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제 베타 테스트의 마지막 공휴일이었던 석가탄신일, 디아블로4의 시즌4 전리품의 재탄생이 시작됐습니다. 테스트 서버인 PTR에서 확 바뀐 요소와 플레이가 큰 주목을 받으며 '이번에는 정말...'이라는 기대감을 샀죠.
이러한 기대는 게임의 추이를 확인할 수 있는 PC방 순위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며 증명됐습니다. 물론 집에서, PC방 점유율이 떨어지는 스팀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만큼, 실제 플레이 추이는 더 눈에 띄게 상승했을 겁니다.
뭐 시즌제 게임이 초반 반짝이는 건 흔한 일입니다. 아직도 종종 디아블로 2편이나 3편이 큰 폭의 수치 상승을 기록할 정도죠. 디아블로4의 시즌4 역시 따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이번 성과도 여타 게임과 비슷한, 평범한 시즌 성과로 보였을 테고요.
하지만 디아블로4를 계속 즐겼던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첫인상에 실망해 게임을 설치 목록에서 없애버린 이들도 시즌4는 한 번쯤은 돌아볼 만합니다. 수많은 변경점이 이미 공식 패치, 기사, 영상 등으로 남아있으니 그걸 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간 블리자드, 그리고 게임 개발진이 그간 디아블로4라는 게임에 억지로 주입시켰던 정체성이 흩어지며, 진짜 디아블로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시즌4를 통해 더 강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자를 건 자르고, 높일 건 높이고, 더 빨라진 레벨링
이번 시즌4는 직업 밸런스 같은 그간 여러 패치에서 기본적으로 진행되던 변경부터 여러 편의성 시스템이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어가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지옥물결 시스템의 변화입니다.
지난 시즌 시간당 5분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항시 돌 수 있게 변화한 데 이어 이번에는 첫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 시작, 세계 단계1인 모험가부터 플레이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꾸준히 빽빽한 규모로 생성되는 적과 그 수에 비례하는 빠른 레벨업. 여기에 악마들은 전체적인 직업 간 밸런스 상향에 별다른 장비도 갖춰지지 않고, 스킬도 몇 개 없는 초반에도 쉽게 썰려나가 줍니다. 특히 적 처치할 때마다 조금씩 생기는 위협수치가 가득 쌓이면 정예들을 포함에 몹이 정말 쏟아져 나옵니다.
이게 핵앤슬래시라고 하면서 많이들 강조하는 '써는 맛'도 있겠지만, 악마놈들은 그저 경험치일 뿐. 보이는 걸 넘어 초반 빠른 성장도 지옥물결이 담당하게 된 겁니다.
사실상 게임의 육성 흐름과 속도가 바뀐 겁니다. 55분 동안 지옥물결을 반복하고, 5분 동안 마을로 돌아가 장비 정비, 필요 위상 획득 등을 겸하며 빠른 레벨업이 가능하죠.
물론 기본적인 레벨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더뎌질 겁니다. 하지만 그걸 중간에 한 번 더 올리게 해놨습니다. 악몽과 고행 단계 진입 속도로 말이죠. 진입 요건인 던전 권장 레벨은 여전히 각각 50, 75입니다만, 그 전에 충분히 깰 수 있을 정도로 전체적인 직업 성능이 향상됐습니다.
악몽과 고행에 도달해야 장비 단계가 한 단계 스텝업하는 신성, 선조 아이템 뜨는데 그 착용 레벨 자체도 낮췄습니다. 신성은 35, 선조는 55레벨이면 이제 착용이 가능합니다. 대충 그 정도에 다음 세계 단계를 준비하도록 밸런스가 잡힌 거겠죠.
덕분에 중간 레벨업이 더뎌지는 35레벨 구간에서 빠른 스펙 뻥튀기가 한 번 먼저 일어나는 겁니다. 베테랑 단계부터 추가되는 경험치의 양도 늘어 몇 시간 정도만 붙잡아도 정복자 레벨이 찍히는 50레벨에 도달한 캐릭터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귀찮게 던전 길 찾고, 불필요하게 이것저것 열고 닫고 할 필요 없이 말입니다.
