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는 NO, 퀘스트 패러다임의 전환을 꿈꾸며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9개 |



킬러, 배달부는 이제 그만, 퀘스트 패러다임의 전환을 꿈꾸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하 와우)'의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인해 그동안 하드코어 유저의 '전유물'으로만 인식되었던 MMORPG가 캐쥬얼 유저를 적극 수용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에버퀘스트, 다옥 등의 시리즈를 히트시켰던 해외 개발사들도 차기작에서는 컨텐츠의 방향성을 하드코어 유저와 캐쥬얼 유저, 양방향에 맞추고 있으며, 더 높은 수익의 획득과 시장창출을 위해서 와우가 시도하고 이뤄냈던 MMORPG의 '유저 포용능력'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게임계도 변화의 바람에 동참했다. 국내 MMORPG의 대표 명사로 인식되어버린 '반복노동에 의한 레벨링 시스템', 이른바 '노다가'성 게임을 탈피하고자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장르, 다양한 컨셉의 꽤 괜찮은 게임들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연간 수십, 수백 개의 게임들이 쏟아지는 현재 MMORPG 시장 상황에서 '변화'라는 주제는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상황을 게임을 생산하는 주체인 개발사가 먼저 인지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게임계 전체를 아울러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 2007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인 '반지의 제왕 온라인' ]




하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MMORPG와 같은 현대 PC 롤플레잉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퀘스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혹자는 '퀘스트' 라는 주제가 왜 갑자기 등장했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MMORPG에서 퀘스트를 구현하는 것 자체가 RPG 전체 세계를 디자인할 때나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구성함에 있어 게임성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와우의 예를 들어보자. 와우라는 게임 자체가 방대한 워크래프트 스토리에 기초하고 있고, 게임 상에 구현된 퀘스트와 NPC, 지역, 건물 등 세계를 구성하는 그 모든 것들이 워크래프트 스토리에 부합하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하지만, 퀘스트라는 녀석만 따로 떼어 놓고 뜯어보면 매우 단순한 구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와우에서 인간 종족을 선택했을 때 시작 지연인 노스샤이어 수도원에서 가장 먼저 받을 수 있는 "내부의 위협"이라는 퀘스트 내용이다. 내용을 읽어보면 눈물이 다 흐를 만큼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결국 수도원 안에 있는 NPC와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 와우, 내부의 위협 퀘스트 ]




만레벨이 되어도 퀘스트는 이와 같은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위에서 예를 든 것 처럼 "단순 대화형 퀘스트"에서 퀘스트 아이템을 다른 NPC에게 전달해야 하는 "배달형" 퀘스트가 있고, 특정 지역에서 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하는 "루팅형 퀘스트"가 있다.


그리고, 특정 몬스터를 처치하는 "처치형" 퀘스트가 있다. 퀘스트 스토리가 짧든지 길든지, 혹은 처치 대상이 확장팩의 최종 보스인 일리단이든지, 한 마리의 병든 늑대든지, 어차피 특정 지역에 가서 특정 몬스터를 처치하는 구조는 동일하다.


와우에서는 처치형 퀘스트에서 조금 더 발전한 형태로 처치와 동시에 퀘스트 아이템을 일정 확률로 획득하는 "처치+루팅형" 퀘스트, NPC 와 함께 이동하면서 주변의 공격 몬스터를 처치하는 "호위형" 퀘스트도 있다.


혹시 위에서 언급한 퀘스트 유형 외에 와우에서 볼 수 있는 다른 퀘스트가 있다면 제보해달라. 하지만, 어떤 퀘스트 라도 위의 단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단순한 퀘스트 구조라고 할지라도,


와우는 스토리만 읽어도 누구나 재미있어하는 워크래프트 역사관과 스토리에 등장하는 '영웅'같은 등장인물 NPC들을 적절하게 믹스하여, 제한성은 있지만 가상 세계 안에서 유저가 '워크래프트 세계'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플레이할 수 있게 해 놓았고, 전 세계적으로 수 백만 명의 유저에게 사랑받는 MMORPG가 되었다. 여기에 블리자드, 그리고 워크래프트라는 브랜드 네임 역시 나름 공헌을 했으리라.


그렇다고, 완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4시간 편의점 근무도 아닌데 같은 장소에서 머리에 항상 느낌표를 띄우며 퀘스트를 주기위해 대기하는 마을 경비병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닉시아를 처치한 유저의 이름을 도시 방방곡곡 외치느라 목이 다 쉬어버렸다는 NPC 모씨.






[ 그들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




실력있는 공격대가 최종 보스 공략에 성공해도, 항상 그 주변 마을 주민 NPC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유저만 만나면 퀘스트를 주려고 발버둥친다.


이런 구조는 RPG게임을 플레이함에 있어 게임안의 가상 세계가 인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느낌을 계속 들게 만들어 유저의 몰입감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일한 단순 퀘스트 구조로 인해 게임의 생명이 길어질수록 퀘스트 자체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그 의미도 퇴색되어 간다.


