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옮겨 그의 집 앞. 런던 최고의 부자의 집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큰 집과 넓은 정원이 딸린 집을 생각했던 에스텔은 실망했다. 대상인의 집이라 하기엔 집에 크지 않았다. 귀족가문 별장수준에서 조금 더 작은 형태였다.
“뭐야. 런던 최고의 부자라더니 집이 왜 이렇게 작아? 정원도 없네?”
“뭐, 나도 몰라.”
“지금 장난해?”
“부관주제에 말이 많다. 잠자코 들어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 여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아, 도련님 오랜만에 돌아오셨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마님께서 기다리고 계셔요.”
“아, 크리스틴. 내가 깜빡한 게 있는데. 내 부탁 좀 들어주겠어?”
“네.”
“이거 15만 두캇이거든? 이거 10만은 주점아저씨 갖다드려. 부관 고용비라고. 그리고 가서 선원들 얼마나 먹었는지 청구서 받아와. 또, 교역소 가서 거래내역서 받아오고. 5만은 너 가져.”
“네, 알겠습니다.”
크리스틴이라 불렸던 여성은 집을 나서 주점으로 향했다. 에스텔이 묻기를.
“난 돈 안 줘?”
“시꺼. 넌 자존심 건드려서 열외!”
“그런게 어디 있어?”
“내가 곧 상단이며, 나의 말이 곧 법이니라.”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칼은 에스텔의 말을 싹 무시하고 거실로 들어갔다. 에스텔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그를 따라갔다. 거실로 들어간 순간 그녀는 굳어버렸다. 칠흑같은 긴 검은 머리에 고운 얼굴을 가진 중년 여인. 칼의 어머니였다.
“어머. 칼, 저분은 누구니?”
“오늘 고용한 부관이요.”
칼의 무성의한 대답에 어머니는 살짝 미소 짓고는 에스텔에게 인사했다.
“아, 그러셨군요. 어서 오세요. 칼의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아, 아....”
에스텔은 할 말을 잃었다.
“이곳에선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없지요? 이해해요. 처음 이 집에 온 사람들은 저희 가족을 보고 놀라니까요. 자, 여기 앉으세요. 저는 차를 내오도록 하지요.”
“네, 네.”
칼의 어머니는 거실에서 나가고 에스텔은 쭈뼛쭈뼛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칼의 비아냥거림이 시작되었다.
“바보.”
“뭐, 뭐가!”
“넌 내 머리 색 못 봤냐?”
“으, 응. 싸우느라 제대로 못 봤어.”
“그러니까 바보라는 거다.”
“이, 이...”
“또 싸울까?”
칼의 비웃음과 비아냥거림에 에스텔은 화가 치밀었지만 칼의 한마디로 에스텔은 조용해졌다. 잠깐의 정적 후에 에스텔이 입을 열었다.
“이봐 선장. 아버지는 안 계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뭐?”
“3년 전에 해적의 습격을 받아 돌아가셨어. 아버지 시신은 그때 아버지 부하선원들이 수습해서 이리로 모셔왔고. 지금 런던 교외에 잠들어 계시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지금 배타고 돌아다니겠어?”
“그랬구나. 미안해.”
“상관없어. 옛날 일이니까.”
하지만 에스텔은 느꼈다. 상관없다고 말하는 칼에게서 그리움과 슬픔이 묻어있다는 것을. 더 이상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궁금증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했다.
“항해술이나 검술은 누가 가르쳐 줬어?”
“아버지. 검술, 항해술, 격투술, 총술, 포술, 돛 조종법, 측량까지.”
“그, 그래?”
둘 사이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칼은 에스텔의 물음에 계속 대답해주고는 있었지만 뭔가 형식적이었고 에스텔은 억지로 뭔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 참에 칼의 어머니와 크리스틴이 들어왔다. 크리스틴의 손에는 서류봉투 하나, 어머니는 다른 하인과 함께 차와 다과를 가지고 들어왔다.
“도련님 여기 부탁하신 것 알아왔습니다.”
“아, 고마워.”
크리스틴은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칼에게 건넸다. 칼은 서류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놈들. 엄청나게 먹었군. 이거야 원. 주점 빌린 돈 제외하고 먹고 마신 돈이 50만이란 말이야? 70만 깨지겠군. 이건 교역소 거고. 어디보자.”
칼이 보고 있던 서류를 칼의 옆에 앉아있던 에스텔도 살짝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거래내역서에 적힌 엄청난 액수에 경악했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액수를 보면서 냉정을 지키는 자신의 상관이 신기해 보였다.
“저번보다 수익이 줄었는데?”
“뭐?”
에스텔은 황당했다. 지금 칼이 들고 있는 내역서에 적힌 이익은 잉글랜드 해군전체를 두 달 동안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액수였다.
“저번에는 얼마 나왔는데?”
“이거에 1.5배. 뭐, 사올 때 물건 값을 깎지 못한 것이 한스럽군.”
칼의 대답에 에스텔은 더욱 할 말을 잃었고 상인들은 다 저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마침 칼의 어머니가 테이블에 차와 다과를 내려놓았다.
