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할지도 모르지만 고어가 왜 포르투갈 영지냐에대해 궁금하신분이 있을지도 모르죠..ㅎ;
(카페글에는 그림이 있는데 여기는 붙여넣기가 안되네요..ㄱ-)
고어
포르투갈 영지
교역품:자스민,루비, 인도편사,백단, 산양모, 강달소라, 황마, 면화, 철광석, 생강
자스민-인도 명산품(향료)
루비-인도 명산품(보석)
인도편사-인도 명산품(직물)
----------------------대략 이정도가 대항해시대에서 알고 있는 고어입니다----------------------------------
출처: 인도사 (청아출판사, 김형준) 값 1,0000(음..?)
인도사 中:재상으로서 가완은 왕국의 영토를 동쪽으로 더욱 넓히는데 힘써 칸치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다브홀과 고아(외국어를 우리말로 할때는 고어, 고아 둘다 맞겠죠..)를 포함한 서부 해안 지역을 점령한 것이었다. 원래 바흐마니 왕국의 영토였던 이 지역은 이란, 이라크를 비롯한 해외 지역뿐만 아니라 국내 무역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항구였다. 그런 관계로 이 지역의 차지는 바로 왕국의 경제력과 직결되었다. (중략)
그런 고어를 왜 포르투갈에게 넘겨주었을까요..? 우선 포르투갈의 인도 진출부터 봅시다
비자야나가라 왕국은 크리슈나데바 라야 때 절정에 달했다. 왕위에 오른 그는 퉁가바드라 지역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재개했으며 그 과정에서 굴바가와 오릿사를 침공하여 수많은 요새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비자푸르 왕국의 영토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당시 막 인도로 진출하기 시작한 포르투갈인들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해상무역을 위하여 해군력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라네요.. 크리슈나데바 라야 왕의 재위기간은 1509~1530년, 그럼 16세기초에 인도진출이 시작됬네요.
포르투갈인의 인도도래
유럽인이 대양으로 진출하여 인도 땅에 처음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두 척의 배를 이끌고 캘리컷에 도착한 무렵이다. 이때 아프리카 해안에서 캘리컷까지 뱃길을 인도한 사람은 구자라트인 선원 압둘 마지드였다. 이 사건은 유럽인들의 해상진출과 그로 인한 식민지 건설을 통해 유럽, 특히 서유럽의 세력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는 일종의 신호탄과 같았다. 이후 해상무역의 중심은 인도와 아랍을 거쳐 유럽인들에게로 넘어가 인도와 부근 아시아 지역에 유럽인들의 식민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1418년 포르투갈의 헨리 왕자는 동양과의 무역권이 베니스와 제네바(제노바겠죠..제네바로 표기된 지도를 보았는데 제노바와 거리가 거의 맞아떨어지더군요..)를 중심으로 터키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인도의 향료와 후추 등을 직접 수입할 수 있는 해상로를 찾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그는 매년 두세 척의 배를 파견하여 아프리카의 서해안 지역을 탐험하는 한편 인도로의 항로를 찾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해상탐험에는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게 적절하게 대항할 수 있도록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의도를 앞세워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지역에서 새로 발견하는 땅 가운데 그곳의 주민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면 모두 포르투갈의 영토로 인정한다는 교황의 승인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1487년 바르톨로뮤 디아스(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디아스 제독의 아버지가 바르톨로뮤 디아스입니다..희망봉 찾는 지리퀘를 해보면 알게되지요)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일주함으로써 이곳에 서유럽과 인도 사이의 직접 무역을 위한 전초기지가 마련되었다. 이 과정을 거쳐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까지의 항해를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마침내 유럽과 인도 사이의 직접무역의 길이 활짝열리기 시작했다.
바스코 다 가마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점차 인도로 진출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나가면서 무역을 독점하기 시작하자 이집트의 술탄은 함대를 파견하여 그들을 물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1509의 포르투갈인들은 월등한 함대의 힘으로 이슬람 세력을 손쉽게 물리쳐 버렸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은 페르시아만과 홍해를 잇는 해상무역권을 독점하였다.그 후 일년이 지난 1510년 포르투갈은 뛰어난 영웅 알부케르케가 비자푸르 왕국으로부터 고아를 빼앗아 동방제국의 정치,경제적 중심지로 삼았다. 고아에 거점을 마련한 포르투갈인은 계속해서 인도 내륙으로 진출을 시도하는 한편 스리랑카와 수마트라(자카르타는 자바섬에 있고..수마트라에는 그다지 거점이 없는데..?ㅋ)에도 거점을 마련함으로써 동서양을 잇는 해상무역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이후 1580년 스페인(에스파니아 입니다..스페인사람들이 자기나라를 말할때는 에스파냐라고 한다고 해요)에게 패해 물러나기 전까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발휘하였다. (중략)
끝났네요..결국 무력으로 고어를 빼앗았다는 이야기이며 역시 제국주의적인 식민지배를 대항해시대에서는 미화했네요..인도진출로; 다른 책에서도 보았는데 첫 가마제독의 인도 무역은 인도 총독을 포로로 잡아 후추와 교환했다는 약탈 무역이였다고 하네요..
포르투갈 이벤트중 2번째 왔을때 고어에 거점이 되있었고 그 때 고어가 포르투갈 영지였다는 점은 시대상으로 맞는것 같구요..
그 외의 이야기 (본문과는 상관없음)
그후 인도에는 스페인 세력이 포르투갈을 대치하지만 이 역시 유럽의 상황변화에 따라 변해 가면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연이어 인도에 진출해 각기 동인도 회사를 세워 인도를 경제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간의 세력다툼 끝에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해상무역을 석권하는 한편 1757년 유명한 인도의 플라시 전투에서마저 프랑스를 물리침으로써 인도 지배의 본격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영국의 식민지배 정책이 카이로-케이프타운-캘커타를 잇는 3C정책이였다죠..그때부터 캘커타와 벵갈이 지배의 중심지가 되었나보네요)
끝
p.s 처음치고 편집을 꽤 깔끔하게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