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143개 |
"저 또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때가 분명 있었어요.
'이 정도면 유저들한테 통하겠지'란 생각으로 출시한 게임도 있었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실패였죠.
맞습니다. 제가 오만했어요."

"예전에 넥슨이 재기발랄한 작품들 이것저것 만들어보던 때도 있었어요.
얼마를 버는지에 목표 두지 않고, 뭔가 신선한 시도를 해보던 시절이었죠.
그땐 유저분들도 넥슨의 다음 작품에 나름대로 기대를 걸어주곤 하셨는데.
지금은... 기대치 많이 떨어졌죠.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이런 이미지, 다 우리 스스로 만든 거니까 솔직히 인정해야죠."

"저희 본부에서 신작 9종 만들고 있는데,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제 커리어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넥슨이란 회사 입장에서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넥슨 신규개발본부 김대훤 부사장
2021년 4월 24일 인터뷰 中





▲ 넥슨 신규개발본부 김대훤 부사장





신규개발본부
직원과 직원 간, 임원과 직원 간 투명하고 입체적인 소통 강조

신규개발본부를 설립한 계기부터 들어보고 싶다.

넥슨은 타 게임사와 비교해 독립성과 자율성 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규개발본부에선 이러한 것을 충분히 보장하면서, 동시에 조직적인 차원의 시너지를 내보는 게 목적이었다. 게이머들의 요구 기대치는 점점 높아졌고, 이에 따른 개발팀의 대형화 역시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개발팀들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조직을 꾸려보자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다.


개발자의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잘 반영되는 조직이 있고, 그보단 시장 트렌드와 안정성에 비중을 두는 조직도 있다. 신규개발본부는 어느 쪽인가. 경력 없는 신입 개발자의 아이디어라도 이전에 없던 경험을 줄 것 같다는 확신이 설 경우, 팀 차원에서 이를 진행하는 게 가능한가.

회사 차원에서 새로운 도전에 적합한 인원들을 모으고, 현실로 구현할 기회를 주는 데 개인적으로도 무척 관심이 많다. 또, 디렉터의 의견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생각을 최대한 많이 꺼내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준비하는 신작들을 보면, '이거 힘줘서 제대로 만들겠다는 느낌인데'라는 작품도 있지만 '이건 뭔가 좀... 작지만 기발한 게임이네' 혹은 '뭔가 좀 다른 걸 만들려고 하네'처럼 보이는 게임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개발팀이나 디렉터가 그동안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들이다. 사전 지식을 얼마나 갖췄는지와는 별개로 그 개발팀만의 독특한 시각이나 가능성을 살려보고자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됐다.

물론, 신입사원들의 생각이 기획에 전부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창의성도 아는 만큼 나온다고 생각한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내가 몰랐던 게 너무 많고, 비슷한 생각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내가 참신하다 생각한 기획인데, 이미 다른 게임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지만 일단 이야기 먼저 꺼내보는 습관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보다 중요한 건 듣는 사람의 태도다.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진지하게 듣고 자기 생각을 곁들여 진솔하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른 방식과 문화로 개발했던 팀들이 모여있는 만큼, 내부 소통에 매우 신경 쓰고 있다. 적어도 리더급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해결하려는지 지속해서 직원들에게 설명해주는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팀마다 그만의 조직 문화가 있고, 이 조직 문화가 어떤가에 그 팀의 분위기와 사기, 매력이 좌우된다. 신규개발본부를 꾸릴 당시에 지향하는 조직 문화가 있었을 텐데.

나 역시 라이브 게임 많이 겪어 봤고 신규 프로젝트도 여럿 도전했다. 라이브 중인 게임의 경우, 이미 유저들의 니즈가 분명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경우엔 기존 프로세스를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신규 프로젝트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게임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갈등을 비롯해 개발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매우 많다. 그렇기에 팀 단위에서 개발자들의 의욕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개인의 의욕을 좌지우지하는 건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문화라고 본다.

