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AI, 게임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까?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15개 |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개발자 A는 꽤 들뜬 모습이었다. 요즘 그렇게 핫한 '챗GPT'를 상대로 이런 저런 실험을 해 보았다는 그는, AI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후 더 개선될 AI가 가져올 삶의 발전상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소주잔의 절반이 비어 있었지만, 단순히 술에만 취한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그 불확실한 미래에도 취해 있었다.

게임 기자 B는 퍽 불안해 보였다. 지금도 AI가 쓰는 기사는 심심찮게 보이는데다, N차 혁명으로 불리는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은 생산성의 확대 이면에 수많은 사양 산업을 만들어냈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큰 폭으로 숫자가 줄어버린 지면 매체의 말로를 봐온 기자의 눈은 AI 사이에서 자신의 쓰임새를 증명해야 할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래상에 대한 기대와 감상은 다들 달랐지만, 이들 모두가 동의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몇 년 후 게임과 이를 둘러싼 파생 산업들의 모습은 아마 지금과는 다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만 해도 AI에게 게임 기획서를 써달라는 포맷의 기사가 나오고, 인도인 유튜버의 채널을 찾는 대신 챗GPT에게 코딩 솔루션을 얻고, '미드저니'에서 일러스트를 뽑아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 않나. AI로 핫한 모든 분야와 조금씩은 얽혀 있는 게임 산업의 변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게임 산업 각층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AI가 함께하는 게임 산업은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

※ 본 기사에 쓰인 이미지는 모두 미드저니(Midjourney)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1. LLM, 당장의 변화는 없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AI를 공부한 많은 이들이 지금 시점의 '챗GPT'는 꽤 과대포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챗GPT'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인 LLM(초대형 언어 모델)은 인간의 대화를 거의 그대로 모방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구성은 확률에 기반하도록 이뤄져 있다. 디테일한 내용까지 설명하기엔 너무 길테니 요약하자면, 챗GPT는 사전에 입력된 수많은 매개 변수 내에서 통계에 따라 가장 많이 쓰이는 어구들을 인용해 답변을 내뱉는 형태다.

당연히, 매개 변수가 많은 만큼 답변은 자연스럽다. 챗GPT는 Open AI의 LLM인 'GPT-3.5'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전 세대인 GPT-3만 해도 뉴스 기사, 학술지, 위키피디아, 웹 문서 등으로 구성된 1,750억 개의 매개 변수를 지니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LLM인 '친칠라'도 1조 4천억 개의 매개 변수를 지니고 있고, 이 친칠라 또한 챗GPT못지 않게 자연스러운 답변을 내놓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챗GPT는 어떠한 판단이나 추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의 열광 속에서 챗GPT는 마치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생각한 후 답변을 내놓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딱히 그렇지 않다. 애초에 인간과 AI는 쓰는 언어가 다르기에 챗GPT는 우리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그냥 그 질문에 대응될 가장 높은 확률의 답변을 선정해 엮어낼 뿐이다.

결과적으로, '챗GPT'는 개인이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인터넷 상의 정보들을 보다 빠르고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일 뿐,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결론이나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는 없다. 조금 내려치듯 이야기하면, 꽤 편하고 색다른 검색 엔진 정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발전이긴 하다. 카메라를 통한 사물 인식이나 음성 인식 등이 더 발전한다면, '챗GPT'는 웨어러블 하드웨어와 결합해 우리의 생활상을 획기적으로 바꿔낼 '개인 비서'로서 작동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은 논하기 어렵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산업을 구성하는 과정이나 절차가 축약되어야 한다. 산업 혁명은 기계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 중 수많은 부분이 축약되었으며, 인터넷 혁명은 온라인의 세계를 열면서 오프라인의 수많은 절차를 삭제했다. 하지만, 챗GPT는 지금의 게임 산업 파이프라인을 줄일 만한 능력은 없다. 코딩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결국 그 결과물은 인간에 의해 검수받아야 하고, 기존 데이터 통계 기반의 데이터를 출력하는 만큼 기존에 없던 결과물을 원하는 이들은 챗GPT의 도움을 얻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작업과 검수 과정이 여전히 존재해야 하기에, '당장 지금으로서는' 챗GPT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 통계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LLM 기반 AI



2. '툴(Tool)'로서의 가능성

하지만, 챗GPT와 유사한 LLM AI가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긍정했다. 지금의 '게임 엔진'이 이와 비슷한 사례인데, 원래대로라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하나하나 로직을 구축해야 할 과정을 지금은 게임 엔진을 통해 훨씬 편하게 구현할 수 있다. 애초에 프로그래밍 언어 또한 컴파일해 기계어로 이해하게끔 만든 체계이니 프로그래밍 언어 또한 일종의 툴 아니던가.

때문에, 자주 쓰이는 코드나 프로그래밍 관련 지식을 매개 변수로 삼은 LLM이 만들어진다면, 그 AI는 게임 개발의 툴로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구현하고자 하는 시스템만 확실히 기획되어 있다면, AI의 도움으로 코딩을 해나갈 미래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기획만 제대로 될 경우 코딩이 가능하다면, 프로그래머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 아닌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사실 지금도 별 차이는 없다. 이미 게임 개발 엔진이 상용화된지 오래된 지금, 게임 엔진을 잘 다루는 개발자들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원천 기술을 파고드는 프로그래머의 수는 점점 줄어가고 있으며, 이들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기자의 뇌피셜이 아닌, 게임 교육계 교수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LLM기반의 게임 개발 서포팅 툴이 등장한다면, 혹은 기존의 엔진사가 LLM기반의 AI체계를 통합해 엔진에 기능을 녹여낸다면, 게임 개발 절차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지고 정확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이르면, 이 툴을 다루는 것 또한 기술로 취급될 것이기에 지금하고 크게 달라질 건 없는 셈이다. 물론 기존의 비프로그래머들이 게임 개발 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허들은 좀 더 낮아지겠지만 말이다.