와우 오리지날 버전에서 '물고기 10마리'를 처치하는 것과 와우 확장팩에서 '이름이 조금 다른 물고기 10마리'를 처치하는 것과는, 방대한 스토리에 기반한 물고기를 꼭 처치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아무리 부여하더라도 유저가 받는 재미와 감동에 있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와우는 전 세계적으로 대박이 났고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게임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와우를 개발할 당시에는 위와 같은 퀘스트 라인과 그에 맞는 게임 세계 디자인이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을지 모르지만, 와우가 출시된지 몇 년이 흐른 시점인 현재에 개발하고 있는 게임들이 와우의 퀘스트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와우가 성공했기에, 많은 개발사들이 와우를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이해하나, 와우의 퀘스트 구조를 마치 퀘스트의 '표준' 이자 '모범'인양 생각하고 신작을 개발한다는 현실은 그리 달갑지가 않다. 스토리 좀 깔려있고 몬스터 몇 마리 처치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퀘스트의 다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게임을 개발한다 한들 와우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며, 와우에서 충분히 즐겨왔던 것을 다른 게임에서 다른 스토리로 그래도 재탕하는 수준은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도 즐거움을 주기가 힘들다. 시작하자마자 머리위에 무언가 표시를 띄우는 NPC 를 찾아 퀘스트를 받는다고 한들 더 이상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리 만무하다. 특히나 개발자들은 나름 자부할지라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는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면 단지 클릭 몇번 더하는 것과 보상 조금 더 받는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레벨링과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각종 매체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아래와 같은 퀘스트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한 마을에 있느 어떤 NPC가 거리 상으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또 다른 NPC에게 '황금주괴 10개'를 전달해달라고 한다. 스토리야 얼마든지 스토리 작가의 역량에 따라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저는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게임 상에서 대륙 몇 개를 넘고 각종 몬스터들을 처치한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저가 발견한 것은 NPC의 싸늘한 시체뿐.

와우라면 조금만 기다리면 NPC가 재성성되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가정한 상황에서는 유저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전달하기로한 물건을 그냥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경우 퀘스트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아니면, 시체가 되어 있는 NPC의 몸을 뒤져 죽음의 증거를 찾는 방법도 있다.


NPC의 몸에서 특정 이니셜이 새겨진 단검을 찾게 되어, 마을 주민들에게 수소문 해본 결과 그 주위 일대에서 유명한 악당이라는 것과 그 악당은 수많은 보물과 아이템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처치하기 힘든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추가로 알게 된다.


유저는 다시 원래의 모험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파티원을 모아 그 악당을 처치하는 새로운 모험을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NPC는 여타 게임처럼 고정되어 단순히 퀘스트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 도망, 여행, 이동' 등 여러 가지 행동을 하게 되며, 그 행동들이 유저가 만나게 되는 게임 상의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된다.


단순한 직선형 연계 퀘스트 구조가 아닌 유저의 판단에 따라 퀘스트가 생성되고 퀘스트 트리가 가변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는 게임 전체 세계에 일정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MMORPG를 플레이하는 유저에게 자신이 이 세계의 작은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 할 것이다.





[ 직선형 연계 퀘스트 구조는... ]





또, 현재처럼 NPC가 단순히 상점에서 물건을 팔 듯 퀘스트를 유저들에게 부여하는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변 NPC들의 대화를 엿듣고 정보를 포착해 퀘스트가 생성될 수 도 있을 것이고, 세계 전체 곳곳에 퍼져있는 여러가지 '물건들'을 어렵게 발견해서 그 것으로 인해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와우에서도 시도가 되고 있었고, 오블리비언과 같은 패키지 RPG에서도 상당 부분 발전되어 구현되어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생각해낼 수 있으며, 현재의 퀘스트 구조에서 탈피한 보다 생동감 있고 풍성한 퀘스트를 기획할 수 있는데 굳이 와우가 제시한 '표준(?)'에만 급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예는 잠깐 생각을 해본 것 뿐이며,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게임 역시 프로그램인지라 기획자가 생각하고 개발자가 코딩한 범위 내에서 일정한 패턴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쉬워보일지라도 현재보다 한두단계 위의 퀘스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과 기술적 발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우가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쏟아 부으면서 몇 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고 성공을 했듯이, 치열한 게임 시장에서 MMORPG를 개발해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성공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보다 발전된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제시해야만 가능성이 있다.


국내의 많은 개발사들이 반복노동에 의한 레벨링 시스템에서 탈피하여 퀘스트 중심의 게임을 개발한다고 발표하고 있는 이 시점에, 기존 게임들에 이미 쓰여진 단순 퀘스트 구조를 뛰어넘는 다음 세대 MMORPG 퀘스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와우의 퀘스트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리니지를 모방하려 했던 무수한 게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와우를 뛰어넘기는 커녕 자연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 리니지류의 레벨링과 공성전을 모방하려 했던 것처럼 와우의 시나리오와 퀘스트를 모방하려 해도, 어차피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새로운 퀘스트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나 기획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안도 없으면서, 몇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리라고 생각하면서, 차세대 퀘스트 시스템을 내어놓으라 라고 기획자, 개발자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 찔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와우 이후 한국 게임 개발에서 필수 요소가 되어버린 (와우와 유사한 패턴의) 퀘스트라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별다른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을. 그리고 와우의 정식 서비스가 2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와우의 퀘스트가 주는 감동의 크기 역시 이전보다 확연히 떨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을.


패키지 게임의 전통을 탄탄히 쌓아왔던 북미와 일본 등 해외 게임들이 점차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개발이 되고 있고 한국에 들어올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이 시기, 리니지류의 지리한 레벨링과 와우의 반복적 퀘스트를 믹스하는 것이 결코 답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도 새로운 신작을 플레이해보면서 체감하고 있을 뿐이다.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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