핵심은 레벨링 구간에서의 군더더기를 덜어내 파고들기 구간으로까지 더 쉽게 플레이어를 옮기도록 환경을 재편한 것. 이게 이번 시즌4의 가장 큰 변화입니다.
탐험은 할 만큼 했다, 달라진 게임 디자인
디아블로4 개발진과 블리자드가 그간 탐험을 꾸준히 강조했습니다. 사실 이건 디아블로4만이 아니고 디아블로 프랜차이즈 총괄 매니저로 블리자드에 합류한 로드 퍼거슨 아래에서 선보인 디아블로 이모탈도 만찬가지였죠.
디아블로3까지의 플레이 모습을 보면서 유저들의 콘텐츠 소비는 개발진에게는 꽤 고민이었을 겁니다. 이게 단순히 '한국인은 콘텐츠 소비가 빨라'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최근 개발자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블리자드는 디아블로라는 프랜차이즈를 통해 게임을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라이트 유저, 심도 있는 콘텐츠에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하드 유저 모두를 잡길 원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위상을 가진 프랜차이즈기도 했고요. 하지만 여러 번의 패치와 변화를 거쳐 정착된 디아블로3의 레벨링 구조는 초반 반짝이라는 시즌제의 한계를 넘기 어려웠죠.
그래서 디아블로4는 탐험이라는 요소를 게임 전반에 강조했습니다. 오픈 월드로 구현된 거대한 맵, 지역 곳곳에 숨겨진 요소, 근처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퀘스트. 그리고 그걸 명망이라는 형태로 보상까지 주어가며 플레이하게 만들었죠.
사실 이게 한 번의 플레이로 끝나는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 혹은 혼자서 진득하게 앉자 여유 있게 즐기는 싱글 지향 게임이었다면 유지 가능한 시스템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강점인 멋들어지는 시네마틱과 거기에 이어지는 스토리 구성, 엄청난 규모의 월드 설정, 수많은 세부 콘텐츠는 결국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 파밍과 성장을 그리는 유저들에게는 짐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라이트 유저에게는 명확한 가이드를 주기 어렵고,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겐 불필요한 콘텐츠가 많아져 버린 거죠.
단순히 누가 콘텐츠 소비 속도가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 장르적 특징, 프랜차이즈의 정체성, 팬들이 바라는 게임 구조가 그 탐험과 어울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 레벨업 구조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블리자드 개발진이 꾸준히 강조하던, '탐험'이라는 키워드의 해체를 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개선 패치 속에서도 차마 지워버릴 수 없었던 탐험이 떠나며 게임은 보다 압축되었습니다. 하나하나 세부적인 맛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결국 다 섞어보니 재료 따로 먹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맛있는 요리가 나온 겁니다.
뺄건 빼니 더할 수 있는 편의성
이러한 게임디자인과 정체성의 변화는 개발진이 보다 여유롭게 편의성 요소를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편의성은 있으면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게임에서 의도적으로 편의성 부분을 제한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단순히 오늘날 오픈 월드 게임에서 맵 속에 준비해둔 여러 콘텐츠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빠른 이동 기능의 개방을 늦추는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죠.
물론 콘텐츠의 선택은 유저의 몫이기에 이러한 제한이 옳은가를 생각해볼 수 있고, 반대로 의도한 목적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개발자의 디자인으로 볼 수도 있고요.
어쟀든 이런 편의성의 제한은 여전히 탐험 놓지 못하던 블리자드에게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물론 콘텐츠 소모 속도를 억지로 늘리려는 방편이었을 수도 있고요.
