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랜드'는 지난 3월, 갑작스럽게 타계한 故토리야마 아키라의 단편 만화입니다. 특유의 디자인과 감성이 녹아든 해당 작품은, 비교적 최근인 2022년 말부터 다시 부활을 알렸죠. '샌드 랜드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지난해 여름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그리고 올해부터는 OTT 서비스인 디즈니+를 통해 매주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원작이 단행본 한 권 분량의 짧은 만화였던지라, 극장판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샌드랜드' 세계의 새로운 면모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게임으로 출시된 '샌드랜드'도 마찬가지죠. ILCA가 개발한 '샌드랜드' 또한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토리야마 아키라가 직접 참여한 새로운 등장인물과 월드, 원작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게임명: 샌드 랜드(SAND LAND)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4. 4. 25.
리뷰판: 1.0.3 버전개발사: ILCA
서비스: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Steam), XBOX, PS
플레이: PS5
한 권짜리 단행본을 오픈월드로? 확장된 '샌드랜드'의 세계관
방영중인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마찬가지지만, 게임 '샌드 랜드'는 오픈월드로 그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덧붙였습니다. 특정 인물이 주인공 일행과 마주하게 되는 시점도 원작,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다르며, 단행본 내용을 다룬 지점 넘어서게 되면 게임에서만 확인 가능한 독창적인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원작자인 故토리야마 아키라의 감수를 거쳤다는 점도 이 작품이 가진 중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작품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샌드 랜드'의 이야기는 여느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이야기와 별 다를 바 없이 시작합니다. 인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거대한 전쟁 이후, 그리 크지도 않은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그리고 마물)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모두 첫 시작은 같습니다. 주인공인 마족의 왕자 '벨제붑'이 샌드 랜드 왕국군의 트럭을 습격해 '물'을 탈취하는 장면이죠. 온 세상이 사막화된 가운데, 샌드 랜드의 국왕은 물을 독점해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나 마족들은 하루하루를 갈증과 싸워나가야만 했습니다.
물을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아마 가장 친숙한 것은 비교적 최근 개봉한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의 만화가 제이미 휴렛의 '탱크 걸' 같은 작품들도 배경으로 활용한, 상당히 클리셰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샌드 랜드는 이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에, 토리야마 아키라 특유의 감성이 빼곡히 녹아들며 색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말로는 악당이라고 하지만 하는 행동은 선하기 이를 데 없는 마족, 언제나 그렇듯 마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 그리고 호시탐탐 나쁜 짓을 저지르고 싶어 안달난 천사(?) 등이 그 예입니다.
사실, 세계관 자체는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원작이 단행본 한 권 분량인 만큼 원작만으로는 세계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엿볼 수는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초반에 내래이션이 설명하는 대로 사막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주인공 일행이 사람들을 위해 찾아 나서는 '환상의 샘'도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요. 초반부 갈등이 너무나 빠르게 해소되는 만큼 '오픈월드 게임'으로 만들어낼 소재가 충분할까 의심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개발사인 ILCA는 작고한 토리야마 아키라가 직접 구상한 포레스트랜드, 새로운 캐릭터 안이나 무니엘 등을 적극적으로 게임에 내세우면서, 원작이나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는 게임만의 매력을 담아내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케도 이렇게 늘렸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모두가 공감하실 이야기일테지만, 게임의 스토리 전개는 다른 콘텐츠의 전개 방식보다 고려할 점이 많습니다. 플레이어에게 핵심 게임플레이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면서, 메인 스토리 외에 부가적인 요소들도 신경써야 하죠. 특히, 오픈월드는 부가 요소의 충분함, 또는 모자람이 한 눈에 보이는 장르인 만큼, 샌드 랜드의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항들을 고려해, 게임의 내용은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꽤나 독창적으로 흘려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몇몇 부분은 원작과 닮아 반가운 느낌을 주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재해석했구나'하는 것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죠. 이처럼 단행본, 또 확장된 애니메이션 시리즈와도 살짝씩 다른 접근 방식을 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어린이를 위한 '매드맥스'
게임 메인 이미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듯, 스토리를 제외한 '샌드 랜드'의 핵심 게임플레이는 다채로운 탈것인 '메카'를 활용한 모험과 전투로 이뤄져 있습니다. 원작에서 왕국군에게 탈취한 전차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됐던 것과도 다른 부분이죠. '드래곤볼' 시리즈에서도 만나본 것 같은 토리야마 아키라 특유의 디자인이 가미된 메카들은 잠자던 동심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물론 세계관 속 인간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악동인 '벨제붑'이 주인공인 만큼 직접 전투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지만, 메인 스토리 전개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메카를 활용한 게임플레이가 주를 이룹니다.
