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는 왜 ‘섬의 궤적’을 미워하지 못하는가

리뷰 | 전세윤 기자 | 댓글: 24개 |

‘팔콤의 문제아’라 불리게 된 시리즈의 첫 작품


(※ 본 리뷰는 좀 더 쾌적한 설명을 위해 PS Vita의 스크린샷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웅전설 섬의 궤적’.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지금의 팔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최근에 발매된 시작의 궤적은 문제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거 궤적 시리즈 시절로 돌아간 듯한 전개와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는 좋은 평가가 많다. 즉, 지금의 팔콤 팬들은 섬의 궤적 시리즈를 크게 반기지 않는 셈이다.

그렇지만 섬의 궤적은 팬들에게 있어서 매우 기념비적인 타이틀이다. 거진 7년이란 세월을 깨고 다시 한국에 상륙하게 된 궤적 시리즈는 이후, 팔콤이 한국 시장에 자신들의 타이틀을 출시하게 만들어 준 징검다리 역할을 크게 해냈고, 지금도 그 역할을 돈독히 하고 있다. 지금 일반 유저들에게 물어봐도 ‘섬의 궤적’은 들어봤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아가 현재 ‘Steam (스팀)’으로 발매되어 천공의 궤적 이후, 다시 PC 시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팬들은 어째서 섬의 궤적을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못하는 것일까.



게임명: 영웅전설 섬의 궤적: Kai
장르명: RPG
출시일 : 2021. 1. 28. (한국, Steam판)
개발사 : 니혼 팔콤
서비스 :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PC (Steam) (원작: PS3, PS Vita)

관련 링크: '영웅전설 섬의 궤적' 오픈크리틱 페이지


발전했지만 여전히 10년 전에 머무르는 그래픽




자신이 팔콤의 팬이 아님을 확인했는가? 그럼 섬의 궤적의 단점이 바로 눈앞에 보일 것이다. 바로 그래픽이다. 섬의 궤적은 팔콤의 야심찬 계획을 담은 게임이다. ‘에레보니아 제국’이라는 광활한 대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PSP로 발매되려던 본작을 미뤄 PS Vita로 발매하게 되었고, 풀 3D 그래픽으로 표현해 이전의 2등신 SD 그래픽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픽은 전혀 야심 차지 않다. 물론 풀 3D로 에레보니아 제국이란 땅을 나름대로 광활하게 표현하려고 한 노력은 잘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이 문제가 아니다. 1년 주기로 게임이 발매되고, 한동안 3D 그래픽을 만들지 않았음을 감안해도 시대에 뒤처지는 듯한 비주얼 표현이 문제인 것이다. 기존의 팬은 물론 새로운 팬층을 끌어들이려면 조금 더 극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이전에 팔콤이 3D 그래픽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쯔바이 2’를 보자. 섬의 궤적과 비슷한 쉐이더를 사용한 것 같아 보이나 적어도 때깔이 좋아 보인다. 지금 섬의 궤적은 2008년에 발매된 게임과 비교된 것이다. 그만큼 기초적이지 못한 모델링과 어색한 모션이 조악한 그래픽과 합쳐져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작품인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PS Vita’로 출시된 JRPG였기에 나름대로의 변명거리가 있었던 점을 참고하면 좋다.






긴 플레이 타임과 타격감이 살아있는 턴제 전투




궤적 시리즈의 턴제 전투는 구작부터 최신작까지 ‘AT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채용하고 있다. ‘행동 순서’를 기록한 AT 바에 캐릭터와 적의 행동 순서가 기록되며, 각 행동에 따른 딜레이만큼 AT 바에서 밀려나게 된다. 여기에 공격, 도구, 도주가 있고 ‘마법’에 속하는 아츠 기술, 각 캐릭터마다 ‘고유 스킬’을 갖추고 있는 크래프트 기술을 사용해 적을 쓰러뜨리는 개념이다.

섬의 궤적은 여기서 ‘추격 기능’을 넣어 적이 무너지면 추가타를 넣을 수 있는 ‘링크 어택’ 기능을 추가했다.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쾌감이 상당히 강력한데, 추격으로 쌓은 포인트를 사용해 러시 / 버스트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고 러시는 두 명이서, 버스트는 네 명이서 합동 추가타를 날린다. 이런 추격 기능이 섬의 궤적의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저에 따라 50시간부터 100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는 기나긴 플레이 타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는 섬의 궤적의 플레이 타임이 맵을 반복해서 가로지르거나,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컷신, 그리고 쉽게 질릴 수 있는 반복되는 스토리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르드 고원'이 그런데, 넓고 광활한 대지를 표현한 것은 좋으나 말이라는 빠른 이동 수단이 있어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런 유저들을 위해 추가된 편의 기능이 있다. PS4판으로 출시된 '섬의 궤적 Kai' 이후, PC판에도 게임을 배속으로 돌려주는 '하이-스피드 모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를 활용하면 전투 장면을 빠르게 넘어갈 수 있고 컷신이나 이동하는데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노가다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시켜주지 않는 하이-스피드 모드는 원판에선 사용할 수 없고, 오로지 개선판인 Kai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섬의 궤적의 부가 요소는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열차 안에서 하는 '블레이드'란 카드 게임은 가끔 본편보다 재밌을 정도다. 여기서 궤적 시리즈의 단골 요소, 낚시와 요리 그리고 책을 수집하고 모으는 과정도 쏠쏠하다. 다만, 한 번만 들를 수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서 책이나 요리 레시피 등을 구매해야 하는 부분은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생동감 넘치는 NPC와 제자리걸음하는 스토리