확실한 건 이번 시즌4는 성장 속도에 제한을 더 느슨하게 푼 것처럼, 편의성에서도 그간 왜 안 되나 싶었던 부분을 정비하고, 개선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힘의 전서 활용입니다. 분해한 전설 아이템의 위상은 모두 힘의 전서에 등록되고, 같은 위상도 더 좋은 수치가 떠서 분해하면 다음부터는 그걸로 더 높은 등급의 위상을 각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따로 위상 추출할 필요 없이 대장간에서 분해하면 자동으로 등록되는 편리함도 챙겼고요.
또 시즌 콘텐츠도 대부분 초중반 레벨업의 핵심이 되는 지옥물결에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전이라면 별개의 콘텐츠로 플레이 소비 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했겠지만, 결국 이를 통합하며 레벨업에 집중하면 시즌 콘텐츠 보상도 대개 따라오는 식이 됐고요.
마을 내 말 질주처럼 기본적이면서도, 끝까지 적용하지 않았던 개선을 포함해 많은 편의성 기능을 이번 시즌4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른 길로 발 내디딘 디아블로4, 그리고 다음
여전히 보루나 기타 탐험형 콘텐츠가 남아있긴 하지만, 여러 압축과 전투의 폭발력을 높이며 확실히 전투와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 게 이번 시즌4입니다.
한편으로는 특정 콘텐츠를 통한 빠른 성장, 레벨링 이후 콘텐츠 집중은 앞서 언급한 변화 이후의 디아블로3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빠른 성장과 캐릭터 밸런스의 꾸준한 상향에만 집중하면 개발진이 초반 우려하던 콘텐츠 소비, 그리고 장기적인 시즌 구간에서 플레이할 동력을 잃게 되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비슷하게 나올법 하고요.
이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해결법을 찾으려 노력한 부분도 이번 시즌4에서 어느 정도 보입니다.
PTR을 통한 테스트로 OP에 가까운 캐릭터 밸런스를 정비하려고 한 게 그것이죠. 실제로 PTR에서 지나치게 좋은 성능을 보인 요소들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라이브 서버에 도입됐습니다.
그럼에도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기본적으로 즐길 요소들을 체험했다면 다른 캐릭터를 키울 수도 있고요. 레벨링 난이도가 낮아져 성장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물론 빠른 레벨링 이후 후반 단계에서의 콘텐츠 방향은 새로운 장비 강화 시스템으로 꾸준히 시간을 들이게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위상 획득이라는 부분의 스트레스는 줄이고, 돈과 재료를 들여 반복할 수 있는 담금질, 그리고 나아가 강화와 옵션을 더하는 명품화로 성장의 마지막을 찍도록 했습니다.
결국 최상 수준에서는 상급 속성의 파밍이 필요하겠지만, 그전까지는 장비별 기본 옵션의 수를 낮춰 파밍 자체의 난이도는 낮추고, 강화 쪽으로 향상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맞는 나락의 도입으로 수급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요.
물론 지금은 높은 단계의 강화에 자원이 많이 들긴 합니다. 아마 편의성 강화로 얻은 콘텐츠의 집중 방향을 여기서 해결하려는 건데 완전무결한 해결책이라고는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즌4에서 게임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그 결과물이 적어도 많은 디아블로 팬이 과거 즐겨왔던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겁니다.
워낙 많은 기대가 있었고, 몇 차례 내부 개발진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개발 방향의 변경 등도 디아블로4의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건 엔드 콘텐츠 단계에서 팬들의 터져 나오는 불만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건 지난 시즌까지도 비슷했죠.
시즌4에 이르러서 변화한 게임 디자인과 그에 따른 변화. 물론 섣불리 '갓겜'이 됐다고 말할 수준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디아블로4는 더 이상 시간을 들여 플레이하는 게 부족하고, 아쉬움만 남기는 게임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리품의 재탄생이라는 시즌 제목처럼, 게임도 어느 정도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요.
그리고 그간 이어진 비판만큼이나 무엇이 좋은 평가를 받는지 들을 수 있었던 건 개발진이 더 좋은 디아블로4의 미래, 그리고 확장팩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