'미드저니'나 '달E'와 같은 그림 AI의 경우 제한적으로 쓰일 여지는 있다. 문제는 이 또한 텍스트 기반이 아닐 뿐, 주문자의 요청에 맞춰 통계적으로 가장 정확도가 높은 데이터를 엮어 만들어내는 그림이기에 구조 자체는 유사하기 때문에 언제나 랜덤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한 장의 일러스트만 쓴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어떤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 캐릭터의 바리에이션을 만들어내기엔 영 적합하지 않다.

한 개발자의 비유를 쓰자면, 그림 AI는 수많은 그림이 들어있는 상자 속에 손을 넣어 잡히는 그림을 뽑아내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쓰는 명령어는 이 수많은 그림들을 걸러내는 필터와 같은 역할이다. 필터를 섬세하게 지정할수록 원하는 결과물에 가까운 그림을 뽑아낼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에 통일된 느낌의 컨셉 아트나 캐릭터 일러스트를 뽑아내기는 무척 어렵기에 산업적 목적으로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다만, 어느 정도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테이블 팩터를 기반으로 그림을 만들어내는 '컨트롤넷(ControlNet)' 기능 등 AI그림의 무작위성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현재도 개발 중이기에, 지금 당장 어려울 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산업 내에서 활용 가능할 수준에 이를 지도 모른다.



▲ 결국 인간이 검수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AI 그림의 가능성은 빠르게 높아지는 중이다



3. '효율성' 증대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미래

실질적인 산업의 변화는 아마 이쪽에 더 맞을 것이다. 정확히 어떤 업무군이라 말하긴 해당 직군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무례가 될 수 있기에 논하기 어렵지만, 기술 의존도가 낮고 작업량이 많은 직군은 충분히 AI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며, 기업 입장에서도 이쪽이 비용 절감 효과가 뛰어나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LLM 기반의 AI는 판단이나 추론 능력이 없기에 이를 검수할 담당자가 필요하겠지만, 인력 비용은 크게 줄어들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분명 설자리를 잃을 사람도 생긴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많은 기업에서 AI를 부분적으로 활용 중인 CS업무의 경우 기존 대비 인력 필요성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규모의 문제로 처리하지 못했던 많은 단순 업무들이 대체됨으로서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의 결과물이 보다 더 나은 모습을 띄게 될 수도 있다. 기획은 갖고 있으나 '인력이 부족해서', '프로그래밍 부담이 커서' 이를 구현하지 못했던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AI 개발 솔루션의 등장은 확실히 청신호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래상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르진 않는다. 인터넷 신문의 발달로 신문배달부가 사라지고 농업 기계의 발달로 농촌 인구가 줄어들었듯, 시대의 발전상에 따라 특정 직군이 사라지거나 필요성이 줄어드는, 그냥 자연스러운 발전상의 한 컷일 뿐이다. 인류의 발전 방향은 언제나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개인에게는 딱히 좋다고 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 업무 효율의 증대는 가능성 높은 미래이지만, 모두에게 반갑지만은 않다.



4. '강 인공지능'이 해답

결론을 내자면, 지상파 뉴스에서 챗GPT를 소개하고, 챗GPT가 게임 기획을 써 주는 시대가 오긴 했지만, 이것만으로 게임 산업의 근간이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추론과 판단을 통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이른바 '강 인공지능(Strong AI)'가 등장한다면 모를까,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적인 답변을 내놓는 LLM 기반의 AI는 그 한계가 명확하며,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게임 산업에서 써먹기엔 꽤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AI가 스스로의 무결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시기에는 이르러야 한다. 지금의 수준에서 AI의 코딩은 이미 기존에 정리된 수많은 코딩 방법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고, 가장 많이 인용된 코드를 불러주는 것일 뿐, 이 코드가 가진 불안함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이 코드가 효율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가 옳은 정보보다 더 널리 퍼져 있어 이를 AI가 제안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검증과 검수에 쓰이는 비용이 AI를 통한 비용 절감보다 더 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LLM에 포함되는 매개 변수가 이미 과거의 지식이라는 것 또한 게임 산업에서 주도적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언제나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게임 산업에서 쓰이기엔 영 제한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유지 보수나 어렵지 않은 기술이 필요한 일, 통계적 데이터를 더 중요시 하는 분야에 따라서는 업무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잠재력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다. 이를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말하기엔 무게감이 부족할 뿐, 업계 전반의 효율성 개선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관건은, '강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막연히 '5년쯤 후엔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싶긴 했지만, 딱히 가능성이 높진 않다. 인공지능 산업은 시작 이후 꾸준히 발전해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강 인공지능'은 요원한 일이며 '챗GPT'를 개발한 '샘 알트만'또한 강 인공지능은 커녕 그 하위 단계인 '일반 인공 지능(AGI)'에도 전혀 근접하지 못했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아마 강 인공지능이 게임 개발에 쓰이는 시대가 오면, 확실히 많은게 달라질 것이다. 그 이전에 생활상부터가 크게 변하긴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AI정도로 놀라기엔 너무나 많은 변화가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아직은 아니다.



▲ 언젠가 오겠지만, 당장은 꽤 멀리 있는 이야기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