궤적 시리즈만의 매우 큰 장점인 생동감 넘치는 NPC 서사 또한, 작품 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들의 모험과 별개로 NPC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대사가 계속해서 달라지는데, 그 대사를 통해 NPC들이 그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나가는 NPC 마저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섬의 궤적은 선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하지만 “궤적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스토리’다. 팬들이 지금껏 이 시리즈를 붙잡고 오고 있는 것은 엔딩을 보기 위해, 계속해서 이어져 가는 스토리의 끝을,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비록 엔딩이 나진 않지만, 하늘의 궤적 시리즈나 제로/벽의 궤적이 남겨준 캐릭터와의 인연,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낀 여운 또한 시리즈의 연속성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섬의 궤적 또한, ‘섬의 궤적 II’에서 매듭을 지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남기게 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매너리즘에 휩싸인 구성을 보여준다. 물론 주인공이 속한 VII반의 캐릭터가 상당히 많고 캐릭터에 쌓인 드라마를 풀어내기 위함이란 건 알겠다. 그렇다고 해도 2장부터 6장까지. 비슷한 구성을 쭉 밀고 나가다가, 종장에서 갑자기 이야기가 풀려버린다.

다만, 학원물이란 장르에 상당히 출중하면서도 젊은이들의 고민을 여러 시나리오를 통해 풀어내기에 캐릭터에 몰입하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서 유시스와 마키아스와의 관계가 대표적인데, 유시스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마키아스는 왜 귀족을 굉장히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섬의 궤적을 플레이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풀리고 납득하게 된다.

비록 제자리걸음을 유지하면서 결말부에서 갑작스러운 반전이 이루어지는 스토리지만, 학생의 신분이라는 비교적 작은 입장임에도 발버둥 치려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어 자신의 학창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충실하게 이식되지 못한 PC판, 점차 개선되다

지금껏 궤적 시리즈의 PC판은 ‘북미/유럽’에서만 발매되었고, 한국은 기약이 없었다. 그러나 2021년 1월,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CLE)에 의해 섬의 궤적 한국어판의 PC판이 나오게 되었고, 한국의 많은 유저들이 이를 플레이하고 저마다의 감상평을 남겼다.

그러나 처음에는 충실하게 이식되지 못했다. 화면 시점을 마우스로 돌려볼 수 없음은 물론, 시점 회전을 포함한 모든 키 배치를 키보드에 집중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게임 패드가 정상적으로 인식되지 않아 여러 번 게임을 끄고 켜야 패드가 인식되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PC판인데, PS4에서도 지원했던 ‘4K 화질’을 지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요소로 섬의 궤적을 즐긴 유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차근차근 패치하면서 위와 같은 발언은 줄어들었다. 마우스로 화면을 돌려볼 수 있게 되었고, 게임 패드를 물리면 정상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으며, 4K 화질 및 ‘그림자 표현’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꾸준히 패치를 통해 게임의 경험을 개선하고 있는 중이다.










섬의 궤적은 한국의 팔콤 팬들에게 있어서 애증의 증표나 다를 바가 없는 작품이다. 섬의 궤적이 한국에 먼저 출시되었기에 궤적 시리즈를 전부 한국어판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고, 이스 시리즈 등까지 확대되는 등, 현지화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보니 섬의 궤적을 미워할 수 없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바라볼 수도 있겠다.

섬의 궤적은 분명히 입문도 힘들고, 궤적 시리즈의 단점을 극대화한 작품이긴 하나 아시아 로컬라이즈의 초석을 다지고 한국에 다시 팔콤의 팬층을 두텁게 마련했다. 오히려 2014년에 섬의 궤적이 대대적으로 현지화되었기에 지금의 새로운 팔콤 팬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섬의 궤적 첫 출시가 지금 2021년이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주목받았을까?




PS Vita의 부족한 성능과 현저히 부족한 카트리지 용량, 팔콤의 뒤떨어진 기술력과 한계 등으로 포장하려 해도, 섬의 궤적의 떨어지는 그래픽은 확실히 2013년에 출시된 작품이라기엔 믿기 힘든 구석이 많은 편이다. 스토리 또한 한 편으로 완결되지 않는 요소와 반복되는 구성으로 시리즈를 여태껏 즐겨온 팬이 아니라면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그나마 좋은 요소라면 발전된 턴제 전투가 손맛을 자극한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섬의 궤적을 미워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PS4로 발매된 섬의 궤적 IV의 엔딩을 봤기 때문이다. 4편까지 이어져 온 대서사시의 마무리를 본 플레이어들은 전부 이렇게 말한다.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결말 하나는 정말 좋았다.”고 말이다.



  • 매력적인 캐릭터와 생동감 넘치는 NPC
  • 거대한 서사시가 펼쳐지는 세계관 설정
  • 전작과 비교해 더욱 재밌어진 턴제 전투
  • 긴 플레이 타임과 만족스러운 부가 요소
  • 00년대로 돌아간 듯한 조악한 그래픽
  • 급작스러우면서도 후속편에 맡겨버린 결말
  • 너무 많은 주연 등장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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