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빅토리아 3, 역사 덕후들을 위한 지적 유희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5개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흔히 게이머들 사이에서 '역설'사로 불리는 이 스웨덴의 게임 유통사는 온갖 게임을 다 다루는 종합 유통사들이 즐비한 현 시대에 꽤 명확한 방향성을 지닌 퍼블리셔입니다. 이들이 주로 유통하는 게임들의 장르는 '시뮬레이터', 그리고 그 소재는 '역사'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죠.

가끔은 '시티즈: 스카이라인'처럼 조금은 다른 게임을 다루기도 하지만, 패러독스의 게임들 중 다수는 특정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대전략 시뮬레이터이며, 몇몇 요소를 제외하면 게임을 이루는 근간 자체가 상당히 유사합니다. 시리즈 별 차이점이라면 대략적으로 어떤 시기를 다루냐 정도죠.

시대의 흐름에 따라 10세기경부터의 중세를 다루는 '크루세이더 킹즈', 그 이후 르네상스와 나폴레옹의 몰락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그리고 나폴레옹 패망 이후부터 1차 대전 이후 전간기까지를 그리는 '빅토리아', 마지막으로 2차 대전기를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한 '하츠 오브 아이언'으로 이어지죠.

그만큼, '빅토리아3'는 신작이면서도, 기존의 패러독스 게임을 꾸준히 플레이해온 게이머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신기한 게임은 아닙니다. 때문에, 오늘의 리뷰는 다소 다른 시선에서 게임을 바라보고, 평가해보려 합니다. 기존의 패러독스 게임에 대해 거의 모르는, 온라인게임을 주로 하다 가끔 AAA급 게임들을 플레이하곤 하는 미디움 게이머의 시점에서 말이죠.




게임명: 빅토리아 3(VICTORIA 3)
장르명: 시뮬레이터/대전략
출시일: 2022. 10. 25.
리뷰판: 1.0
개발사: 패러독스 디벨롭먼트 스튜디오
서비스: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플랫폼: PC
플레이: PC


그들만의 평화가 펼쳐졌던 시대 속으로

앞서 설명했지만, '빅토리아3'가 다루는 시대는 꽤 명확합니다. 1836년부터 1936년까지, 딱 100년 간의 시기죠. 세계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대충 아시겠지만, 이즈음을 일컬어 '벨 에포크'라고 부릅니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입니다.

당연히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시기였습니다. 대항해시대 이후 무분별한 식민지 확장의 부작용으로 온갖 잡음이 생겨나던 시기였고,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아동 노동 문제와 극심한 빈부 격차가 생기기는 등 전 세계적으로 여러 진통을 겪은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 이 중 어떤 나라든 선택해 운영하는 게임

그나마 다행이라면, 18세기 중반 발발한 7년 전쟁 이후 재편된 세계 질서 상에서 영국을 제외하면 뚜렷한 강자가 없었고, 이 시기 영국은 유럽 외 지역으로 눈을 돌려 청나라에 아편을 팔아대던 상태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평화가 이어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그늘 속에서는 다가올 경쟁의 시기를 위해 힘을 기르고, 겉으로는 평화와 문화적 발전을 누리던 시기가 바로 '빅토리아3'의 배경이 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당시의 강자들이던 '유럽 열강'들의 입장일 뿐입니다. '빅토리아3'의 시기는 표면적으로 아름답게 비춰지지만, 그 이상으로 불합리한 시기였습니다. 인종 차별은 별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만연했고, 유색 인종은 물건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으며, 동아시아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냥 호구에 가까웠습니다.



▲ 압도적인 국내총생산량의 청나라가 12위인 이유는 '열강'이 아니라서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대체 역사 웹소설에는 별별 내용이 다 있습니다. 대충 조선의 왕이 되서 나라를 개혁해나가는 이야기가 뿌리가 되는데, 전개에 따라 다르지만 결말즈음에 이르면 대충 동아시아의 패권국 정도는 당연하고, 세계의 경찰이 되거나, 세계 정세를 뒤에서 주무르는 흑막 정도는 충분히 해 먹습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왜 이것들이 소설의 내용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한국 게이머처럼 조선을 고른 저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습니다. 게임 내에서 약소국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건 굉장한 숙련도와 경험이 필요합니다. 희망에 차 처음으로 게임을 시작할 게이머들이 느끼게 될 건, 그저 약소국의 설움이죠.



▲ 그렇게 1836년의 조선으로 떠납니다



이 나라는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한다

'빅토리아3'에서, 게이머의 역할은 국가를 이끄는 국가 수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정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국무총리나 수상 정도의 위치를 담당합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수상이 건들지 않을 사사로운 일들까지 게이머가 전부 다 처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 행정 과정에서, 아니 어떤 조직이라도 수반이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들의 업무 대부분은 전체적인 방향성의 제시와 이에 따라 하위 기관이 발의한 내용에 대한 승인이나 거절이죠. 하지만 '빅토리아3'는 그런 것 없습니다. 정치부터 외교, 자원 관리와 전투, 각 지역에 대한 행정력 확보와 발전 유도까지 혼자 다 해내야 합니다.



