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김형태'가 걸어온 길

게임뉴스 | 윤서호,유희은,남기백 기자 | 댓글: 59개 |


▲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

  • 주제: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디렉터까지
  • 강연자 : 김형태 - 시프트업 / 대표
  • 발표분야 : 커리어
  • 강연시간 : 2021.11.18(목) 13:00 ~ 14:00
  • 강연 요약: 게임 제작의 일부를 담당하는 일러스트레이터에서, 한 게임의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니케'와 '프로젝트 이브'를 개발중인 지금 그간의 경로와 소회를 밝히는 자리

  • 김형태 대표는 국산 게임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다. 초창기 PC 패키지 게임 전성기부터 육체미를 살린 특유의 미형을 보여준 일러스트를 선보였던 그는 창세기전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 참여했으며,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아직도 화자되는 캐릭터들을 그려냈다.

    그 이후 그는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소울의 아트 디렉터로 취임, 동양풍의 판타지를 자신의 화풍으로 녹여낸 미려한 아트와 원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3D 캐릭터들을 선보였다. 이전까지의 국산 온라인 MMORPG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들의 체형과 의상 스타일에 초기에는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아트 디렉터에서 물러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2015년부터 자신의 회사 시프트업을 세우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첫 작품 '데스티니 차일드' 이후 모바일 신작 '니케: 승리의 여신'부터 본격적인 콘솔 AAA 게임을 지향하는 '프로젝트 이브'까지. 우리나라 게임계 대표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달려가는 김형태 대표의 궤적을 이번 IGCXGCON 2021에서 직접 강연으로 들어볼 수 있었다.



    ■ 아마추어가 프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까지- 만트라, 소프트맥스, 그리고 '창세기전'



    ▲ 김형태 대표가 아마추어 시절에 그린 개인작

    여느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렇듯. 김형태 대표도 아마추어에서 그저 그림을 그리면서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포트폴리오를 꾸려서 취업준비를 하던 것이 90년대 중반이고, 그때의 개인작품을 보아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화풍이나 특징은 남아있었다.

    그렇게 포트폴리오를 여러 곳에 제출하다 97년 만트라에 입사, 처음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만트라는 당시 랩써디언 어켈텔러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고, 그 작품에서 캐릭터 일러스트를 그리는 역할을 맡으면서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의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김형태 대표는 프로로서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가장 큰 차이를 '남이 디자인한 것을 토대로 자신이 다시 그리는 작업'이라고 회상했다. 그간 자신이 주도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그린 것과 달리, 랩써디언 어켈텔러에서는 주어진 리소스, 시트를 갖고 그것을 토대로 캐릭터를 빌드업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갓 프로가 되어서 아마추어의 티를 벗지 못한 만큼, 때로는 공들이지 못한 그림이 나가기도 하고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는 열정이 온전히 담기지 못한 때도 있었다.



    ▲ 처음 입사 후 제작에 참여했던 랩써디언 어켈텔러, 그러나 출시도 못하고 회사가 망하게 된다

    결국 랩써디언 어켈텔러는 출시도 못하고, 만트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김형태 대표는 프로 의식에 대해 처음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에 김형태 대표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소프트맥스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스카웃 된 줄 알았으나 면접이 남았다는 걸 미처 몰라 한 번 떨어졌던 일화도 소개됐다.

    그러나 포트폴리오는 눈에 들었고, 당시 토니가 메인을 잡고 있던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의 후일담 일러스트를 외주로 그리게 됐다. 당시의 아트로 소프트맥스에서는 김형태 대표를 영입하고, 본격적으로 창세기전의 메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



    ▲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의 후일담 파트를 외주 작업하면서 기회가 다시 생겼다고