가장 기본적인 메카인 '탱크'를 이용한 전투는 아주 캐주얼한 '월드 오브 탱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전 전차가 발포하기 전에 엄폐물에 숨거나 하는 식으로 전투를 진행하면 수월하게 진행이 가능하며, 때로는 야생동물을 상대로 90mm 고폭탄을 발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 게임의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서 추가적인 능력을 갖춘 메카들을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현재 보유한 메카로 갈 수 없는 공간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죠. 예를 들어 절벽 사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점프 메카가, 유사에 빠지지 않는 모터바이크 등, 저마다 용도와 활용 방법이 다양한 메카를 얻어 가며 모험에도 활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메카들은 한 번 제작하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꾸준히 재료를 모아 메카 자체의 레벨을 높여야 하고, 각 파츠를 더욱 좋은 것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도 있죠. 이렇게 캐릭터의 성능을 높이는 과정에(재료를 파밍하는 과정에) 모험과 사이드퀘스트가 큰 역할을 합니다. 오픈 월드로 구축된 세계 속에서, 샌드 랜드 곳곳을 탐험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요.
초반에는 메카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제니(세계관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기 때문에,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틈틈이 맵을 돌아다니며 사이드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완수 보상으로 돈은 물론, 다양한 제작 재료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각종 현상수배 의뢰를 받을 수 있는 NPC도 존재하고, 원작이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마을 사람과 유대를 쌓는 활동도 가능해 '샌드 랜드'의 세계관을 좀 더 세밀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습니다.
다만, 상대하는 적의 종류나 패턴에 한계가 명확하고, 거대한 맵 규모 대비 부가 임무가 그다지 다채로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점은 아쉽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탱크 업그레이드에 투자하지 않고, 피지컬로만 적들을 상대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요.
메카의 종류, 그리고 장착하는 무장에 따라서 공격하는 방식이나 공략법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그마저도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살기 성격인 옵션 파츠를 제외하면, 굉장히 평이한 전투가 후반부까지도 지속된다는 느낌이죠.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기대한 플레이어들이라면, 큰 변화 없는 전투에 더해진 광활한 월드가 오히려 게임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샌드 랜드'는 12세 이용가인 만큼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실제 게임 플레이 도중엔 적의 전차를 사정없이 파괴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체력이 다한 적들은 놀라 도망갈 뿐이며, 심지어 스토리 상 마주하는 거대 야생 동물들도 죽는 게 아니라 전의를 상실하고 지역을 이탈할 따름이죠.
그렇게 전반적인 난이도는 상당히 낮은 편으로, 게임이 제공하는 월드 곳곳을 탐험하지 않아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스토리에 비중을 둔 게이머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며, 보다 고난도의 메카 액션을 기대한 플레이어에게는 모든 월드를 탐험하는 동기를 부여하기엔 조금 모자란 측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갈 '계기'를 찾고 있다면
딱 잘라 말해, '샌드 랜드'는 인상에 깊이 남을 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누군가 오픈 월드, 또는 액션 어드벤처 측면에서 이 게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해 줄 만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메카를 주축으로 한 전투, 그리고 모험과 사이드 퀘스트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성상 곡선은 핵심 게임플레이 요소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관을 확장하며 넓어진 월드 전체를 아우르기엔 즐길 거리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정식 출시 전, 체험판으로 공개한 분량이 어마어마한 혹평을 받았던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입니다. 허허벌판인 사막 한 가운데서, 메카 전투를 위주로 체험판을 진행한 탓이겠죠. '샌드 랜드'의 장점은 토리야마 아키라의 디자인, 그리고 '이야기'인데 말이죠.
하지만, 원작의 감성을 충실히 구현해 낸 비주얼, 원작 분량 이후 오리지널 스토리를 통해 확장된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풍의 디자인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많은 게이머에게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찾게 해 줄 기폭제로도 안성맞춤이고요.
다시 생각해보면, 이또한 원작과 게임이 갖는 비슷한 분위기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악마, '벨제붑'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할 수도 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깊이 있는 오픈 월드 탐험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라면 '샌드 랜드'가 제공하는 메카 커스터마이징, 곳곳에 숨어있는 상자 찾기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샌드 랜드의 못 다 한 이야기가 궁금한 게이머라면 이 작품에서 얻어갈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친 일상 속, 동심으로 돌아갈 계기를 찾고 계신다면, '샌드 랜드'가 그 답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고려할 부분은 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