▲ 국가 역량을 키워야 하고



▲ 경제를 살려 부강해지는게 목표

물론, 그만큼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건 장점이긴 합니다. 특정 천연 자원을 독점하고 이를 무기로 국제 깡패가 될 수도 있으며, 아편을 팔아치우며 나라 전체를 카르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중개 무역을 주력으로 인력을 양산해 기술 강국을 노릴 수도 있고, 드넓은 땅을 무기로 엄청난 공산품 생산국이 될 수도 있으며, 기후와 토양에 기대 자발적 바나나 공화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내가 원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는 점입니다. 패러독스의 게임들이 대개 그렇듯, '빅토리아3'도 굉장한 복잡성을 자랑하는 게임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을 확실히 이해하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 '이해의 과정'이 초보 게이머들에게는 너무나 길고 험난한 과정이죠.

예를 들어 봅시다. 조선으로 플레이하며 동아시아 패권국이 되려면 열강들과 동등한 관계의 외교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승인국'의 지위를 따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가 위신을 쌓고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죠. 강해지고, 이를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 여기저기 골치아픈 도표와 숫자 투성이

하지만, 게임 속에서 구현된 조선은 일단 이 '강해지는 과정'부터가 무척 고됩니다. 추후 말하겠지만 고증이 엉망진창인 부분이 있어 유황 산지가 없기 때문에 비료와 화약의 자력 수급이 어렵고, 게임 시작 시점 기준으로 행정력이 개판인데다 시장 접근성도 떨어져 세금도 잘 안 걷히는데다 뭘 사다 쓰려 해도 없는 마당에 너무 비쌉니다. 역사적 흐름대로 도자기랑 차나 내다 팔면서 힘을 모아 사회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야 하죠.

이 모든 과정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승인국이 되려면 전쟁을 벌여야 하고, 전쟁을 벌이려면 무기와 교리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무기를 구하려면 사거나 직접 조립해야 하는데, 사려면 피같은 혈세 지출을 감당해야 하고 직접 만들려면 공장을 짓고, 공장에서 일할 공학자들을 키워야 하며, 생산에 필요한 강철과 유황, 공작 기계등을 수급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없으면 또 사야 하죠.

이 와중에 지식인과 종교인, 양반 계층과 지주 등 사이에서 줄을 타며 붕당 정치를 해야 하며, 그나마 넉넉한 철광을 개발하다 보면 사고가 터져 노동자들이 화를 낸다거나, 아동 노동 문제가 불거지는 등 온갖 사건 사고가 따라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인프라를 거치고 이제 강해질 수 있겠다 싶은 시점에 이르면 웬걸, 이 나라는 고무와 석유가 나질 않습니다. 어째서 이 나라의 위치선정이 엉망이라 말하는지, 저는 고무나무 한 그루 없는 게임 속 한반도를 보고야 느꼈습니다.



▲ 안 돼... 이런 미래는 감당할 수 없어...

이 과정에서 게임은 게이머에게 상당한 양의 상식과 판단력을 요구합니다. 자원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쟁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외교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국가 정책은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할지, 내전을 방지하려면 정치 세력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외부 세력 중 누구를 믿고, 누구를 멀리해야 할지를 모두 게이머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생각 이상으로 즐거우면서도 피곤한 양면적인 모습으로 게이머들에게 다가옵니다.



멋지지만, 더 재미있어질 수 있는 세상

이렇듯, '빅토리아3'라는 게임은 국가 운영 전반에 해당하는 다양한 분야를 꽤 자세히 구현해 둠으로서 하나의 국가를 이끌어나간다는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한 게임이지만, 너무나 거대한 세상을 자세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그만큼 빈틈도 많습니다.

일단, 일부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크루세이더 킹즈'나 전쟁 당사국 및 지원국만을 다루는 '하츠 오브 아이언'과 달리 세상 내 모든 국가를 다루는 만큼 세세한 디테일에서는 꽤 떨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꽤 괜찮은 유황 산지였던 한반도에 유황이 단 한 톨도 없어 화약 기반의 산업 체계를 맞추는게 쉽지 않으며, 조선이 유교 사상이 아닌, 대승 불교를 국교로 지니는 국가로 설정되어 있어 역사에 대한 기반 지식이 있는 게이머들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듭니다.



▲ 있는 유황은 안 주면서 없는 화산은 만들어주는 고마운 개발사

제가 한국인이라 조선 위주로 플레이했기에 느낀 오류가 이 정도라면, 시대 상 주인공이 되지 못한 많은 국가들도 아마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겠죠.