“자, 차를 내왔으니 들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아들에게 말했다.
“너무 이익, 이익하지 말거라. 그래, 이번엔 어디로 나갈거니?”
“이번에는 북해에서 장사하려고요. 너무 오랫동안 신경을 못 써서 말이죠.”
“그래? 그럼 이번 항해는 일찍 끝나겠구나. 지금은 네가 이 집안 가장이란다. 항상 명심하거라.”
“예. 어머니.”
칼의 대답을 들은 후 에스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왜 그래요? 차 맛이 좋지 않은가요?”
“아, 아니에요.”
“그런데,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되지요?”
“에, 에스텔이라고 합니다.”
“전 엘리스라고 해요. 부관이라고 했죠?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
“네? 저, 저는…”
에스텔은 여전히 우물쭈물 하였다. 엘리스를 대하기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칼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묘한 무언가가 어머니인 엘리스에게서 느껴졌다. 이런 부담스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상관인 칼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충 정리 됐고. 나중에 주점이랑 교역소를 들러야겠네. 천천히 마시라고. 나는 옷 하나 급하게 만들어야겠으니. 크리스틴. 미안한데 애들 좀 불러 모아줘. 급한 일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칼은 2층으로 올라갔고 크리스틴도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갔다. 거실에 남은건 칼의 어머니와 에스텔.
“칼의 부관 노릇 하려면 고생 좀 할 거예요. 해적들의 표적이니....”
“걱정 마세요. 저 이래봬도 해군사관이었어요.”
“전에는 라이자가 따라가 줘서 걱정은 없었는데. 지금은 저 애가 바다로 나갈 때 마다 걱정이네요.”
“아, 저..”
“뭘 묻고 싶은지 알아요. 우린 원래 유럽인이 아니에요. 사정상 제가 말씀 드리긴 어렵고. 나중에 칼이 알아서 말해줄 겁니다. 그리고 런던에 오면 부담 없이 우리 집으로 와요. 남는 방이 있으니 아이들을 시켜 정리해 두도록 하죠.”
에스텔은 당황했다. 다른 사람들이 부관에게 해주는 것에 비교해 보면 실로 엄청난 호의이다. 그리고 겨우 마음을 다 잡고 엘리스에게 물었다.
“저, 어째서 이렇게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거죠?”
“딸처럼 느껴져요.”
“네?”
“칼 위에 누나가 있었지요. 원래 몸이 약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후에 죽었죠. 당신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네요.”
에스텔은 괜히 물었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묻지 말아야지 했지만 입이 생각했던 것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럼, 어머님 슬하에 자식이 선장 하나뿐인가요?”
“아니오. 한명 더 있지요.”
“엄마!”
금발의 여자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많이 잡아줘야 10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졸음이 가득 찬 눈을 비비면서도 자신의 인형을 꼭 안고 있었다. 엘리스는 소녀의 곁에서 허리를 굽히며 인자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에리카, 이제 일어났니?”
“응. 엄마, 오빠 왔어?”
“오빠는 2층에 있단다. 조금 후에 내려온다고 했으니까 가서 씻고 와.”
“응.”
에리카는 욕실로 향했다. 에리카가 나간 뒤에 엘리스가 말을 이었다.
“이름은 에리카이고. 나이는 올해로 아홉 살이죠. 제 친자식은 아니에요. 길에 버려져 있는 저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들어왔죠.”
“그렇군요....”
“여어. 뭐가 그렇게 심각해?”
마침 칼이 내려왔다.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에스텔의 궁금증이 다시 한 번 발동하여 칼에게 물었다.
“선장, 그거 뭐야?”
“내 목숨을 연장시켜줄 무기다.”
“아, 그러셔?”
“나갈 준비해. 내일 모레 출항할거야.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고.”
“동생 안보고 가?”
동생이란 말에 칼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은 에스텔의 팔을 잡고 문으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에스텔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아야, 너 왜 그래!”
“시끄러, 안젤라보다 에리카가 더 무서워! 어머니 나갔다 올게요! 에리카한테는 잘 말해주세요!”
도망치다시피 하여 문밖으로 나와서야 칼은 에스텔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팔을 만지며 칼에게 있는 화 없는 화를 다 내었다.
“너 미쳤어! 나 죽이려고 그래!”
“어이구, 오늘 새벽에 나 죽이겠다고 덤빈 어떤 아가씨는 누구신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내가 너한테 무슨 할 말이 있겠니. 따라 오기나 해. 오늘 굉장히 바빠.”
“너 몇 살이야?”
“19살.”
“내가 너보다 2살 더 많아. 누나라고 불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은 에스텔보다 더 빠르게 걸어 앞서나갔다. 칼의 입장에서 에스텔은 우습지도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시킨 장본인이기에 누나라는 호칭은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때가 되면 누나라 부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성질머리를 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칼은 쫓아오는 에스텔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
1학기 수시의 패배의 쓴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양대는 1단계부터 떨어지고, 육군사관학교 1차시험 탈락...
남은건 성균관대 경희대....
절망의 나락속에 빠질듯 싶은데요..흐흐흐...
좋은하루 되십시오