회사 생활 하면서 직원들에게 이런 이야길 많이 들었다. '각 팀이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건 알겠는데, 회사 차원의 큰 비전이 뭔지 모르겠다'더라. 경영진들, 특히나 개발 쪽 리더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직원들의 의욕 관리에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고, 리더들의 생각을 계속해서 직원들에게 알리는 수밖에 없다. 본부 단위로 이 부분을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할 예정이다.


신규개발본부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적인 경험과 식견이 가장 중요하다. 이건 너무 당연한 거고,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다. 본인부터 열정적인 '에너제틱(energetic)'한 인물도 좋지만, 동료와 조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눠주는 '에너자이저(energizer)'라면 더 좋다.

또 하나 원하는 건 '오픈마인드'. 대승적 사고방식이라고 할까.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된 개발자들 역시 각자만의 철학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오려면 오픈마인드는 필수가 아닐까. 모든 개발은 협력이 기본이니까.

나 자신을 돌아보며 느낀 건데, 자기 계발 면에서도 이런 마인드를 갖는 게 좋다. 각자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나 체계가 있고, 이에 따라 본인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도 어느 정도 굳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변화를 추구하려면 오픈마인드가 꼭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인재상이면서 동시에 나 스스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항상 주문하고 있다.


오픈마인드가 중요한 건 맞지만, 면접자가 이러한 요건을 갖췄는지 바로 알기는 어렵지 않나. 면접 시 모두가 '전 오픈마인드입니다'라고 할 것이 분명하고, 진짜 성격이 어떤지는 결국 채용 이후에 드러날 텐데.

면접자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질문을 던져보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게임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을 들어보고, 그 생각이 편향되어 있거나 혹은 너무 굳은 사고방식이 아닌지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면접장에서 사람을 100% 파악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조직 내 의견 대립이 생길 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 사람의 역량이 드러난다. 이에 맞춰 리더들이 코멘트를 할 수도 있는 거고.



▲ "저희는 열린 마음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임사 면접 때 나온 '사상 검증'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편향된 재미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재미를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굳이 알아볼 필요가 있나 싶다. 오히려 이 사람의 생각이 대중의 코드와 맞닿아 있는지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업계 전반에 걸쳐 재택근무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넥슨도 작년부터 재택근무를 진행 중인데, 부사장 입장에서 이런 언택트 근무 시스템을 운영하며 어떤 걸 느꼈는지 들어보고 싶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와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여기에서 '무엇'은 게임 라인업을 의미하고, 지금 질문의 대답은 '어떻게'에 가까운 것 같다.

첫 번째로 개방과 협력을 들 수 있겠다. 넥슨이 조직별로 독립성과 자율성 모두 높은 편이긴 했으나, 팀 단위의 문화일 뿐 다른 팀의 실무와 비전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면 오로지 내 팀만, 오로지 내 프로젝트만 보게 된다. 즉, 지금까지는 팀과 팀 간의 교류를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부족했다.

이번에 신규개발본부로 통합하며 각 팀 간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례로, 우리는 사내 위키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위키 최상단 디렉토리에 모든 팀의 프로젝트 정보를 다 올리고 있다. 신규 MMORPG 개발자도 수집형 RPG 팀의 기획서를 다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기획서뿐만 아니라, 별도의 아트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고 각 팀 아티스트들의 결과물도 함께 보면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개발자 간 커뮤니케이션도 기본 지식이 있어야... 쉽게 말해 '뭘 알아야' 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을 공개하고, 이렇게 공유된 정보를 개발본부 직원들이 동일하게 알고 있는 것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택트 시대에 맞춰 넥슨뿐만 아니라 대다수 기업이 각 직원의 감정 교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꼭 업무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냥 환담과 사담 속에서도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이다. 이러한 감정의 교류를 통해 스트레스를 낮추는 것은 물론, 팀에 대한 소속감도 높일 수 있다.