    그때 자신의 그림에 대해 김형태 대표는 "아직도 제멋대로"라고 평가했다.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지망생들은 그림을 그릴 때, 누가 자신을 찾게 만들려면 자신의 스타일대로 멋지게 그려내야 할 것 같은 습성이 있다. 그때도 그런 버릇이 몸에 배어있었고, 김형태 자신의 테이스트가 들어간 디자인만 계속 그려낸 것에 불과했다고 회고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프로로서 자각하기 시작한 시점을 창세기전3 때로 꼽았다.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의식은 갖추면서도, 여기에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맞춘다는 생각을 그때에 비로소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게임업계 초창기였던 만큼, 그저 그림을 그리다가 자신이 생각한 것에 얼추 맞으면 그 사람의 그림을 채택하는, 체계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당시 창세기전3 담당자이자 창세기전의 아버지격인 인물, 최영규 실장과 작업을 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최영규 실장이 아웃풋을 제시한 것에 맞지 않으면 다시 그려야 했다. 그래서 살라딘은 100번 가까이 리테이크를 거쳤다고 회상했다. 스케치북에 그린 단계에서부터 컬러까지 다 입히고도 퇴짜를 맞았지만, 이를 통해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서 그린다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의 마인드가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는 두루뭉술한 설명에 맞춰서 자신의 그림을 그린 것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회사가 명확히 요구하는 디자인과 의상, 자세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그에 맞춰 작업을 해나가고 거기에 자신의 그림체를 녹여내는 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 특히 살라딘은 100번 가까이 리테이크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파트1에서는 프로의 마인드와 자세를 깨달았다면, 파트2에서는 클라이언트의 믿음을 사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자유도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느낀 계기였다. 최영규 실장은 김형태 대표가 자신의 니즈를 충족시킬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김형태 대표에게 맡겼다. 그때 김형태 대표는 작품의 전체적인 컨셉에 맞추되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나갔다. 형광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SF 디자인이 그 중 하나였다.

    김형태 대표는 이때를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가장 많은 성장을 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그저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만 그리던 아마추어가, 게임의 컨셉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니즈에 맞춰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직접 그 컨셉의 복안만 듣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요구에 들어맞는 프로의 자세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창세기전3 파트2는 재량권을 갖고 김형태 자신이 주도적으로 캐릭터를 디자인해나갔다



    ▲ 그리고 화보집도 부록으로 냈다



    ■ 2D뿐만 아니라, 3D로 구현하는 방법에도 눈을 돌리다- 마그나카르타 그리고 블소



    ▲ 개발자로서는 큰 실패를 맛봤지만, 성장의 계기가 된 '마그나카르타'

    그 다음에 작업하게 된 마그나카르타는 김형태 대표 입장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성공했지만, 개발자로서는 실패하던 타이틀이었다. 1년에 SRPG를 하나씩 내야 하는 무리한 일정이었고, 그 하드한 일정이 결국 최악의 결과를 낳은 셈이었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경험을 압축해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창세기전3 파트2에서 자율권을 갖고 그리는 것에서 넘어서, 자신만의 그림체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테마색을 토대로 어레인지를 해서 분위기를 맞춘다거나, 캐릭터 자세 하나하나도 아이덴티티까지 고려한 구도를 잡는 등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는 표현의 자유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한 일러스트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김형태 대표는 실시간 3D에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 캐릭터의 특색을 살리는 구도에 대해서도 더 신경을 쓰는 등, 그림에 발전이 있었다고

    그리고 PS2로 나온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에서 비로소 언리얼엔진2를 다루게 되고, 일러스트를 작업하면서 같이 3D 모델링을 제작, 디자인을 최대한 맞춰가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창세기전 시절은 렌더 CG였지만, 마그나카르타 때부터는 리얼타임 CG가 적용되고 또 손맵으로 원화의 느낌을 3D 모델링에도 넣을 수 있다는 것이 김형태 대표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일러스트 그대로의 느낌을 3D로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당시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에서는 완벽히 이루어지진 않았다.

    당시는 3D에 관심을 가졌던 만큼, 김형태 대표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발전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일러스트를 3D로 적용하는 과정을 배우면서 어떤 디자인이 3D로 구현할 때 매력적으로 나올지 생각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 실제로 그는 3D 모델링 관련 기술을 배우면서 자신의 일러스트를 3D 모델링으로 적용할 때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을 찾기 시작했다.



    ▲ 마그나카르타 PS2 버전, 진홍의 성흔에서부터



    ▲ 자신의 일러스트를 어떻게 3D로 표현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중시한 부분은 '덩어리감'과 '입체감'이었다. 폴리곤은 실제 두께가 없는 개념이다보니, 그걸 활용해서 어떻게 현실의 두께감을 리얼하게 표현해야 할지 궁리했던 것이다. 그 고민은 언리얼엔진3가 나오고, 노말맵이 나오면서 획기적인 해결이 가능해졌다. 하이폴리곤으로 실제와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리얼 엔진3를 직원들과 같이 만지작거리면서 모델링을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넣어 영상을 제작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 김형태 대표가 언리얼엔진3로 만든 습작

    그리고 그는 2005년, 엔씨소프트로 이직했다. 7년 동안 함께한 소프트맥스를 떠나기란 쉽지 않았지만, 지인이 "회사를 옮길 땐 따지지 말고 그냥 미쳤다고 생각하고 질러라"라는 조언을 듣고 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작업한 첫 작품은 마그나카르타2였다. 반다이남코와 마그나카르타2를 계약할 때, 김형태 대표의 일러스트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프트맥스에서는 엔씨소프트에 양해를 구했고, 마그나카르타2가 출시되기 전까지 틈틈이 일러스트 작업에 관여했다.

