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춤하는 AR, 약진하는 VR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2개 |



최근 기자 간담회를 통해 2022년에 출시되는 최신 증강현실(AR) 기기와 가상현실(VR) 기기를 직접 경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미출시 기기를 먼저 만나는 것은 기자가 아니라면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기에,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치열한 VR/AR 시장의 최전방을 생생하게 전하겠다는 종군기자의 마음으로 취재 현장을 찾았다.

현장을 방문하기 전, 개인적으로는 AR에 가지는 기대가 더 컸다. VR에는 '메타 퀘스트2'라는 걸출한 명기가 이미 존재하고, 여기에 개선점을 더했다고 해봤자 더 높은 해상도를 보여주는 것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일종의 기대 한계치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AR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휴대폰 카메라 속 틱톡 스티커나 포켓몬을 보는 정도에 그쳤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기업용 기기를 제외하면 보편화된 AR 기기는 없다시피 했다. 말하자면, VR계의 메타 퀘스트2에 비견되는 '국민 AR 기기' 자리는 아직도 공석인 셈이었다.

신형 AR 기기와 VR 기기를 소개하는 두 간담회 행사를 모두 취재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주춤하는 AR, 그 앞에서 약진하는 VR'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 안의 일정한 장소에 서서 플레이하는 것이 디폴트 값인 VR조차 무선 기능이 없으면 돌질을 당하는 것이 일상인 지금, AR 기기가 유선에 메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79g의 가벼운 무게와 선글라스처럼 심플한 디자인을 갖췄다고 한들, 유선으로 전력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누가 이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까? 분명 해당 기술을 연구하는 기술자들이 들으면 분개할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미래의 모습을 그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애니메이션 '전뇌코일'을 보고 AR에 대한 꿈을 키운 이들에게, 케이블을 주렁주렁 연결해야 하는 지금의 거추장스러운 AR 글라스는 어불성설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AR이 가까운 장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 애플 팀 쿡 CEO의 최근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AR이 넘어야 하는 기술적 장벽은 아직도 두텁게만 느껴졌다.

그에 비해 신형 VR 기기 간담회 현장에서 만난 VR 헤드셋은 오랜만에 기대감과 설렘을 주는 기기가 아닐 수 없었다. 기존의 VR 헤드셋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기술적 혁신은 없었지만, 더 저렴해진 기기 가격과 안경을 쓴 채로 착용해도 콧등이 저리지 않는 편안한 착용감으로 '기술의 일보 전진'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아직도 막연한 이상을 이야기할 뿐인 AR과 달리, VR 업계는 차근차근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분명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찍이 두 번째 PS VR 출시를 예고한 소니를 시작으로, HTC바이브와 밸브 역시 신형 VR HMD와 관련된 청사진을 드러낸 상황이다. HTC 바이브의 신형 VR 헤드셋은 메타 퀘스트2의, 밸브의 신형 헤드셋은 곧 공개될 메타의 '메타 퀘스트 프로'의 대항마가 되는 고가의 하이엔드 헤드셋이 될 전망이다.

대중에게 검증 받은 확실한 레퍼런스 이후에 등장하는 개선품과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도전하는 시제품은 필연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AR이 지금보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줄이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는 뚜렷한 기준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쳇바퀴 돌 듯 주춤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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