우리도 여러 화상회의 도구들을 꼭 업무 시간에만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자유롭고 편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잡담이라도 상관없다. 이게 대형 개발사들이 실천하기엔 의외로 어려운 부분인데, 넥슨의 경우 지난 1년 반 동안 계속 노력해오고 있었다.



▲ "굳이 회의시간 아니더라도 화상회의 도구는 편하게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들은 9종의 게임을 만든다
블록버스터 지향하는 'Big',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Little'

신규개발본부의 개발 방향을 'Big'과 'Little'로 구분한 점도 눈에 띈다. 특히, Little의 'MOD'와 'FACEPLAY'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 같은데.

Big은 '모든 면에서 잘 만들자'. 그러니까 주류 장르의 플레이 메커니즘은 유지하되,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블록버스터의 공식에 충실한 게임이라 보면 된다.

반면 Little은 '개성 있고 재기발랄한 시도를 해보자'는 게 1차 목표다. 모든 요소를 다 잘 만든다기보다는, 재미있는 핵심 요소 하나에 집중하는 작품들이다. 블록버스터의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재미 요소 하나가 완성됐다 판단되면, 빠르게 시장에 출시해 유저들의 평가를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구성했다. 내 생각에 현재 Little의 마인드에 맞는 게임은 프로젝트 'DR'이나 'P2', 'P3'인 것 같다.

그리고 MOD와 FACEPLAY는 아예 시작부터 다른 분야다. Little로 분류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예 3번째 분야라고 생각한다. SNS 문화도 넓은 범주로 본다면 '함께 어울려 노는' 것에 가깝지 않나. SNS와 게임 사이의 구분선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화상회의를 목적으로 만든 툴인데 그냥 순수 재미를 위해 '갖고 노는' 문화도 생겼고. 게임에 대한 정의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지금, 넥슨 정도의 회사라면 이 분야에 도전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꼭 콘텐츠를 전문가들이 개발할 필요는 없다. 유저들이 만드는 콘텐츠들 보면 엄청 파격적이고 신선한 거 많고, 그들에겐 창의성을 분출할 무대가 필요하다. '게임은 무조건 게임 개발자가 만들어야 해'라고 단정 짓는 시대가 지났다는 걸 인정해야 다음을 바라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 신규개발본부 모토인 Big & Little은 '주류 장르를 더 잘 만드는 것', '게임 카테고리 내에서 뭔가 색다른 걸 만드는 것', 그리고 '아예 게임의 경계를 뛰어넘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라 보면 된다.


MOD는 유저들이 직접 만든다는 면에서 '로블록스'와 비슷한 것 같다.

'로블록스' 비슷한 거 아니야?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맞다. 비슷한 거 꽤 있다. 다만, '인제야 로블록스 따라 한다는 게 말이 돼?'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뭔가 다른 게 있다. 여러 차이점 중 하나만 꼽아 보겠다.

MOD는 좀 더 복잡한 게임, 그러니까 RPG 같은 장르를 유저가 좀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이 제작 툴을 활용해 만드는 콘텐츠의 범위를 좀 더 크게 잡으려고 한다. 복잡한 건 더 쉽게, 반대로 원래 간단한 게임은 짧은 영상 편집하는 수준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유저들이 '어, 이걸로 하니까 더 쉽네'라고 느낄 만큼.


현재 게임들의 개발 진행도는 얼마나 됐나.

우리가 진행하는 것들은 대부분 내년 안에 출시될 전망이다. 물론, 그룹 차원의 라인업 정비를 해야 하지만, 일차적인 목표는 그렇다. 프로젝트 HP는 이은석 님이 디렉터를 맡고 계시는데, 이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프리 알파 테스트를 진행할 것 같다. 신규개발본부가 만들어진 지 벌써 1년 반 됐다. 모두 열심히 개발 중이다.

그리고 개발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거, 개발팀에도 안 좋고 결과물에도 안 좋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트렌드도 변하고 유저 기대치도 올라가지 않나. '어, 이거 원래 방향성에도 안 맞고... 기대 퀄리티에도 못 미치는데' 하며 고개 갸우뚱거리고 점점 꼬여가는 걸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봤다. 신규개발본부는 각자 잘하는걸 빠르게 파악해 개발 리소스를 최적화하고 있다.