    그리고 아트디렉터를 맡아 작업한 블레이드&소울이 입사 7년만인 2012년에 출시됐다. 아트디렉터라는 직군 특성상 김형태 대표는 일러스트를 많이 그리진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화풍, 특징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주력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자신이 3D 모델링 및 렌더링, CG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서 작업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았었다. 그래서 엔씨소프트에 입사할 당시, 아트디렉팅을 할 줄 안다고 블러핑했던 여담을 풀었다.



    ▲ 계약 때문에 마그나카르타2의 일러스트를 틈틈이 작업하면서



    ▲ 입사 7년만에 블레이드&소울을 완성,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아트디렉팅은 김형태 대표가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그림과 모델링에 능한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게임의 기획가 어우러지는 아트를 설계하고, 유저에게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이 필요했다. 또한 생각보다 게임플레이의 디테일한 부분에도 연관이 있었다. 전투에 최적화된 프레임이나, 그에 맞는 연출 같은 것까지도 고심해야 했던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하나 부딪쳐나가는 한편, 김형태 대표는 자신의 그림체를 3D로 고스란히 풀어내는 과제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쓴 건 라이팅이었다. 기본적인 스탠스의 라이팅뿐만 아니라, 여러 라이팅을 통해서 각도나 구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까지도 표현하고자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 홍보용 일러스트에도 3D 렌더링한 결과물을 바로 써도 되게끔 하는 게 목표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실험을 거듭했다. 이 과정도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트디렉터였던 만큼, 김형태 대표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자신에게 과분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고자 노력한 과정을 통해, 그제야 자신이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게임 개발자'의 마인드와 자세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 일러스트를 그리고 컨셉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 그것이 누가 들어와서 작업해도 3D에서도 화풍의 느낌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게끔 해야 했다



    ■ 데스티니 차일드, 니케, 프로젝트 이브 - 대표, 그리고 디렉터로서 도전을 시작하다



    ▲ 시프트업의 첫 작품 '데스티니 차일드'의 메인 캐릭터들의 초창기의 캐릭터 디자인(우), 그리고 확정된 디자인(좌)

    그리고 2015년, 김형태 대표는 자신의 회사 시프트업을 설립한다. 김형태 대표가 밝힌 시프트업 창업 사유는 간단했다. 3D 게임을 계속 7~8년 동안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다이렉트로 쓰는 2D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했던 그에게 3D는 꽤 고된 작업이었고,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데스티니 차일드를 제작하게 됐지만, 도전은 계속됐다. 우선은 캐릭터 디자인에 아이덴티티, 심볼리티를 구현하는 법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어떻게 해야 누가 봐도 이 캐릭터다, 라는 특징을 살릴 수 있을까, 그 부분을 고심하면서 캐릭터를 디자인해나갔다.



    ▲ 다비의 경우 여러 차례 디자인을 했으며, 그 중 초기의 두 안은 패스됐다

    가장 큰 문제는 UI와 UX에 대한 경험이었다. 그간 김형태 대표는 UI, UX와 크게 연관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이 부분도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바일 환경은 기존의 환경과도 달랐다. 손가락으로 눌러서 넘길 때, 누를 때, 누르고 뗄 때의 경험이나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의 반응성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게임의 아이덴티티를 넣을 수 있어야 했고, 버튼을 누른다는 것 자체가 귀찮지 않게 편의성을 챙겨야만 했다.

    그래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전투나 배경 UI를 고쳤다. 바스트 업샷부터 시작했다가 버튼이 안 보여서 버튼 위주로 바꾸고, 버튼이 볼품없어 보여서 개선하니 다른 부분이 멋이 없는 등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문제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유저들이 어떻게 게임에 접근하고, 그때마다 어떤 감정을 느낄까"라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다. 물론 이전에 3D를 공부했던 것처럼, UI와 UX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그때 배운 이론들을 적용하면서 디자인을 다듬어갔다. 그리고 주변에 본 디자인 중에서 괜찮아보이는 것이 있으면 참고하는 식으로 보완했다.