게임의 방향성이 다분히 '운영'에 쏠려 있다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빅토리아3'는 외교의 최후 수단인 전쟁까지 가능한 게임입니다만, 사실상 전쟁이 그리 쉽게 벌어지지도 않으며 전쟁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그냥 내가 마련한 병력과 적국 병력이 숫자가 되어 점점 줄어드는 모습만 볼 수 있죠.



▲ 19세기 조선이라기엔 코하응 제독님의 헤어스타일이 너무 자유분방하긴 하다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사람 목숨을 숫자로 보는 냉혹한 지도자의 시선이지만, 사실 그런 거 없고 그냥 비주얼 연출이 안 되어 있는 겁니다. 게임의 방향성이 영토의 획득과 무력 병합, 대제국의 건설 따위와는 전혀 다른 시장 장악과 경제적 우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보니 사실 지도 상으로도 변하는 건 별로 없죠. 게이머에게 만족감을 주는 부분은 늘어나는 무역 흑자와 초록색으로 물든 각종 숫자, 그리고 순위표 정도입니다.

이런 소소한 아쉬움들을 모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더 재밌어질 수 있다'.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이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시스템을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이 인터페이스를 조금만 더 편하게 다듬었더라면 하는, 작은 결점들이 계속해서 보이죠. 큰 틀은 멋지게 잘 만들었는데, 그 속을 채워 넣은 재료들이 아직은 부족한 느낌이라 할까요? 어쩌면, 모드로서 완성되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이는 그냥 개인적인 생각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 미니어쳐같은 비주얼은 나름 괜찮게 다가오는 편



모두를 위한 게임은 될 수 없다

한 가지 생각할 점은, 이 게임이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어렵지 않은 게임이라는 겁니다. 이 모순적 문장이 성립하는 이유는, 패러독스의 게임들 대부분이 가지는 특징인 '하드 투 런'을 이 게임 또한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가 '조선'을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풀어 설명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게임 상에서 '조선'은 꽤 플레이하기 편한 국가에 속합니다. 국가 내 문화권 차이가 없어 문화 갈등이 없고, 좁은 땅에 비해 인구도 꽤 많은 편이고 청나라라는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에 청나라의 그늘에서 무리하게 벗어나려는 시도만 하지 않으면 중반까지는 큰 위협 없이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에 익숙한,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반적으로 파악한 게이머들에게 한하는 말입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한 게이머가 마주하게 될 건, 단순히 '많다'라고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인터페이스와 엄청난 양의 활자입니다. 각 계층의 정치 성향이 어떻게 되는지, 그 성향이 어떤 문제를 만드는지, 행정력과 시장 접근성이 뭘 의미하고, 이게 부족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등을 알려면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 이 국가 운영 체제들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야 게임이 보다 쉬워진다는 것

빈약한 튜토리얼로는 알기 어려운 이 내부 시스템을 파악해가는 과정은 매우 고되지만, 이렇게 게임을 파악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은 꽤 할 만해집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게임들이 지향하는 '이지 투 런, 하드 투 마스터'와는 달리, '베리 하드 투 런, 하드 투 마스터'를 지향하는게 패러독스 게임들의 특징이며, 팬층이나 개발사나 이를 별로 문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특징 같은 겁니다.

그리고 이 'Learning'의 과정을 극적으로 돕는 건, 다른 어떤 게임 시스템이 아닌 게이머 개인의 소양입니다. 19세기의 국제 정세에 일가견이 있다면 이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이 가능하며, 노동자와 지주, 지식인과 종교인 계층의 성향과 지향점을 알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국가 건설에서 어떤 정치 세력을 후원하고 억압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결정이 가능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을 접거나 긴 시간에 걸쳐 이 게임을 학습해야 하겠죠.



▲ 익숙해질 수록 게임은 쉬워지고, 동시에 재미있어지지만 그 익숙해지는 과정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은 모두를 위한 게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현실과 달라지는 국제 정세를 느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게이머들에게, '빅토리아3'는 꽤 만족스러운 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또 다시 머리를 쓰는걸 꺼리는, 스트레스 해소와 즉발적인 자극을 원해 게임을 하는 이들에게 이 게임은 게임이라기보단, 약간 다른 성격의 일거리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리뷰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저 또한 세계사에 꽤 관심을 두고 있고,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기에 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게임이 꽤 어렵게 다가왔으며 익숙해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그만큼의 재미를 준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모든 국가를 플레이할 수 있는 자유로움
  • 섬세하게 구현된 시스템과 유기적인 순환구조
  • 대전략 치고는 아름다운 비주얼 수준
  • 높은 진입 장벽 대비 부실한 튜토리얼
  • 큰 세계 대비 부족한 디테일
  • 게임 방향성으로 인한 플레이 방향의 고착

리뷰 플랫폼: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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