005년 말에는 건즈의 최고 동시접속자 수가 6만 5천에 이른다. 드디어, 마이에트라는 회사가 창업한 지 6년 만에 안정세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8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건즈가 잘 되고 있지만 건즈 하나만 보다 회사를 접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 나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조중필 대표가 구상한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건즈를 더 가꿀 것인지 두 번째, 건즈를 두고 해외 판권에 더 집중할 것인지 마지막으로 세 번째, 대망의 차기작을 준비할 것인지. 고민 끝에 조중필 대표를 비롯한 창업자 전원은 만장일치로 ‘미래에 투자하자.’고 결정을 내린다. 차기작 '레이더즈'에 회사 전체의 역량을 올인하기로 한 것.

“누군가가 그랬던 것 같은데.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미친 말을 타고 있는 느낌이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죽는 다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MMORPG를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한을 이번에는 한번 풀어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방향은 기존 MMORPG와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액션과 에픽몬스터 레이드를 콘셉으로한 '레이더즈'가 나오게 됐습니다.”

에이스 사가부터 시작된 자체 엔진 기술이 그대로 이어져 건즈, 레이더즈에서도 이어졌다. 현재 마이에트의 엔진팀만 12명이며 최적화 작업은 물론 새로운 그래픽 기술을 접목하는 작업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자체 엔진에 대한 기술력은 마이에트만의 자랑이자 자부심. 최근에는 개발 중인 레이더즈의 그래픽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키는 작업도 완료했다.

하지만 조중필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6년 레이더즈 개발을 결정한 후 2007년에는 건즈2 프로젝트까지 시작한다. 원래는 건즈2는 신형 엔진을 탑재한 건즈 정도의 개념이었다. 단점을 개선하고 장점을 발전시키면 금방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었다고. 그러나 개발하면 할수록 퍼블리셔는 물론, 개발팀 자체 욕심이 커져 레이더즈에 더금가는 대작 프로젝트가 돼버렸다.

이 절묘한 타이밍에 조중필 대표에게 2012년 레이더즈와 건즈2를 동시에 시장에 내놓은 심정이 어떤지를 물어봤다.

“설렘니다. 사실 수익은 부차적인 문제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게임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제품들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유저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 지가 제일 궁금합니다.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웃음) 이번에는 해외 진출도 본격적으로 고려 중인데 두 게임 모두 정말 잘해야죠. 많이 도와주세요. (웃음)”





[ ▲ 최근 그래픽을 전면적으로 업그레이드한 '레이더즈' ]


▶ 레이더즈, 그래픽 업데이트한 스크린샷 7종 공개



#9

인터뷰가 막바지에 흐르자, 준비했던 마지막 질문을 꺼내기로 했다.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대형 업체가 중, 소형 독립 개발사를 인수하는 일이 잦다. 실제로 일정 규모의 독립개발사가 전무한 상황이기도 하다. 마이에트도 대형업체들로부터 인수의 유혹을 받지 않았을까?

갑자기 조중필 대표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 '회사 인수/합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밝혔다.

“일단은 제가 인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제가 인터뷰 제일 처음 게임회사를 들어가기 싫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이유가 다닐만한 회사가 없어 보였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만들면서도 가장 먼저 생각한 게 ‘다닐만한 회사를 만들자’, ‘개발자들이 봤을 때 신 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 였어요.”

“아직 그 꿈이 100% 실현됐다고 말하기는 어렵겠겠지만 노력은 정말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해주는 큰 회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그 마음도 바뀌게 될 것이고 이미 그때는 제 소신대로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니 아예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지금까지 수없이 그런 제안을 많이 받았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업체 등등.. 에이스 사가 만들 때부터 그래 왔어요. 인수 얘기만 나오면 이제는 너무 지겨워서. 업계에서 알만한 분들은 다 알아요. 제가 인수의 ‘인’ 자만 나와도 발로 책상 차버리고 나와버린다는 걸요. 모 매체에 근거없인 인수기사가 나기도 했었는데, 직접 전화해서 바로 내려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저는 그냥 저와 마이에트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까지 부딪히며 앞으로 나가고 싶어요. 그게 최종 목표입니다. ”





[ ▲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여기만 둘어봐도 회사 분위기는 알 수 있을 정도. ]



▶ http://www.maiet.co.kr/




#10

“저도 그렇고 같은 창업자분들이 다른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어요. 다른 회사라면 별것도 아닌 시스템인데 마이에트는 해본 적이 없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처음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 뽑을 때 뭔가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할 게 없는 거예요. ‘일은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밀도가 중요한 거다’.라는 믿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마이에트는 10시 출근, 6시 퇴근, 주 5일제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유럽에 있는 회사보다 근무시간이 적더라고요. (웃음) ”

회사 얘기로 돌아가자 조중필 대표의 표정이 다시금 환해졌다. 사실, 마이에트 복지에 관한 이야기는 게임계에서 나름 유명한 편이다. 조중필 대표가 언급한 근무시간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며 야근 없는 게임업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근무시간 외에도 개발자를 위한 혜택이 다양하며 회사 내부에서 자체 자체적으로 돌아가는 스터디 그룹도 상당히 많다고.

“2006년을 지나 회사 직원이 30명에 가까워지면서 생각했던 게 ‘직원들이 똑똑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였어요. 가뜩이나 우리는 근무시간도 짧은데 남는 시간을 자기 개인 인생을 사는 데도 분명 써야 하지만 그중에 몇 시간 정도는 자기 발전에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한 달에 30만 원 정도씩 학원비 같은 걸 지원해줍니다.“

“다행히도 2007년부터는 회사에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많이 활성화되더라고요. 스터디그룹을 하는 사람들과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격차가 점점 생기다 보니 개발자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런걸 보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기쁘죠. 고맙기도 하고.”

기자로서(?) 훈훈한 해피엔딩 분위기를 마냥 즐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갈고 닦아온 악마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마이에트에서 그렇게 혜택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실력을 키운 다음에 다른 회사로 이직해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한참을 주춤거릴 거라 예상했으나 의외로 답변은 빠르게 나왔다.

“아.. 저도 사람이라서 그런 고민 안 해본 건 아닌데요.(웃음)”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사실 좀 섭섭하겠죠. 근데 그 사람이 다른 회사 가더라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특히 ‘마이에트’ 출신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거면 저는 만족할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 됐죠, 뭐. (웃음)”

가져간 노트북에는 사실 ‘왜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가 지금 대한민국 게임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독립개발사로 인정받을까요.'라는 질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조중필 대표의 답변을 듣고 나니 더 물어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인터뷰를 끝내고 가져간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는데 옆에서 조중필 대표가 또 환하게 웃고 있다. 2012년, 레이더즈와 건즈2로 새로운 전기를 개척하는 조중필 대표와 마이에트에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진심으로.





[ ▲ 레이더즈와 2012년 동시 출시를 노리는 마이에트의 액션 대작, 건즈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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