    ▲ 데스티니 차일드를 개발하면서 UI, UX에 대해 새로 배워가면서 디자인해나갔다

    일례로 데스티니 차일드의 캐릭터창은 아이콘이 아닌, 책갈피 형태에 가깝다. 이는 아이튠즈에서 책갈피 형태의 UI를 쓴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단순히 터치하지 않고 스크롤링하는 것이 나름 신선하고, 또 아이콘보다 더 크게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개발자로서 하나하나 깨달음을 얻었고,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특히나 데스티니 차일드는 디렉터가 세 번이나 바뀌고, 마지막엔 김형태 대표 스스로가 디렉터가 되어서 게임의 전반을 진두지휘해야만 했기 때문에 게임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그에겐 첫 도전이었고, 중간에 디렉팅을 맡았기 때문에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에서 부족한 부분을 깨달아 보완한 뒤, 유저에게 새롭게 선보이고자 한 것이 '니케: 승리의 여신'과 '프로젝트 이브'라고 소개했다.

    니케는 김형태 대표의 화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아울러 UI, UX에도 트렌디한 느낌을 가미하고, 이전까지의 서브컬쳐 게임에 비해 발전된 화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주 목표였다. 실제로 니케에서는 SD를 활용하거나 추상적인 전투 화면이 아닌, 실제로 아군 유닛이 적들과 총격전을 하는 느낌을 중점적으로 살리고자 했다.



    ▲ 니케는 김형태 특유의 화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매력을 느끼게끔 캐릭터를 디자인하는데 주력했으며



    ▲ 더 나은 전투 경험과 트렌디한 UI, UX를 살려서 더 발전된 화면을 유저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프로젝트 이브에 대해서는 현재 자세히 소개하기는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다. 다만 지향점에 대해서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모든 기본기와 실시간 3D와 렌더링 체계에 대해 그간 공부해왔던 것을 총동원하고,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에 대해서 고민하고 경험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녹여내서 도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김형태 대표는 그간의 자신의 길을 '삽질'이라고 정의했다. 국내에서는 개척자가 얼마 없어서 자기가 직접 해쳐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여태까지는 운도 좋았고, 그림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그래서 삽질이 잘 파였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계속 전달할 수 있었다.

    이번 두 신작과 관련해서 그는 또다시 블러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첨언했다.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그런 작품을 총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서 물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예전의 그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김형태 대표는 그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서 유저들에게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강연을 마쳤다.









    ▲ 김형태 대표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프로젝트 이브'



    ■ Q&A

    Q. 창세기전 파트1 이후 파트2를 했을 때, 주인공 디자인이 다 바뀌어서 같은 캐릭터가 맞나 싶었다. 강연에서 언급한 것처럼 입장이 바뀌어서 자신의 캐릭터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것에 주력해서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인가?

    그때도 디렉터였던 최영규 실장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직 그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그 분도 내가 어레인지를 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예전에 내 개인작을 갖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최영규 실장이 이런 것도 괜찮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면 시트로 정해진 설정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설정을 먼저 짜고 디자인해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싶다. 물론 시키지도 않은 일 괜히 해서 손해 보는 느낌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새로운 걸 만들어서 프레젠테이션하고 자기 의견을 관철하는 과정이 있어야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또 이전에 생각도 못한 비주얼 중심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키이지 않을까?

    컨셉 아트를 도전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도전을 해보았으면 한다. 또 능동적으로 먼저, 없던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리더가 되지 않나 싶다.


    Q. 블레이드&소울을 처음 접했을 때 원화와 3D 모델링이 괴리감이 굉장히 적어서 감탄했었다. 원화를 3D 모델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괴리감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걸 줄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었나 잠깐 소개한다면?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사람을 뽑고 진행했으니, 모두가 같은 비전을 공유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체 스타일의 틀을 갖추는 것에 주력했다. 특히 라이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에셋의 모델링 스타일 규격을 만들고, 디테일까지도 신경 썼다. 음각 양각을 어떻게 가해야 하고, 천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야 하며 머리 스타일은 어떻게 구현하고, 머리카락 물리 표현은 어느 정도까지만 등등, 그런 것도 최대한 세세하게 다 정했다.

    두께나 덩어리를 과장해서 그리는 게 내 화풍이지 않나. 그걸 3D로 구현할 수 있도록 문서화를 했다. 그걸 보면 새로 들어온 사람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게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라이팅을 입히면 또 달라지는 게 3D다. 그래서 캐릭터를 위한 광원을 아예 따로 만들었다. 어떻게 해도 내 화풍과 최대한 유사한 효과가 나게끔, 그런 쪽으로 연구해서 만든 광원이다. 여기에 카메라를 따라다니는 광원 강도를 조율, 어떤 상황이 되든 내 화풍과 비슷한 느낌이 나게끔 했다. 그게 내가 없어도 내 스타일과 유사하게, 또 그 퀄리티가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 많은 테크닉이 있지만 너무 내용이 길어서 다음 기회에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Q.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 개발자, 대표로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오지 않았나. 강연 듣고 있는 게임업계 지망생을 위해서 대표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현실적으로 조언을 몇 가지 하자면?