여담으로 지금 신규개발본부 구성원이 600명 좀 넘는데, 내부에서 3년 안에 최소 5개 이상의 'IP'라 부를만한 라인업 확보를 목표로 잡았다. 내가 생각하는 IP의 기준은 명확하다. 유저들이 '2편, 3편 계속 만들어 줘'라고 요구하는 작품, 그리고 타 게임사나 엔터테인먼트 업체에서 '우리와 함께해보자'라고 요청 들어오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 이은석 디렉터가 총괄하는 '프로젝트 HP'. 신규개발본부 작품 중 가장 먼저 공개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SF2를 '최정상급 수집형 RPG'가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미 시장에 나온 게임들과 비교해 어떤 부분을 강조했나.

수집형 RPG의 핵심은 캐릭터의 매력에 있다. 말 그대로 수집욕을 자극하는 캐릭터가 최대한 많은 게임이 좋은 수집형 RPG라 생각한다.

매력을 전달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설정, 외형, 그리고 연출 이 세 가지가 핵심이라 생각한다. SF2는 이 모든 요소를 다 챙기면서도, 특히 극한의 연출을 보여주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단순한 스킬 연출뿐만이 아닌, 시나리오상에서 그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까지 포함한다. 유저가 게임 해보고 '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썼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전투 방식이 좀 독특하다. 자기 자리 유지하고 턴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싸우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다.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기존에 보아왔던 전투 방식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시장에 출시된 수집형 RPG들 보면, 결국 OP 캐릭터 몇 개 모으면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유저들이 캐릭터 다 모으면 게임사가 더 센 적과 캐릭터 내고, 그럼 유저들은 또 결제해서 캐릭터 키우고... 이 구조를 반복한다.

SF2는 기획 초기부터 '그러지 말자'라고 했고, 게임 내 모든 캐릭터가 분명한 의미와 사용처를 갖도록 준비했다. 쉽게 말해 OP 캐릭터 수집 공식을 깨는 작품이라 보면 된다.



▲ 프로젝트 SF2, "궁극의 연출을 무기로 세계 시장 조준한 작품입니다"


big으로 분류된 '신규 MMORPG'의 핵심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재 넥슨의 대표 MMORPG 중 하나인 V4가 '인터 서버'를 무기로 한 것처럼, 이 작품도 무언가 차별점이 있을 것 같은데.

신규 MMORPG의 캐치프라이즈는 '공성전의 대중화'다. MMORPG의 엔드 콘텐츠는 결국 집단과 집단 간의 경쟁 콘텐츠라 생각하는데, 이게 잘 알다시피 상위권 유저들의 전유물인 경우가 대다수다. 우린 이걸 최대한 캐주얼하게 구현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리고 인물과 이야기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최대한 많은 유저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것도 전투 방식이 좀 다르다. 단순 타겟팅 시스템은 아니고, 기존에 보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전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신규 MMORPG는 넥슨의 'Big' 중에서도 가장 큰 개발력이 투입됐다


코로나 유행 이후 게이머들의 플레이 패턴이나 성향이 변했다고 느껴본 적 있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게이머'들의 패턴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기존에 게이머가 아니었던... 그냥 디지털 세상에서 재밌는 걸 찾아 돌아다니는 유저들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좀 더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것 같다. 아까도 설명했듯 화상회의 도구를 놀이 시스템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프로젝트 중 하나인 FACEPLAY의 제목은 내가 과거 개발에 참여했던 '큐플레이(QPLAY)'를 오마주한 것이다. 퀴즈퀴즈에서 이름 바꾼 게 '큐플레이'였는데, 사실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애매한 작품 아닌가. 아바타 옷 갈아입히고, 사람들끼리 퀴즈 풀면서 채팅하고 노는 그런 작품이었는데, 그 게임에서 퀴즈는 수단에 가까웠다. 퀴즈를 푸는 게 목적이 아닌, 그냥 다른 사람과 만나고 함께 놀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놀이 플랫폼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화상으로 놀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고 FACEPLAY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잡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다. 요즘 주변에서 많이 들리는 메타버스와는 약간 결이 다른 것 같다. 넥슨이 생각하는 또 다른 놀이 방식 정도로 봐주었으면 한다.


