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2015]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 개발후기, “벼랑 끝에서 우리는 부활했습니다"

게임뉴스 | 오의덕 기자 | 댓글: 17개 |



“지루하고 형편 없는 게임은 잘 팔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체득한 교훈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 2015 강연장, 라리안 스튜디오의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스벤 빈케’(Swen Vincke)가 강단에 올라 내뱉은 첫 번째 말이다. 금번 강연의 제목은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 개발후기”. 어떻게 라리안 스튜디오가 절망적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재기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 지를 전 세계 개발자들에게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 스벤 빈케(Swen Vincke)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Divinity: Original Sin)은 벨기에 개발사 라리안 스튜디오가 개발한 PC 롤플레잉 게임으로 2014년에 출시됐다. 발더스 게이트, 아이스윈드 데일 류의 고전 RPG를 표방하면서도 혁신적인 던전 탐험과 전투시스템을 담아 평단과 게이머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100시간이 넘는 긴 플레이시간과 함께 싱글 플레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멀티플레이까지 지원하는 것도 강점. 스벤 빈케에 따르면 디비티니: 오리지날 신은 35명의 개발팀에 의해 3년에 걸쳐 개발됐으며, 라리안 스튜디오가 자체 퍼블리싱한 두 번째 게임이다.

“13년 경력 , 40개의 게임을 출시한 라리안 스튜디오가 대격변을 맞이하게 된 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한 최악의 악몽 '디비니티2: 에고 드라코니스’의 출시 때문입니다. 첫 번째 콘솔게임이자 첫 번째 공동퍼블리싱 게임이고요, 예정일보다 8개월 늦게 출시됐지만 미완성인 채로 세상에 나왔죠. 우리 회사의 전환점이 된 게임입니다."

2010년 출시, 메타크리틱 평점 62점에 머무르며 흥행에 참패한 '디비니티2: 에고 드라코니스'는 막대한 빚더미와 함께 라리안 스튜디오 전 직원에게 앞으로 회사가 계속 운영될 수 있을 지에 대한 깊은 의문까지 남겼다. 한동안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진 라리안 스튜디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개발하면서 외부 미들웨어에 너무 의존했고 반복작업도 많았습니다. 목표 없이 산만하게 개발하면서 팀원간의 불화도 있었죠. 재무사정도 좋지 않았고 공동 퍼블리싱이다보니 프로젝트에 대한 통제권도 잃었습니다. 게임의 정체성이 오락가락했던 겁니다.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회사를 재시동(Reboot)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금니 깨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 스벤 빈케는 재시동의 첫 실행 단계로 후속작 ‘디비니티2: 더 드래곤 나이트 사가’를 선택했다. 우선 명확한 계획부터 세웠다. '그동안의 피드백을 수렴하여 게임을 완성도 있게 출시한다. 채무를 정리하고 라리안 스튜디오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메타크리틱 82점을 기록한 '디비니티2: 더 드래곤 나이트 사가’는 여러 매체에서 베스트 롤플레잉 게임으로 꼽혔으며 게이머들에게도 호평을 받아 어느 정도 실추한 명예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은 게임은 역시나 통했습니다. 앞으로도 완성도에 있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이를 계기로 라리안 스튜디오는 새로운 철학을 세웠습니다. '우리의 비전을 고수하고 우리 자신만의 기술력을 키운다. 우리가 직접 퍼블리싱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세운다. 다시는 미완성인 채로 게임을 출시하지 않는다.’였습니다."