    조언이 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쓰는 게 좋다고 하겠다. 자는 시간을 빼면 회사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지 않나. 월급 받으며 일하는데 더 하면 손해, 이렇게만 생각하면 발전이 없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올해를 보낼 때, 올해가 내게 가장 중요한 해고 내가 가장 열심히 한 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내가 대표라 그런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예전에 소프트맥스 시절, 그리고 엔씨소프트 재직 시절에도 그랬다. 내 스스로가 납득이 될 때까지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돈 받은 만큼만 하면, 낭비되는 건 내 시간과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능동적으로 임했으면 한다. 어디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지 생각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그것이 내 스스로 성장하는 길이고, 리더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를 요약하자면 인생을 소중히, 이런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좀 덧붙이자면 '인생을 능동적으로 소중히'라 하겠다. 그러면 더 발전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 역시도, 이렇게 회사 대표가 되리라곤 생각 못했지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지 않나.


    Q. 일러스트레이터, 3D 모델링, 프로그래머 간 갈등이 개발 과정에서 손꼽는 부서 간 최악의 갈등 사례 아닌가. 이를 어떻게 조율해나갔나 궁금하다.

    내 경우에는 3D 모델러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내 비전을 보여줬다. 특히 3D 모델러들에겐 내가 3D 모델링을 보여줬다.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하이퍼리얼이 아닌, 내 일러스트 레벨에 맞춰가는 거다. 덩어리감을 최소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 이런 가이드라인을 정할 수 있었고, 그 공감대부터 시작했다.

    사실 이건 내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인지도가 높았기에 가능했던 것이긴 하다. 또 3D도 공부하고, 기본적인 퀄리티가 나온다는 아웃풋이 있었으니 메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사이가 안 좋으면 안 된다. 사회적 매너가 필요하다. 그 매너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틀어지고 본다. 물론 말이 그렇지 쉽지 않긴 하다.


    Q. 데스티니 차일드와 니케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를 내세웠는데, 섹스어필이나 과장 등 여러 비판을 듣기도 하지 않았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긴 어렵겠지만, 대중적인 위치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상업적인 요소를 넣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또 본인의 철학은?

    내 그림은 상업적인 그림 맞고, 나는 섹시함을 어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맞다. 그걸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모든 일러스트가 똑같으면 재미없지 않을까? 그래서 다양성을 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난 그 그림으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권하지도 않는다. 싫다고 한다면, 선택을 안 하도록 선택의 자유를 드리고 있다. 모두를 만족시킨다, 이 말은 정말 재미없는 지옥 아닐까 싶다.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난 섹시한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 팔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내가 좋아한다. 물론 그걸 좋아한다고 해서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표현하는 것도 좋아하는 케이스다. 그래서 그리고 있다.

    만약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게임이나 미디어에 범죄 장면을 금지시킨다고 가정해보자. 정말 재미없지 않을까? 북한이나 여타 검열이 있는 국가의 그런 콘텐츠 같지 않을까? 그러니까 다양성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다양성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Q. 아티스트로 회사로 취업한 적이 있는데, 아티스트가 주도적인 개발을 하면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간 개발한 게임에서 업무 프로세스가 각기 달랐을 텐데, 그 경험을 좀 더 프로세스쪽에 포커스를 맞춰서 이야기한다면?

    파이프라인 설계가 개발자들에게 중요한 일이긴 하다. 3D 주도로 할지, 일러스트 주도로 할지 등등, 그건 개발팀마다 다 다르긴 하다. 블소 때는 문서화를 확실히 해서 기본 틀을 잡아두고 거기에 따라 외주를 돌리거나 내부 신입이 들어와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이즈, 규격에 대한 문서화가 다 적용됐다.

    업무 효율에 있어서는 대면 업무가 효율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게 좋지 않겠어? 하고 사소하게나마 교류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정보 공유에서 일어나는데 이 시너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 말하는 그 프로세스가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발전도 있고, 수정도 빠르게 이루어지니 말이다.

    나도 그게 완벽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침묵하지 않는 것이었다. 잘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말 안 하고, 그냥 입 다물고 문제로 계속 남기면 결국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적극적으로 문제라고 제시하게끔 말하는 분위기를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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