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스토브] 이 게임은 모두 실화입니다

리뷰 | 김수진 기자 | 댓글: 5개 |

이건 모두 실화다.


현실과 게임의 연결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실화를 게임 속에 가져와 풀어내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각색은 필요하다. 웰컴 투 엘크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 현실에 있던 이야기를 게임 속에 녹여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실의 인물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래픽도 독특하고, 음악도 독특하며, 게임 속 이야기는 더 독특하다. 웰컴 투 엘크는 그런 묘하고도 독특한 현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임이다.


※ 스토리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게임명 : 웰컴 투 엘크
장르명 : 어드벤처
출시일 : 2020.9.17.
개발사 : Triple Topping Games
서비스 : Triple Topping Games
플랫폼 : PC(Stove, Steam)

관련 링크: '웰컴 투 엘크' 오픈크리틱 페이지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낸 현실의 이야기




사람에게는 각자 가슴에 묻어두고 살만한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그 이야기가 안 좋은 쪽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지 않은 이야기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상처를 남에게 보여주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웰컴 투 엘크는 그런 개개인의 정신적인 상처, 트라우마를 게임으로 풀어냈다. 그것도 무작정 슬프지 않게,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게임 속의 주인공, 프리그가 경험하는 에피소드는 모두 제작진들이 직접 겪은 ‘실제’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맥주에 빠져 사는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부터, 동사한 사람을 본 이야기, 갱단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까지. 프리그와 엘크 섬의 친구들은 때로는 가볍고, 또 때로는 묵직한 ‘실화’를 게임으로 풀어낸다.




개발자들은 실화와 게임의 연결을 위해 ‘엘크 섬’을 활용했다. 프리그가 배를 타고 도착한 엘크 섬은 기묘하고도 신비하다. 게임 내내 섬의 존재 자체를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하다.

이는 애초에 제작진이 섬 자체를 메시지 전달의 매개체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게임에 풀어내기 위해 이들은 엘크 섬이라는 정체가 애매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엘크 섬 자체가 현실인지, 꿈인지, 저승인지, 이승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묘한 공간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실존 인물들이 동영상으로 등장해도, 말도 안 되는 듯한 에피소드가 벌어져도 괜찮다. 게임 속 주인공 프리그도, 그 프리그를 조작하고 있는 플레이어도 "뭐 그래 엘크 섬이니까" 라며 넘어가게 된다.

엘크 섬을 도대체 어떤 공간으로 설정한 것인지는, 게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엔딩의 동영상을 통해 게임 속 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프리그가 배를 타고 엘크 섬으로 들어와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고 다시 배를 타고 엘크 섬을 빠져나오는 과정은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고 종료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엘크 섬 그 자체가 ‘게임’이다.




개발사가 정말 독특한 시도를 했다. 사실 그냥 각색된 게임 내 에피소드만으로 뒀어도 게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금 당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단지 게임 속 허상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이고, 그 일은 누군가에게 분명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 이야기. 그리고 그걸 불특정 다수가 접하게 되는 게임 속에서 풀어냈다는 건 정말 큰 용기이자 시도다.

엘크 섬에서는 허구의 에피소드로만 봐도 기괴하다 생각되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게 단지 누군가 써내려간 이야기라면 “독특한 게임이네”라며 어깨 한 번 으쓱하고 넘어갈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분명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일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다.







웰컴 투 엘크는 이를 유저에게 아주 직관적으로 확인시킨다. 특정 에피소드가 끝난 뒤 바로 그 에피소드의 실제 사건을 텍스트로 읽게 한다거나, 몇 가지 정말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들은 동영상을 통해 당사자의 입으로 들려준다.

실화 기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크레딧을 좀 더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참신한 시도에는 단점도 따르기 마련이다. 웰컴 투 엘크 역시 마찬가지, 게임 자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게임 내 에피소드에서 몰입했다가도 편지글이나 동영상으로 현실의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그 몰입감이 완전히 깨져버린다.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현실을 이입한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이건 현실이라며 구분 짓고 있어서다. 게임의 재미 대신 ‘시도’에 좀 더 의미를 둔 게 아닌가 싶다.








독특한 그래픽으로 풀어낸 묘한 분위기

게임 자체는 흔히 볼 수 있는 어드벤처 장르다. 에피소드를 진행하다 보면 매번 새로운 미니게임이 등장하고, 클리어해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미니 게임 자체는 게임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웰컴 투 엘크의 콘텐츠 90%는 스토리다. 좀 과하게 말하면 99%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을 게임화했기에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전개는 묘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아니, 담담하게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그것이 묘하고 시니컬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프리그가 겪는 사건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술을 진탕 마신 뒤 다음 날 아침 차가운 눈밭에서 발견된 이웃의 시체를 마주하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늙은 토끼를 어떻게 보내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동사한 이웃의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파랗게 얼어버린 시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거나, 죽어가는 토끼의 얼굴을 화면 가득 바라보는 채로 어떻게 죽일지 선택지가 뜨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죽어가는 토끼의 얼굴을 보며 차마 목을 비튼다거나 머리를 밟는다는 선택을 할 수 없어서 자리에서 도망쳐버렸다.




미니게임 역시 기묘하다. 찢어진 이웃의 이마를 낚싯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매기도 하고, 아주 이상한 방식의 골프를 치기도 하며, 기억나지 않는 부모의 얼굴을 만들어 달라는 이웃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게임 분위기 자체도 아주 ‘묘하다’. 그리고 이런 이상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는 웰컴 투 엘크의 그래픽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서양 애니메이션을 단박에 떠올리게 하는 둥그런 눈과 깔끔한 채색, 어딘가 단순하면서도 과장된듯한 캐릭터들의 모습까지. 너무 리얼했다면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 이야기나 미니게임 등이 모두 그림체 덕분에 ‘독특’이라는 선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웰컴 투 엘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아주 명확하다. 누군가가 겪었던 좋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무작정 슬프게 전달할 필요는 없다는 것.

이를 등장인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일들을 연달아 겪은 사람의 입을 통해 직접 표현함으로써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 이해는 필요하되, 동정은 불필요하다.




웰컴 투 엘크의 가장 독특한 부분은 사실 엔딩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엘크 섬을 떠난 프리그가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게임과 현실을 이어냈다.

프리그가 열고 들어간 게임 속 집의 문은 그대로 웰컴 투 엘크를 제작하고 있는 현실 스튜디오로 연결된다. 게임 엔딩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이들의 실제 모습이라니,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

평소 기묘하거나 독특한 게임을 즐긴다면, 한 번쯤은 플레이하면 나쁘지 않을 듯하다. 스토리가 중심이기에 언어 역시 매우 중요한데, 현재 스토브 인디에서 전체 한국어 번역을 지원하고 있다.






  • 실화를 직접적으로 풀어낸 독특한 시도
  • 게임의 묘한 분위기를 정확히 살려낸 그래픽
  • 게임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낸 엔딩
  • 너무 직접적이기에 쉽게 깨지는 몰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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