이때부터 스벤 빈케는 회사의 구세주가 되어줄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하는데 하나는 큰 규모, 다른 하나는 작은 규모로 두 개의 게임을 동시에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즉, 작은 규모의 게임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으로 큰 게임을 만들 자금을 계속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스벤 빈케가 예상치 못한 한 가지가 있었으니, 게임의 완성도를 높힐 수록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도 계속 커진다는 사실이었다. 애초 투입 가능한 자금이 150만 유로가 있었고, 개발과 퍼블리싱 비용 모두 합해 투입 가용 자금의 두 배인 300만 유로로 예산 계획을 세웠으나 '디비티니: 오리지날 신의 출시가 임박하자 총 비용은 450만 유로(한화 약 55억 원)까지 증가했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일단 평가가 좋았던 디비니티2: 더 드래곤 사가의 XBOX360 버전과 이전에 출시했던 게임들의 리패키지 한정판을 출시했습니다. 라리안스튜디오가 지분 51%, 투자자들이 지분 49%를 가지고 있는 특수목적회사(SPV)를 세웠고, 팀원들 사기를 높히고 사전에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을 여러 매체에 홍보하기 위해서 게임쇼에도 지속적으로 참가했습니다. 2013년에는 킥스타터를 통해 약 100만 달러(한화 약 10억 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디비니티 : 드래곤 커맨더’도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보다 늦게 출시하는 계획이었는데 출시를 앞당겨 자금의 희생양으로 만들었죠. 거의 악마와 거래를 시작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을 위한 자금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성우 녹음과 현지화, 출시 작업을 위한 자금이 여전히 모자란 상황에서 킥스타터, 투자자, 돈을 빌렸던 은행들로부터 빚 독촉은 물론, 갖가지 스트레스까지 받게 된다. 결국 라리안 스튜디오를 자금 압박에서 구출해준 것은 ‘디비니티 : 오리지날 신’의 스팀 얼리엑세스(Early Access) 출시와 스팀 여름세일로 벌어들인 수익이었다.

“개발자금뿐 아니라 실제 개발 과정에서도 난항이 이어졌습니다.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을 개발하면서 게임 디자인 철학을 세웠습니다. 강하게 몰입할 수 있는 서사 구조를 가져야하고, 게임 내 월드는 체계적이면서도 다채롭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도전할 만한 전투시스템과 다양한 플레이에 대한 보상시스템까지 함께 들어가 있는 협동(Co-op)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개발하기 어려웠냐고요? 멀티플레이어 롤플레잉 게임은 단조롭고 멍청하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부셔야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스벤 빈케는 “N+1 디자인”이라는 콘셉을 꺼내들었다. 풀어 설명하면 모든 게임내 개별 상황에서 항상 N가지 경우의 해결방법과 함께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빠져나올 수 없는 곤란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추가 해결방법'(+1)을 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협동 롤플레잉 게임이기에 특히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이것 외에도 스벤 빈케는 극심한 자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혁신적인 게임을 완성하기 위한 초심과 노력을 시종일관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 유저 의견을 통해 보다 현실적으로 바뀐 타이틀 아트웍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개발법(Player-driven design)도 효과가 꽤 좋았습니다. 얼리엑세스로 출시하자 스팀 게시판에 엄청난 유저 피드백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적극 수렴하느냐 혹은 무시하느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저희는 적극 수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게시판 모든 글에 적힌 피드백을 표로 만들어서 업무로 정리했고 매번 패치때마다 최대한 반영해 나갔습니다. 정말 진이 빠지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었죠. 물론 이로 인한 출시 연기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스벤 빈케는 '다듬기 작업’(Polishing)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공개테스트를 통해 UI, 튜토리얼, 접근성, 밸런스를 반복해서 다듬었다. 이외에도 자체 QA팀을 통해 QA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으며, 게임 DVD에 실행파일은 빼고 스팀 인스톨러만 넣어서 대부분 버그를 해결한 Day 1 패치를 모든 플레이어가 다운로드 받도록 강제했다.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 대부분이 첫 인상만으로 해당 게임을 평가하고, 메타크리틱 평점 7점과 9점은 판매량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었다.

이 모든 노력 덕분에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은 대부분 해외 매체에서 ‘혁신적인’ 턴제 협동 롤플레잉 게임으로 인정 받았고, 스벤 빈케는 9점에 가까운 메타크리틱 평점과 높은 판매량, 두 마리 토끼를 한 꺼번에 잡을 수 있었다.



▲ 발표 전 운영진과 대화를 나누는 스벤 빈케

강연의 마지막에 이르자 스벤 빈케는 현지화와 홍보 전략을 짜고 앵그리조와 같은 유투브 네임드와 트위치 실시간 방송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언급했다. 유저 대응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특히 목소리를 높혔다. 유저들의 게임 평가, 비판에 대해서는 반응하는 게 좋지만, 어느 정도 선을 넘어가면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과 절대 유저들에게 부정적으로 대하지말고 항상 정중할 것을 당부했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여전히 펜& 페이퍼 롤플레잉 게임 느낌이 물씬 나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고자 노력 중입니다. 저희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고 있고, 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보다 발전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실험도 진행 중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라리안 스튜디오에서 미공개 롤플레잉 게임 신작 2종을 발표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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