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계와 한국, 게임스컴에서 이어진 다리

칼럼 | 강승진 기자 |
'세계 3대 게임쇼'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었던 게임스컴.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그다지 엮일 게 없던 행사였다. 정확히는 거리감이라는 게 느껴졌달까?

그 거리감이 물리적 거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맞다. 비행기 안에서 몇 번은 자다 일어나고 기내 영화 몇 편을 '때려도' 아직 독일 땅조차 밟지 못한다. 직항 노선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행사가 열리는 쾰른까지 갈 수 있는데 이걸 잘못 타면 꼼짝없이 네덜란드까지 가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보다 더 큰 심리적 거리감이 행사의 분위기와 방향성에서 나왔다.

게임스컴에 앞서 진행되는 E3는 비슷하게 서구권에서 통할 게임을 중점으로 다루면서 팬들의 관심은 더 크게 쏠린 행사다. E3가 쇼케이스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게임스컴은 새롭게 공개된 게임들을 체험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현장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참여형 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미 E3에서 봤던 게임을 체험하기 위해 수백만 원 내고 독일까지 가기란 국내 팬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관심도가 떨어지니 국내 게임사의 참여도 적었다. 국내 게임사의 몇몇 미국, 유럽 지부에서 서비스하는 MMORPG 정도가 게임스컴과 한국을 겨우 잇는 다리였다.




그런데 대규모 팬데믹 상황이 이런 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미국 비디오 게임 협회가 디지털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E3는 행사 취소를 반복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 사이 게임스컴은 업계 마당발로 통하는 인물이자 더 게임 어워드 호스트. 그리고 그 이전부터 게임 행사 프로듀싱에 두각을 드러낸 제프 케일리와 함께 거대한 온라인 쇼케이스 '게임스컴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ONL)'를 선보였다.

게임스컴 ONL은 게임사 주도의 쇼케이스를 빼면 손에 꼽을 게임 구성으로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올해는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겸하며 팬들의 환호와 박수라는 현장감을 디지털로 송출했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린 게 국내 게임사들의 결과물이다. 수년 사이 패키지 게임,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막론하고 PC/콘솔에 대한 도전이 줄곧 이어졌던 국내 게임사들의 프로젝트들이 팬데믹 종료와 함께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배틀그라운드가 출시된 해 현장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정도였다면 2021년 펄어비스의 도깨비를 시작으로 올해는 넥슨과 라인게임즈가 퍼스트 디센던트, 퀀텀나이츠의 트레일러를 게임스컴에 맞춰 공개했다. 또 해외 개발 스튜디오 작품인 칼리스토 프로토콜, 문브레이커, 더 파이널스는 ONL 이벤트에 맞춰 등장했다. 특히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은 현장 팬들의 큰 환호와 함께 '가장 기대되는 PS' 상을 받기도 했다.

주요 게임 쇼케이스에서 행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모바일 작품 일변도의 게임 개발에 다양성이 더해졌다. 그러자 국내 게임사의 작품도 전 세계 게임과 당당히 어깨를 같이 하며 소개된 셈이다.

일반 게임 팬에게는 크게 눈에 띄지 않겠지만, '밖으로의 한국 게임' 만큼 '한국으로의 게임'도 크게 늘었다. 그저 해외의 게임 행사기만 했던 게임스컴의 출품작을 낸 회사들은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보도자료를 보내며 국내 팬들에게 자사 게임을 알렸다. 예년 같으면 대형 게임사 정도만이 보도자료를 챙겼지만, 퍼블리싱 전문 기업부터 인디 게임 레이블까지 보도자료를 보낸 곳도, 게임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분명 글로벌 시장에서 바라보는 한국 게임 시장, 그리고 해외로 나가는 우리 게임 모두 이전과는 다른 모양새다. 그리고 지금에야 '한국' 게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크지만, 나아가서는 여느 국가의 게임처럼 나라보다는 '게임'이 강조되리란 기대도 커진다.

EA, SIE, Xbox 등 해외 게임사는 다양한 국적의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전 세계에 게임을 낸다. 이미 크래프톤이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언노운 월즈의 작품을 서비스하고 엠바크가 넥슨의 이름을 함께 올리듯, 결국에는 단순히 퍼블리셔인 한국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가 강조된다. 그리고 수년 사이 선보인 게임들이 완성물마저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세계 속 한국 게임, 한국에서의 다양한 세계 게임을 보는 게 더는 특별한 일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꼭 그렇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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