모든 프로젝트가 무사히 출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사정에 따라 중간에 접히는 경우도 있지 않나. 이런 경우 해당 프로젝트에 몸담았던 개발자들은 어떻게 되나.

접힌 프로젝트에 속한 개발자를 내보내는 건, 회사 차원에서 그때까지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를 모두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와 관련해선 넥슨 이정헌 대표와 개발진이 '그러지 않겠다'라고 이미 선언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선택과 집중 과정에 따라 접힌 프로젝트가 있었던 건 사실이나, 이것 관련해 넥슨이 해당 팀의 개발자를 인위적으로 내보낸 적은 없다. 어떻게든 재배치를 하려고 했고, 당장 어렵다면 재배치가 가능하도록 시간과 기회를 회사 차원에서 꾸준히 제공했다.

지금 정해진 프로젝트는 반드시 출시하겠다는 각오로 진행 중이나, 만에 하나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프로젝트에 속한 개발자들을 계속 데려갈 수 있는 정책을 이미 내부적으로 마련했다. 그 부분에 대한 공감대와 신뢰는 이미 어느 정도 쌓았다고 본다.





신뢰 회복
현재의 분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것.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주 5일제가 도입된 지 벌써 17년이 됐고, 최근엔 '놀금'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주 4일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실제로 일부 게임사는 격주 단위로 주 4일제를 도입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김대훤 부사장은 주 4일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 4일제와 관련해 경영진과 공식적으로 이야기해본 적은 아직 없다. 정말 중요한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개발하는지'에 있는 것 같다. 무조건 오랜 시간 회사에 앉아있다고 좋은 게 아니다. 짧더라도 집중해서 일하는 게 좋다. 또, 직원들이 일하는 만큼, 회사 차원에서 충분한 휴식도 보장해줘야 한다.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눈에 보이는 리소스 누수도 엄청나게 커진다. 잘 가동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멈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제와 직접 관련된 일부는 뼈 빠지게 일하겠지만, 별 관련이 없어 손 놓는 사람도 분명 나오게 된다. 그다음 스텝 대기한다는 명분으로.

이런 이유로 개인의 집중도를 요구하기보다는 조직 차원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직원들에게 표준화, 공통화, 일원화를 굉장히 강조한다. 넥슨 같은 큰 회사에서 얘기는 나와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예를 들자면, 우린 내부적으로 개발한 서버 엔진을 본부 내 모든 팀이 다 같이 쓴다. 이걸 전담해 유지 보수하는 팀도 따로 있고. 그런 조직을 운영하면 업무 효율을 높이고, 개발팀은 리소스를 게임 퀄리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김대훤 부사장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넥슨에 몸담아왔다. 회사 대선배 입장에서 '우리 회사 복지 중 이거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다'라고 느끼는 게 있다면.

'내 마음 읽기'라는 심리 상담 솔루션이 있다. '요즘 힘들다', '마음 관리하기 어렵다' 하는 직원들은 조용히 그 프로그램 신청하면 된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에도 이런 심리 상담 솔루션이 활성화된 것으로 아는데, 우리도 프로를 지향하는 사람들 아닌가. 사회 생활하다 보면 언젠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생긴다. 이걸 회사가 모른 척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직원들의 심리를 케어해주는 건 참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2006년 넥슨에 입사, 큐플레이 개발팀장부터 시작해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그리고 기자 입장에서 본 김대훤 부사장은 넥슨의 다른 누구보다 큰 성공을 맛본 적도 있지만, 뼈 시린 고난의 시즌까지 모두 겪은 인물이다. 그간 넥슨에서의 삶을 스스로 돌이켜 본다면.

내게 정말 많은 기회를 준 넥슨에 감사하고 있다. 내 커리어를 돌이켜 본다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가 분명 있었다. 이 때문에 실패나 위기도 많이 겪었던 것 같고.

몇 년 전 정말로 큰 실패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포스트모템 발표를 내부에서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내 발표 시작 멘트가 '오만했습니다'였다. 나부터가 이 정도면 시장에서 그냥 통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유저들의 니즈를 분석해 판단해야 하는데, 그냥 내 생각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까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에도 말했듯 오픈마인드가 중요한데, 당시 내겐 그런 오픈마인드가 없었다. 노련한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기술력을 쌓는 거,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의 작은 아이디어라도 무시하지 말고 조직 차원에서 항상 품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이때 느꼈다.

그리고 옛날엔 넥슨이 정말 재기발랄한 작품들 내면서, 유저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회사였는데... 최근의 결과물은 그렇지 못한 점 나도 잘 알고 있다. 넥슨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떨어진 지금, 좋은 결과물이 안 나온다면 어떻겠나. 내 커리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넥슨이란 회사 입장에서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5일, 넥슨은 신규개발본부의 대규모 특별 수시 채용을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기획, 아트, 프로덕션,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직군에서 세 자릿수 규모의 인재를 모집한다. 현재 신규개발본부는 김대훤 부사장의 지휘 아래 총 9종의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신규개발본부의 개발 모토는 'Big & Little'이다. Big에 포함된 게임은 총 4종으로, '신규 MMORPG', '프로젝트 SF2', 'HP', '테일즈위버M'이 해당한다. 이외 5종의 게임은 Little로 분류됐다. 김대훤 부사장은 "블록버스터의 공식에서 벗어나, 개성을 강조한 작품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 신규 MMORPG

- PC / 모바일 멀티플랫폼 게임
- 서든어택, 액스(AxE) 개발에 참여한 이익제 디렉터가 총괄
- 넥슨 설립 이래로 역대 최대 개발인원 투입
- 언리얼 엔진4를 기반으로 하나의 심리스 월드를 채용했고, 공성전의 '대중화'가 핵심


■ Project SF2

- 모바일 캐릭터 수집 RPG
- 슈퍼판타지워를 개발한 이정근 디렉터와 100명 이상의 개발자가 참여
- 언리얼 엔진4 기반의 Full 3D 카툰 애니메이션 그래픽
- 기존 수집형 RPG와 비교해 한 단계 위의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


■ HP

- 중세 판타지 배경이나, 현대적 시각 요소도 일부 가미된 PC 액션 게임
- 듀랑고, 마비노기 영웅전을 개발한 이은석 디렉터의 신작. 90명 이상의 개발 인원 구축 예정
- 근접 무기 중심의 PvP 액션을 강조


■ 테일즈위버M

- 원작의 강점인 2D 그래픽과 스토리를 계승 및 발전
- 기존 모바일 MMORPG 대비 전략적인 전투를 강조
- 테일즈위버, 바람의나라 디렉터를 맡았던 심기훈 디렉터가 90여 명의 인원과 함께 개발 중


■ MOD

- 게임 메이킹 플랫폼
- 창의적인 재미를 만드는 게 목적인 프로젝트


■ FACEPLAY

-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놀이 플랫폼
- 딥러닝, 비전컴퓨팅에 기반한 차세대 AI 기술 활용


■ DR

- 해저 어드벤처를 소재로 한 PC / 콘솔 멀티플랫폼 게임
- 독특한 게임플레이와 픽셀 3D 환경의 아트를 강조


■ P2

- 팀 대전액션 장르의 PC / 콘솔 멀티플랫폼 게임
- 언리얼 엔진4를 활용한 빠른 템포의 전투와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특징


■ P3

- PC RPG
- 동료들과 함께 중세 판타지 던전을 모험
- 실사풍의 어두운 배경을 테마로 하며, 실시간 멀티플레이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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